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만들어 세상으로 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이 아기는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세상에 태어나기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묻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자 이 아기는 세상이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과 전쟁과 다툼으로 가득 찬 것을 볼 때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네가 외롭고 힘들고 어려울 때 너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천사를 보내줄 것이다. 그 첫째 천사는 어머니요 둘째 천사는 선생님이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의 이야기가 전하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근본 배경이 부모님과 선생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칠 때 뒤에 부모님과 선생님이라는 천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느니라(06, 14)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의 손길을 통해서 이기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천사가 여러분의 삶을 이기는 길로 인도하실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현대 사회 매우 치열하죠? 이런 경쟁 속에서 우리도 이기는 자가 됩시다.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또는 진학하든, 사회에서 취업하든, 경쟁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어디로 가든지 다윗처럼 이기는 자가 되는 그런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솔직히 이기는 일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오늘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만나서 범사에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제목을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십니다.」로 정했습니다. 범사의 생활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싸울 때 이겼습니다. |
0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08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한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승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깊은 의미 없이 다독(多讀) 형태로 읽으면 다윗이 가는 곳마다 무조건 승리한 대단한 천하무적의 용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승리한 장면들을 간단히 볼까요?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01),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02), 소바 왕 하닷에셀을 다윗이 그를 쳤고(04),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05), 암몬 자손과 아말렉, 에돔(12, 13) 여부스 사람과 싸움(삼하 05:06) 등입니다. 다윗이 정복한 여덟 민족 가운데 최고 강적이 블레셋입니다.
이들 나라와 숱한 고난의 위기를 거친 끝에 마침내 물리쳤습니다. 먼저 전쟁에 임하는 다윗의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상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냐, 어떤 대상이냐, 크냐, 작으냐가 아닙니다.
여덟 나라를 보면 때로는 막강한 군대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강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윗의 군대 앞에서 전혀 힘을 못 쓰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용맹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특별한 장비가 있다거나 무술이 특출하거나 병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웠기 때문에 승리하였습니다. 여러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골리앗을 대항하는 다윗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으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을 도무지 보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상징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온 일입니다(삼하 06:11~18). 다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려는 마음을 품은 일입니다.
물론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2:08)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서 다윗이 정복한 여러 나라를 보십시오. 그들이 언제나 먼저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매우 힘들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까닭 없이 먼저 공격해서 그들을 아프게 한 일은 없습니다.
다윗(דָּוִד)의 이름 뜻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평화주의자라는 뜻입니다. 상대국을 해치려 먼저 침략 전쟁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손해를 볼지라도 양보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이렇게 매사에 하나님을 배경으로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직장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배경을 입어야 합니다. 사업에도 하나님의 배경을 입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도 하나님의 배경을 입어야 합니다. 사탄과의 전쟁에도 이 배경으로 싸워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롬 12:11).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기게 하실 때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십니다(롬 08:37). 물맷돌 4개나 남은 다윗처럼 넉넉하게 이기게 하십니다.
2. 다윗은 세상 군사력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
0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04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병거(兵車)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 병거와 말은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습니다. 고대 전쟁의 최고 핵심 전략이 기마병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보면 핵심 전략을 폐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03절부터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먼저 소바라는 나라부터 봅시다.
소바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자리 잡은 아람의 일부 국가입니다. 다윗이 통치할 때 아람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 국가로 분립 되어 있었습니다.
블레셋처럼(5개 도시) 말입니다. 그중에서 그나마 강력했던 지역이 소바입니다. 그 영향력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까지 뻗쳐 있었으며 요단 동편과 수리아의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소바를 다스리는 하닷에셀 왕은 동맹군 암몬이 아람의 소국들과 함께 다윗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자존심이 상하여 다시 군사를 재정비하였습니다. 재정비한 군사로 다윗에게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그 병력이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입니다. 그런데 평행 본문 역대상 18장 04절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상 18:04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다윗이 그 병거 백 대의 말들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 08:0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이 구절을 놓고 70인 역(LXX)도 대상 18:04을 인용합니다. 추측하건대 본 절은 혼동하기 쉬운 히브리어 철자를 착각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인 듯합니다. 즉 여기서 기병(רֶכֶב 레케브)이란 말이 탈락한 탓에 칠천을 가리키는 숫자가 칠백을 가리키는 숫자와 착각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에는 말이 생산되지 않습니다. 말을 전리품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전략을 극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좋은 전리품을 폐기 처분해 버립니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고대 시대 팔레스타인에는 나귀와 노새는 흔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도구로 쓰이는 말은 참으로 귀했습니다. 따라서 말(馬)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곧 강한 군사력의 증거입니다.
전쟁할 때 말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요즘 말로 탱크 한 대와 같습니다. 군인이 걷고 뛰면서 싸우면 말을 탄 기병과 승부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나라마다 할 수만 있으면 말을 많이 확보합니다.
말이 전투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많은 말을 전리품으로 확보했음에도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나머지 발의 힘줄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가 도입은 되었지만 아직은 신정 국가나 다름없습니다.
왕은 하나님 대리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야 할 자입니다. 그런데 왕이 세상 군사력을 키우고 의지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3. 다윗은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금과 은이 생겨도, 명예가 생겨도, 권세가 생겨도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기게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공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승리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옆에 분과 이렇게 인사합시다. 승리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성공합니다. 11, 12절을 보시면 다윗이 하나님께 두 가지를 드립니다. 어떤 것인지 봅시다.
06….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朝貢)을 바치니라. 고대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계약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시 국가 관계를 잘 보여주는 헷 족속(Hittite)의 계약 문서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속국의 왕(vassal king)은 종주국의 왕(suzerain king)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종주국의 불가침 조약(不可侵條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속국의 왕은 여전히 자주권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데 대신 그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여야만 합니다. 남의 나라 말고 우리나라 이야기해 볼까요? 조선 시대 때 중국에 조공을 많이 바쳤습니다. 주로 예쁜 처녀들과 조선 인삼이 단골 메뉴입니다.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 공식으로 조공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바치는 조공은 은과 금 그리고 은그릇 금그릇 놋그릇 등입니다.
그런데 하맛 왕 도이가 그의 아들을 다윗에게 보내 특별 격려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이 말은 특별축하금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5공 6공 때 당선 축하금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통치 자금 가지고 있으면 권력 유지에 도움이 좀 되겠지요. 다윗은 뇌물 수준의 당선 축하금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공식 전리품 같은 것을 합치면 상당한 액수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 물질과 영광을 자기가 취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통치 자금도 드렸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렇게 생각합시다. 성공했을 때 감사하여 하나님께 많이 올리면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입니다.
고후 09:0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0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이 많은 전리품이 곳간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솔로몬에 의해 성전 건축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왕상 06장; 07:13~51). 좋은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모습과 회개하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감히 대적할 수 없어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계속 피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간단하게 먹는 샌드위치 빵 유래를 아십니까? 옛날 샌드위치라는 백작이 있었는데 카드놀이를 얼마나 즐겼는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빵에 치즈 한 조각을 싸서 먹으며 카드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때부터 이 빵을 샌드위치라 불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영의 양식을 위하여, 영혼의 추수를 위하여 얼마나 바쁩니까?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하여 식사 시간이 아까워 식빵을 먹으면서까지 가치 있는 일에 매달립니까?
다윗은 전쟁을 치를 막강한 군사력을 비축하려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말과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상대 국가도 이웃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다윗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많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싸움, 세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수없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십니까? 다윗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합시다.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힘없고 약하다고 늘 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편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바로 믿음으로 기도하는 김삼일 가족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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