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레임덕(Lame Duck)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음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이 레임덕은 주로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권력 누수에 비교됩니다. 정리하자면 다리를 전다는 뜻의 레임(lame)에 오리를 뜻하는 덕(Duck)을 첨가하여 기우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권력이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이런 레임덕을 극복하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두 명의 조사 요원을 미국에 파견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레임덕을 극복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여러 일을 살피고 돌아온 조사원이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레임덕은 어쩔 수 없이 생깁니다. 그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균형 있는 정치를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정부든지 이 현상을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권력자가 처음 모자를 쓸 때의 좋은 포부를 서서히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람을 심고 챙기는 일로 인해 정치의 균형을 잃으면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려면 자기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균형 있는 정치를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자는 그 결말이 불행해집니다. 열왕기나 역대기에 나오는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권력자들을 보십시오. 여러 왕이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균형 잡힌 정치를 하지 않아 비극을 맞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 왕국의 제9대 왕 아마샤에 대한 행적입니다. 통치하는 동안 잘 다스려 보려고 힘쓴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 에돔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순간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우상 섬기는 일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말년의 삶이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칼에 찔려 죽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샤 왕이 마지막에 왜 비참한 죽음을 맞았는지 그 삶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강론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마샤의 전반기 삶인 「하나님 중심으로 다스린 아먀샤 왕」 이렇게 정했습니다.
1. 아마샤는 왕권 초기에 믿음으로 살려고 힘썼습니다. |
0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마샤는 유다 왕국 제9대 왕(B.C. 796~767 통치 연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25세에 왕의 자리에 올라 29년을 통치하였으니 제법 길게 나라를 다스린 셈입니다.
02절은 아마샤의 정치 인생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어느 정도 정직하게 행하였다.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다. 같은 내용이 왕하 14:03에도 나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다.
아마샤 왕의 통치에 대한 총평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나 나중은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하였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샤의 전반기(前半期) 삶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선한 통치를 하게 된 배경에는 두 사람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배경은 그의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01절을 보면 그의 어머니 이름을 예루살렘 출신 여호앗단이라고 소개합니다. 구약 성경은 대부분 남자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녀 성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원리를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여자를 중심으로 기록한 성경 룻기나 에스더도 있습니다. 또 사사로 활약한 드보라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예외입니다. 일반 원리는 여자 이름이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샤의 어머니 이름을 여호앗단(יְהוֹעַדָּן)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해석 원리로 보아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간접 증거입니다.
아마샤의 전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통치한 둘째 배경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07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09….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이 두 구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구약시대 선지자를 칭하는 일반 호칭입니다.
때로는 모세(신 33:01, 수 14:06)와 다윗(대하 08:14)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했으며 삼손의 어머니가 천사를 그렇게 말한 때도 있습니다(삿 13:06, 08). 그러면 선지자가 아마샤를 왜 찾아갔습니까? 아마샤가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한 행적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이 최고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남북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대부분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찾아와서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였습니다. 비록 선지자의 행색이 좀 초라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려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고 그 마지막은 패망입니다.
2. 아마샤는 나름 넓은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
03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04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나라가 굳게 섰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아마샤 정권 초기 나라를 안정시키는 통치권에 도전한 정치 세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도전자는 아마샤가 왕으로 등장하기 전 그의 부친 요아스 때의 사람입니다. 당시의 배경에 대해서 대하 24:25, 26절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요아스가 에돔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회복하기 힘들 만큼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자 암몬 출신 여자에게서 난 사밧과 모압 출신 여자에게 난 여호사밧(대하 24:26) 이 두 사람이 역모를 주도하여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반역을 일으키면 왕부터 제거합니다. 이에 주모자들이 무리를 규합하여 침상에 누워있는 요아스 왕을 참살하였습니다. 반역의 명분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피를 갚는다는 이유입니다.
실제 요아스가 정권 말기 우상 섬기는 일에 빠지면서 믿음의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무리의 꾐에 빠져 의로운 선지자 스가랴를 돌로 쳐 죽여달라는 조서에 사인했습니다.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는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거나(레 24:16)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거나(레 20:02), 아들이 아버지에게 패역한 일을 하였을 때(신 21:20, 21) 행합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런 류(類)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상의 길을 걷는 요아스 왕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하였습니다. 이에 아첨하는 신하들이 요아스 정권에 걸림돌 된다는 이유로 처형하였습니다(대하 24:20, 21).
이런 역모 아래 치열한 싸움을 하였지만,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를 제거하는 일은 실패하였습니다. 아들을 제거하여야 성공할 수 있고 자기들 마음대로 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결국은 왕권파의 도움으로 아마샤가 왕으로 옹립되었습니다. 왕으로 취임하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는 일입니다. 그 첫 번째 일이 역모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왕조 시대 시절 역적모의하면 어떤 정도의 처벌을 합니까? 삼족을 멸합니다. 삼족이란 부계(父系) 모계(母系) 처계(妻系) 세 족속으로서 가문 전체를 멸하는 가혹한 형벌입니다.
옛날 중국의 황제 시절과 현재 북한에서 역모는 팔 족을 멸한다고 합니다. 팔 족이란 친척, 외척, 인척, 친척의 친척 외척의 친척, 인척의 친척 등을 말합니다. 가문의 씨를 말려 버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역모를 일으키면 삼족을 멸하는 가혹한 형벌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지켜나가는 사랑의 법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를 따라 아마샤도 부친을 암살한 자들만 처형하였습니다. 그 자녀들은 증오의 복수 대상에서 면제하였습니다.
사실 아마샤가 살기 위해서는 혹 모를 원한의 씨앗을 잘라내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감정을 넓은 마음으로 억눌렀습니다. 역모에 가담된 자의 자녀를 죽이지 않은 일은 기록상 아마샤가 처음입니다.
04….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신 24:16).
3. 아마샤는 국방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였습니다. |
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아마샤는 왕권 초기 불안한 국내 정세를 잘 해결하였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시원하게 해결하였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국방(國防)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현재 유다 국방력은 매우 허약합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끊임없이 남부 국경을 침략해 온 에돔 민족 때문에 골칫거리입니다.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도 이들과 전쟁하다 마지막에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마샤는 에돔 민족을 완전히 정리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에돔의 군사력은 막강합니다. 남쪽에 자리 잡은 본거지는 이미 요새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에돔을 치기 위해서 막강한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을 점검하니 유다와 베냐민을 다 합쳐 30만 명 정도입니다(05). 아사 왕 때 58만이었고 여호사밧 왕 때 116만 정도 되었으니 그에 비하면 현재 유다의 군사력으로 세일 곧 에돔과 한판을 벌이기에는 고전이 예상됩니다.
이럴 때 아마샤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기도 대신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군 십만 명을 사들였습니다(06).
믿음 없는 자의 방법입니다. 은 백 달란트 가치부터 봅시다. 환산이 잘 됩니까? 1달란트는 약 34kg이니 백 달란트는 약 3.4t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입니다. 십만 명의 용병을 고용할 정도의 돈이니 얼마나 큰 돈입니까? 이 정도의 돈이면 유다 왕국의 국가 경제를 든든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같으면 이와 같은 상황을 만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단 재정 지출을 미루어 놓고 기도부터 하겠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성경은 뭐하고 안내하는지 보겠지요. 혹 목사에게 연락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기도하는 일과 선지자와 의논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용병(傭兵) 데려오는 일에 돈부터 지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만 일을 크게 벌이고 말았습니다. 엎질러진 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때 선지자가 아마사에게 와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라고 권합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대하 13:04~12). 둘째 유다 군대가 용병 대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병을 쓰는 것은 아마샤 왕이 믿음 없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권고입니다. 이에 아마샤가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이미 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군에 주었으니 어찌해야 할꼬? 선지자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눈앞의 손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것인가 하는 기로(岐路)에 서 있습니다. 선지자가 다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이에 아마샤가 결단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돌려줄 리 없으니 떼인 것으로 여기고 이제부터 하나님 뜻을 따르겠다며 그들과 결별합니다.
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아마샤가 선지자의 권고를 따라 이스라엘군 십만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막대한 금액이 공중에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믿음의 결단입니다.
아마샤가 선지자의 격려를 배경으로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나가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선지자의 말대로 아마샤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지원 없이도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왕하 14:07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11, 12).
김삼일 가족 여러분, 왕하 14:07 절을 보면 오늘 말씀과 같은 평행 본문이 나옵니다.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유다 왕국 아마샤 군대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군대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남방 국경을 완전하게 회복하였습니다. 에돔의 수도 셀라까지도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셀라를 욕드엘이라 칭하였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정복된 곳이라는 뜻입니다. 아마샤는 이런 기적 같은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치르는 전쟁은 병력과 전투력과 전략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아마샤 왕이 비록 실수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선지자 말을 믿고 새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 승리한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성경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는 일입니다. 이런 은혜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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