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에서 제일 편리한 게 바로 신용카드(Credit Card)입니다. 이 카드는 현금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물건을 구매한 후 일정한 기한이 되면 갚는 편리한 수단입니다.
규격은 ISO 7810이 규정한 대로 가로 85.6mm, 세로 53.98mm, 두께 약 0.8mm 정도의 플라스틱입니다. 이 신용카드 역사는 1950년 미국의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가 다이너스(Diners) 클럽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신용카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후불 신용카드가 아닌 보증 카드이었습니다.
그 후 195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기업이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면서 적극 신용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하여 세계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8년 신세계 백화점에서 만든 카드를 출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1978년 외환은행에서 비자 카드 발급업무를 개시하면서 전국화되었고 2천 년 대 초반 신용카드 붐이 일어났을 때 알바생은 물론 별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게도 마구 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카드 대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신용카드를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카드가 일상화되면서 웬만한 가게에서는 현금 없이도 물품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우 편리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외상입니다. 당장은 현금이 안 나가니 편하겠지만 외상이 쌓이고 쌓여서 빚이 되고 이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일이 쉽게 일어납니다.
빚이라는 말 자체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 갚을 능력이 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근심거리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런 빚은 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굳이 빚을 진다면 사랑의 빚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믿음의 가족에게 이 사랑의 빚도 지는 것보다 갚으며 살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삽시다」로 정했습니다.
1. 물질의 빚을 지지 맙시다. |
0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빚으로 힘든 적이 있습니까? 빚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에 얼마나 짐이 되는지 모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은 빚을 져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빚진 자는 항상 긴장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낯선 사람이 점점 다가오면 혹시 빚 때문에 잡으러 왔는가? 라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전화벨이나 초인종이 울려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집에서 밖에 나오기도 불안하고 밖에서 집으로 들어가기도 불안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 이런 일로 고민하는 두 분을 집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채무자는 헤어스타일 2cm짜리만 다가와도 은근히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빚은 눌림이 되어 잠을 설치게 합니다. 밥맛도 없습니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빚은 눌림이 되고 불안의 노예가 됩니다. 이 무서운 빚을(ὀφείλω 오페일로) 아무에게든지 지지 말라는 말씀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져서는 안 되는 직접 빚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개인이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이 신용카드로 각종 물품을 사지 않습니까? 빚으로 사는 셈입니다. 물건을 샀으면 할부로 나누어 갚든지 아니면 다음 달에 꼭 갚아야 합니다.
둘째 져서는 안 되는 각종 세금입니다. 오늘 말씀 배경에는 당시의 세금인 관세 조세 등 각종 세금에 대해 신앙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안내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일부의 사람은 세금은 빚이 아니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공공부채도 빚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속국에서 내는 세금은 상당히 부담되는 수준입니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세 가지의 세금을 내어야 했습니다.
①토지세(土地稅). 땅의 소출 중 곡식은 10분의 일, 포도주와 과일은 5분의 일을 현금이나 물품으로 강제 징수하였습니다. ②소득세(所得稅). 국민 각자 소득의 100분의 일을 바치게 했습니다. ③인두세(人頭稅). 14세부터 65세까지 모든 사람이 의무로 내는 세금입니다(주민세).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에게 국민으로서 당국에 내어야 할 세금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세금을 안 내면 이 역시 빚입니다. 이렇게 권합니다. 사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도 빚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늘려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먼저 빚지고 나중에 갚는 사회 시스템입니다. 빚진 자라는 마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후지급인 만큼 점점 빚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조건 빚을 지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소유물 빌리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빌렸다가 손상을 입혔으면 배상하라고 안내합니다(출 22:14). 빌린 것도 빚이고 손상을 입힌 것도 빚입니다. 그 빚을 성실하게 갚아야 합니다. 빌릴 때 마음과 갚을 때 마음 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는 빌리고 갚을 때 신중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빚을 졌지만, 그 빚진 상태를 해소해야 합니다.
시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 도다.
2. 우리 모두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
0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빚 없이 살고 싶지만, 대다수가 주택 구매, 자녀 양육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흔히 빚을 살림 밑천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악성 부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악성 빚은 숨어서 지내야 할 때가 있고 믿음 생활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꼭 져야 할 빚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말 자주 듣지요? 또 쉽게 이야기합니다. 한 마디로 사랑 이야기가 너무 흔합니다.
성경을 통해 사랑을 많이 읽었고, 사랑하라는 설교도 수없이 듣다 보면 사랑이란 말에 내성(耐性)이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를 들으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신속히 빠져나갑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 사랑의 말씀을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내십시오. 가슴에서 감동하여 온몸 전체에서 행동과 사랑으로 나타내십시오.
물질의 빚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문서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빚은 문서 없이 주고받습니다. 이 사랑의 빚을 주고받으면 서로 기쁨과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사랑의 빚을 조금도 안 진 분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빚진 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부모님이 치른 수고와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수고하고 희생해 주셨으며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믿음의 감각으로 깨닫느냐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잘 보십시오. 구원받은 성도는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사랑을 멈추고 당신만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립니까? 나는 지금 형편이 안 되니 당신이 예수님 사랑으로 속히 다가오기를 기다립니까?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나누어야지 구제의 대상이 되지는 마십시오. 불가피한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수시로 돌아보고 끝까지 돌아보는 일을 사랑으로 해야지 값싼 동정으로 하지 마십시오. 깊은 기도의 지원이 담긴 사랑이어야 합니다. 구제받았으면 그 사랑을 예수님 찬양으로 바꾸십시오.
물질의 빚은 진 사람이 그것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처럼 사랑의 빚을 진 사람도 반드시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어떤 분은 나는 빚지고는 못살아. 나는 사랑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아.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예수님 사랑을 입었으니 그 사랑을 전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3. 하나님 사랑을 체험한 자는 이웃에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율법의 완성은 율법을 다 세밀하게 지키는 때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빚은 이웃을 사랑함으로 갚는 것이 됩니다.
빚은 하나님께 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갚는 대상은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며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습니다. 눈물 흘리게도 안 합니다. 상대를 나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자입니까? 상대방도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섬깁시다. 섬길 힘이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혹 이웃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와 눈물을 심어준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이 떳떳해야 합니다.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고 회개의 자리로 갑시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도 요한도 예수님에게서 입은 그 큰 사랑을 후세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04:21). 사랑이 식어버리니 불법이 설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은 형제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께 빚진 사랑을 서서히 갚아 나갑시다. 신약성경에 황금률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구절인지 아십니까?
마 0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을 부정(不定)문으로 바꾸면 내가 남에게 받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아놓고 이런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식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종업원 일동.
점심시간에 손님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식사하러 갔습니다. 식당이 존재하는 이유를 잊어버린 격입니다. 이런 일과 같은 사고(思考)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본질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의 본질은 하나님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은 말씀을 실천하며 순종합니다.
고전 13:0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0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아갑시다. 교만한 마음 외식화 되어가는 마음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 Adelphi University(1896년 설립) 심리학 박사 폴 에크먼 박사(Paul Ekman, 1935.2.15)가 자신의 저서 『텔링 라이즈』에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구별하고 싶다면 표정을 보십시오. 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특별히 미소를 주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표정은 3~5가지 근육이 필요한데 미소는 단 한 가지 근육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구분하는 단서는 눈썹입니다.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대방을 속이려는 거짓 미소를 지을 때는 눈 근육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얼굴에 5초 이상, 길게는 10초 이상 같은 표정을 지으면 거짓일 확률이 높습니다. 무아지경이나 폭발성 분노를 제외하면 대부분 표정은 몇 초만 나타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느껴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이웃에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가끔 듣습니까? 아니면 내게는 안 들리지만, 입소문을 타고 돌아서 교만한 사람, 신뢰성이 없는 사람,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까?
그런 말이 안 들리도록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에 겨워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기도를 심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교만이 틈을 탑니다. 불신앙이 틈을 탑니다. 사랑을 심고 내가 사랑의 빚을 졌으면 그 빚을 갚는 생활로 나아갈 때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➊고요히 주님 앞에 와 내 모습 돌아볼 때 순간순간에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 뿐입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다시 못을 박던 이 죄인 빌라도의 병사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빕니다.
➋겸손히 머리를 숙여 기도드릴 때 순간순간에 행한 일들이 죄와 허물 뿐입니다. 주님의 그 허리에 다시 창을 댔던 이 죄인 빌라도의 병정보다 악하고 추한 몸이 우리 주님 그 앞에서 용서를 빕니다.
➌두 손을 마주 붙잡고 눈을 감으면 순간순간의 그 모든 일이 죄와 허물뿐입니다. 주님의 그 옷자락 다시 잡아 찢던 이 죄인 로마 병정 그보다 더 악하고 추한 몸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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