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한 요셉(창 50:22~2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 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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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이 요셉의 별명이 꿈꾸는 자입니다(37:19). 왜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 번이나 특별한 꿈을 꾸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꿈은 요셉의 형들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 단을 향해서 절을 하는 일이고 둘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해 절을 하는 일입니다(37:06~09).

하나님은 요셉에게 두 번 특별한 꿈을 주셨고 요셉은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순진한 데다 약간 철부지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로 인해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의미에서 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하루는 야곱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아들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요셉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은 20에 팔았습니다(27:28). 이때 나이 17세인데 요셉을 산 상인은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에 팔아넘깁니다 이때로부터 요셉은 온갖 고난과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 속에서 요셉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면서 지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요셉의 마음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요셉을 사용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을 30세에 일약 애굽의 총리로 세우신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7세에 애굽에 팔려와서 임종하기까지 93년 세월을 지내는 동안 어떻게 노예 출신이 대 애굽 제국의 총리가 된다는 말입니까?

 

요셉이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가나안에 있던 야곱의 일가가 애굽으로 이주하였고 이때부터 요셉이 꾼 두 가지 꿈이 서서히 이루어져 갔습니다. 이 세월 가운데 요셉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인생 마무리를 어떻게 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가나안에 묻히기를 소망한 요셉으로 정했습니다.

 

 

 

  1. 요셉은 애굽의 부귀영화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드라마틱한 요셉의 삶은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한 요셉의 자세를 보십시오. 애굽에서의 위상과 권력이면 피라미드에 묻힐 정도의 권세입니다. 요셉이 이런 권력자였지만 삶의 목적을 부귀영화에 두지 않았습니다

권세를 배경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임종의 순간에 먼저 형제들과 자녀들을 불러놓고 장래의 일을 거론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 조상이 묻혀 있는 가나안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자기 때에 애굽으로 이주해 왔지만 결국은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떠나야 하니 애굽에서 영원한 행복 쌓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애굽이라는 나라를 이끌면서도 그 마음을 가나안에 두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요셉은 애굽의 부귀영화 속에서도 어린 시절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꿈을 이루어 주신 은혜를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요셉이 이룬 꿈이 어떤 것인지 다시 확인해 볼까요? 요셉의 형들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 단을 향해서 절을 하는 일이고 둘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향해 절을 하는 일입니다(37:06~09). 특별히 형제들이 네 번이나 요셉에게 절을 했는데 그 장면을 간단히 보겠습니다.

 

첫 번째 절은 처음 애굽을 방문하였을 때이고(42:06), 두 번째 절은 애굽을 다시 방문하였을 때이고(43:26), 세 번째 절은 양곡을 두 번 얻어 돌아가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된 후 애굽으로 돌아왔을 때이고(44:14),

네 번째 절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고백한 때입니다(50:18). 여러분, 우리 모두 세상에서 정해진 기한을 마치면 세상을 떠납니다. 다만 그날이 언제 일지는 모릅니다. 알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르게 하셨습니다.

 

전 0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그날을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여기고 삽니다. 미련한 자는 아직도 날이 많이 남아 있는 줄로 여기고 세월을 허비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심판의 종말을 앞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은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심판대 앞에 설 그날을 잘 준비하십시오. 세상에서 삶은 잠깐입니다. 장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다 갑자기 마지막을 맞을 때 나는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 안 통합니다. 사람에게는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09:27).

  

 

 

  2. 요셉은 가나안에 묻히기를 소망합니다.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요셉에게 특별히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 막벨라 굴 조상이 묻힌 곳에 장사하라는 부탁입니다.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을 40일 동안 향을 넣고 미라로 처리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도 7일이나 곡()을 하였습니다. 가나안에 장사를 치르러 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병거와 기병이 호위한 가히 국장(國葬)급 장례였습니다(50:01~09).

 

요셉이 가진 권력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요셉이 임종을 앞두고 형제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 훗날의 될 일 하나만 남깁니다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가게 될 것인데 그때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으로 이장하라는 부탁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굳건히 믿기 때문에 하는 부탁입니다. 훗날 신약 시대에 와서 히브리서 기자가 그 옛날 요셉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행적을 기록할 때 애굽의 총리가 된 일이나 칠 년 흉년 정책을 잘 펴서 애굽을 부강하게 한 일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판 형제들을 조건 없이 용서해 준 넓은 사랑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출애굽 할 때 자기 유골을 가지고 가서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이 부탁 하나만 기록하였습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요셉이 이런 유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망하며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애굽은 잠시 살다가 떠날 곳이지 영원히 거할 곳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죽어서도 조상들이 묻혀 있는 언약의 땅에 머물기를 원하였습니다. 부귀영화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깊은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창세기 4821절 말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요셉은 하나님께서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보배로운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지라는 말씀과(12:02)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15:13) 라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이 언약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임종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그때에 내 유골을 가지고 나가라고 유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그 어떤 일보다 유골을 메고 나가라는 말을 요셉의 최고 가치관으로 남겼습니다.

 

 

 

  3.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요셉처럼 돌아갈 곳이 있습니까?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입관하였더라. 미라로만 만들고 더는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임종을 앞두고 가나안에 묻히기를 유언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요셉의 장례식은 애굽의 여느 권력자들과 같이 성대하게 치렀을 것입니다.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은 요셉의 무덤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장지만 가나안으로 지정하고 죽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이스라엘이 사는 고센 땅에 유골이 든 관을 보관하였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가지고 나가기 위함입니다.

 

13:1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모세가 책임감으로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마칠 때쯤 모세가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인계하여 그 유언대로 세겜 땅에서 여호수아가 최종 장례를 치렀습니다.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요셉의 죽음과 그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갈 곳은 천국임을 전하려 함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이 가서 영원히 누리고 살 곳은 천국임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은 죽으면서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꿈과 소망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납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하나님을 품고 왔기 때문에 애굽의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꿈과 소망을 남겨 놓고 떠났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현재 믿음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사도 바울처럼 천국 시민권자로(03:20) 살아갑니까? 영원히 갈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곧 우리의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자임을 한시라도 잊지 않고 살아갑니까?

요셉은 유언을 통해서 조상들이 간 그곳을 간절히 사모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장례식이 아닌 입관만 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언약의 땅에 대한 소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 사람이 가는 길에 벌써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각자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며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하려 합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부터 요셉처럼 소망의 죽음을 준비합시다. 기독교인다운 임종을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믿음으로 단장합시다.

우리 모두의 남은 삶을 은혜로 단장하지 못하면 마지막에 두려움으로 벌벌 떨 날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나에게 건강이 있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출석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믿음의 가문을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창세기 50장은 어떻게 마무리됩니까? 이스라엘의 족장 야곱과 요셉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의미입니다.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립니다. 각자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면 요셉처럼 갈 곳이 있습니까? 요셉은 마음을 가나안에 두고 살았는데 우리는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삽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린 손주가 유치원에서 굿모닝(good morning) 영어 한마디를 배웠습니다.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할아버지에게 영어로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굿모닝?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이건 아침에 미국 사람들이 하는 인사야. 손주에게 배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영어를 자랑하러 갔습니다. 할멈, 굿모닝?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굿모닝을 국 뭐니? 로 알아듣고 콩나물국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수준만큼 알아듣습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의 메시지를 들려주어도 자기 수준만큼 알아듣습니다. 신령한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주제가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한 요셉입니다. 세상의 것이 마음에 가득하게 채워져 있으면 가나안을 품은 요셉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은 신령한 감각을 가진 자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전하는 자와 받는 자가 서로 영의 감각이 맞아야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여러분, 믿음의 감각을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십시오. 가나안에 소망을 두고 산 요셉처럼 우리 모두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십시오.

 

벧후 0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