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어버이주일 때 사무엘하 18장을 중심으로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 갔던 일과 결국 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내뱉은 말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며 통곡하던 일입니다(삼하 18:33).
결국 압살롬의 난이 종결된 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하는 가운데서 또 하나의 반란 사건이 터졌습니다. 다윗을 굳게 지지하던 유다 지파와 나머지 지파 간에 생겨난 알력과 갈등입니다.
이 갈등은 아주 오래전 사사 시대부터 내려온 해묵은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의 권력 구도를 보면 북쪽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에브라임 지파가 이스라엘의 권력 중심부에 자리 잡고 주도권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 출신 다윗이 왕이 되면서 주도권이 유다 지파로 넘어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열 한 지파가 유다 지파를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벌어진 사건이 일명 세바의 난입니다.
이 난은 베냐민 지파 불량배 출신 세바가 일으킨 난으로 요지는 이렇습니다. 세바가 먼저 베냐민 지파 사람을 선동하고 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다윗에게서 돌아서라. 우리가 따르고 섬겨봤자 별 볼 일 없다. 이런 식입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역모가 성공한 예는 별로 없습니다. 주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마지막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세바의 난도 실패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세바(שֶׁבַע)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0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마침 거기에(שָׁם 샴).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의미로서 장소를 말합니다. 거기에라는 말 앞에 마침이라는 부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이런 뜻으로서 세바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길갈(요단강 변)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용어에서 다윗의 환궁(還宮)을 둘러싼 지파 간의 알력(19:41~43)이 원인이 되어 세바가 난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바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불량배(בְּלִיַעַל 벨리야알, 고후 06:15 Βελίαλ) 하나가 있으니. 무익한 사람, 파괴를 일삼는 마귀 같은 존재라는의미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비류(삿 19:22, 삼상 10:27)라고 표현합니다. 부도덕하고 사악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될 자라는 뜻입니다(고후 6:15).
현재 일을 벌이고 있는 세바는 사울 왕의 친척일 것 같습니다. 동시에 베냐민 지파의 족장급 인물로서 사울 가(家)를 지지하는 과격한 선동가입니다(Lange).
저가 나팔(שֹׁפָר 소파르)을 불며. 나팔은 숫양의 뿔로 만든 양각(羊角) 나팔로 진격 퇴각 2개의 음만 냅니다. 신호용(信號用) 나팔입니다. 임박한 재앙을 경고하거나 파문(破門)을 알리기 위해 세바가 나팔을 직접 부는 것은 왕에 대한 파문 즉 다윗은 우리의 왕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혁명을 일으킨다는 선포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 부분을 잘 보십시오. 이스라엘 모든 지파여 다윗으로부터 독립합시다. 새로운 나라를 세웁시다. 토지나 백성 모두가 다윗의 간섭을 받는 일이 없게 합시다. 반역을 주도하는 말이지요. 거기다 다윗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이새의 아들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한 마디로 왕권을 부정의 모욕입니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유다 지파를 제외한 각 사람에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는 행위는 다윗에게 등을 돌려 그의 통치를 거절하라는 뜻입니다.
이때 세바가 반란으로 외친 말은 후일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질 때 여로보암이 다시 주창한 말입니다(왕상 12:16). 압살롬이 일으킨 반란은 왕권 탈취가 목적이지만 세바의 반란은 다윗을 제거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민란(民亂) 봉기(蜂起)입니다. 세바가 강하게 민란을 유도하는 중입니다.
베냐민 사람 세바의 선동을 보면 상당한 웅변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그의 말에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반역에는 최소한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먼저 왕권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이새의 아들이라며 아버지를 매우 낮추어 모욕합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세바의 반란은 압살롬의 반역보다 더 다윗에 대한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세바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정치의 혼란과 내분을 명분으로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2. 다윗은 세바의 난을 원만하게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
0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압살롬 반란도 겨우 진압했지만, 세바에 의한 반역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불안정한 정치환경입니다. 02절을 보면 온 이스라엘 사람이 다윗 따르기를 그쳤다고 했습니다. 압살롬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세바의 선동으로 병사들이 세바를 따르거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 다윗은 예루살렘 왕궁까지 유다 지파의 호위로 겨우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윗의 당면 문제는 세바의 난을 평정하는 일입니다. 이에 다윗은 아마사 장군을 이스라엘군 조직 책임자로 임명하였습니다.
이 인사발령 조치는 이미 압살롬 반란 진압 후 아마사에게 약속한 직입니다(삼하 19:13). 다윗은 측근인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세바 반란을 진압하고 요압 장군의 기세도 꺾는 이중 효과를 기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다윗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본 장에는 군 통수권자와 관련해 세 장군이 등장합니다. 아마사 아비야 요압입니다. 이 가운데 첫 임무를 맡은 아마사를 보십시오.
사흘 만에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군 즉 관군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04). 그러나 다윗 왕의 의도와 달리 유다 지파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아마사는 기한 내에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 군을 조직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력의 부재로 보이고 또 은근한 요압의 방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마사의 능력에 불안을 느낀 다윗이 아비새에게 세바의 난을 제압하기 위해 다시 인사발령을 합니다(06).
다윗이 아비새를 세바 진압의 지휘자로 임명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평소 같으면 그동안 이스라엘의 군장(軍長)으로 활약해 온 요압에게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지휘권(指揮權)을 줍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다윗이 세바의 난을 평정하는 일에 다윗의 치하에서 한때는 군사령관을 지낸 요압을 계속 제외합니까?
이 일을 먼저 알아야 오늘 말씀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여(삼하 18:14) 다윗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있습니다.
사울왕 치하에서 군사령관을 지냈고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가 후일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바치러 왔던 아브넬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삼하 03:27).
아비새는 즉각 세바의 난을 진압할 반란군을 조직하여 아마사와 함께 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브온까지 갔을 때 일입니다. 아마사와 요압이 만납니다. 그러자 요압은 세바의 난을 처리하는 일보다 시기의 대상이 된 아마사를 죽이는 일을 우선으로 여겨 그만 죽이고 맙니다.
죽이면 장면을 보겠습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형님, 평안하십니까? 라는 인사말과 함께 유대인의 인사법을 따라 입맞춤하는 척하다 칼로 아마사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하였습니다(10).
여기서 이스라엘의 세 장군 아마샤 아비새 요압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이 중에 요압과 아비새는 형제이고(삼상 26:08) 어머니는 스루야입니다.
스루야는 그의 본 어머니가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시집오기 전 나하스라는 남자에게서 낳은 딸로서(삼하 17:25) 다윗과는 이부(異父) 누이입니다. 그리고 아마사와 요압은 이종(姨從) 간입니다(삼하 17:25).
요압은 권력과 시기 때문에 사촌 형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들을 볼 때 다윗이 세바의 난을 수습하는 일에 좀 더 넓은 생각을 가졌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세바의 난도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다윗은 요압과 달리 자신의 말에는 절대 충성하는 용사 아비새를 아마사를 대신하여 세바의 난을 수습하라고 명령한 일도 실수였습니다. 아비새는 다윗과 오랫동안 전장을 함께 누빈 장수였기 때문에 믿을만 하다고 여겼습니다. 자신을 향한 충성심도 요압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아비새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역적을 진압하러 가면서 다윗이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다윗의 허를 찔렀습니다. 뒤통수쳤다는 말입니다.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 일에 다윗에게 찍혀 버림받은 형 요압을 자기 손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틈에 아비새가 군 지휘관을 요압에게 양보하였고 요압은 세바를 진압하는 지휘권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기존 요압의 부하와 유다 지파 남자들이 속속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에 합류하여 순식간에 세바 토벌군이 든든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세바도 이때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다니면서 선동하여 세력을 불렸을 때입니다(14).
드디어 세바가 요압이 군사령관이 되어 자기를 진압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즉시 세바는 벧마아가의 아벨성을 근거지로 삼고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요압은 아벨성을 공략하기 위해 먼저 성 반대편에 토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15). 공격축대를 높이 쌓아 아벨성을 통째로 헐어버리려는 전략입니다.
그러자 아벨성 안에 있던 한 지혜로운 여자가 요압과 일 대 일로 만나 담판을 합니다. 왜 우리를 죽이려 합니까? 여긴 속담에도 나오는 현인들의 성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요압이 간단히 말합니다. 세바의 목만 내어 주면 즉시 물러나겠다. 즉시 이 여자가 성안의 핵심 요직들과 공모하여 세바의 목을 베어 성 밖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세바의 반란은 순식간에 진압되었습니다. 요압이 전쟁 종식(終熄) 나팔을 불자 군사들은 철수하여 요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요압은 다시 한번 자신이 이스라엘 군부의 수장이자 유다 지파에 대한 영향력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2 인자임을 각인시켰습니다.
다윗은 아마사를 내 세워 요압을 견제하려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죽을 때까지 요압을 제거하지 못하고 정치 부담을 안고 지냈습니다.
불평을 일삼다 보면 세바와 같은 자리에 들기 쉽습니다. 세바는 불평으로 가득한 사람을 막 끌어들여 자기 입지를 위해 이용하려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결과론으로 세바에 동조한 사람은 단순히 다윗을 향한 죄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는 역사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 사람을 선동하여 가정의 화목 교회의 화목을 깨뜨리려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내가 한 불평의 말들이 점점 파장을 일으켜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은 이 일에 특별히 조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평을 습관으로 하는 사람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할 때 매일 만나 먹는 것을 불평하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뱀을 내려 심판하셨습니다(민 21:06)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저자가 본문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08절을 기록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기록 안 하고 아마사를 인사하는 체하며 죽였다 해도 되는 데 말입니다.
0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아비새와 아마사가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토벌군을 이끌고 가던 중 기브온에서 요압을 만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요압이 아마사를 안심시키려고 차고 있던 칼을 고의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아마사가 칼이 없는 요압에 대해 경계를 푼 것 같습니다. 이어서 요압이 아마사에게 형님, 평안하십니까? 하고는 유대인의 인사법을 따라 입맞춤하는 척하다 가슴에 품고 있는 단검으로 아마사를 찔러 창자가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넬을 죽이고 압살롬을 죽인 성격으로 보아 가장 유력한 해석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세월입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후 사울왕으로부터 10년을 쫓겨 다녔습니다. 블레셋으로 두 번이나 망명까지 했습니다. 압살롬과 세바의 난으로 두 번이나 고난 겪으면서 형편없이 위상이 추락하였습니다. 거기다 요압이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가슴앓이도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말년에 병석에 눕자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군부 실세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대관식을 하였습니다(왕상 01:09). 역모입니다.
요압은 밧세바와의 악연 때문에 꺼림칙하고 나중에 태어난 젊은 왕자보다 통상 서열 1위가 왕이 되는 아도니야를 지지하면 자신의 군권을 유지할 줄 믿고 아도니야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궁중 출입 선지자 나단과 아무리 노쇠해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가진 다윗을 과소평가하는 오판을 저질렀습니다. 반면 믿음으로 판단한 귀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왕상 01:0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미 다윗은 밧세바에게 후계자를 솔로몬으로 약속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왕의 인준도 없이 아도니야가 자칭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에 의하여 아도니야의 자칭 왕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을 공적으로 왕 세우는 일을 기혼의 성막에서 기름을 부어 행하라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특별 유언을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갈 06:07)
왕상 02:0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0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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