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나는 조각목 인생입니다(출 37:01~2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1. 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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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삼일교회 가족 여러분, 춣애굽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셨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같은 일을 여러 차례 명령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막을 짓는 일과 그 안에 들어가는 성물(聖物)을 만드는 일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31장까지 무려 7장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막을 짓는 일과 모든 성구 만드는 과정이 35장에서 40장까지 6장에 걸쳐 다시 나옵니다. 모세가 오경을 기록할 때 일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느 성경보다 출애굽기에 기록할 일을 놓고 많이 고심하였을 것입니다. 어느 사건을 기록하고 어느 사건은 그냥 넘어갈 것인지를 세심하게 배열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 모세의 왕궁 생활 40년, 광야 생활 40년 행적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모세 자신이 이스라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부분은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반면 성막 짓는 일과 그 안에 들어가는 성구 만드는 일은 의아스러울 정도로 많이 할애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성막과 모든 성구 만드는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만들었더라. 이렇게만 기록해도 성경으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한두 줄로 넉넉하게 끝낼 일입니다.

그런데 왜 긴 내용을 출애굽기에 반복합니까? 모세가 그저 기록하다 보니 중복된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성막 짓는 일과 성막에 들어가는 성구 만드는 일이 모세 오경의 핵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막에 들어갈 물품을 보십시오. 법궤(출 25:10), 떡상(25:23), 분향단(출 30:01) 등 성전 안에 있는 성구와 성전 밖에 있는 번제단(27:01) 그것을 운반할 때 쓰는 채와 성전의 벽을 이루는 널판(26:15), 띠(26:26), 사방의 기둥(26:32), 휘장문의 기둥(26:37) 등 모든 재료가 조각목입니다.

 

왜 성막 안에 비치할 여러 성구 가운데 목재 부분은 조각목이라는 별 볼품 없는 것으로 하라 했습니까? 얼마든지 좋은 나무가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막의 물품 만드는 일에 조각목을 사용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말씀 제목을 「나는 조각목 인생입니다.」로 정했습니다.

 

 

1. 조각목은 어떤 나무입니까?

 

01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조각목(שִׁטִּים 쉿팀). 주로 시나이반도에서 많이 자라는 아카시아(acacia wood)의 일종입니다. 대부분 영어 성경은 이를 아카시아로 번역합니다. 반면 KJV은 싯딤나무로 번역합니다.

같은 나무인데 조각목과 싯딤나무 두 이름입니다. 오늘 조각목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9월 13일 성령님의 감동이 있는 춤의 제목으로 설교할 때 잘 못 설명한 부분을 바로 잡겠습니다.

그때 법궤 만드는 조각목을 집성목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법궤의 규격에 해당하는 한 장의 목판이 싯딤나무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막에 비치하는 모든 성구를 만들려면 나무를 잘라서 하나하나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조각목을 집성목이라 했는데 잘못된 표현입니다. 조각목이란 단어는 나무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 조각 한 조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부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조각목의 이름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개역 개정판에서는 성막과 관련해서 조각목이 출애굽기에 26번 신명기에 한 번 나옵니다. 개역판에는 조각목이 출애굽기에 26회 신 10:03에 싯딤나무로 1회 나옵니다.

새 번역에는 아카시아로 27회 나옵니다. 영어 성경도 따로따로입니다. 개역판, 개정판 새 번역 등 어느 성경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릅니다.

그러면 조각목과 싯딤나무 아카시아 어느 것이 더 정확한 명칭입니까? 또 어느 명칭을 사용해야 합니까? 세 곳 다 같은 나무를 말하기 때문에 명칭은 달라도 의미는 같습니다.

이럴 때는 히브리어 원문을 참조하면 됩니다. 원문에는 27회 모두 싯딤(שִׁטִּים)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싯딤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개정판에 조각목으로 표기한 이상 혼란을 줄이기 위해 조각목으로 통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 조각목(皂角木) 단어가 우리 한글 성경에만 나오는 출처가 애매한 단어임을 기억하십시오. 한자로는 하인 조(皂)에 뿔 각(角)을 쓰는데 국가 표준식물 목록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한글 성경에 조각목으로 나옵니까? 조각목의 출처가 애매한 만큼 이 단어가 왜 우리 성경에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에는 싯딤나무는 없고 대신 비슷한 조각자나무가 있습니다.

 

상해대미국성경회에서 1911년 펴낸 중국어 성경 사 41:19에 싯딤나무를 皂莢木으로(조협목) 표기하였습니다. 출애굽기의 조각목은 히브리어 싯딤을 음역해서 十停木으로 표기했습니다.

이 두 가지 다 조각자나무를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성경은 처음 번역할 때 중국어 성경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한문 문화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皂莢木을 풀이한 조각자나무를 옮겨옴으로 조각목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지날 때 볼 수 있는 나무는 종려나무, 에셀나무, 싯딤나무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종려나무는 목재로 쓸 수 없고 에셀나무는 흔하지 않습니다.

반면 싯딤나무는 광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조각목으로 법궤와 성막의 여러 성구를 만들라 하셨지만, 실제 성막의 여러 성구를 만드는 재료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자라기 때문에 재질은 단단하나 곧게 자라지 않습니다. 거기다 가시가 많고 옹이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성구 제작에는 반드시 조각목을 사용해야 합니다.

 

 

2. 성막의 성구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야 합니다.

 

02 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

 

하나님은 성막 안팎의 모든 조각목 성구는 반드시 금으로 싸라고 하셨습니다. 도금이 아니라 금덩이를 얇게 펴서 싸야 합니다(02, 04, 11, 15, 17, 26, 28). 성막 건축에 특별히 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성막의 세겔로 29달란트 730세겔입니다. 성막의 1세겔은 11.4g으로 29달란트 730세겔을 현대의 중량 단위로 환산하면 1000kg을 상회하는 굉장한 분량입니다(출 38:24).

하나님께서 성막의 성구를 만들 때 왜 조각목으로 만들고 또 금으로 싸라고 하셨습니까? 본래 조각목 재질 자체는 단단합니다. 반면 가공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보니 다루기가 어려웠습니다. 건조(乾燥)하는 일도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조각목을 목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기고 정교하게 잘라야 합니다.

이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목판이 뜨거운 햇빛을 받아 뒤틀리거나 갈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목판을 금으로 싸게 했습니다. 그래야 영구히 사용하는 성막의 성구가 됩니다.

 

더러는 조각목을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상징하는 것으로, 금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 하나님의 언약궤를 조각목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할 때 외부로부터의 많은 환난이 올 것을 상징합니다. 금으로 싸는 것은 금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해야 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논리가 뒷받침되는 해석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조각목은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고운 특징이 있습니다. 금은 빛나는 광택과 희귀성으로 귀중품을 장식하고 관리하는 데 잘 사용된다는 점을 유념함이 좋을 것입니다(25:05, 11). 

조각목으로 만든 성막의 성구를 금으로 싸라 하심은 우리의 허물과 상처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때만이 거룩한 성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과 안팎의 성구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라 하신 일을 우리의 믿음 생활에 적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척박한 광야에서 자라는 조각목은 건축 자재로 쓰려고 함이 아닙니다.

다양하게 쓰일 곳이 그다지 없는 볼품없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가지가 밑동부터 갈라져서 올라옵니다. 잔가지와 가시가 많아 다루기가 성가십니다. 땔감으로 쓰는 데도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듬어지고 금으로 싸면 성막의 성구가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도구가 됩니다.

조각목이 성막의 성구가 된 이유는 죽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뿌리를 모래 속 깊이 내리려 지하수와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조각목은 메마른 광야에서 수분을 충분히 받지 못해도 버팁니다. 곧지 못하고 외형이 좀 떨어지고 마디도 많지만, 변형이 잘 가지 않습니다. 바위와 자갈과 모래밖에 없는 건조한 땅에서도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잘 견디어 냅니다.

극한 환경을 버티는 나무가 조각목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무를 성막의 성구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조각목 같은 우리 주님의 생명력에 싸여야 합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 모두가 신령한 은혜에 싸여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아 봉사하는 헌신에 싸여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가시처럼 거칠어진 우리도 주님의 능력에 싸여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에 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김삼일 가족의 삶을 만지시기 원하십니다.

 

 

3. 브살렐을 통해서 성막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출 38:22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었고.

 

01절을 보면 브살렐이 궤를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38:22절에는 브살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막 건축을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당대 최고의 장인(匠人)입니다.

우리는 모세 시대의 성막 건축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한 브살렐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살렐(בְּצַלאֵל). 유다의 6대손이고 훌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입니다.

이름 뜻은 하나님의 그늘(보호)이라는 믿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브살렐을 특별히 훌의 손자라고 밝힙니다. 반면 훌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기록 목적이 속량사와 상관없는 개인의 행적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학자 요세푸스(Φλάβιος Ιώσηπος 37년경~100)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으로 추측합니다.

 

이 브살렐을 하나님께서 성막 건축의 책임자로 부르셨고(31:01, 02) 브살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일을 그대로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성막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이 더 있습니다. 브살렐을 도와서 조각과 수놓는 일을 전담한 사람 오홀리압과 물품 관리를 책임진 이다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복 중의 복을 받은 자입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다양하게 충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막 건축하는 일에 부름을 받고 자기의 재능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여러 분야에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벧전 04:10). 이름 없이 수고하였지만, 그 나라에서 받을 복은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각자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장점으로 참여하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를 성숙하게 하는 일에 최고의 헌신으로 참여하십시오. 신령한 성전을 짓는 일도 섬기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십시오, 나 같은 죄인이 이런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충성하십시오.

 

엡 0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은 성막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성령님의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뒷받침되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꼭 필요한 것이 지혜와 총명(聰明)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거나 중차대한 일을 맡았을 때는 더욱 지혜가 필요합니다.

 

출 36:01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선행 조건이 총명입니다. 이 총명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수행하게 합니다. 이 총명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세웁니다. 조각목을 성구 만드는 목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도에 맞게 잘라야 합니다. 

껍질을 벗겨내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의 나라에 쓰이기 위해서는 나라는 껍질을 벗겨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금과 같은 말씀으로 싸야 합니다. 이후에 충성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 가정 단위로 이웃 단위로 1월 14일 저녁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유월절 양을 잡아먹어야 합니다. 그때 양의 피는 양을 먹을 이스라엘의 집 좌우 기둥과 기둥 사이와 인방(引枋)에 발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장자를 멸하는 천사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때 양을 잡아먹고 남는 것은 아침까지 두지 말고 소화(燒火)하라(개역판 출 12:10)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골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전도사님이 신학교에 간 후 설교를 하면서 출 12장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옛날이니 성경은 개역판입니다. 장로님이 수요일 예배 때 설교를 하면서 소화하라는 단어를 소화(消化)로 오해하고 설교했습니다. 유월절 양을 먹고 남는 것은 소화를 시키고 나중에 또 먹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운동했습니다. 그런자 요즘 사용하는 개정판은 불사르라. 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오늘 본문을 택하고 설교하면서 성전을 지을 때는 통나무를 쓰면 안 됩니다. 조각조각 잘라 이어 붙여야 합니다. 우리가 조각목 같이 떨어져 있으면 작고 쓸모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한 조각 한 조각 붙여놓으면 하나님의 위대한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하고 강조했습니다. 조각목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인생은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의 삶과 같습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에 주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금 같은 구원의 믿음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하찮은 인생이 찬란한 인생 되었습니다우리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함으로 인해 조각목 같은 삶에서 성전의 성구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조각목 인생을 사는 여러분 복된 삶 잘 유지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할렐루야.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