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온 유다 자손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돌아올 때는 부푼 꿈을 안고 왔는데 현실은 극도의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들을 낳고 그 어머니가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대상 04:09).
어머니가 아들 이름을 지어 준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혹 죽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름 뜻은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부모는 웬만하면 좋은 의미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런데 얼마나 힘들고 슬펐으면 난산의 고통을 비유하는 야베스라 지었겠습니까? 야베스는 이름처럼 슬픈 인생으로 태어났으나 기도로 모든 불행의 요소를 극복하여 나중에는 복된 인생, 그 이름이 빛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야곱이 밧단 아람의 20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브엘세바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와는 직접 상관은 없지만 슬픈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40대 후반 한참 인생 즐거움을 누릴 나이에 죽음을 맞습니다. 아들을 낳다 난산으로 인한 죽음입니다.
현대에도 출산하다 죽는 경우가 있는 데 그 옛날 의학의 혜택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출산하다 죽는 일이야 흔한 일입니다. 순산이라 해도 상당한 고통입니다. 난산으로 인해 한 사람은 죽지만 그 출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신령한 차원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이렇게 정했습니다.
1. 라헬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고 죽습니다. |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사람은 평생을 지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납니다. 그 일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면 좋겠지만 슬픔과 고난과 질병이라면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사람은 자기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알기만 한다면야 대비를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못하는 게 인생입니다.
전 08:0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서원한 일을 지켰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오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자손이 번성하는 복과 얍복 강변에서 받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불러주는 복과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오게 될 복을 확인했습니다(09~11). 야곱은 이제 모든 문제가 풀렸으니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발걸음도 평안하고 마음의 근심 걱정도 지워버린 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아버지가 거하는 헤브론으로 가는 일정에서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일을 만납니다. 16절을 보면 벧엘에서 출발하여 에브랏 가까이 약 11km 정도 왔을 때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해산을 하다 죽음을 만나는 일입니다.
여기서 에브랏에 대해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에브랏이란 약간 넓은 지역의 지명이고 이 에브랏 안에 이름 있는 지역 베들레헴과 기럇여아림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에브랏(에브라다)을 베들레헴이라고도 부릅니다(19, 48:07).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고 이별이란 아픔과 슬픔이 따릅니다만 왜 하필이면 이 일이 하나님의 집을 뜻하는 벧엘에서 출발하자마자 일어났느냐? 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족장 야곱의 아내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다 산고로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야곱에게는 이제 지난날의 큰 문제들이 잘 수습되어 한숨 돌릴 만하니 이런 가슴 아픈 일을 만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라헬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야곱이 고향 브엘세바를 등지고 밧단 아람 외가에 가서 14년 머슴살이를 하여 얻은 아내입니다.
라헬(רחל). 이름 뜻은 암양이란 의미로서 이 라헬에 대해 성경은 곱고 아리땁다고 전합니다(창 29:17). 직역하면 우아하고 외모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외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성품 전체가 총명하다는 암시를 줍니다.
이 라헬이 요셉 다음 두 번째 아들을 낳다 죽음을 맞습니다. 출산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맞습니까? 야곱 가문의 산파가 두려워하지 말라 또 아들이다. 하고 축하하자 라헬이 혼(נֶפֶשׁ 네페쉬 생명)이 떠나는 순간 마지막 말을 합니다.
베노니(בֶּן־אוֹנִי). 슬픔의 아들이란 의미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출산한 후 그토록 다시 아들 갖기를 갈망했는데(창 30:04)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니 이런 애달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야말로 베노니는 한 맺히는 이름입니다,
일찍 죽는 사람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어린 자식을 두고 죽는 일입니다. 라헬로서는 이제 행복을 좀 누릴 만한 환경에 이르자 베노니라는 말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동시에 야곱에게는 가슴에 영원히 한 맺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에게도 문제는 계속 찾아오고, 긴장과 스트레스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문제와 스트레스가 있는 삶이 복이 되는 삶입니다.
2. 야곱은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꿉니다. |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한 야곱의 심정이 짐작됩니다. 그러나 젊은 아내를 먼저 보내면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 야곱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라헬이 임종하면서 베노니 하자 야곱이 즉각 그 말을 되받아 베냐민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 얼마나 긍정의 사고입니까? 베냐민(בִּניָמִין Benjamin). 오른손의 아들이란 의미입니다. 기쁨의 아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베냐민이란 극한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야곱의 의지가 담긴 이름입니다.
야곱이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어 부르는 이 현장에서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만약 베노니라고 계속 부르면 그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슬픈 인생 속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름 따라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름 짓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름 따라 그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을 보십시오. 그 의미가 다 있습니다. 간혹 그 이름을 극복한 특별한 경우 몇 곳을 제하면 모두가 그 이름대로 됐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는 날 동안 긍정의 말을 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나는 슬프다 불행하다. 라고 하면 어느새 불행한 일이 나를 휘감습니다. 반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면 어느새 행복한 삶이 나를 휘감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베노니의 상황이 자주 일어납니다.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세상에 사는 동안은 슬픔의 현장이 떠나지 않는 줄로 여기면 오히려 마음 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줄을 믿는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베노니의 환경을 베냐민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긍정의 자세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김삼일 가족 여러분, 베노니의 상황을 베냐민으로 만들어 삽시다. 세상 그 누가 우리에게 베노니의 길을 베냐민으로 꽃가마 태워 주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자리 잡은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슬픔과 불행의 베노니를 기쁨의 베냐민으로 만들어 사는 복의 DNA가 있습니다. 믿으면 아멘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막 09:23).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복입니다. 할렐루야.
빌 0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복된 주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 예배에 참석하기까지 어떤 말을 나누며 오셨습니까? 아침부터 얼굴을 붉히면서 상스러운 말을 하지는 않으셨죠? 우리 김삼일 가족끼리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덕담을 나누어 봅시다.
그러면 마음도 편하고 남은 말씀을 받는 데도 더욱 은혜가 될 것입니다. 옆의 분과 이렇게 인사합시다. 귀하신 분과 함께 예배드리니 좋습니다. 제가 당신의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겠습니다. 아멘. 이제부터 여러분의 슬픔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멀리 달아나기를 축원합니다(신 28:07).
3. 우리 모두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꿉시다. |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베냐민을 얻으므로 열두 아들이 채워졌습니다. 이들로 이스라엘의 완성 된 복을 상징하는 열두 지파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야곱이 베노니의 이름을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 이름으로 고침은 어머니 없는 세상을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베노니의 환경에서 베냐민의 환경으로 바꾸는 적극 사고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았는데 왜 죄 없는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기는가? 라는 믿음 없는 의혹이나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투덜대는 입이 없다는 것 잘 알지요? 김삼일 성도 여러분의 입은 어떤 입입니까? 복을 들어오게 하는 입입니까? 아니면 화를 불러일으키는 입입니까? 우리가 불평하는 시간만큼 기도하면 불평할 일이 없을 것이며, 험담하는 시간만큼 덕담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욱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잠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영의 사람이 하는 말과 육의 사람이 하는 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 믿음의 위력이 나타납니다. 없던 믿음도 생기고, 약한 믿음도 강하여집니다. 신앙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이상과 태도 그리고 신앙 인격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평생을 교회에 다니면서도 의심을 품고 늘 부정의 말만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생산하는 불행공장장이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세상에 속한 불신앙 요소와 부정의 말을 멀리 던져 버리십시오. 십자가에 못을 박으십시오. 이 후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마십시오. 버린 것을 찾아오면 불행공장장 직위를 계:속 유지하게 됩니다. 믿음의 축복권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말과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십시오. 문제가 일어난다고 너무 고통스러워 마십시오. 평안과 기쁨이 함께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에고치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집을 짓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의 인생의 집을 짓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믿음의 말을 하며 살고 마땅히 들어야 할 믿음의 말을 듣고 산다면 그것이 진정 복 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다이돌핀(Didorphin) 되는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반대로 나를 병들게 하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말을 듣는 것은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야곱이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어 불렀던 것처럼 상황에 꼭 맞는 말이란 뜻입니다. 또 상황에 맞는 말을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로 비유한 것은 일상에서 구사되는 언어의 가치를 더욱 높이라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경 말씀을 따라 신실한 언어생활을 함으로써 삶의 가치관과 삶의 행동을 더욱 향상하는 기회를 만들기 바랍니다. 저에게 자녀를 낳고 좋은 이름을 지어 달라고 요청해서 지어간 분들 몇 있습니다. 좋은 이름은 지어주었건만 이름처럼 자녀를 믿음으로 교육하지 않고 부모도 그 이름처럼 살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왜 좋은 이름을 지으려 합니까? 덕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무심코 들은 비난의 말 한마디가 잠 못 이루게 하고 정 담아 들려주는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합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긍정의 말, 상황에 맞는 말을 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야곱은 라헬이 죽자 베들레헴 길에서 장례를 치르고 묘비를 세워주었습니다(19, 20). 원래 라헬이 묻힐 가문의 장지는 헤브론 막벨라 굴입니다(창 25:10). 그러나 팔레스타인 기후상 너무 더워 시신이 곧 부패함으로 가족의 장지까지 옮길 수 없었습니다.
부득이하여 라헬이 죽은 인근 베들레헴 길에 안장하고 묘비(墓碑)를 세웠습니다. 이 묘비는 창세기가 쓰일 당시인 모세 때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컬어졌습니다. 라헬의 묘 위치는 사무엘 때까지 알려져 있었으나(삼상 10:02) 지금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라헬의 무덤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작은 무덤이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심기일전하여 다시 길을 떠납니다. 상처가 되는 일, 슬픈 일을 만나도 그 상처와 슬픔을 잘 묻고 믿음으로 출발하면 성숙해지는 믿음 속에서 복된 미래가 열립니다. 은혜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침착해야 합니다. 시련이 다가올지라도 너무 편한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말 주고받으며 사십시오. 진실한 말 한마디가 불신의 어둠을 거두어 가고 위로의 말 한마디가 상한 마음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야곱이 아버지 나이 168세에 돌아왔습니다. 77세에 부모님과 고향 집을 떠났다가 31년 만에 돌아온 셈입니다. 이때 야곱은 아내 셋, 아들 열둘, 딸 하나 그리고 대 가축을 몰고 왔습니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야곱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창 28:21). 이후 이삭은 야곱과 더불어 12년을 더 살아가 1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에서는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을 잘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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