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삼 년 동안의 공생애를 통하여 몇몇 사람에게는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놓고 주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마 08:10).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16명의 귀한 믿음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14명은 남자이고 여자가 2명인데 사라와 라합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를 대다수 성경학자가 사도 바울로 봅니다. 만일 저자를 바울이라면 바울은 라합을 대단한 믿음의 인물로 칭찬하는 셈입니다.
야고보는 행동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라합을 예로 들었습니다. 약 02:25 절에 의하면 라합은 여리고 성을 정탐한 두 사람을 보호하여 안전하게 돌아가게 한 일을 믿음으로 한 행동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약 02:25).
예수님의 메시아 계보에 등장하는 흠 있는 여자 4명 중 첫째 다말에 대해서는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살펴볼 사람은 라합입니다. 다말을 강론할 때 말씀을 드렸지만, 라합도 그 현실의 신분만은 숨기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라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불명예스러운 이야기를 성경에 남겼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허물을 통해서도 일하시기 때문에 기록이 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오늘 전하는 말씀은 멸망 받는 여리고 성에서 구원을 받은 라합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믿음으로 메시아의 조상이 된 라합」 으로 정했습니다.
1. 라합은 여리고 성에 잠입한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
0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오늘 말씀은 B.C. 1405년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리고는 당시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성벽은 이중으로서 외벽이 4m, 내벽이 2m, 그 사이 간격이 5m, 전체가 11m나 됩니다. 당시로써는 어떤 외적도 감히 공격하기 힘든 여건과 군사력이 막강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최상의 안전지대라 여길 수 있습니다.
가나안의 입구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방비 태세와 군사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경제면에서는 비옥한 곡창지대와 오아시스가 있고 종려나무도 무성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풍요로운 도성입니다.
이곳에 여호수아가 팔레스타인과 경계를 이루는 모압 땅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보원을 잠입시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수 있는 정보를 낱낱이 정탐하라는 사명이 아니라 여리고성 내를 살펴만 보고 오라는 사명입니다.
첩보 사항을 근거로 작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여리고를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이셨다는 사인(sign)을 얻고 싶어서 이렇게 정보원 두 명을 투입한 것 같습니다.
이에 두 정보원이 기생(妓生) 라합의 집에 숙박 들었습니다. 여기서 라합에 대해 몇 가지 점검을 해 봅시다. 라합 앞에 기생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기생이라면 몸을 파는 여자입니다. 그러면 라합이 계속 몸을 파는 창녀의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의문점이 듭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 단어를 편하게 이해한다면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 라합이 기생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런 호칭이 붙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오늘 말씀의 주제가 기생이 아니므로 더는 해석을 안 하겠습니다.
정보원들이 라합의 집에 유숙했는데 본문의 진행되는 상황을 볼 때 성(性)을 사기 위해서 라합의 집에 들어간 것은 분명 아닙니다. 사실 라합 앞에 붙는 기생이라는 수식 때문에 본문의 진의를 살피는 데 오해가 많이 생깁니다. 라합은 성벽 위에서 숙박업을 하는(15) 여자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오가는 사람은 이곳에 숙박할 수 있고 여러 부류의 사람이 모여 사담도 나누는 장소입니다. 성벽 위에 집이 있는 것은 가나안의 민심이나 정치 군사에 관한 동태를 살피기에는 아주 적절한 장소입니다. 곧 정보원 두 사람 행적이 여리고성 당국에 신고되었고. 이내 공안이 들이닥쳤습니다.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צָּפַן 차판). 정보원 둘을 숨겨준 라합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리고성의 관점에서는 국가 반역죄요 이적 행위로서 자칫 목숨이 날아갈 수 있습니다. 여간한 담력이 아니고는 이런 일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라합은 아모리 족속으로서 우상 숭배를 하다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일 때문에 남의 시선을 불편하게 느끼며 살다 끝날 수밖에 없는 여자입니다.
그런데도 라합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합니까? 한 마디로 여호와 신앙에 대한 소문만 듣고도 믿음의 세계에 입문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라는 차원에서 보면 라합은 국가의 반역자이지만 더 넓은 차원, 믿음의 관점으로 보면 반역자가 아닙니다. 오직 라합이 이 일을 믿음으로 한 것은 하나님께 인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2. 라합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소문만 듣고도 믿었습니다. |
0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성벽 위에서 숙박업 하는 라합의 집은 모든 소식이 공유되는 장소입니다. 외국을 오가는 사람이 숙박할 수 있는 곳이니 여러 정보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라합은 수시로 드나드는 여행자들을 통해서 바깥 세계의 소식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눈치 하나로 살아온 라합 아닙니까? 외부에서 들어와 태연하게 행동하는 두 정보원, 이들이 아무리 변장해도 라합의 눈에는 단번에 이스라엘의 간첩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진작부터 소상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정보원을 신고 대상자가 아니라 숨겨주어야 할 자로 알고 정보원에게 자기의 생생한 믿음을 간증합니다(09, 10).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일, 가나안 입구까지 오면서 여러 족속을 물리친 일, 요단강을 건넌 일, 이로 인해 여리고성 사람은 마음이 녹고 정신이 나갔으며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전체를 이스라엘에 이미 주신 줄로 안다는 간증입니다.
라합은 여리고의 성민이 낙담에 처한 것과는 마음 가짐이 달랐습니다. 자신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소문만 듣고도 믿었고 앞으로도 믿겠다고 간증합니다. 이번에 정보원으로 이곳에 온 당신들을 내가 신고하지 않고 보호해주는 것도 당신들이 믿는 그 하나님을 나도 믿기 때문이라고 간증합니다.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란 간증입니다.
라합의 이 간증이 믿을 만합니까? 사실 현실의 군비나 병력 수준으로만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이길 확률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사십 년 광야 생활에 이미 지쳐 있고 여리고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공격해야 하고 여리고는 방어만 하면 됩니다. 이스라엘은 옳은 병기 변변한 병기 하나 없지만 여리고는 좋은 병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라합의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라합의 견해에 누가 손뼉 치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준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문으로 듣고 믿었습니다. 생명의 소식을 듣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안 믿으면 불신의 행동이 나오고 믿으면 믿음의 행동이 나옵니다. 라합이 두 정보원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겠습니다. 여리고의 공안이 찾아 왔을 때 이렇게 따돌립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릅니다.
날이 저물어 성문을 닫을 때쯤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나 급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04, 05). 이렇게 공안을 따돌리고는 두 정보원에게 추격자가 혹 마주칠 수 있으니 산으로 가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돌아가라는 안내입니다.
공안을 따 돌리는 말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라합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나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땅임을 믿는 확신입니다. 이스라엘 정보원이 라합의 말대로 하여 안전하게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도전하는 믿음이요 모험하는 믿음이요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3. 라합은 창문에 매달은 붉은 줄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
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공안을 따 돌린 후 이스라엘의 두 정보원에게 요청합니다. 내가 당신들을 목숨 걸고 지켜주었습니다. 머잖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사람 모두를 구원하는 맹세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 증표를 주십시오12).
라합의 말에 정보원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에 라합이 정보원을 창문에서 붉은 줄로 매달아 내리는데 그때 두 정보원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절대 안전의 맹세이며 증표입니다(18, 19).
라합을 구원하는 증표는 창문에 매인 붉은 줄입니다. 라합을 구원하는 절대 요소는 창문에 매인 약 18m 정도의 붉은 줄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이 점령을 당할 때 성벽 위의 라합의 집으로 모이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붉은 줄이 있는 창문 방으로 모이는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의 생각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합의 집은 가장 위험한 성벽 위에 지어진 집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위험한 장소가 노출된 곳입니다. 그나마 좀 안전한 집이 있다면 성벽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집입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누구든지 안전한 곳으로 피난합니다. 그런데 전쟁의 표적이 되는 곳으로 모인다면 누가 그곳을 안전하다고 하겠습니까?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성벽을 공격하여 허물 텐데 성벽 위의 집이 안전하니 이곳으로 피신하라는 라합의 말에 과연 누가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자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렇다고 라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합부로 공개하면 그때는 위험이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라합은 여리고에 대한 배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라합은 부모와 형제와 모든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라합의 말에 가족들이 처음부터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믿을 만한 증거나 증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소리 절대 못 믿겠다며 안 받아들이면 어찌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그래도 설득을 해야 합니다. 중단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수 07:01~20절을 보면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엿새 동안 여섯 번 돌았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습니다. 이어서 제사장은 나팔을 불며 백성들이 크게 소리 지르니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고고학의 연구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이중성벽으로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외벽이 4m입니다. 그 위는 병거가 다닐 정도로 폭이 넓습니다. 내벽도 2m입니다. 이 외벽과 내벽 사이에 큰 대들보를 올려놓고 집을 올린 것이 라합의 집입니다. 창문에 붉은 줄이 드리워 있는 라합의 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벽과 함께 무너지지 않고 보존이 되었으며 그곳에 라합과 관계되는 사람이 모여 있다 구원받았습니다.
수 06: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탐하려 보낸 정보원을 라합이 숨겨주면서 받은 그 증표, 바로 창문에 매인 붉은 줄이 생명줄입니다. 붉은 줄이 내려 있는 곳이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라합의 창문에 매인 붉은 줄은 무엇을 예표 합니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무엇을 예표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 하는 상징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06). 초대교회 사도들도 온갖 핍박 속에서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마태복음 01장의 메시아 계보에 라합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지는 신령한 계보입니다. 다윗을 거쳐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계보로서 마 01:05~0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0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 01:05). 유대인의 계보에는 여성이 기록되지 않는데도 라합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방인 여자 라합, 가장 악한 아모리 족속 출신 라합이 어떻게 메시아의 계보에 오르게 되었습니까? 신분으로 볼 때는 불가하지만 오직 믿음 하나로 올랐습니다.
라합의 행적을 살피면서 마음에 큰 격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가 아무리 좋지 않았다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입니다(고후 05:17).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은 성도를 과거에 묶어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라합(רָחָב)의 이름 뜻은 거만하다. 넓고 풍부하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거만한 사람 같은 기생의 생활을 하였지만, 나중에는 메시아의 조상 자리에 오르는 넓고 풍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라합에 대하여 히 11:31 절이 전하는 말씀을 읽고 마칩니다.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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