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삶의 끝에서 자기를 돌아봅시다(전 07:01~0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6. 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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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일 가족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는 말씀에는 일상의 가치관을 뒤집는 말씀이 나옵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장례식 하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는 말입니까? 이런 말은 옛날 욥이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독백할 때나 가능했던 말입니다. 어떻게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말입니까? 누가 뭐래도 근심 걱정 다 지우고 웃음꽃 피우는 것이 최고인데 말입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새겨보라는 뜻으로 받아야 합니다. 전도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한 생활 원리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전도서의 교훈은 그대로 따르기가 좀 힘이 듭니다. 힘이 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잘 흘려버립니다. 그러나 양약은 입에는 쓰다는 말을 경계로 삼고 듣는다면 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종종 역설(逆說 paradox)이라고 합니다. 역설이라면 선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도 내가 처해 있는 현실에 얽매어서 살펴볼 것이 아니라 삶을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나를 보지 말고, 삶의 끝자락에서 나 자신을 점검하며 살핀다면 믿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을 극과 극으로 안내하는 솔로몬의 메시지를 따라 삶의 끝에서 자기를 돌아봅시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함께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습니다.

 

 

0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좋은 이름은 무엇이고 좋은 기름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왜 이 두 가지를 비교합니까? 먼저 좋은 이름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남자들 이름 역사를 보면 나름대로 선호하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50, 60년대는 영아 사망률이 높아서 길 영()자가 들어간 이름을 선호했습니다(영길). 70, 80년대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알 지()자 또는 지혜 지() 자가 들어간 이름을 선호했습니다(지훈 지혜 등).

2천년대 후부터는 부르기 좋은 이름을 선호하여 한글 전용으로 이름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01절이 말하는 좋은 이름이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상대에게 잘 전하려 합니다.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고 더러 명함을 받아보지 않습니까? 실상보다 이력이 더 화려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고사성어입니다[虎死留皮人死留名]. 영원히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은 금언입니다.

 

좋은 이름(שֵׁם טּוֹב 토브 셈).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종합 정보입니다. 좋은 이름이란 그저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명예가 아니라 훌륭한 명성을 말합니다

성경은 높아지기 원하는 명예의 욕심을 죄라고 규정합니다(16:15). 왜냐하면 사람의 근본은 높아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이름이란 사람으로부터 얻게 되는 좋은 평판을 뜻합니다.

 

좋은 기름(שֶׁמֶן טּוֹב 토브 셰멘). 좋은 기름이란 올리브 열매에서 추출한 향유입니다. 이 향유는 구약시대에 여러 용도로 쓰였습니다. 성전의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거룩한 기름 즉 성유(聖油)라 불렀습니다.

또 피부 건조나 화상을 막아주는 의약품으로도 쓰였습니다. 또 귀한 손님을 초대하여 베푸는 잔치에 향의 재료로 쓰였고, 여자들의 화장품이나 장례용품에도 쓰였습니다. 올리브 기름은 재산 가치가 있어서 누구나 이 기름을 가지려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좋은 기름은 세상의 물질을 상징합니다.

 

솔로몬은 명성에 해당하는 이름과 물질에 해당하는 기름을 다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기름인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세상 어디서든 물질은 통합니다. 물질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이것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가 다 귀하지만 둘 중에 이름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물질을 얻으려고 신앙인의 이름을 팔거나 더럽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물질보다 삶의 향기가 있는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좋은 이름보다 물질에 사로잡혀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11:26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데 이 말이 처음 쓰일 때는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소 경멸해서 부른 이름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라 합니까? 당시 안디옥 사람들이 볼 때 저들은 유대 지방에서 넘어온 유대인이면서도 다른 유대인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세상 가치관을 버릴 줄 알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2.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01.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제가 서두에서 기독교의 진리는 가끔 일상 상식과 반대되는 일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01절 후반 말씀을 보십시오. 역시 일상 상식과 반대됩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는 의미가 죽음을 예찬하는 사()의 노래가 아닙니다

죽음 자체가 좋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살아갈 세상과 죽은 후에 살게 될 영원한 세상을 비교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태어난 날을 싫어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욥입니다.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03:0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0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나이다.

 

사람은 죽는 것은 슬픔이고 태어나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죽는 것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하니 그야말로 역설(逆說)입니다. 우리의 현실부터 봅시다. 임신부가 배가 불러 만삭이 되면 해산할 날을 기다리며 좋아합니다

그러다 한 생명이 출생하면 모두가 축하합니다.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에는 한 생명이 태어나면 지자체부터 축하하며 물품을 보내줍니다. 반면 사람이 임종을 맞으면 모두가 슬퍼하면서 안타까움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며 삽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자기 인생을 설계할 때 이만큼은 질병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합니까? 질병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 일을 삶의 시간표에 포함 시키지 않습니다. 인생 계획을 세울 때부터 그런 질병과 죽음은 아예 생략해 버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하게 질병이 찾아오고 죽음도 찾아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내 곁에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절망합니다. 물론 정상으로 태어나는 아기라면 출생하는 날에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그 삶의 여정이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만만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내일을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야 합니다. 고생보따리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수없이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출생하는 그날이 고생의 출발점입니다. 수고와 땀 흘릴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질병과 사고를 예상하고 온갖 보험에 다 들어야 합니다

요즘 부모는 자기는 안 들어도 자녀는 다 들어 줍니다. 그렇게 한들 고생 없습니까? 세상의 삶은 웃는 시간보다 근심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태어나는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는 말은 이제 세상 고생을 다 마친 날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딤후 04:0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0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아름다운 이름이나 복된 죽음은 출생하는 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다 마치고 난 뒤에 결정됩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더 의미가 있습니다. 죽는 그 날은 내 영혼이 하나님께 가는 날입니다. 한평생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예, 하고 간다면 이날은 분명 출생보다 복된 날입니다. 솔로몬의 말이 입증되는 날입니다.

 

 

 

 3.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0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초상집에 갈 것이냐? 잔칫집에 갈 것이냐? 상식적으로 초상집보다는 잔칫집이 좋습니다. 여기 잔칫집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잔칫집(מִשׁתֶּה 미시테). 포도주와 같은 마실 것과 식사가 있는 모임으로서 흥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21:08; 09:19~22; 01:04, 05).

반대로 초상집은 슬픔과 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곳에 갔다 돌아올 때는 발걸음도 무겁습니다. 02절은 무엇 때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까?

신앙인에게는 잘 태어나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 더 좋고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아무래도 더 낫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왜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지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현실 그대로를 보면 분명 잔칫집에는 삶의 행복이 가득합니다. 기쁨도 가득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장을 보십시오. 잔칫집에는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청첩장을 받았을 때 이왕 축하금은 내는 것이니 모른 체 식구들 모두 출동해서 식사 자리를 빛내 줍니다

02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잔칫집은 가지 말고 초상집만 가라는 뜻입니까? 청첩장을 받았으면 갈만하면 가야 하고 부고장을 받아도 갈만하면 가야 합니다. 구분해서 잔칫집은 가지 말고 초상집은 골라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잔치할 일이 많으면 그것도 복된 삶입니다

 

잔칫집에서 즐기는 일이 죄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차이점 때문에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마음을 더 두라고 합니다. 잔칫집에는 없고 초상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잔칫집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너도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현장을 많이 보지만 그 현장을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며 삽니다. 04절 같이 읽겠습니다.

 

0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늘 잔칫집을 마음에 두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늘 초상집을 마음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신령한 면에 불감증이 심합니다. 잔칫집으로 상징되는 세상살이에 마음을 빼앗기면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의 눈이 감기기 쉽습니다. 종말론 의식이 실종되기 쉽습니다. 종말을 향해 달리면서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들어서면 저 관속에 있는 분이 어떻게 인생을 살았으며 어떤 이름을 남기고 인생 마무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머잖아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날이 서서히 다가옴을 느낍니까? 그때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영혼 구원하는 일에 잘 쓰임 받게 하시고, 우리 교회 섬기는 일에 잘 쓰임 받게 하시고, 목사님 마음에 맞는 생활 잘하다 임종하게 해 주시옵소서.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그러면 마지막 그날에 이런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3).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교훈 앞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초상집에 자주 갑니다. 잔칫집에서 느끼는 웃음보다 초상집에 참여하여 느끼는 숙연함이 자신을 살피는 일에 더 좋습니다. 역시 웃음보다 슬픔이 마음에 유익합니다(03).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수고함의 결과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 이런 것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혜의 왕 솔로몬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섯 가지의 각 사건을 비교급으로 대칭 한 교훈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들 가운데 더 복이 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을 잘 찾으라는 뜻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물질생활 넉넉하게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인 다운 이름 남기는 것이 더 귀한 일이고, 출생하는 날도 귀하지만 죽는 날이 더 귀하도록 인생 관리 잘하라는 뜻이고, 잔칫집보다 초상집에서 자기의 앞날을 잘 점검하라는 뜻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들었던 가룟 유다 아시지요. 유다의 이름 뜻은 찬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부모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라고 지어 준 이름입니다. 얼마나 좋은 이름을 받았으며 얼마나 좋은 이름으로 출발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죽을 때 잘 죽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좋은 이름을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말았습니다. 자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번뿐인 세상을 삽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삶의 끝에서 자신의 삶을 잘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