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성전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 (시 15:01~0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2.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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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소에는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있습니다. 또 성소에 들어가려면 성소 문지기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누구나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시편 15편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으로서 일명 성전 입당송입니다. 다윗은 누가 여호와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자격을 놓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합니다. 시편 관례를 따르면 01절은 질문이고 02절부터는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면 이미 정해져 있는 자격을 다윗이 다시 확인하기 위해 15편을 기록한 것 같습니까? 외형의 자격보다는 다른 신령한 의미가 있어서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성소에 나아가는 자격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격을 말하려고 15편을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 말입니다.

시편 15편 말씀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자세를 가져야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0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 오니이까?

 

머무를(גּוּר 구르) 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61:04),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을 차지할 시민권자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자가 누구인가? 이런 뜻입니다.

오늘 메시지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올 때 준비 없이 그저 나오지 말라고 전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성산)에 거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오늘 시편 15편을 통해서 성전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정직하게 공의를 실천하는 자입니다.

 

0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다윗이 기록한 시편이니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성전 대신 여호와의 성소, 성막, 장막, 회막 등으로 불렀습니다.

01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자격자에 대한 물음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나 신앙인 흉내를 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는 누구나가 아니라 구별된 사람만이 나아가고 머무를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תָּמִים 타밈) 행하며. 흠 없는, 완전한 이런 뜻입니다. 절대 완전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최고로 도달해야 할 도덕의 수준입니다.

공의를(צֶּדֶק 체데크) 실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도덕의 규범을 준수하는 삶을 의미합니다정직과 공의의 길은 그 사람의 마음에 진실을 품고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정직과 공의, 이 두 단어는 시제 상 모두 현재 분사형(형용사의 기능을 가지는 동사를 다른 품사로 기능하게 함)입니다.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는 일이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욕심 때문에 정직과 공의를 포기하는 때가 많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날마다 찾고 기다리십니다.

 

대상 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정직과 공의로 드리는 예배와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면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신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정직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오셨습니까?

사실 은혜로운 생활을 하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자기들과 달리 정직과 진실과 공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보니 우리는 더욱 살얼음 걷는 것처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며 날마다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KAIST의 시험 문제 중 하나입니다. 50cm 길이와 2kg의 무게가 나가는 연어 한 마리가 시속 50km로 쏟아지는 폭포에서 80도의 각도로 5m를 뛰어오르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까요? 머리가 좋은 분은 계산해 보십시오한 학생이 간단히 답을 썼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뛴다. 예 맞습니다. 정직과 공의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켜야 나옵니다(고전 09:27).

 

하나님 나라 특징이 정직입니다. 반면 세상 공동체 특징은 거짓입니다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거짓을 이겨냅니다. 물론 우리가 정직과 공의를 위해 몸부림친다고 완전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근본이 죄인입니다. 정직과 공의를 온전히 실천할 수 없습니다. 정직과 공의란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향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 때 따라옵니다.

 

 

2. 입술로 이웃을 무너뜨리지 않는 자입니다.

 

0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혀로 남을 허물하지(רָגַל 라갈)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기 위해 혀를 놀려대는 행위는 분명 이웃을 해치려는 일입니다. 악한 자의 특징은 허물을 들추는 일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그 언어생활에서 경건의 모습이 배어 나옵니다.

사람은 하루 동안에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하며 삽니다. 따라서 천국 백성 된 우리 믿음의 가족은 질서와 절제가 있는 언어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 수천, 수만 마디의 말을 하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말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것 하나는 아십시오.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말을 하면 창조의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만일 나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하면 상대방은 평생을 고통스럽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입은 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 열어야 합니다.

 

한 입으로 불을 붙일 수도 있고 끌 수도 있으며,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복을 비는 축복의 입이어야 합니다.

불평의 입을 만들지 맙시다. 그저 성령님의 감동으로 모두의 기를 살리는 말만 합시다혹시 옆 사람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여도 좋아 보입니다. 하면 정말 컨디션이 좋아질 것이며, 좀 쌀쌀맞게 보이는 사람도 덕담 한마디 해주면 식사 초대로 갚을 것입니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 입은 성령님의 뜻을 따라 경건의 입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한 번 토한 말은 다시는 회수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신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말이 끼치는 영향은 매우 무섭습니다. 말을 잘 다스리는 사람만이 믿음 생활에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입을 부정으로 평가할 때 혀에 대한 비유를 태우는 불, 지옥 불, 쉬지 않는 악, 죽이는 독이라고 하였습니다(03:06~08). 얼마나 무서운 비유입니까? 예수님은 마지막 때 심판이 되는 기준 중의 하나로 말을 들었습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7). 구약성경 잠언에도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아로새긴 금 사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25:11).

 

오래전 나온 이야기입니다. 서울에서 의정부까지 미군 흑인 병사 두 사람이 택시를 탔습니다. 한참을 가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섰는데 옆 차선에도 택시가 서 있었습니다. 잠깐의 틈이지만 서로 아는 기사라 이야기를 나눕니다.

손님 몇 명이나 태웠어? , 연탄 두 장. 흑인을 두고 기사들끼리 종종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의정부까지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린 흑인 병사 두 사람이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기사가 미터기를 보면서 만원이라 했습니다.

그러자 흑인 병사는 4백 원만 내밀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손님 만원이라니까요. 그때 흑인 병사가 말합니다. 연탄 두 장 값만 주면 되지 않습니까?

 

03절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자의 자격을 그의 혀로 이웃을 허물하지 않는 자, 곧 이웃을 무너뜨리지 않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말하기 전에 내 말이 경우에 합당한 말인지를 생각하십시오. 혹 내 말이 이웃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03:08).

 

 

3. 경건한 사람을 존대하는 자입니다.

 

0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망령된(מָאַס 마아스) 자를 멸시하며. 하나님에 의해 거절당한 자가 망령된 자입니다. 악한 자의 소행을 본받지 않는 자가 경건한 사람입니다.

망령된 자가 누구입니까? 악을 전문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망령된 자란 하나님을 떠난 자로서 그 사람은 헛된 수고로 끝납니다.

 

헛된 자를 비유라는 새가 팔레스타인에 있습니다. 바로 자고새입니다. 자고새는 꿩과에 속하며 메추라기와 비슷합니다.

이 새의 특징은 남의 알을 자기 알처럼 품어서 부화시킵니다. 20여 일간 먹고 마시지도 않고 정성으로 알을 부화시킵니다. 새끼가 알에서 깬 후에도 정성으로 돌봅니다.

 

포식자로부터 보호하면서 먹이를 열심히 물어다 줍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자라면서 자기 어미가 아닌 줄 알고서는 매정하게 그 품을 떠나버립니다.

그야말로 헛수고입니다. 이 새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망령된 자, 헛된 자의 길을 가는 자의 비유로 인용하였습니다.

 

렘 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כָּבֵד 카바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01:07). 다윗은 03절을 통해 자기의 고백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죄인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하여 악한 무리를 멀리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밤마다 몸부림을 쳤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근본이 죄인이지만 죄를 피해 다니는 죄인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죄를 피해 다니는 죄인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을 저가만의 생각으로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귀하게 보시면 어쩌시렵니까?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10년이나 집요하게 추격하였던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일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이 도망자 신세로 엔게디 광야에 있을 때입니다. 사울이 특공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잡으려고 들이닥쳤습니다.

그때 다윗은 천연 동굴 깊숙한 곳에 숨었는데 마침, 사울이 혼자 그 동굴로 용변을 보러 들어 왔습니다. 안에서는 사울을 볼 수 있지만, 사울은 안을 볼 수 없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말합니다. 장군님, 선지자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드디어 장군님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그날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수를 제거할 기회를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뒤에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살짝 베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일조차 마음에 찔려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삼상 24:01~06).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운 종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금하시는 일이다.

 

다윗이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내 기준에 드느냐 안 드느냐를 떠나 마땅히 존대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후에 다윗이 십 광야에 숨어있을 때 또 사울이 삼천 명 특공대를 이끌고 잡으러 왔습니다. 이내 밤이 되자 진을 치고 군사령관 아브넬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 아비새가 명을 받고 그곳에 잠입하여 사울을 죽일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때도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6:0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에 가필드라는(Garfield 1831.11.19.~1881.9.19.)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매우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가필드가 나이가 많아서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책을 사주지 못함으로 친구 책을 빌려 학교에 다니는 불우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 선원 생활도 하고 농장에 들어가서 머슴으로도 일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놓고 성경 한 권을 주면서 너는 꿈을 꾸어야 한다. 요셉처럼 이 땅에 존귀한 자가 될 것이다. 주일 되면 꼭 성전에서 말씀을 듣고 꿈을 가져라.

가필드는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늘 성전을 사모하며 예배 때마다 하나님, 저를 요셉처럼 꿈꾸는 사람이 되고 그런 존귀한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대학을 공부하고 점점 잘 되어 상원 의원이 되었고 나중에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가필드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무척 어렵게 지냈지만, 성전에서 꿈을 꾸며 장래를 하나님께 맡김으로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꿈을 꾸는 곳입니다.

 

다윗은 주의 장막, 주의 성소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특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입니까? 라며 자문자답하는 시편 15편은 하나님의 성소와 그 터전인 성산에 관한 특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작은 일만 생겨도 국사를 멈추고 성소에 들어가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는 일을 즐거워하였습니다(삼하 07:18, 28:02).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이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