사람을 평가하거나 호칭할 때 그 사람을 형용하는 수식어를 이름을 대신하여 부릅니다. 혹은 이름 앞이나 뒤에 붙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붙이는 수식어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로를 향하여 우리 친구(요 11:11)라고 하셨고, 사도 요한도 자기를 칭할 때 그의(주님) 사랑하시는 자(요 13:23)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누가를 향해 사랑을 받는 의사(골 04:14)라고 하였고 마가에게는 나의 동역자(몬 01:24)라고 하였고 데마를 향해서는 이 세상을 사랑한 사람(딤후 04:10)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수식어는 그 의미가 좋으면 복된 일입니다. 의미가 좋지 못하면 복된 일에서 한 발짝 멀어진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나를 아는 분이 좋은 의미로 불러줄 수 있도록 자기 관리 잘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의 주인공 다대오에 대한 수식어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는 유다, 여러분 혹 들어 보셨습니까? 성경 어느 곳에 그렇게 표현되어 있느냐고요?
성경에는 유다에 대해 한 번만 그의 행적이 나옵니다(22). 별다른 행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랑받고 있는 유다라는 수식어가 어디에 나옵니까?
초대 교부(敎父) 가운데 한 사람인 제롬(Jerome, A. D. 366~420)이 기록한 열두 제자 인물에 관한 단편집에 나옵니다. 성경 밖의 문서이기에 참고 정도의 단서입니다.
또 하나의 유다는 가룟 유다와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룬 제자이다. 가룟 유다가 불평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은 조용하게 찬양하고 있었다.
한 신학자는 열두 제자를 연구하면서 사도 요한을 적극 사랑의 사도로, 유다는 조용한 사랑의 사도로 칭하였습니다. 유다는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자기를 감추면서 사랑을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유다의 행적을 강론하면서 「자기를 감추며 산 유다 다대오」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함께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유다 다대오(Ἰούδας,)의 기초 이력서 |
눅 06: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이름은 유다입니다. 부모가 구약시대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를 연상하며 지은 이름일 것 같습니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가족 관계는 그의 아버지 이름이 야고보(눅 06:16, 행 01:13)입니다. 그 외에는 별 특기할 만한 행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설교 거리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유다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려면 먼저 당시 문화와 경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유다가 어떤 가치관으로 목적을 수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이름 외에 배경이 될 만한 특이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당시 사회에서 쓰이는 이름을 살피면서 연구를 진행하여야 합니다.
교부 제롬은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한 학자입니다. 이 제롬이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세 가지 이름을 가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 세 가지 이름을 봅시다. 첫째 유다(눅 06:16, 행 01:13), 둘째 다대오(마 10:03, 막 03:18), 셋째 레베오입니다(Lebbaues KJV 마 10:03).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에는 레베오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유명한 베자, 사본과 여러 사본은 다대오 대신 레베오로 표기하였습니다.
레베오 이름의 뜻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란 뜻입니다. 그 외에도 고대 사본 곳곳에서 찬양하는 사람 레베오 이렇게 불렀습니다.
세 가지 이름 중 본명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이스라엘의 여러 전통과 정황을 보아 유다로 보입니다. 다대오나 레베오는 사회생활 편의를 위한 별명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와 마가는 유다라는 이름 대신 별명인 다대오로 표기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후 다대오가 계속 유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더욱 불명예스럽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런 여러 이유로 유다의 명예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유다 대신 다대오라고 기록했습니다. 본명이 유다임에도 가룟 유다 때문에 이름이 사장 될 뻔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본명이 유다라는 사실은 성경의 저자 중 가장 역사의 안목이 날카로운 누가와 요한에 의하여 보존되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할 때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누가는 자기의 저술을 이해관계가 없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본명 유다를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행 01:13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다대오(Θαδδαῖος 마 10:03, 막 03:18) 이름의 뜻이 어떠한지 보겠습니다. 사랑스러운 자입니다. 따라서 다대오는 사랑스러운 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호칭은 가룟인이 아닌 유다(요 14:22)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버지 야고보가 유다에게 따뜻한 가슴을 열어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라는 바람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2. 유다 다대오의 인물됨과 그의 생애 |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 하려 하시나이까?
성경에는 열두 제자 명단 외에 유다 다대오가 등장한 때가 딱 한 번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사람을 성경에 한 번만 나타난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나온 성경이 바로 22절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룟인 아닌 유다라는 부분의 발음을 잘하십시오. 혹 발음을 잘못해 아닌 을 빠뜨리면 어떻게 됩니까? 가룟인 유다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발음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22절 의미가 무엇입니까? 유다가 예수님께 선생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는 나타내시면서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안 나타내십니까? 하고 묻는 장면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23, 24절로 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조금은 유다 다대오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01~17). 발을 씻긴 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만찬이 끝나갈 무렵 비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제자 셋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 대목을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너희들 곁을 떠나간다(01~04). 그러자 ➊도마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05). 이어 예수님께서 답을 하십니다(06).
요 14:0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때 ➋빌립이 튀어나와서 말합니다.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그 아버지를 우리에게 한번 보여 주십시오. 하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 답을 하십니다.
요 14:0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0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어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기도에 관한 문제로 주제를 바꾸십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 자신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때 ➌가룟인 아닌 유다가 선생님, 어째서 선생님께서 왕 되심을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사람에게는 감추십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도마와 빌립에 이어 세 번째 질문자가 유다 다대오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훈련받은 후 성경 기록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합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어떤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대체로 머리가 좋고 공부에 대한 향학열이 좀 있는 학생입니다.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질문을 안 합니다. 반면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어떤 상황에 대하여 높은 관찰력이나 상상력 있는 질문을 합니다.
세 번째 질문자 다대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아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을 향해서도 공개하십시오. 라는 건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널리 알려 많은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경배하게 하셔야지 않습니까? 라는 선교 차원의 질문입니다.
3. 유다 다대오의 죽음과 교훈 |
다대오의 일대기를 기술한 다대오 전(傳)이란 책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니고 외경에 들어 있는 문서입니다. 이곳에 의하면 유다 다대오는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시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특별히 아르메니아의 에뎃사에서 바돌로매와 함께 활동하였습니다.
특별히 에뎃사에서 아브가르 왕의 불치병을 치유한 일로 인해 급격한 복음의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도마와 함께 사역하다 페르시아 지방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유다 다대오는 다른 제자 보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특기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품성으로 인해 주님의 제자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서 가교역할을 가장 잘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 다대오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항상 찬양과 감사로 밝은 면을 바라보는 제자입니다.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 불평할 것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감사를 앞세워 밝은 면만 바라봅시다.
②주님과 한 번의 대화에서 메시아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하는 선교 마인드를 가진 제자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③이름처럼 찬양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열어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준 사람입니다. 이름처럼 복된 삶을 살다 간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가룟 유다는 좋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유다 다대오는 좋은 이름처럼 삶을 살다 갔습니다. 유다 다대오는 그렇게 이름을 날린 제자는 아니었으나 꼭 필요한 제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우리나라의 문화를 가리켜 졸병이 없는 문화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너 커서 장차 뭐가 될래? 하고 물으면 가장 많은 답이 대통령입니다.
다 대통령이 되면 졸병은 누가 합니까? 세상과 교회에는 리더와 함께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섬기는 행복한 졸병이 필요합니다. 보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가장 약한 점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는 분이 잘 안 보이는 일입니다. 삶을 믿음으로 가꾸는 삶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찬양과 감사를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가장 작은 일에도, 가장 사소한 일에도 주님 앞에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삶 말입니다. 그저 조용하게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주어진 몫을 하면 그것으로 됩니다. 이름이 빛나지 않아도 됩니다.
유다 다대오는 가룟 유다가 구제하는 일을 놓고 제자들과 열을 올리며 다툴 때나 제자들이 떠들썩하게 소리를 지르고 흥분할 때 후미진 곳에서 조용히 찬송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찬양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은혜로운 교회로 다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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