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함께 세워가는 김해삼일교회(요삼 01: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 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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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1922.11.16.~2010.6.8)가 쓴 [예수복음]이란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예수님과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발을 다쳤는데 동구 밖이라 집이 없습니다그런데 저 앞에 한 집이 보이자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니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범상치 않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이 집은 일반 집이 아닙니다. 어떤 집인데? 창녀의 집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것이 어때서?

마리아는 자신을 창녀로 안 보는 남자를 처음 대합니다그러면 들어오세요.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집에서 상처를 치료받았습니다. 몇 주 후에 예수님은 다시 마리아를 만났습니다아직도 그 일을 하는가? 라고 묻는 것이 마리아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요새 손님 많은가? 하고 물었습니다그러자 마리아가 제가 선생님을 만난 후에 전과 같이 살 수 없었어요.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나의 뒤를 따르라.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라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복음의 분량이 많지만 제가 여기까지만 소개하는 것은 소외당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 함입니다. 주님은 김삼일 가족 모두가 힘을 모아 김해삼일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2020년 김해삼일교회의 표어는 함께 세워가는 김해삼일교회입니다. 동시에 새해 첫 주일 설교 제목도 함께 세워가는 김해삼일교회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함께 세워가는 김해삼일교회의 주인공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표어를 따라서 고백합시다. 함께 세워가는 김해삼일교회, 내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제부터 불평 뚝 하겠습니다. 원망 뚝 하겠습니다. 기쁨으로 섬기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1. 이 같은 자들을 잘 섬겨야 합니다.

 

0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땅끝까지 복음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일이야말로 믿음생활의 우선순위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믿음생활에서 때로는 먼저 챙겨드려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요한이 말하는 이 같은 자들입니다. 08절의 이 같은 자들에 대하여는 아무래도 배경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던 초대교회 시절 예루살렘 본부나 혹은 사도들이 각처로 일꾼을 파송하였습니다. 이들이 각 지역으로 다니면서 교회를 지도하였는데 순회 전도자라 불렀습니다.

이때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요한도 전도자들을 파송하였습니다이들이 가이오가 섬기는 버가모 교회 지역에까지 갔습니다. 당시 전도자를 영접하고 접대하는 일은 성도의 몫입니다마침 가이오가 전도자들을 사랑으로 잘 접대하였습니다

단순히 숙식 제공 단계를 넘어서는 섬김입니다.  다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경비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겨주는 섬김입니다.  가이오의 섬김에 대해 디오드레베라는 중직자가 시기 질투를 하였습니다. 방해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로 인해 가이오가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09, 10).

 

10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사람은 선한 일을 하다 걸림돌 같은 일을 만나면 중단하기 쉽습니다. 자칫 믿음도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오직 믿음만 앞세우고 나아갈 때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들어갑니다가이오의 정성 있는 환대를 받은 전도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가이오의 행한 일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요한이 감동하고 가이오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가운데 05절을 보면 요한은 가이오의 섬김을 신실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순회 전도자들이 가면 잘 영접해 달라는 당부까지 합니다.

 

그러면 김삼일 가족은 복음 전하는 선교 사역에 얼마나 동참하며 전도자를 섬기고 후원하는 일에 얼마나 기쁨으로 참여합니까? 가이오처럼 마음을 열고 참여합니까? 우리의 사랑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말과 혀로가 아니라 손과 발 그리고 시간과 물질로 동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교의 일은 혼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모두의 관심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그러나 사람은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인해 모두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방향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 몸으로 직접 갈 수 없을지라도 기도와 물질로는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이런 지원이 바로 선교의 대열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직접 선교사가 아닌 간접 선교사 일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08절 말씀을 오늘 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2. 함께 일하는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0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함께 일하는 자(συνεργός). 함께 선교의 짐을 나누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협동 정신으로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전도자 섬기는 일을 한 가이오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함께 선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선교도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외의 선교지에 가서 일하는 것만 선교가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입니다. 세상 어떤 곳이든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믿음으로 행하면 그것을 선교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다 선교의 범주에 속합니다. 주님의 몸 된 김삼일을 섬기는 일도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보면 선교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작은 선교사입니다. 대단한 분들입니다.

 

공동체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수고해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짐을 같이 지고 가는 분이 많아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 일하는 곳에는 이기심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자. 이 단어에는 교만이라는 단어가 조금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이기심이나 교만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함께 일하는 자라는 문구를 동역자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 동역자라는 단어를 아홉 번 사용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자. 동역자 둘 다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동역자라는 단어를 쓰니 좀 고상하게 들립니까? 바울이 동역자라고 표현한 구절 한 곳만 보겠습니다.

 

16:0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동역자라는 단어가 원문으로는 08절과 바울이 기록한 서신 아홉 곳 다 συνεργός입니다. 여러분이 동역자라는 단어가 더 고상하게 들릴 것 같아 동역자로 하겠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저와 더불어 섬기는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저의 동역자입니다. 목회자와 더불어 동역자라는 소리 듣는다면 이 또한 복 아니겠습니까? 저의 목회 생활을 통해 볼 때 두 종류의 성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절 따라 먹잇감 따라 이곳저곳 쫓아다니는 철새처럼 사는 철새 교인과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만 사는 참새, 까치, 꿩 같은 텃새처럼 사는 텃새 교인입니다. 철새와 텃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정체성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철새 교인이 아닌 텃새처럼 붙박이 교인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 05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가이오의 섬기는 일을 신실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08절에서 자신과 같은 동역자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요한이 인정한 일은 바로 나의 몫입니다. 이제부터 행하는 우리 모두의 일들이 바로 그 신실한 일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실한 도우미로 이스라엘 역사에 이름 올린 구약시대의 한 일을 보겠습니다.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온 아론과 훌의 이야기입니다.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아론과 훌이 모세의 기도를 도와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를 물리친 일에 도우미가 된 것처럼 우리도 사역자와 더불어 일할 때 성숙과 성장의 기쁨을 누리게됩니다.

 

 

 3. 나는 신실한 동역자로 인정받습니까?

 

0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신실한 가이오의 섬김을 통해서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김해삼일교회의 신실한 섬기미, 신실한 동역자의 길을 안내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함께 일하고 함께 사역자로부터 동역자로 인정받읍시다.

새해에는 함께 일하고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는 자리를 지킵시다함께 일하고 함께 땀방울 흘리면서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일거리를 감당합시다가까이는 우리 믿음의 가족끼리 고통과 즐거움도 함께 나눕시다.

이 일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 동역자라는 말을 몇 번 사용하였다고 했습니까? , 아홉 번입니다. 함께 짐을 지고 가는 자란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전 03:09)는 표현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또 자신과 함께 선교의 길을 걷는 자에게 멍에(σύζυγος 쉬쥐고스)를 같이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멍에는 짐승에게 씌우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를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사명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용어입니다제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새해 첫 주일 메시지를 전하면서 여러분은 나와 멍에를 같이 메고 가는 사명자입니다. 죽을 때까지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겠습니다. 기쁨으로 화답할 사람이 나오게 해주십시오. 아멘입니까? 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들 다 붙박이 일꾼으로 사라게 해주시옵소서. 이때도 아멘으로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멘입니까?

 

기독교는 멍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짐을 서로 나누어지며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많은 동역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서로의 동역자가 됩시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선교의 일을 감당합시다우리는 각자 선교의 방법과 방향이 조금씩 다를 뿐 같은 길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교사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김해삼일교회를 잘 섬길 수 있는 에너지를 크게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받고 충성합시다. 어떤 세상의 환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갑시다.

 

건강한 성도들끼리 힘을 모으면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건강한 교회를 함께 세워가기 위해서 나는 어떤 종류의 성도인가? 라는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뒤에서 밀어주어 간신히 앞으로 가는 휠체어 교인인가등을 두드려 줘야 칭얼거리기를 그치는 어린아이 같은 교인인가? 도무지 언제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 같은 교인인가? 바람만 잔뜩 들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 같은 불안한 교인인가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트레일러 같은 교인인가? 항상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깜빡 등 같은 교인인가? 성령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실한 성도인가?

 

예수님은 평범한 어부에 불과한 자들을 제자로 삼아 세계 복음화를 이루셨습니다. 새해에는 가장 약한 나를 붙들어서 일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이와 같은 함께 일하는 자리를 지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성숙하며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해질 줄 믿습니다.

 

0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하는 16장에 자신의 선교 사역에 참여하였던 중요한 멤버 34명을 등장시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수고를 하나님은 이미 아십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등장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마다 이런 성도가 있으면 알아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는 사람은 굳이 사람의 인정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분들을 잘 배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칭찬이 진정한 칭찬입니다.

 

고전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주님께서 보시고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01:47). 우리의 믿음생활에 최고의 복이 무엇입니까내가 행한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실하다고 인정받는 일입니다그러면 언제 인정을 받습니까? 진리 안에 행할 때입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은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도 받아야 하겠지만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살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생활의 시야를 좀 더 넓혀 선교의 차원에서 접근합시다.

그리고 일합시다. 그리하여 함께 김해삼일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잘 쓰임 받는 일꾼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