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사사 가운데 기록된 분량으로 보면 한 절만 기록된 삼갈(03:31), 두 절이 기록된 돌라(10:01, 02), 세 절이 기록된 야일(10:03~05)이 있습니다.
이들 행적이 지나가듯이 기록된 것은 이런 사사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행적이 너무 적다 보니 인물 동향을 살피는 데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성경 기자가 왜 이렇게 행적을 적게 남겼습니까? 전혀 활동을 안 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사사인 이상 성경에 기록이 안 나와 있을 뿐이지 나름 국가를 위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 기록 원리상 구속사와 관계없는 일은 기록을 안 했을 뿐입니다.
오늘 김삼일 가족과 함께 살펴볼 인물은 7대 사사 야일입니다. 이 사람의 행적이 세 절로 되어있다고 해서 과소평가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열두 사사 목록에 들어있는 자체로도 대단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저자가 이 야일에 대하여 사사의 호칭을 붙였습니다. 22년 동안 자기 지파를 위해 일을 한 행적을 전하려는 신령한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믿음의 가족과 함께 야일에 대한 행적과 함께 신령한 영적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야일은 하봇야일의 복을 회복했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야일은 행정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
0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우리가 사사를 논하자면 어떤 사람이 사사입니까? 외세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의 어떤 지파가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아서 침략자들을 물리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제6대 사사 돌라는 외세의 침략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비멜렉이 정치를 잘못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등장해서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이 돌라를 전쟁 사사와 비교하여 행정 사사라 합니다.
사사시대 특징을 요약하면 이스라엘에 군주 제도가 들어서기 전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습니다(삿 21:25). 강력한 중앙집권의 힘을 가진 왕이 없으니 지파 별로 판단해서 행동화하였습니다. 따라서 지파 간에 가끔 혼란이 왔습니다.
이런 혼란을 수습해 주는 행정 사사 돌라에 이어 야일도 행정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사의 본 기능이 문제를 수습해 주는 재판관입니다. 야일은 이런 면에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국가에 정변이 일어날 때는 두 가지 형태입니다.
외부의 국가가 침략해서 치르는 전쟁과 같은 민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란입니다. 밖의 전쟁도 이겨야 하지만 내부의 전쟁을 수습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03절을 보면 야일이 다스린 햇수가 22년입니다. 야일은 전쟁을 치르지 않은 행정 사사로 사역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야일을 사사로 부르실 만한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까? 야일 나름대로 하나님의 눈에 든 장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야일(יָאִ֖יר )이라는 이름에서 사사로 부름을 받은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야일의 뜻은 하나님께서 교정(矯正)하신다, 그를 빛나게 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인명과 지명은 반드시 그 의미가 있습니다. 결과로 보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야일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고쳐 쓰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으면 하나님의 교정을 받아야 합니다. 고침을 받는 모습이 쓰임 받는 통로입니다.
야일이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려 하실 때 순종과 불순종 두 가지를 놓고 어느 쪽이든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에 야일은 자기 허물을 고치는 쪽을 선택하였습니다.
무려 22년 동안 사사와 재판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22년의 재판관 생활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재판관은 능력과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상황판단과 결정력이 예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잠 02:0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0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야일이 가진 지혜 가운데 특별한 지혜가 하나 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는 데 마음을 두지 않은 지혜입니다. 사람은 지도자라는 모자를 쓰면 뭔가 외형으로 드러나는 업적을 이루려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무리가 옵니다.
만일 외형으로 사람 눈에 안 나타나면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초조함이 옵니다. 결국 무리한 일을 벌입니다.
결과는 국가 재정이 파탄 나기 쉽습니다. 국민은 세금을 무겁게 내야 하고 그 사업은 부실해지기 쉽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정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야일은 22년이나 재판관 일하였음에도 그런 외형의 일을 벌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은 하면서도 사람 중심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 야일은 변두리 출신임에도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
0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지난주 살펴본 01절 말씀을 보면 돌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행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돌라와 야일, 이 두 사람 다 따져 보았자 소사사 그룹에 속합니다. 특별한 행적이 없습니다. 야일이 어떤 특징을 남긴 사사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행정 사사로 일한 야일의 22년간 행적이 한 편의 설교를 만드는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 야일에 대한 설교 준비하다 세 번이나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길르앗 사람 야일. 이 부분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길르앗은 지명(창 31:21)과 인명(민 26:29)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 지역 므낫세 반 지파에 분배된 땅입니다(수 13:08~17). 므낫세의 아들 마길 가문에서 한 가문을 형성한 사람입니다(민 26:29). 제4대 사사 드보라가 가나안 왕 야빈을 물리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른 일이 있습니다.
이때 드보라가 각 지파를 칭찬하면서 특별히 므낫세 반 지파 출신 길르앗을 다른 지파와 동등한 격으로 비교하였습니다(삿 05:l7, 호 06:08).
그만큼 므낫세의 손자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서 한 지파의 지위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자로 부상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말할 때 조금 궁금한 지파가 있지 않습니까? 므낫세 반 지파 말입니다. 므낫세 반 지파가 어떤 의미인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 요단강 동편 지역(Trans-Jordan)에 거주하고 있을 때 모세로부터 먼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수 12:06, 민 32:33).
이때 므낫세 지파 가운데 절반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처럼 함께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절반이 받았다고 해서 므낫세 반(半)지 파라고 부릅니다.
이후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에 들어가서 약 7년간 정복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후 아홉 지파와 므낫세의 남은 절반이 제비뽑기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눌 때 분배 역할을 한 담당자가 누구입니까? 모세가 생전에 지정해 둔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각 지파 족장입니다(민 34:16~18).
수 14:0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제비를 뽑은 순서는 ➀유다 지파, ②에브라임 지파, ③므낫세 반(半)지퍼 ④베냐민 지파, ⑤시므온 지파, ⑥스불론 지파, ⑦잇사갈 지파, ⑧아셀 지파, ⑨납달리 지파, ⑩단 지파 순입니다.
성경에서는 요단강 서편 지역 전 지파를 표현할 때 아홉 지파 반쪽이라 합니다. 요단강 동편 지역은 두 지파 반이라 부릅니다(민 34:13, 15).
야일은 요단강 동편 반쪽짜리 지파 출신입니다. 활동반경도 가나안 본 지역과 비교할 때 소외된 변두리입니다. 타 지파와 비교하면 약한 세력입니다.
그런데도 선조의 가문 길르앗을 옛 명성처럼 다른 지파와 동격인 위치에 굳건히 올려놓았습니다. 또 사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야일은 변두리 출신임에도 믿음으로 도전하여 길르앗이란 가문을 옛날처럼 크게 빛냈습니다. 열두 사사의 목록에 자기의 이름도 올리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3. 야일은 하봇야일의 복을 세웠습니다. |
0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야일의 아들 삼십 명이 각각 어린 나귀를 타며 성읍을 하나씩 차지하여 살았다는 기록을 봅시다. 학자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첫째 부분은 야일이 사사의 위치에서 아들을 믿음과는 동떨어진 세속의 사람으로 키웠다는 평가입니다. 그 증거로 아들 삼십 명이 각각 어린 나귀를 타고 성읍을 하나씩 차지한 일을 내세웁니다. 세속주의자, 물질주의자라는 뜻입니다.
둘째 부분은 야일이나 그 아들들의 모습, 악하거나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의 모습이 한 부분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관점으로 평가합니다.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 야일과 그 아들들 모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불신앙의 사람이 되기도 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부귀영화를 누린 사사입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사사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아들 서른 명, 나귀 삼십 요즘으로 말하면 각 아들이 고급 자동차를 타면서 큰 기업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이 부분에 무게를 두면 될 것 같습니다. 옛날 모세 시절 열두 지파에 참여한 므낫세 지파의 가문 마길에게(창 50:23)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야일입니다. 이 야일이 길르앗의 여러 촌락을 점령한 후 성읍 전체를 하봇야일이라고(민 32:41, 신 03:14) 불렀습니다.
야일의 동네라는 뜻입니다. 대단한 가업을 이룬 증거입니다. 그런데 몇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므낫세 지파 가문에 한 유력한 사람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사람 이름도 야일입니다. 부모가 아들 이름을 야일이라고 지어 준 기대대로 크게 되었습니다.
야일은 부모의 바람대로 크게 확장되자 영역 전부를 하봇야일이라 칭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경을 크게 넓히고는 하봇야일이라 칭하였습니다.
옛날 사람 야일과 훗날 사람 야일은 같은 지파에다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입니다. 요단 동편 길르앗을 활동무대로 삼고 성읍을 확장하여 하봇야일이라 하였습니다.
만약 야일이 하나님을 떠나 악으로 기울어진 삶을 택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많은 재산이 불의의 제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일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길을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마다 이름처럼 자기의 허물을 고쳤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이름을 빛냈습니다.
야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그 복을 믿음으로 관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일뿐만 아니라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는 자, 교회의 확장을 위하여 근심하는 자,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에너지를 쏟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복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그 기준을 정해주셨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면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시 01:01, 02).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2005년 3월 29일 자 연합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북한 자강도 성간군 한 지역에 후회(後悔)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6세의 여자 어린이가 살고 있습니다.
후회의 가족은 모두가 인적이 드물고 험한 성간군 구봉령의 한 도로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문의 김성녀(여) 씨의 외손녀로 원래 이름은 경화입니다.
북한 평양방송은 29일 경화가 후회로 바뀐 사연을 소개하였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8월 현지 시찰을 위해 구봉령을 넘을 때의 일입니다.
평생을 누가 보건 말건 말없이 도로관리 요원으로 일해 온 김성녀 씨와 역시 도로관리 요원으로 일하는 김 씨의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만나서 기념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사진사가 초점을 맞추고 막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김 위원장의 바로 옆에 선 김 씨의 셋째 딸이 품에 안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몸을 자꾸 흔들었습니다.
깊이 잠든 아기를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사는 이왕이면 김 위원장 제일 가까이 자리를 잡은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했습니다. 활짝 웃을 때 셔터를 누르면 더 좋은 장면이 될 것 같아서 얼른 아기를 깨우라고 눈짓하였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흔들었고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세상만사 태평인 듯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쌔근쌔근 잠만 잤습니다. 울상이 된 엄마가 아기 볼을 건드려도 손을 휘휘 내젓고는 다시 콜콜 잠만 잤습니다.
아기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 위원장은 잠자는 아이를 깨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이다음에 커서 기념사진을 보면 잠을 잔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결국, 아기는 잠에서 끝내 깨지 못한 채 김 위원장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후 김 씨와 그의 일가족은 이날의 사연을 길이 전하려는 마음에서 아기 이름을 후회로 바꿨다고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김정일을 만났으나 깨지 못한 것 때문에 아이 이름을 후회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은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서든 깨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일이 일하는 22년 동안 평화의 때를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모든 믿음의 계획들이 정지되어 후회할지 모릅니다.
지금 시간이 있을 때 믿음의 설계도대로 일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내 인생이 타임아웃 될지도 모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믿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0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 되었더라.
가몬(בְּקָמֽוֹן׃)은 높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높은 곳이 어디입니까? 그가 늘 사모하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우리도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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