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이제 교회를 가꾸어야 할 때입니다. (잠 24:30~3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7. 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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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낸 에이브러햄 링컨에(Abraham Lincoln, 1809.2.12.~1865.4.15.) 관해 많은 일이 회자합니다. 이 링컨은 문맹(文盲) 부모 아래서 자랐습니다.

교육이라면 떠돌이 교사가 인근 마을에 개설한 학교에서 몇 달 동안 읽기 쓰기 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대부분 삶을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실패라 할 수 있습니다.

15세 때 집을 잃고 거리로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23세 때 사업에 실패하였고, 24세 때 주 의회 선거에서 낙선하였고, 25세 때 사업이 파산하였고, 26세 때 약혼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시련을 겪었고, 28세 때 신경쇠약으로 입원하였습니다. 30세 때 주 의회 의장직 선거에서 낙선, 32세 때 정 부통령 선거위원 출마 패배, 35세 때 하원의원 선거 낙선, 36세 때 하원의원 공천 탈락, 40세 때 하원의원 재선거 낙선, 47세 때 상원의원 선거 낙선, 48세 때 부통령 후보 지명전 낙선, 50세 때 상원의원 출마 낙선하였습니다.

 

링컨이 이 정도의 실패를 거듭하자 그의 친구들은 모든 칼과 면도날을 링컨 주변에서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낙선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곡 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배가 부르도록 실컷 먹고 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대뇌입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겠지? 왜냐하면, 나는 이제 또 시작했으니까? 나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에이브러햄 링컨.

 

포기하는 순간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방법을 찾게 된다. 어디서 들어본 문구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SBS 월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2 드라마(2020년 1월 21일)에서 나온 대사(한석규) 중 한 부분입니다. 교회 일, 마음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일, 하면 충성이고 안 하면 책망입니다.

전도,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됩니다. 핑계하지 말고 도전해 봅시다. 오늘 말씀은 한계 상황과 같은 환경에 처할 때 핑곗거리 찾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 제목을 「이제 교회를 가꾸어야 할 때입니다」로 정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 됩시다. 걸핏하면 핑곗거리를 대는 자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 됩시다.

 

 

 1. 우리의 포도원이 혹 황폐해졌습니까?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0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본서 저자 솔로몬이 한 날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밭과 포도원이 나오는 것을 보아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밭과 포도원에 가시덤불이 가득 퍼져 있습니다.

또 길에는 쐐기풀이 뒤덮여 있어서 그대로 버려두면 풀씨가 사방으로 퍼져 여러 곳에 피해가 예상됩니다. 거기다 농장 울타리까지 무너져 있습니다.

남 보기에 매우 부끄러운 농장입니다. 31절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직감으로 농장 관리자가 매우 게으른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하든 게으른 농부입니다.

 

그러면 본서 저자 솔로몬이 농경사회에서의 한 게으른 농부를 만인에게 소개하려는 것이 기록 목적입니까? 여기에는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포도원과 밭의 신령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과 관계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다음으로 일상생활에서 복의 터전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에게 맡겨주신 섬김의 장소입니다. 우리 모두 포도원을 가지고 있고 공동체의 포도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포도원은 믿음 생활의 요람인 김해삼일교회를 상징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의 포도원, 우리의 포도원 즉 우리의 교회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혹 31절 말씀처럼 황폐해진 것은 아닙니까? 황폐해졌다면 이는 농부의 게으름과 무지가 원인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내가 부지런하지 못하여 게으른 탓입니다. 인생살이에는 두 갈래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유익한 즐거움과 해로운 즐거움입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농부는 해로운 즐거움을 누리다 그만 농장이 황폐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본문 전체의 흐름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오늘은 늦었고 내일은 농장에 가서 일해야겠다는 습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차차 천천히, 이런 스타일입니다.

 

게으름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핑계입니다.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차일피일 미루는 핑계입니다. 그런데 그 핑계를 보면 자기 합리화로 포장되어있습니다.

당시 사회가 농경사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공간을 초월해서 일하는 프리랜서 사회가 아닙니다. 농장을 가꾸려면 무조건 일터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지 않고 판세만 봅니다. 게으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요? 핑계입니다. 솔로몬은 이 핑계를 일삼는 자를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잠 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사자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면 당연히 일터로 갈 수 없습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집 안에 안전하게 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흐름을 보면 핑계를 일삼는 자의 모습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사자가 거리에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거리는 광장 중앙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사람도 많고, 군사도 있고, 또 성벽 안에 있으므로 사자가 절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거기 사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가서 찢겨 죽느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변명이요 핑계입니다.

 

이 게으름과 핑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핑계입니다. 어떤 이유든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습니다.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자입니다(마 25:26). 게으름은 바로 악함의 이웃사촌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가 나 때문에 황폐해진 것은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2. 그런데도 계속 신앙의 잠을 잡니까?

 

33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있자 하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한번 따라 합시다. 믿음의 게으름은 신앙을 파괴하는 적이다. 신령한 게으름은 분명히 믿음 생활을 좀먹는 죄입니다.  게으름의 특징은 잠입니다. 결론은 게으른 자는 잠을 좋아한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잠은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잠입니다(시 127:02). 잠은 육체의 피곤을 해소하는 데 필요하며 사람의 특성에 따라 잠을 많이 자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반면 33절의 잠은 하나님이 주시는 잠과 반대의 잠입니다. 솔로몬은 핑계를 일삼는 자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려는 자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 표현은 땀 흘려 일하기 싫어하고 육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게으른 자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게으름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게으름이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잠 06:0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있자. 우리의 솔직한 모습일 것 같습니다. 사람은 흔히 사기꾼의 일이나 강도질이나 살인죄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단순히 안 좋은 습관이지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 원리를 따라서 우리의 믿음 생활도 신령한 일에 대하여 게으르고 믿음의 잠을 자는 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가까이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부터 생각해 보시다. 기본 예배에 참여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없지요? 주일 오전 한 번 나오면 그것을 위안으로 삼습니까?

형식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곧 일어날 거야,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날 거야, 다음 달부터 열심히 일할 거야. 라는 안일함에 사로잡혀 있는가? 자신을 돌아봅시다.

 

물론 새로운 마음, 새로운 믿음으로 일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일어서려다 무너지기를 반복합니다. 환경 여건이 안 맞아서 일어나지 못합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어야 할 상황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직도 인생 방향과 가치관을 알지 못해서 하는 핑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않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세밀히 보아 왔는데 어디 잘 모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너무 잘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단 하나 어제보다 잘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십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믿음의 가치관을 세우는 자리에 서십시오. 믿음으로 일어서십시오. 내 능력 넘어서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나라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가치관을 세운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이런 분의 아이디어에서 교회 발전의 지혜가 나옵니다. 신령한 일에 게으른 사람은 창의력이 없는 모방의 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잠을 깬 우리 믿음의 가족은 봉사의 자리에 섭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3. 교회를 복구하기 위해 신앙의 잠을 깨어야 합니다.

 

34 네 빈궁(貧窮)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困乏)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사람은 하루 평균 세끼를 먹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챙기는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밥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점심 드시는 분들 볼까요? 대단히 분주합니다.

안 먹으면 육신 생활에 지장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양식을 먹는 일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영혼의 생명 문제가 달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양식 취하는 일에 등한히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평가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합니까? 우선 먹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먹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 대부분은 그 가치관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소위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합니다. 이런 삶보다 신앙의 잠을 깨는 것이 유익합니다.

 

반면 신령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분은 그 삶의 가치관이 다분히 미래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김삼일 가족은 주로 어느 곳에 마음이 열려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백 년 안쪽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교회를 회복하기 위하여 신앙의 잠부터 깨자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손에 잡은 것 같다가도 이내 떠나고 마는 속성이 있습니다.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의 일정 가운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목축하는 조카 롯 사이에 서로 다툼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사이좋게 헤어졌습니다(창 13:05~11).  소돔을 거주지로 삼고 떠난 롯의 길은 어떻게 잘 열렸습니까? 불의의 길,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모든 재물은 불탔기 때문입니다(창 19:01~28).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당장 할 일은 교회 복구입니다. 그다음이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신령한 일에 게으른 사람은 교회를 복구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의 상태가 바싹 가물어 있으면서도 이만하면 되었지 뭐? 굳이 힘들게 예수님 믿을 필요가 있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 나가야 하느냐? 라는 안일주의로 삽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발전이 아니라 퇴보입니다. 이 순간이 위기의 때입니다.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신앙의 게으름에 젖어 있으면 빈궁이 갑자기 임한다는 경고입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해야겠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핑곗거리가 생깁니까? 교회를 회복해야 하는 일 앞에서 핑곗거리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계속 내일 타령만 하렵니까? 그러면 평생 못합니다. 상황이나 형편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 회복 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전11:0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농부가 씨를 뿌릴 시기를 놓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솔로몬이 적절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농부는 바람이 불자 씨가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며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구름을 보고는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거두지 않습니다. 물론 파종을 할 때 바람이 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추수할 때 비가 오는 것 역시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사하는 사람이 바람 부는 날과 비 오는 날 피하면 일할 날 얼마나 되겠습니까? 게으른 자의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목사님 머리로는 알겠는데 삶이 잘 안 따라옵니다. 하고 이야기하시는 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악하고 게으른 본성을 핑계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잠을 깨십시오. 이런 안일과 핑계의 답은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머리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생활로 옮겨오십시오. 실천하십시오. 신앙의 잠을 깨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지런함의 동기입니다. 부지런함의 동기는 즐거움입니다.

즐거우면 부지런해지고 즐겁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가끔은 밤새도록 노름하는 사람들 소식 듣잖습니까? 남이 보면 정말 미친 짓입니다만 그들 나름대로는 즐거워서 하는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 건강 잃는 줄 모르고 일하는 사람들 보십시오. 다른 것 아닙니다. 돈 버는 재미로 하는 겁니다. 즐거움과 재미를 맛보지 않으면 부지런할 수 없습니다.

 

황폐하여진 일터와 교회를 가꾸는 일 즐거움으로 하면 됩니다. 전도하는 일도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면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면 됩니다.

택한 사람에게는 전도가 구원하는 방편이 될 것이고 멸망하는 자에게는 그 전도가 심판대 앞에서 핑계하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하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때로는 열심히 하는 데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경험이 되어 더 좋은 기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일을 진행하기 전에 미리 실패를 두려워하여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섬기고 복구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일념으로 일해야 합니다.

 

잠 06:0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