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스라엘 왕국에 우상숭배와 탐욕을 상징하는 악한 왕이 있습니다. 시돈 출신 이세벨과 정략결혼 하여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확산한(왕상 16:31) 7대 왕 아합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는 선량한 사람까지도 죽인 왕입니다(왕상 21:01~16).
이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아달랴라는 딸이 태어났는데 이 아달랴가 결혼 적령기가 되어 유다 왕국 5대 왕 여호람과 결혼하였습니다(왕하 08:18). 이세벨의 딸이라면 우상 섬기는 일에 몰두했을 것은 능히 짐작되지 않습니까? 이런 여자를 여호람이 아내로 맞이했으니 국가가 불행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호람은 부친 여호사밧(B.C. 872~847)과 함께 4~5년간 유다 왕국을 공동으로 다스리다 B.C. 847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오릅니다(왕하 08:16; 대하 21:01). 여호람이 단독으로 정치를 하게 되자 왕비 아달랴가 뒤에서 조종합니다.
그리고서 형제와 신하 일부를 살해하는 악행까지 저지릅니다. 이에 하나님은 유다 왕국에 심판의 채찍을 들었습니다. 에돔과 립나의 반역(왕하 08:20~22),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략을 채찍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이 일로 여호람의 아내들과 자식들은 포로로 끌려갔고(대하 21:16, 17; 22:01) 여호람 왕 역시 불치의 병을 얻어 2년간 고생하다 죽었습니다(대하 21:18, 19). 더 안타까운 것은 여호람은 죽어서도 역대 왕들의 무덤에 들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대하 21:18~20).
일국의 왕이 왜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였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난 아달랴 즉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왕궁에 우상 섬기는 여자 한 사람 잘 못 들임으로 그것이 재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우상의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로 정했습니다.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아달랴는 끝까지 우상의 길을 걸었습니다. |
0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여호람 왕이 죽고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왕비 아달랴와 예루살렘 주민과의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왕위 계승 과정에서 예루살렘 주민의 영향력이 상당히 미친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01).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42세였습니다. 마흔이 넘었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하시야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 이제 대비가 되어 모든 세력을 장악하고 아하시야를 조종하여 유다 왕국을 바알 숭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난 여자답게 유다 왕국을 우상의 나라로 물들이는 중입니다. 유다 왕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한 나라의 통치자이지만 자기 뜻을 펼쳐보지도 못한 체 불신 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계속 끌려갑니다. 아하시야 왕을 뒤에서 조종하는 아달랴를 적절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02절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라. 오므리가 누구입니까? 바알을 섬기는 시돈 왕국의 왕입니다. 거기에서 난 딸이 그 악명 높은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의 근원을 설명하는 말이 있습니다. 엣바알의 딸입니다(왕상 16:31).
엣바알은 본래 바알과 함께 하는 자라는 의미의 제사장입니다. 이 엣바알이 어떤 정치의 격변기를 통해 펠레스 왕을 제거하고 시돈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엣바알에서 난 딸 이름이 이세벨입니다. 우상의 정신이 꽉 찬 여자입니다.
이런 여자를 북이스라엘의 아합이 왕비로 삼은 것은 불행의 예고편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온 이세벨에 대하여 성경은 최고의 우상 숭배자이며 가장 잔인한 성격의 여자로 묘사합니다(왕상 21:05~16, 25; 왕하 09:22).
이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결혼하여 온 나라를 바알을 섬기는 우상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난 딸이 아달랴입니다. 그런데 아달랴를 아합의 딸이라 하지 않고 오므리의 손녀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할아버지 오므리 때부터 우상 섬기는 그 정기가 아달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물론 남북 화해정책을 따라 여호사밧 왕이 그러했지만, 아달랴는 유다 왕국 여호람 왕과 결혼한 후 자기 어머니 이세벨이 하던 대로 남편을 우상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아합의 길은 한 마디로 우상의 길입니다. 아달랴가 남편에 이어 아들 아하시야 왕조차 아합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그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믿음으로 국가를 돌보지 못했으니 차라리 왕이 안 되었다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습니다.
왕으로서 우상의 길 아합의 길을 갔으니 그 우유부단한 잘못이 큽니다. 아하시야가 아무리 모친이라 해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거절하여야 합니다. 아사 왕(3대)처럼 태후의 위를 폐하고라도 말씀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왕상 15:13).
자녀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기도의 어머니, 말씀의 어머니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면 복의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 자녀가 공동체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목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일단 자녀가 교회를 잘 다니며 충성하는 것도 어머니의 책임이요, 자녀가 믿음에서 떠나 있거나 제대로 충성을 안 하는 것도 어머니의 책임으로 여기십시오. 모세는 어릴 때부터 믿음의 어머니 요게벳의 영향으로(출 02:07~11)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사무엘도 기도의 어머니 한나의 영향으로(삼상 01:26~28)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2. 아달랴는 정권 욕심 때문에 순리를 역행하였습니다. |
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수리아를 치다 므깃도에서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아달랴가 이때를 틈타 직접 정권을 장악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부터 아들 아하시야 때까지 막후에서 정권 실세로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 보았습니다. 누구보다 권력의 세계를 잘 압니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는지 그 길도 알고 있습니다. 기회가 지금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미 남편 죽었을 때 아들 아하시야에 권력 안 넘기고 왕이 되려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음모로 바뀌었습니다. 반역이지만 현재 권력을 장악하였으니 누가 감히 막아서겠습니까? 당장 아하시야의 왕손부터 제거해 나갑니다.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왕의 씨라고 하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과 친척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당시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전에 아라비아 사람(대하 22:01)과 예후에 의해 대부분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달랴는 왕이 될 수 있는 씨를 일일이 찾아내어 제거하였습니다. 제거한 자들은 왕손이요, 그 집안 피붙이입니다. 아달랴에게는 손자들입니다.
어떻게 할머니가 손자들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아달랴는 정권 욕심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 무서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악랄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인격도 팔아먹고 역사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한 여자로 변했습니다.
아달랴가 생각을 조금만 잘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들이 죽어 왕의 자리가 비었을 때 손자들 가운데 똑똑한 자를 왕으로 세웠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돕는 태후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면 좋은 역사의 평가가 날 건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그 반대 길을 택했습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바알을 섬기는 우상의 길로 달려왔기에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들지 못했습니다.
우상의 길에서 돌아설 수 없어서 선보다 악을 택했고 하나님보다 우상을 택했습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택했으며 선인의 길보다 악인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시 01:0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0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시편 기자가 전하는 악인의 길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하고,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 속에 악한 사람이 잘 된 예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아달랴의 심리 상태를 봅시다. 어떻게 핏줄을 제거하는 일을 서슴없이 합니까? 아마 아달랴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파멸을 알고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오직 권력이 자기를 지켜 줄 것이라 믿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무슨 일을 못 벌이겠습니까? 만일 손자들을 하나라도 살려놓으면 언젠가는 그 어린 왕자를 내세워 역모를 꾸미는 명분이 될 것을 내다 보았습니다. 아달랴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자기는 왕손이 아닌 이상 정통성 때문에 불안에 시달릴 것을 내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겁니다.
3. 아달랴가 무너뜨린 메시아 계보를 여호야다가 회복시킵니다. |
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도무지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자가 쿠데타로 집권하여 전례 없는 유다 왕국 7대 왕에 올랐습니다. 남북왕국을 통틀어 유일한 여왕입니다. 시돈 왕국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또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난 아달랴는 유다 왕국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 며느리로 들어와 여호람 때 왕비가 되었다가 아들 아하시야를 거쳐 직접 왕이 되었습니다.
정통성이 없는 왕입니다. 믿음 없는 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왕입니다. 메시아의 혈통이 흘러가는 왕국을 다스려서는 절대 안 될 사람입니다. 아달랴 여왕에게 남편이 있습니까? 아들이 있습니까? 임시방편으로 정권을 잡고만 있을 뿐이지 어디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까?
이런 정권이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6년 동안 다스렸더라. 이 짧은 구절 하나가 아달랴의 업적 전부입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다른 왕들은 어떤 평가가 있습니까? 가까이는 아달랴의 뒤를 이은 요아스에 대한 기록을 보겠습니다.
대하 24:27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 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6년간 나라를 다스렸지만, 왕들 일기에 한 마디도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일한 것이 없으니 기록할 말도 당연히 없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있는데 아무것도 일한 것이 없는 것을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 합니다.
아달랴는 유명무실의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아달랴는 정통성이 없는 왕으로 세움을 받았기에 더욱 국가를 위해, 백성을 위해, 마지막 좋은 명분을 얻기 위해 선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6년을 허송세월하고 말았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혹 이름은 있고 열매가 없는 사람 유명무실한 사람입니까? 그러면 빨리 그 자리에서 돌아서십시오. 차차, 천천히, 내일, 다음에 이런 식으로 미룰 때가 아닙니다.
지금 돌아서지 못하고 세월 다 허비한 인생 마무리 때 어떻게 하시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세상에 왔으면 무엇인가 믿음의 발자취를 남겨야 합니다. 계속 이렇게 살 때입니까? 세월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엡 05:16).
아달랴가 6년 통치 기간을 허송세월할 때 하나님의 섭리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왕궁에서 서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왕이 될 때 나이가 겨우 7세입니다(대하 24:01). 아하시야가 죽은 해에 태어난 요아스를 여호람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목숨을 걸고 겨우 건져 낸 왕손입니다(11).
요아스와 유모까지 제사장 관사에 숨겨 6년을 아달랴 여왕의 칼을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요아스를 구출한 여호사브앗이 누구입니까? 아달랴의 횡포를 더는 참지 못하고 축출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입니다.
다윗의 씨가 끊어질 뻔한 상황에서 대를 이어가게 한 귀한 여자입니다. 다윗의 씨에 의한 핏줄이 아달랴에 의해 끊어질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한 여자의 헌신을 통해서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도록 예비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아달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음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아달랴의 6년 통치 동안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여왕에게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고 충분히 설득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믿음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달랴는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의 말을 무시하자 마침내 나라의 서열 2위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일어섰습니다. 먼저 여호야다는 백부장 5명을 설득하여 혁명군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어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은 안식일에 교대하는 틈을 이용하여 혁명군으로 바꾸었습니다.
혁명군 부대가 세 부대로 나누어 일부는 왕궁을 지키고, 일부는 궁궐 내의 호위대를 감금했으며, 일부는 기초문을(왕상 11:06) 지켜 외부 군대를 차단하였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 후 아달랴를 혁명군의 호위 속에 성전으로 유인하였습니다.
아달랴는 혁명군을 자기 군대로 알고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성전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성전 안에서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에 기름을 붓자 백성들이 손뼉 치고 환호하며 요아스 왕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때 아달랴가 외칩니다.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며 도망을 하자 길이 열렸습니다. 성전에서 살인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달랴가 성전 밖 왕궁의 말 다니는 길까지 왔을 때 호위병도 없이 무리가 휘두르는 칼을 맞고 죽었습니다(대하 23:15, 21).
하나님의 말씀과 순리에서 이탈하면 불행의 길로 가고 맙니다. 아달랴는 하나님의 나라 흐름을 차단하다 불행한 죽음을 초래하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거울로 삼아 믿음의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 직분과 위치를 잘 지키는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부인 여호사브앗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잘 관리하고 충성하는 일꾼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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