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뒤에서 조용하게 일하는 실라(행 15:22~4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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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하늘을 나는 철새 무리의 여행을 종종 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낭만이 깃든 모습이지만 철새에게는 목숨을 건 여행입니다. 많은 새가 목적지에 가기 전에 죽습니다. 이런 여행을 멀리하는 새가 기러기입니다

그런데 기러기는 강한 새가 아니고 날개도 약합니다. 대신 그들은 언제나 V자 형태로 날아갑니다. 선두에서 방향을 잡고 날아가는 새를 중심으로 뒤에 따르는 새는 앞에서 일으키는 상승기류 덕분에 쉽게 날 수 있습니다

혼자 날아갈 때보다 무려 71%나 더 날 수 있습니다. 선두를 차고 나가는 새가 힘이 들면 두 번째 새가 교대해 주는데 혹 병든 새가 있으면 치료한 후에 같이 떠납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더 좋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회에는 여러 형태의 경기가 있고 목표는 우승입니다. 우승을 위해 목숨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성도는 단독 우승보다 공동우승 정신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 원리는 단독 우승을 위해 혼자 열심히 뛰는 것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우승 같은 생활이 더 가치 있음을 안내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의 삶을 보면 혼자 앞서가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더불어 살고 함께 일하는 것을 지향하였습니다. 1, 2,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팀을 이루어 일하였습니다. 때로는 바울 자신은 안 나타날지라도 동역자로 참여한 사람 높여주는 일을 좋아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곁에서 함께 수고하는 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실라(Σίλας 13)라는 인물로서 사도들의 동역자로 봉사한 신실한 형제입니다. 바울 서신에서는 로마식 이름인 실루아노로 4회 나옵니다.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 동참하여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잘 쓰임 받은 인물입니다. 오늘은 이 실라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말씀의 제목을 뒤에서 조용하게 일하는 실라이렇게 정했습니다.

 

 

 1. 실라는 일찍부터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초대교회 시절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제일 많이 수고한 사람을 찾는다면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위대해서 이런 일을 하였습니까? 물론 바울의 위대한 점도 있지만, 이보다는 바울 곁에서 조용하게 돕는 인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적 자원의 지원으로 기독교의 기초를 세월 수 있었습니다. 앞장을 서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바쳐주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교회 원리는 같이 수고하고 공동우승 정신을 지향합니다.


세계 선교의 센터 역할을 하는 안디옥교회에서 모세의 율법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돌한 일일이 있었습니다. 유대파 신자가 이방인 출신 신자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진리에 어긋납니다.

이런 진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바울과 바나바가 가만히 듣고 있겠습니까? 서로 간에 큰 다툼과 변론이 발생했습니다(15:02).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양보하는 것이 좋고, 양보해서 안 될 것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미 오래전에 구원의 진리에 대해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할례 문제는 이방 선교를 위해 분명하게 정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14:06). 할례가 구원받는 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안디옥교회에 속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 본부에 보내어 자세한 답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이 중대한 일로 예루살렘 공회가 모여 최종 답변을 내어놓았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새 가족들의 목에 두려느냐? 구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다(15:01, 11).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이런 결정을 안디옥교회에 전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교인들이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그중 한 사람이 실라입니다. 예루살렘 공회가 모여 결정한 사항을 문서로 받아 여러 교회에 전하는 사명자입니다.

실라에 대한 인적사항이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형태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실라는 70 제자 출신으로 예루살렘교회에서 나름대로 믿음의 인정을 받았고, 또 사도들과 여러 사람으로부터도 인정받았고, 선지자의 은사를 가진 자입니다.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굳게 하고. 실라가 유다와 더불어 안디옥교회에 와서 성도들의 갈등과 불안전한 신앙을 진정시키고 견고(堅固)하게 하는 일에 공헌하였습니다.

 

 

 2. 실라는 사도 바울의 선교에 동참합니다.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실라가 바울의 2차 선교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보겠습니다.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결정이 있고 난 후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로 다녀온 선교 현장을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바나바가 동의하여 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수행원으로 누구를 데리고 갈 것인지를 의논하는 가운데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바나바의 마음은 조카 마가가 선교지에서 이탈하여 예루살렘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회복의 기회를 주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미 신임 잃은 이상 마가는 안 된다고 막아섭니다. 위험한 선교를 제대로 하려면 준비된 사람이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헤어지는 길 외에 달리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수행원을 데리고 가는 일로 서로 심히 다툰 후에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지로 향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고향 구브로로 갔는데 꼭 화가 난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처럼 보입니다(39). 반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실라와 함께 즐겁게 2 선교를 떠납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바울이 왜 실라를 동역자로 택한 것 같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바울이 안디옥에서 잠깐이지만 실라와 일을 해 보았습니다. 그때 서로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습니다. 선교 사역에는 코드가 잘 맞아야 합니다. 선교 코드가 맞는다는 말은 믿음의 감성과 지성, 열정과 헌신 등에서 조화가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외에 실라에게는 선교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장점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울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선교 무대로 뛰어야 할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실라가 동참한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면 실라가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증거가 성경에 나옵니까? 예 나옵니다.

여러분도 혹 아십니까?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의 한 사람이 바울의 환상 중에 나타나서 청합니다.

 

16:0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 환상을 하나님 뜻으로 알고 바울과 실라가 유럽으로 복음의 무대를 옮겨 빌립보에서 사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치는 여자아이에게 복음 전한 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심한 고문과 매질까지 당하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한밤중쯤 되어 정신을 차리고는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자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이런 상황 끝에 바울이 자기와 실라의 신분을 밝힙니다.

 

16: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로마 사람인 우리를, 이 말은 실라도 로마 시민권자라는 뜻입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자라면 상당한 편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실라의 이런 장점이 바울 선교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복음 사역에는 장점이 있으면 있는 만큼 그 특성대로 쓰임 받습니다. 실라도 선지자라 하였으니(15:32) 교회에서나 사도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3. 실라는 여러 선교 사역에 동참합니다.

 

벧전 0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실라는 고린도후서(고후 01:19), 데살로니가전서(01:01), 데살로니가후서(01:01)에서 바울의 선교 사역에 계속 등장합니다. 베뢰아에서 일하다 핍박으로 바울이 먼저 떠났을 때 디모데와 같이 남아 위험을 무릎 쓰고 약한 성도를 다독거린 때가 있습니다(17:14). 또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나 함께 고린도 전도를 한 일도(고후 01:19) 있습니다. 실라가 바울을 뒤에서 도우며 종횡무진으로 일한다는 뜻입니다


실라는 바울뿐만 아니라 베드로와도 같이 일한 흔적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비서격으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때쯤 어쩌면 글을 직접 쓸 수 없을 정도로 육신이 약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약함이 시력의 저하인 것 같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육신은 약해져 있지만, 그의 복음의 열정은 베드로전서 후서를 통해 볼 때 아직도 청춘입니다. 대 사도 베드로가 곁에서 수종 드는 실라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보겠습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Σιλουανοῦ ὑμν το πιστοῦ ἀδελφοῦ). 베드로가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에게 실라(실루아노)를 신실한 형제로 소개합니다. 신실한. 이 말은 신령한 부분을 진행하는 일에 잘 맞추는 일꾼이란 뜻입니다.

즉 실라가  복음 사역에 손색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라는 각오로 충성하는 일꾼입니다. 실라에 대해 정관사 το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전서를 받는 수신자들이 실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문의 뜻은 내가 보내는 이 편지는 신실한 형제 실라가 받아 적었고 또 당신들에게 실라가 전하는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라는 문장입니다. 베드로와 실라의 관계가 얼마나 서로 믿음으로 신뢰를 주고받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베드로가 실라에게 베드로전서 내용을 불러주고 실라는 불러주는 대로 대필하였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왜 대필을 합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전서를 쓰는 베드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 사도입니다. 눈이 어둡고 손도 떨려 글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만난 신실한 형제 실라를 통해 대필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 대필자 더디오가 바울이 불러주는 대로 기록한 것처럼 말입니다.

 

16: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신약시대를 이끈 대 사도 바울의 뒤에서 또 베드로의 뒤에서 주인공이 아닌 돕는 자의 위치를 잘 지켰던 실라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실라(Σίλας), 생각, 말씀을 사모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이 길이길이 역사에 빛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많이 생각하며 말씀을 깊이 사모한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실라는 주님 나라를 위해 받은 은사대로 잘 쓰임 받았습니다. 선교사로서 쓰임 받았고 선지자로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이 실라야말로 신약성경 저자들을 도운 최고의 일꾼이었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실라를 바울의 선교에 왜 동참하게 하셨는지, 후에는 왜 베드로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실라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하게 된 이유는 바울 선교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선교하다 보니 유대인과 사이에 자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문제를 수습하고 완충 역할을 하는 일에 실라가 제격입니다. 실라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며, 사도들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며, 선지자 은사를 받은 사람이며, 로마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사역하던 실라의 동선이 행 18:05 고린도 사역에서 멈춥니다. 곧 바울이 안디옥교회로 돌아갔다가 곧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합니다(18:23). 이때 실라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때 갑바도기아에서 사역하는 베드로의 선교팀에 합류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베드로가 로마에서 베드로전서를 쓸 무렵 실라가 마가와 함께 베드로 곁에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학문의 측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를 기록하기 위해 구술할 때 갈릴리 사투리에다 아람어 히브리어를 반반 섞어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실라를 보십시오. 지성의 은사를 가진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로마 시민권자이며 예루살렘 초대교회 시절 한 지역 공동체를 이끌던 수준 높은 리더입니다(15:22). 베드로가 가지고 있지 못한 지성을 가진 일꾼입니다.

베드로의 구술을 실라가 아주 미려한 문장으로 기록한 이상 그의 문학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업적입니다. 만일 실라의 봉사가 없었다면 베드로전서가 상당한 문학 수준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 사역은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또 뒤에서 소리 없이 돕는 손길도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바로 그런 실라와 같은 믿음의 일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