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믿음으로 메시아의 조상이 된 다말(창 38:01~3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2. 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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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메시아 계보에는 46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5명은 여자로서 다말, 라합, , 밧세바, 마리아입니다. 5명 중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이스라엘의 율법 기준으로 볼 때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시아버지와 사이에 아들을 낳은 다말(38:29), 기생 출신 라합(02:01), 모압 출신 과부 룻(01:04), 솔로몬왕과 스캔들 일으킨 밧세바(삼하 11:04) 등 모두가 흠이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Matthew Henry 창세기 38장 유다의 이야기만 보면 아무도 그를 칭찬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차라리 이 사건은 숨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불명예스러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람의 허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또 가르칠 수 있는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메시아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구심점으로(12) 전개됩니다. 이후 이삭, 야곱, 유다로 진행되어왔습니다. 4대까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라 잘 기억합니다. 그다음 5대 인물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베레스입니다


여러분에게 좀 생소하게 들립니까? 오늘 말씀은 이 베레스가 예수님의 계보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윤리의 관점이 아닌 신령한 관점에서 들으십시오. 왜냐하면,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의 부끄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면 메시아의 계보가 좀 불편한 진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일도 숨기지 않습니다.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믿음으로 메시아의 조상이 된 다말이렇게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다말은 계대결혼을 통해 권리를 찾으려 합니다.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으므로 말미암음이라.

 

유다에게 엘과 오난 셀라 세 아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장자 엘이 다말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하여 저주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일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합니다. 이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을 불러 말합니다. 네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가문을 잇는 역할을 하라(08).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 이것이 이스라엘의 계대결혼 제도입니다.

 

25:0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죽은 형을 위하여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 좀 억울한 것 같습니까? 옛날 장자 중심의 씨족사회는 당연히 필요한 제도였습니다. 형의 가문을 이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대결혼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이 죽으면 형수가 형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지 않습니까? 그러면 받은 그 재산을 가지고 다른 지파로 시집을 가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그 지파의 재산이 줄어듭니다. 지파 사회에서는 재산이 줄어드는 일을 막기 위해 이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또 경제가 열악한 사회에서 가난한 형이 죽으면 형수가 굶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생명을 유지해 주는 복지 차원의 목적도 있습니다


법이 그렇다 보니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은 할 수 없이 형수 다말과 계대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계대결혼 후 자기 이름은 사라지고 형의 가문만 남는 일이 싫었습니다.

오난은 형수와 살면서도 씨를 남기지 않으려고 땅에다 설정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난은 유다의 후손을 이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일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로서 오난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유다는 어린 셋째 아들 셀라가 다말의 남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집안에 장남이 죽고 차남도 죽자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며느리 다말은 아들을 해치는 해로운 자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이 죽은 이유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해서 죽었다고(07, 10) 여기지 않고 며느리 탓으로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막연한 기약만 주고 소박(蔬薄)을 놓듯 친정으로 내쫓고 말았습니다(Kalisch). 마지막 아들 셀라를 다말 근처에 못 가도록 장치한 셈입니다

세월이 지나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었고 셀라도 장성하였습니다. 유다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통 기간(24:67)이 지나자 유다 족속 영토의 경계(15:10) 딤나로 양털을 깎으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다말이 알고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인 줄 모르고 새끼 염소 한 마리로 성을 흥정합니다. 나중에 주겠다는 흥정입니다. 이에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에게 대가를 줄 때까지 담보물로 도장과 끈과 손에 있는 지팡이를 요구합니다. 유다는 담보물을 나중 교환하기로 하고 창녀로 여긴 다말과 동침합니다(15~18).

 

 

 2. 다말은 천륜을 거스르면서 가문의 대를 잇기 원합니다.

 

18.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유다가 이방인 수아의 딸과 결혼한 것도 허물이고, 이방인 친구 히라와 너무 가까이 한 것은 더욱 큰 허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12). 본의 아니게 며느리 다말을 창기로 알고 근친상간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문화에서 다말이 시아버지를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은 패륜입니다. 레위기 18장에는 동성애와(22) 근친상간에 대한 성의 규례가 자세하게 나옵니다.

 

18:06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규례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근친상간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조금 전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에게 창기로 가장하여 접근할 때 대가를 줄 때까지 그 증표로 도장과 끈과 손에 있는 지팡이를 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말이 왜 이런 품목을 요구했는지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장(חוֹתָם 호탐). 소유자의 신분과 권리의 표시입니다. 개인이 언제나 휴대하고 다녔는데 당시 사람들은 반지형 도장을 사용 하였습니다. 따라서 손가락에 끼거나(41:42) 혹은 원통형으로서 목에 걸고 다녔을 수 있습니다(08:06). (פָּתִיל 파틸). 여기서는 도장 끈으로 여겨지고 지팡이(מַטֶּה 맛타) 개인 장신구로서 꽃이나 짐승의 모양이 새겨진 부족의 상징물입니다.

 

그러면 다말이 확실한 증거물이 되는 물품을 왜 세 가지나 요구하였습니까? 나름대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대비하는 것 같습니다. 유다는 세 가지 물품을 요구하였으니 매우 까다로운 일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중 염소 새끼를 주고받으면 될 줄로 여기고 별생각 없이 내주었습니다. 다말은 이후 염소 새끼에 대한 세 가지 담보물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챙기고는 창녀 복을 벗고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상당한 계략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말의 계획을 알 수 없는 유다는 곧 염소 새끼를 친구 히라에게 보내어 담보물을 찾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유다가 양털 깎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행한 일이 혹 공개될까 부담되어서 가나안 친구를 통해 담보물을 찾는 셈입니다

히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다말이 머물렀던 곳을 찾아가서 그 창녀를 찾으려고 수소문합니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는 그런 창녀가 없다고 말합니다(21). 히라는 유다에게로 돌아와 그곳에 그런 창녀가 없다고 말해 줍니다. 그 순간 유다는 담보물 찾는 일을 포기합니다. 물건 찾으려다 혹 소문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오늘 말씀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말이 유다 가문의 신령한 흐름, 메시아 계보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말은 엘과 결혼 후 남편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자 차자인 오난과 계대결혼을 합니다. 이 일 역시 후손을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유다 가문을 위해 비장의 각오를 합니다. 시아버지 유다의 씨를 직접 받아 가문을 이으려는 계획입니다. 다말은 자기의 하는 일을 정당하다고 합리화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신령한 메시아 계보의 흐름을 믿음으로 끌어 오려는 일에 믿음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 다말의 행동은 믿음의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함입니다.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말씀에 대하여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한 메시지가 유다와 다말의 사건이 선한 일인가? 악한 일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만약 다말이 성의 욕정 때문에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관계하였다면 유다보다 절대 옳은 행동이 될 수 없습니다.

유다가 셋째 아들 셀라를 자기에게 주지 않은 일에 대한 복수로 시아버지를 노렸다면 이 역시 유다보다 옳은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이제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다말과 유다의 관계로 인한 임신 소식이 유다에게 전해집니다.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하였다는 소식 하나만 듣고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명령을 유다가 마음대로 내릴 자격이 있습니까? 고대 가부장 사회에서 한 가문의 가장은 소속 가족에 대한 생사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42:37). 

따라서 유다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다말이 순결을 깨뜨렸고 가문과 족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여겼습니다. 또 다말이 죽으면 셋째 아들 셀라의 계대결혼 의무도 해방되는 속마음도 있고 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26절에서 유다가 자기를 유혹한 며느리의 일을 놓고 어떻게 이해하였기에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는 말을 합니까? 25절에 답이 있습니다. 다말이 화형에 끌려가면서 시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3개월 전, 이 물건 주인으로 인해 임신하였다며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증표로 제시하였습니다. 유다가 엊그제 같은 일인데 어찌 그때 있었던 일을 모르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첫째 아들 엘과 둘째 아들 오난이 죽은 일로 인해 셋째 아들 셀라도 죽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셀라를 다말에게 붙여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며느리 다말이 자기의 가문을 이어주려고 계획한 일을 유다가 믿음의 행위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마워하며 그는 나보다 옳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미혹하여 창녀 일을 한 일은 더러운 일 중에 더러운 불륜입니다. 의로움이 뭡니까? 그런데도 유다는 다말의 행동을 메시아 계보를 이어가는 언약 계승으로 보고 옳다고 평가합니다. 동시에 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다말은 성에 대한 욕정이나 시아버지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것이 아니라 신령한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다말은 하나님은 때로는 사람의 실수를 통해서도 선하게 일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틈새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영의 감각이 다말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신령한 면을 볼 수 있는 감각을 주십니다. 이 감각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프로그램과 활동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눈이 있고 감각이 있으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강한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03:16). 세상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면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다말은 그 목적은 좋았지만, 그 방법이 안 좋았습니다. 세상에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씨를 받은 며느리가 다말 외에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말을 사용하셨고 예수님의 계보에 들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다말을 칭찬하신 것은 아닙니다. 비록 잘못되어도 하나님은 그런 자를 붙들어 사용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말은 한국의 전통 표현을 빌린다면 팔자가 사나운 여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필요하면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다말은 어떤 믿음의 강점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 때문입니다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을 떠났고, 신앙의 공동체를 버렸습니다(01). 반면 다말은 유다가 버린 그것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스라엘의 씨를 낳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것이 신령한 공동체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여자를 예수님의 계보에 올리셨습니다오늘 말씀에는 유다의 아내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라고 하였지(02) 직접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말이 유다의 아내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유다의 대를 잇는 역할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문화와 법은 대를 이어가는 그 씨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이후 다말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세라와 베레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보다 야곱의 손을 들어 준 것처럼 세라보다 베레스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도 다말의 행동을 판단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말을 세워주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다말이 마태복음 01:03 절에 예수님의 조상으로 이름이 올랐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