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추수감사주일] 하박국 선지자의 즐거운 감사(합 03:16~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1. 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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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좀 형통하다 싶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도 잘합니다. 반면 고난과 시험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라는 의문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부인하는 믿음의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를 연단하는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의인은 고난받고 악인은 번성하는 데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두고 보시는 데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불평입니다. 원망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무척이나 힘들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던 시기는 여호야김(18대) 왕의 통치 기간(B. C. 609~598 대상 03:15)입니다. 유다 왕국의 국운이 쇠하여 멸망 2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우상 섬기는 일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환경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왜 악인은 번성하고 의인은 고난 속에 지내야 합니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합니까? 라는 울분을 쏟아냅니다. 그러다 고난 중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합 02:02~04).

 

합 02:0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응하리라는 묵시를 보자 즉각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무장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막힐 때 한 번 더 기도하고, 절망이라고 생각될 때 한 번 더 매달리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고난의 환경에 매몰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여 등을 돌리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 앞에서 다시 한번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박국이 처음에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매달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한 번 더 매달리는 가운데서 감사의 믿음을 회복하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 제목을 「하박국 선지자의 즐거운 감사」로 정했습니다.

 

 

1.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국가 정치의 위기입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하박국은 처음부터 감사의 마음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박국의 서두는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되기(01:01~04)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후 남 왕국 유다도 서서히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깊어갈수록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우상이 자기들을 구해 줄 믿고 그곳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우상 섬기는 길이 과연 사는 길입니까? 점점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상이 정말 능력을 나타내는지 그 실체를 보겠습니다.

 

시 135:15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우상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일정을 보십시오. 하박국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던 때는 맹위를 떨치던 남방의 강대국 애굽이 세력을 상실하였습니다.

북방의 강대국 앗수르도 신흥강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바벨론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유다 왕국을 서서히 무너뜨려 가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은 기도 중에 묵시로 유다 왕국의 멸망을 보았습니다.

 

16절은 이스라엘에 멸망이 예정되어 있으니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였습니다. 백성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조리가 판을 치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실종입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힘 있는 자는 약자를 압제하며 세상의 쾌락을 더욱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01:01, 02). 사회에서 소외된 자는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그나마 메시아를 기다리는 소망이 있기에 하루하루 견디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하박국은 강대국 바벨론이 유다 왕국을 침략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마음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➊내 창자가 흔들렸고. ➋내 입술이 떨렸도다. ➌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➍내 몸은 떨리는 도다.

 

하박국은 강대국 바벨론의 거칠고 포악스러운 침략을 내다보면서 창자가 흔들렸다고 고백합니다. 입술도 떨렸다고 고백합니다. 썩이는 것이 뼈에 들어왔다는 말은 마치 큰 광풍이 휘몰아쳐 휩쓸고 지나간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쑥대밭 된다는 뜻입니다.

성전도 파괴되어 폐허로 변할 것이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좀 똑똑한 사람은 다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묵시입니다. 눈앞에 이런 결과가 이내 펼쳐질 것입니다.

유다 왕국이 절망을 만날 것이라는 무서운 묵시입니다. 곧 비참하게 죽는 자들이 속출할 것입니다.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도 일어날 것입니다.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박국이 사역하던 그때의 일처럼 우리의 현실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19라는 질병입니다. 온 세상이 고통을 당합니다.

나라마다 경제가 마비되고 생명이 죽어 나갑니다. 이럴 때 하나님, 왜 이처럼 엄청난 환난을 겪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지만 똑 부러지게 이해될 응답은 오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요엘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2.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국가 경제의 위기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박국은 바벨론 군대의 두려움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보았습니다. 이 힘으로 인해 절망의 환경을 가까스로 극복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침략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정치나 국방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경제의 위기가 엄습합니다.  17절은 이스라엘의 농경 사회에 벌어질 일이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다는 말, 포도나무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의 소출도 없다는 말을 보십시오. 당해 연도는 흉작이지만 다음 해는 그나마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걱정되는 일은 우리에 양과 외양간의 소도 다 도적질해 간다는 묵시입니다. 양이나 소가 없다는 말은 식물이나 과일과 달리 내년도 기대할 수 없는 생존에 대한 절망입니다.

 

환경을 보면 이제 울 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극심한 가뭄과 흉년이 무엇 때문에 임했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일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를 우리의 현실로 옮겨와서 생각해 봅시다. 현재 코로나 19가 쓰나미처럼 우리나라 모두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이 신종 감염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덮쳐 계속 사상자를 양산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회가 대단히 위험합니다. 어떤 권세가도 피해 가지 못합니다. 코로나 19 앞에 많은 사람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는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합니다.

 

이보다 더욱 큰 위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심리의 불안입니다. 이 심리 불안은 사람에 따라 완전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말을 합니다.

혹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실 경기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니 제조업 수출업 등 모두가 고통을 겪는 대위기입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방과 후 강사들이 심각한 생존 위기에 내몰려 있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제대로 가지 않으니 수입원이 끊어진 셈입니다. 10명 중 8명은 수입이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또 위기의 부류가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해고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그만두었으니 오갈 데 없는 그들의 환경이 눈물겹습니다.

 

이들에게는 사회 안전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또 여행업과 숙박업 항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한숨 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외에 각 사회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 다 위기입니다. 코로나 19로 사회 전반이 붕괴한 것과 같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불황을 만난 것 같습니까?

제가 해결해 드릴 힘이 없으니 꼭 죄인 된 심정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하박국이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모든 것이 실종한 사회입니다.

삶의 터전이 붕괴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례 없는 생존 위협의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과 일자리입니다. 맞습니다.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꿈과 희망입니다.

 

반면 여러 이유로 꿈과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이길 힘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실현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소유를 통해 기쁨을 누리려 합니다. 감각과 쾌락으로 즐거움을 회복하려 합니다. 순간의 것으로 기쁨을 누리려 합니다. 이런 외적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고통의 현장을 극복합니다.

 

빌 04: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3.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로 인해 기쁨을 회복합니다.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벨론의 무력을 심각하게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두렵고 떨었는데 이제는 바벨론의 세력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환경으로 인해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는 고백을 통해서 감사를 온전히 회복하였습니다. 아마 하박국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01) 라는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고 주는 나의 힘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박국이 보이는 현실에서 힘을 찾으려 한다면 기댈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박국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턱이 덜덜 떨리고 이가 갈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국가에 대하여 현실의 조건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막 쏟아내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게 임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의 하박국의 고백입니다. 이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누리겠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습니다. 라고 진지하게 고백합니다. 그때 찬송가 370장이 있었다면 눈물로 불렀을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즐거워하며(עָלַז 알라즈).

 

크게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 라는 뜻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누리는 즐거움은 기본으로 감사를 동반하는 즐거움입니다.

감사의 수준을 뛰어넘는 즐거움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며 즐거워하는 현장을 보십시오. 아직 고난의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풀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침략을 막아주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닙니다. 국가의 외교위기 정치위기 경제위기는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풀어가니 불평과 절망의 삶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03:01).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חַיִל 하일).

 

하박국은 하나님의 힘이 자신에게 임하는 강력한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현재 체험하는 힘입니다. 이 힘이 고난을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즐거움과 힘 이 두 가지가 세상 모든 고난을 극복하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잠깐의 세상 기쁨보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하늘의 기쁨을 더 크게 여깁니다.

김삼일 가족은 혹 일상생활에서 못마땅한 일이 있습니까? 가령 국가에서 내게 세금을 너무 많이 떼 간다는 생각 말입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내게 수입원이 좀 있다는 증거입니다. 몸무게가 늘어서 옷이 잘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속상합니까? 그러면 이것도 감사 거리입니다. 왜냐하면, 먹을 것이 넉넉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 좌파 우파로 마음이 나누어져 서로 막 욕합니다. 대통령에 대해서도 문재인 하며 막 욕합니다(진중권). 이럴 때도 감사하십시오.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은 땡큐(Thank you)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감사란 그것을 소중히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 가정 대부분이 자녀를 하나나 둘을 낳다 보니 아이가 과보호 속에서 이기심으로 자랍니다. 결과는 이렇게 자란 아이 대부분이 감사라는 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국인이 감사할 줄 모르느냐 하면 외국인이 한국인을 보고 유 땡큐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한국인이 감사할 줄 모르니 외국인이 대신 감사를 해 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말을 하면서 말을 배웁니다. 공부하면서 공부를 잘 배웁니다. 달리기하면서 잘 달리는 법을 배웁니다. 일을 하면서 일 잘하는 법을 배웁니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감사를 배웁니다. 항상 기뻐하면서 기쁨을 배웁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웁니다. 한 가지를 감사하는 사람은 또 감사하게 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감사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입니다.

환경에 따른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힘으로 날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이 혀에 붙기 전에는 다른 말 하지 맙시다. 추수 감사주일을 통해 어떤 고난 앞에서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기쁨과 감사를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