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점을 보면 완전히 망합니다.(왕하 01:01~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 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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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잡지, 휴대폰, 인터넷 등 한 번 클릭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반면 편리한 순기능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역기능도 있습니다. 점을 보는 일입니다. 특히 스포츠신문 하단을 보면 소위 신통하다는 무속인 사진과 함께 프로필 등이 줄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무속인과 언제라도 대화할 수 있고 전화로도 가능합니다. 이는 점집을 찾는 사람이 많고 그들도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에 1971년 무속인 모임으로 조직된 대한승공경신연합회가 있습니다. 가입한 회원 무당이 약 104천여 명, 개별로 움직이는 무당이 15만 명, 역술인 협회 회원이 약 15만 명 등 전국에서 40여만 명 무당과 역술인이 활동합니다.

또 무속인 1명에게 34명 시중드는 수습 무당까지 합하면 약 1백만 명 정도 되는 수치입니다. 거기다 한 해 약 32조라는 큰돈이 흐른다고 합니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의 한 부서 국장은 기독교인들이 경제, 자녀들 진학 문제, 정치인 선거 당락, 건강 등으로 심심찮게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 국장에게 3대째 장로 집안 한 며느리가 청을 했습니다. 시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병명이 안 나오니 한번 봐 달라는 청입니다. 일단 데려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자 장로가 어머니를 직접 업고 갔는데 어떻게 잘 나았습니다. 그 국장의 말이 교회의 장로도 점집을 드나드는데 일반 신자들은 오죽하겠나.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도 한 번 찾아가 볼까? 라는 유혹이 듭니까?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아하시야가 신하를 블레셋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 보내 내 병이 낫겠는가? 물어보라 했습니다. 점을 보러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의 왕이 점을 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예 충격입니다. 점을 보면 마지막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점을 보면 완전히 망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1. 아하시야가 이방 신에게 점 보는 일을 합니다.

 

 

0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아하시야(북 왕국 8, B.C. 853~852)가 누구입니까? 아합(B.C. 875~854)이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사이에 낳은 아들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많이 들어 보신 이름이지요?

북 이스라엘 왕국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도입하여 신전을 짓고 그 제사장들까지 들여온 장본인입니다이때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인데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신령한 전투를 하여 이겼습니다.

그리고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기손 시냇가에서 죽여버렸습니다(왕상 18:40). 이 일로 화가 난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전포고했습니다(왕상 19:02).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보존하였고 아합 왕조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아합은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왕상 22:34~37). 그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는데 이 아하시야가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그만 난간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말 타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전쟁에서 상처 입은 것도 아닌 다락방 난간에서 떨어진 특이한 사고입니다.

 

다락방이면 이층집 아닙니까? 하나의 창문이 있을 테고 창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격자무늬 창살을 설치했습니다. 난간에 해당하는 원어 שְׂבָכָה(세바카)창살이란 의미입니다.

왕의 집인 만큼 전망도 좋았을 것이고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했을 것입니다아하시야 왕은 바로 이곳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보다 체중을 못 이겨 밖으로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층집에서 떨어졌으니 흔히 하는 말로 박살 난 겁니다. 현대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대형 골절상을 입었으면 죽음으로 이어집니다다른 질병으로 감염되는 2차 사고가 나기 때문입니다

아하시야가 결국 이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아하시야 하면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왕입니다. 이 왕이 우상에게 어떤 자세로 접근하는지 02절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아하시야가 중병 사고를 당한 후 신하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냅니다. 자기의 병이 낫겠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하시야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어디 사고를 안 당합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겪는 공평한 법칙에는 누구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다만 신앙인은 병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받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아하시야가 신하를 에그론 신 바알세붑에게 보냈다고 했으니 에그론부터 봅시다. 이곳은 블레셋 5대 중요 성읍 중 북쪽에 있는 성읍입니다(13:03).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 때 유다 지파가 차지했다가 나중 단 지파에 할당되었고(19:40, 43) 법궤가 잠시 머물러 있던 곳입니다(삼상 17:52).

 

이곳에 바알세붑이 있는데 그러면 바알세붑(בַּעַל זְבוּב)이 무엇입니까? 파리 떼의 왕이란 뜻입니다. 당시 사람은 바알세붑을 질병과 감염을 가져오는 파리를 내쫓는 신으로 믿었습니다.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신으로 믿은 셈입니다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저분한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복음서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칭호 바알세불로 불렸습니다(10:25, 12:24). 아하시야의 이런 행위를 놓고 봅시다. 먼저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 우상의 마음에 복이 임하겠습니까? 우상은 어떤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2. 아하시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0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1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를 보십시오. 아하시야를 향한 저주를 선포합니다.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을 지라. 점 한번 봤다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아하시야가 죽는다고 선언하십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점 한번 보면 죽습니까? 멸망을 받아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점을 수없이 봐도 죽지 않고 잘도 사는데 말입니다. 답은 03절에 있습니다.

 

0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이스라엘에 네 병을 해결해 주실 신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입니다. 아하시야가 위기에서 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았습니까? 죽음의 자리에까지 오게 된 불신앙의 이유가 있습니다. 왕상 22:51~53절입니다.

 

왕상 22: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실패하게 된 단서입니다. 아하시야는 그의 어머니 이세벨과 아버지 아합의 불행한 죽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세벨이 우상의 나라 시돈에서 시집을 왔는데 온 나라를 우상으로 물들이다가 엘리야 선지자와 충돌한 일을 잘 압니다. 아버지 아합도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아람 나라와 전쟁하다 불신앙으로 죽었음을 잘 압니다.

그러면 이제 자신이 왕이 되었으니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망하게 하고 부모가 불행하게 죽은 이유를 떠 올려서 우상을 철폐하는 종교 개혁입니다그런데 아하시야는 부모가 섬기던 그 우상을 소중하게 여겨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우상의 길을 중단없이 걸어갔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왕상 22:52). 이 말씀이 아하시야의 죽음을 재촉하는 핵심 키입니다.

 

아하시야에 대한 열왕기의 평가문을 보면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진단입니다. 특이하게도 그 어머니의 길을 추가하였는데 아하시야 외에는 이런 평가를 받은 왕이 없습니다.

아하시야가 그의 어머니 이세벨에게 받은 불신 영향이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사실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 보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세벨은 멸망 바이러스입니다.

북 왕국은 출발 때부터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말로 회자하는 두 금송아지 형상을(왕상 12:25~33)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설치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우상의 길로 이끌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비틀거리는 왕국인 셈입니다. 그러다 7대 왕 아합 때는 이세벨이라는 악한 여자가 등장한 악이 충만한 시대였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났음에도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말도 회자하고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는 건강할 때도 우상을 찾더니 중병의 자리에서는 더욱 우상을 찾았습니다. 다 불신앙 부모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3. 아하시야는 죽음의 경고 앞에 더욱 악해졌습니다.

 

 

0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신하를 에그론의 바알세붑에 보낸 일이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주시려고 엘리야를 신하에게 보냈습니다. 아하시야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중병을 만난 후에 하나님보다 바알세붑에게 더욱 기울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충격의 예언에 의해 깨닫고 생명 길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중병에 있는 아하시야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마음이 강퍅하여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고 왕권을 발동합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에게 저주의 경고를 한 엘리야를 잡기 위해 오십부장과 병사 오십 명을 엘리야가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병사를 이렇게 보낸 것은 엘리야를 강제로 구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이렇게 병사를 투입하는 것은 엘리야의 대단한 능력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하는 길이요 생명을 단축하는 길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십부장이 엘리야를 구인하려 할 때 엘리야가 하늘의 불을 내려 병사 오십 명을 불살라 버립니다. 엘리야가 오십부장과 그 병사를 왜 하늘의 불을 내려 죽입니까

 

오십부장이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라는 말이 죽을 만큼 거슬리는 말입니까?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오. 그러면 속히 내려오시오. 나를 따라 아하시야 왕에게 갑시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함부로 무례히 대했다는 말입니다. 아하시야가 이쯤 되었으면 엘리야를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고 이 일을 어찌하여야 할꼬 하면서 회개의 자리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시야가 마음이 더욱 강퍅해져서 다시 오십부장과 병사 오십 명을 투입합니다(12). 이번에도 조금 전과 같이 엘리야가 하늘의 불을 내려 오십 명을 불살라 버립니다. 아하시야는 이어서 세 번째 오십부장과 오십 명 병사를 투입합니다. 그러자 세 번째 파송된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처분만 기다립니다.

 

 

13 셋째 오십부장이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김삼일 가족 여러분, 경고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입니다. 경고 앞에 돌이켜 하나님을 찾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하시야는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04)는 엘리야의 경고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이 저주를 풀어낼 수 있는 길은 먼저 엘리야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우상 섬긴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도울 힘이 없는 우상에게 엎드리고 섬기는 일입니다. 자신의 장래 문제도 물어봅니다. 성경은 우상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115:0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0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0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아하시야(אֲחַזיָהוּ).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잡으셨다. 입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다는 의미인데 안타깝게도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도 더이상 아하시야를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 아닙니까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왕이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할 위치입니다. 이 아하시야를 향한 엘리야의 경고를 다시 봅시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이 말을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의 음성으로 받아야 합니다.

 

남유다 왕국에 히스기야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13대 왕인데 25세 때 왕위에 올라 14년째 나라를 다스릴 즈음에 악성 종양이 들었습니다. 이때 강대국 앗수르의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 협박편지까지 보내며 쳐들어왔습니다(36:01).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시 왕의 자문관 역할을 하는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왕은 이제 더이상 살지 못할 것이니 주변 정리를 하라고 통보하였습니다그러자 히스기야는 굳게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얼굴을 벽으로 향합니다. 산헤립의 편지를 펴 놓고 간절히 기도로 매달립니다(19:14, 15). 마침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덤으로 생명을 십 오 년이나 더 연장해 주셨습니다(왕하 20:05, 06).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면 무슨 일이든지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그런 길을 무시하고 이방 신에게 점을 치는 행위를 하다 불행한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아하시야와 같은 어리석은 자리에 들지 않도록 믿음 관리 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