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때로는 하는 일이 시원하게 뚫려서 순풍에 돛단배처럼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반면 장애물을 만나 무너지는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이런 상황 앞에서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낙심해서 포기해 버리는 사람, 피해서 가는 사람, 장애물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장애물 같은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일 때 김삼일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은 믿음으로 극복해 나아가는 길 외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본문이 속한 히브리서는 극심한 핍박을 당하여 믿음생활의 위기를 맞은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으로 승리하자는 권면입니다.
본서에 등장하는 유대교 출신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인하여 여러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는 자리에까지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생존의 문제까지 염려해야 할 지경입니다. 한 편에서는 믿음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혼란을 겪을 때 율법주의 진영 소위 시내산 진영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시온산 진영을 흔들고 시험하는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습니다. 이런 환경 앞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왜 사수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김삼일 가족도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목을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로 정했습니다.
1. 시내산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8절은 한글 번역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 형태의 부사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사는 14~17절의 연결 도우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 회원 가운데서 세상 욕심 때문에 신령한 것을 저버린 에서와 같은 자가 혹 나올까 두려워하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이 은혜를 설명하기 위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개의 산을 비교하여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구약으로 비교되는 시내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8~21절까지를 보십시오. 시내산이라는 단어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그런데도 이어서 살펴볼 시온산과 비교되는 산이 시내산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시내산은 히브리서를 받는 수신자들이 잘 알고 있는 조상들과 관계있는 산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부터 시내산 아래까지 인도한 일은 우리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광야생활에서 시내산에 올라 사십 주야를 지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성막 설계도와 제사법과 여러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율법에 능한 당시 수신자들에게는 익숙하였습니다. 히브리서를 잘 보시면 출애굽기에 나오는 당시 상황들이 매우 실감 나게 나옵니다. 율법을 받을 당시 시내산 상황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두렵고 떨리는 공포 분위기 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불이 붙는 산, 침침함, 흑암, 폭풍, 나팔 소리 등이 그 증거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모세를 중보자로 세웠습니다.
이런 두려운 일들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본서 저자는 이 당시의 광경을 18~21절에서 언급합니다. 그러면 광야시절 때 일을 보겠습니다.
출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당시 그 언약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 광경을 체험하였습니다(출 20:18, 19). 그래서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두려워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이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실 때 감히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 명령을 어기면 그 누구라도 죽임을 당합니다. 반면 모세만은 그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모세 역시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21).
이런 무서움은 율법을 거역한 자가 받을 형벌의 중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심히 부담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율법으로 인해 그 누구도 온전한 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시대의 시내산 상황을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여러 가지 고난과 불이익과 심지어는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수하여야 했습니다. 이런 핍박 앞에서 많은 성도가 낙심하였습니다.
계속 믿음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피곤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곳곳에서 생겨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강력하게 권합니다. 예수님처럼 기쁨의 세계를 바라보며 인내하자고 권합니다(12:02).
2. 시온산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조금 전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개의 산을 비교하여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시내산과 시온산입니다. 시내산은 구약시대를 상징하고 시온산은 신약시대를 상징합니다.
18절을 보면 너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물론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 부사가 붙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22절을 시작하는 말이 그러나 너희는 입니다.
그러나(ἀλλά), 라는 말은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내산 사건은 율법주의 길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시온산 사건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령한 사건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προσέρχομαι). 완료 형태인 이 부분을 잘 보십시오. 새 언약의 중재자인 예수님을 통해서 형성된 신령한 공동체를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공동체를 신령한 면으로 시온산(765m)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 시온산은 예루살렘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 남쪽 시온 문을 나서면 펼쳐져 있으며 정상에는 다윗왕의 묘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이 시온산이 정신의 고향이고 종교의 중심지입니다. 더 나아가 영광스러운 하늘 도성의 상징입니다(LXX 사 28:16; 54:11~14).
히브리서 기자는 시내산을 놓고 너희는 ~하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하고(18~21), 시온산을 놓고는 너희가 이른 곳이라고 설명합니다(22~24).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것과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가 이루어진 참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22절에서 그러나 로 시작합니다. 시내산과 시온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두드러진 차이를 보입니다. 시내산은 지상에서 가장 메마르고 건조한 땅입니다.
바람만 윙윙거리는 사막 가운데 있는 돌산입니다. 반면 시온산은 모든 것이 풍성하여 넘쳐 흐르는 곳에 있습니다. 시온산의 의미가 햇빛이 비친다는 뜻입니다. 은혜와 복락의 센터입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는 저자가 시내산과 시온산의 비교법을 통하여서 나타내려는 그 신령한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냐 예수님이냐? 라는 주제 설정을 잘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낙심할 때가 아님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요 지금까지 믿어온 복음의 흔적도 헛수고 됨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권고합니다.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이 반어법을 통한 질문은 강력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실 때 율법을 어길 경우 죽음이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히 01:01, 02)의 피로 정결하게 된 시온산의 나라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천국 백성에게도 경고합니다.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여 다시 옛 생활 율법주의로 돌아가면 멸망의 길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는 경고입니다. 그 길은 지옥이라는 경고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 신령한 면의 시온산으로 나오는 길입니다. 시온산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보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기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길만이 진정한 복의 길입니다.
3. 김삼일 가족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 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흔들리지 않는 나라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먼저 반대의 나라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흔들리는 나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흔들리는 나라는 그 존재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지상에 영원할 것 같은 나라들이 얼마나 많이 세워졌다 무너졌습니까? 흔들리는 나라는 결국은 무너집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매우 실감 나게 설명합니다.
벧후 0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많은 사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영원히 지속할 것처럼 여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세상은 멸망할 때가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나라를 받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왕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 왕권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것 때문에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벧전 02:0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시온산의 실체입니다. 믿는 자에게만이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이곳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 합니다(계 03:12).
예수님을 믿는 우리 김삼일 가족이 장차 가게 될 영원한 새 예루살렘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은 지금은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정결하게 된 의인들이 모여 이루는 장자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신령한 초자연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천사와 연합하는 특권을 누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끝까지 지킴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장차 들어가게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합니까?
첫째 은혜를 받는 생활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를 붙잡자는 뜻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은혜를 구하고 붙잡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어떤 핍박이 와도 어떤 환난이 와도 낙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김삼일 가족에게 전하는 권면은 억지로 법을 준수하게 하는 율법 신앙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도록 유도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받은 은혜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왕권을 받았습니다.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생활입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의 삶을 표현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기쁘시게 섬긴다는 문자의 의미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합당한 예배에 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무엇보다 경건의 예배에서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실패는 믿음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히브리서 주제는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세보다 예수님이, 유대교보다 기독교가 더 우월하다는 논리입니다. 기독교가 왕성하면 할수록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기독교가 늦게 출발하였지만, 자기들이 속한 유대교보다 더욱 확장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서 저자는 흔들리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주제를 선언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02).
김삼일 가족 여러분, 흔들리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본서가 기록될 당시 이 말보다 중요한 말은 없었습니다.
그때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역시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면 이 주제에 맞는 생활 원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주제를 우리의 믿음생활로 표현하면 사모하는 심령으로 예배에 임하는 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열정을 품고 전도하는 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천국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완전한 실현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며 지금은 우리가 세상에 있습니다. 믿음 관리를 잘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일수록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세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하나님은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충성을 기대하십니다. 이미 우리는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천국 백성답게 삽시다. 이미 우리는 김해삼일교회에 심어졌으니 말씀에 순종하며 삽시다. 은혜를 받은 만큼 굳게 붙잡는 삶을 삽시다. 더욱 감사하며 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믿음이 가족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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