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제2차 세계대전(1939.9.1.~1945.9.2)을 일으킨 독일의 미치광이 지배자 히틀러(Adolf Hitler 1889.4.20.~1945.4.30.)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하여 6백만여 명이나 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였습니다.
히틀러가 왜 이런 잔인함을 보였는지에 대한 의문점 하나가 풀렸습니다. 히틀러 아버지는 상인으로 한번 행상을 떠나면 며칠 정도 지나서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유대인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부터 히틀러는 유대인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는데 훗날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 반감으로 유대인을 크게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유대인을 다 죽이지 않은 것이다.
본서 에스더에 하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함므다다의 아들로서 아말렉의 왕족 출신이며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 때 총리입니다(에 03:01).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을 그렇게도 미워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닮은 꼴입니다. 총리 하만은 본서 주인공 모르드개와 많은 갈등을 빚습니다. 유대인을 지독히도 싫어합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유대인 말살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진 두 공로자가 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입니다. 이 두 사람이 유대인 킬러 하만의 음모와 계략을 극적으로 반전시킵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려 설치한 장대에 하만이 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만에 의한 유대인 말계획을 반전시킨 모르드개의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모르드개는 동족을 품었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모르드개의 신분과 당시 역사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
0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한 유다인이 있으니.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포로 후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굳이 지파로 분류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유대인(Jew)은 유다 땅의 거민이라는 뜻으로 포로기 전후부터 불리던 이름입니다(왕하 16:06).
모르드개(מָרדְּכַי 모르데카이). 바벨론에 거주했던 대부분 유대인은 히브리식 이름을 가지지 않고 개명하였습니다. 이름 뜻은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르드개의 출신을 보면 베냐민 자손, 기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입니다.
성경 지식이 모자는 분은 기스를 사울의 아버지 기스(삼상 09:01)로 시므이를 다윗을 모욕했던 시므이(삼하 16:05)로 봅니다마는 실제 관계없습니다. 왜냐하면, 관계대명사 06절이 그런 주장을 부정합니다.
06절에 여고냐가 나오는데 이 여고냐는 유다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인 19대 왕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입니다(마 01:11, 12). 따라서 06절 한글 번역을 그대로 따르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비 간택령을 내린 때가 약 B.C. 480년이기 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라는 명칭은 페르시아의 통치자 호칭으로서, 애굽의 통치자 바로와 같은 원리입니다. 본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 이름은 다리오 1세 아들 크세르크세스(B.C.خشایارش 519~465 영 Xerxes 히 אחשורוש)입니다. 이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즉위하자 이집트에서 2년간 끌어오던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자기의 동생을 이집트 총독에 임명하였습니다.
선왕 다리우스의 유화책 보다 더욱 강경한 정책으로 제국을 다스렸는데 특히 바벨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때는 신전과 황금 신상 말둑까지 파괴하였습니다.
크세르크세스의 치세 초기 페르시아 제국은 최전성기에 달하였습니다. 애굽을 정복하였고, 헬라와의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의 영토는 서북쪽으로 인도의 국경까지 서쪽으로 에티오피아 북쪽 국경까지 동서의 길이가 4,827km이며 그 폭은 최대 2,400km로 추정됩니다(01:01). 본서는 이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치하에서(B.C. 485~464) 활동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면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아 갔다는 말은 연대 상 맞지 않습니다(06). 06절을 그대로 인정하면 여고냐 왕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B.C. 597년) 모르드개의 나이는 약 127세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사촌 동생 에스더와 40세 차이가 난다고 해도 에스더의 나이가 87세쯤 됩니다. 결국, 모르드개가 직접 잡혀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집안이 잡혀 오고 모르드개는 오랜 포로 생활에서 2세로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06 기스는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생략) 함께 사로잡혔더라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바벨론 출생임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정해야만 성경 흐름과 전체의 연대가 맞아들어갑니다. 그런 그가 지금 아하수에로 왕의 궁전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고위 공무원이 되어 에스더를 역사에 등장시키는 활동을 합니다(11).
2. 모르드개의 비전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
0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하닷사(הֲדַסָּה) 곧 에스더(אֶסתֵּר). 하닷사가 본명이고 에스더는 왕비가 된 후 그의 용모 때문에 페르시아 사람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하닷사는 화석류 혹은 도금양(桃金孃) 나무를 뜻합니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유대 학자들은 사 55:13절을 특별하게 해석하였습니다. 제가 소개할 테니 참조만 하십시오. 잣나무는 모르드개를, 가시나무는 하만을, 화석류는 에스더를, 찔레는 와스디를 상징하는 구절이다.
사 55:13 잣나무(모르드개)는 가시나무(하만)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에스더)는 찔레(와스디)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에스더가 유대인을 하만의 음모에서 구출할 예언이란 뜻입니다. 에스더는 별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스타라(Stara)의 히브리어 음역입니다.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자신의 양녀로 삼고 키운 것은 에스더의 아버지 아비하일이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이 교만한 왕비 와스디를 폐위하고 또 이집트 정복까지 마치면서 4년의 기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이 시점에서 모르드개는 나름의 신령한 감각으로 페르시아 정부에서 왕비를 간택할 때를 대비합니다. 하나님이 에스더를 특별히 사용하실 줄 믿고 준비하는 셈입니다. 이미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어릴 때부터 장차 하나님이 제대로 쓰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심정으로 양육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요게벳이 아들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믿음과 소망을 심어준 것처럼 모르드개도 이스라엘 정신을 에스더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서서히 준비하였다고 봄이 더 옳을 것입니다.
이제는 모르드개 없는 에스더는 존재할 수 없고 에스더 없는 모르드개도 존재할 수 없는 동반자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 인생을 걸었고 함께 믿음의 동행을 하였습니다. 이후의 일정을 보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 후보로 나아갈 때 모르드개의 행동지침을 따라 움직입니다(10). 08절을 보십시오.
에스더가 다른 처녀들과 함께 왕비 후보로 선택되었고 이내 왕비 간택을 주관하는 환관장 헤개의 수하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헤개가 에스더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풉니다. 탁월한 미모와 아름다운 덕성이 헤개의 마음을 기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려고 헤게에게 로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게가 에스더에게 적극 왕비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09절을 히브리어 원문 관점으로 보면, 헤게가 에스더를 위해 일반 후궁들이 머물던 처소가 아닌 왕에게 자주 불리던 후궁 처소에 똑똑한 궁녀들 일곱 명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09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믿음의 사람은 오늘 말씀이 진행되는 02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는 일에 헤게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서 01~10장까지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란 호칭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각 장 요소요소에 하나님의 통치와 드라마틱한 섭리가 나타납니다.
3. 모르드개는 동족을 구하기 위해 에스더를 내 세웁니다. |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10절을 보면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 후보로 선택되어 수산 궁으로 들어갈 때 그 근본 신분을 밝히지 말라고 특별히 명령 하였습니다. 또 20절을 보면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에도 모르드개의 말을 그대로 따릅니다.
이제는 지난날 모르드개 아래서 지내던 때와는 신분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왕후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계속 따르고 있으니 이래도 됩니까? 이런 식으로 나가면 자칫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마음에 품은 큰 뜻을 보아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품은 뜻이 무엇입니까?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앉히려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혹 그 이유가 왕후 에스더를 배경으로 자신의 정치 꿈을 펼치기 위함인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권력의 핵심부에 파고 들어가서 소수 민족의 서러움을 단번에 극복해 보려는 나름대로 애국심의 발로로 봐도 됩니까? 본서는 이런 여러 추측 중 그 어떤 것에 대해서 명백하게 이렇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 04: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당시에 반유대 세력이 페르시아에서 서서히 일어남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권력자 한두 사람에 의해 언제라도 동족이 몰살당할 수 있습니다. 당시 총리대신 하만의 행보로 보아 유대 민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모르드개는 이런 일들을 예방하기 위해 에스더를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세워지도록 일 년간이나 노심초사하며 헤게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02:11). 그 첫걸음이 에스더의 포로 출신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일입니다. 만일 에스더의 신분이 밝혀지면 어떻게 됩니까?
페르시아 정부는 전 정부인 바벨론처럼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잘랐을 것입니다. 환관장 헤개도 유대인에 대해 혹 나쁜 선입관을 마음에 가졌다면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과 가까이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에 간택되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비천한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은밀하게 입단속을 시킨 겁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믿는 공동체의 행복을 위하여, 복음의 확장을 위하여 사람과 물질과 환경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내 인생도 알고 보면 내가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을 위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의 도구로 쓰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삶에는 언제나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주변에서 작동되는 하나님의 뜻을 영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대화를 나누면서 아담이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 하와는 정말 예뻐요. 왜 그렇게 예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늘 그 애만 바라보지 않겠니? 아담이 다시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런데 하나님, 하와는 좀 멍청한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만드셨어요? 바보야, 그래야 그 애가 널 좋아할 거 아니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 똑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려 하면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되는 것이지 하나님보다 앞서가려 하면 믿음의 사고가 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나는 따라가는 일로 만족하십시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 중 하나가 이란 중서부의 해발 1850m 산지에 있는 하마단주의 하마단(Hamedan)입니다. 이곳은 과거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궁전이 있던 곳인데 특별한 장소가 하나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묘와 에스더의 묘입니다. 분명히 역사 속에 존재한 인물의 증거입니다. 세월은 무수히 흘렀지만,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자기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살다가 갔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가 되면 세상을 마칩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믿음의 꿈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의 도구가 되어 살다 주님의 나라로 가기를 축원합니다.
한 사람의 헌신과 사랑의 보살핌은 건강한 한 사람 에스더를 만들어 냅니다. 한 사람을 잘 양육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일이 됩니다. 모르드개도 에스더도 오직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만 갔습니다. 하나님은 왕후 에스더(mentee)를 만들기 위해서 모르드개(mentor)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다듬는 일에 쓰임 받도록 헌신자로 잘 준비되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강단 > 2019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끝에서 자기를 돌아봅시다(전 07:01~04). (0) | 2019.06.08 |
---|---|
그리하면 잘 됩니다.(잠 03:01~06) (0) | 2019.06.01 |
우상의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대하 22:01~12 (0) | 2019.05.18 |
[어버이주일] 불효자의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삿 09:22~55). (0) | 2019.05.11 |
[어린이주일]이스라엘 정신으로 자란 모세(출 02:01~12) (0) | 2019.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