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7년 말씀

불행을 신령한 복으로 전환한 레위지파(민 04:17~2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12. 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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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3대 족장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듭니다. 이 가운데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인 일로 인해 밧단아람으로 피난을 합니다. 그곳에서 20년을 지내는 동안 네 명의 아내로부터 열두 명의 아들과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블론, 라헬에게서 요셉과 베냐민, 빌하에게서 단과 납달리, 실바에게서 갓과 아셀(35:22~26)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조상이 되어 지파간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를 지내오다 요셉으로 인해 애굽에 가서 살게 됩니다. 이후 야곱이 임종직전 열 두 지파를 위하여 차례로 축복기도를 하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시므온지파와 레위지파에 관한 장래의 예언기도를 보면, 축복에 관한 내용은 한 마디도 없고 대신 책망과 저주의 내용만 나옵니다. 아버지로부터 일종의 소외를 받는데 왜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열 두 아들 모두가 다 귀한 아들인데 예언기도의 차별을 합니까? 축복의 차별을 하느냐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보겠습니다.

 

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 예언기도는 단순히 야곱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의 각기 행적을 토대로 그들이 향후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명에 맞게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먼 훗날 광야시절 레위지파는 야곱 때의 예언기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완전히 달라진 삶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불행을 신령한 복으로 전환한 레위지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레위는 잔인한 일을 함으로 축복에서 제외되었습니다.

 

49:0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묶여 예언기도를 받았습니다. 장래를 위한 예언기도의 내용을 보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축복에 관한 내용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완전 저주의 기도입니다(05~07). 야곱이 사랑스런 아들을 위하여 왜 이런 불행한 예언기도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이유가 창 49:06절에 나옵니다


0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 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 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시므온과 레위가 어떤 일을 하였기에 이런 저주의 예언기도를 받게 되었는지 그때의 사건을 다시 조명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20년 생활을 정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중 15세의 딸 디나가 히위족의 미신 축제에 구경을 갔다가 그곳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였습니다(34:01~17). 사춘기의 위험을 조심하지 않고 다닌 결과입니다.

이어 세겜은 디나를 가두어 놓고 아버지 하몰에게 부탁을 하여 디나를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조릅니다. 이에 하몰 왕이 야곱에게 찾아와서 서로 사돈을 맺고, 통혼을 하며 지내자는 제안을 하는데 거기다 세겜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토지까지 무상으로 주겠다는 파격 제안입니다.

 

하몰이 살고 있는 그 땅 면적이 이집트와 아카디아 등의 고대 기록에 나옵니다. 하몰의 지배 아래에 있는 땅은 약 2,500Km2로서 제주도의 1.5배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거기다 성()도 무척 컸다고 하는데 하몰이 왜 이런 파격 제안을 합니까? 야곱이 가진 큰 자본을 유치하여 교역함으로 이익을 얻겠다는 계산입니다.

야곱은 세겜지역을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이었기에 하몰 왕의 제안에 답변을 못하고 그저 들에서 목축을 하는 아들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녁때쯤 되어 열 한 아들이 돌아와서 되어 진 모든 상황을 보고 복수를 위한 계략을 세웁니다.

성스러운 할례를 이용하여 복수하겠다는 계략입니다. 드디어 하몰에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여동생을 줄 수 없으니 할례를 받으라. 그러면 서로 통혼을 하고 우리도 여기서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겠다는 속임수의 제안입니다

 

하몰의 입장에서 아들의 결혼을 위해 할례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세겜지역은 여러 부족들의 연합체였음으로 상당한 정치의 수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하몰 왕은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고 본인부터 할례를 먼저 실행에 옮깁니다.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 할례로 인해 겪는 고통은 오늘날처럼 진통제를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 고통이 능히 짐작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고통이 최고에 이를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몰래 성읍에 잠입하여 하몰 왕을 비롯하여 추장 세겜과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디나를 구출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이어 다른 아들들도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모든 재물을 빼앗고 심지어는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탈취하였습니다. 가지고 갈 수 없는 소는 발목의 힘줄까지 끊었는데 이런 잔인함과 그 여파로 미칠 후환을 두려워 한 야곱이 그때의 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후부터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거룩한 할례를 빙자하여 잔인한 일 벌인 것을 평생 가슴에 한으로 삼고 살다가 임종을 앞두고 다른 아들과는 달리 예언기도에서 축복 부분을 거두었습니다.

 

 

  2. 레위지파는 지도자에게 순종함으로 받지 못한 축복을 회복하였습니다.

 

17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절은 과거에 홀대를 받았던 레위지파가 세월이 후손 가운데 모세와 아론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장면입니다. 레위가 받지 못한 복을 후손들이  회복한 모습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레위지파는 고핫, 므라리, 게르손 3가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3가문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신령한 직분자들입니다. 야곱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레위지파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통해서 아주 멋지게 부활한 모습입니다. 당시 야곱의 저주를 보면 레위지파는 시므온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49:07). 

 

이렇게 저주를 받은 시므온지파와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그대로 성취되어 두 번째 인구 조사에서 그 저주가 증명되었습니다. 시므온지파는 열 두 지파 중에서도 가장 적은 수 22,200명이 되었고(26:12), 레위 지파 역시 독자 기업을 갖지 못하고 전국 각지의 성읍에 흩어져 살았습니다(21:01~40). 그런데 야곱으로부터 심한 저주를 받은 레위지파가 신령한 직분을 감당하는 제사장지파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일절 침묵합니다. 그 이유를 밝히지 않지만 성경해석 원리를 따라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레위지파가 좀 다혈질이다 보니 지도자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적극성입니다. 이 적극성으로 신령한 복을 받은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위지파가 광야생활 할 때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일찍 돌아오지 않자 아론이 백성들의 권유를 받고 귀에 차고 있던 금귀거리를 거두어 송아지 형상을 만든 일을 혹 아실 것입니다. 일명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 형상을 놓고 우상숭배 하는 일을 보고 이들을 칼로 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레위지파만이 명령을 따릅니다.

 

32: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야곱이 아들 레위를 향해 그렇게 무섭도록 저주하였는데도 그 저주를 오히려 레위지파는 복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룬 결과입니다. 레위지파는 그들의 조상이 과거에 큰 잘못을 하였지만 훗날 지도자의 명령에 잘 순종함으로 화를 복으로 만들었고, 받지 못한 축복을 회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이들이 뭉치면 또 혈기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전국 각 지역에 흩어져 살도록 예언하였습니다. 결과론으로 레위지파를 위한 야곱의 흩어짐의 예언기도는 신령한 의미에서 레위지파를 위한 보호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하겠습니까?

 

이는 혈기 많은 레위와 그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역대상 06장을 보면 레위지파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오는데 무려 81절에 걸쳐 나옵니다.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은 레위지파의 위상이 열 두 지파 중에서 그만큼 크게 높아졌다는 증거입니다레위지파는 흩어져 살면서도 열 두 지파에 선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서기만 하면 윗대의 화가 전해지지 않고 오히려 복을 받습니다. 그 예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였던 고라당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으로 더불어 250명 당을 지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 멸망을 당하였습니다(16:01,32,33). 반면 그 후손들은 믿음생활을 잘 함으로 부모의 불순종의 멍에를 쓰지 않고 성전에서 신령한 직분에 잘 쓰임을 받았습니다.

 

 

  3. 레위지파는 회복한 축복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18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하지 말지니.

 

끊어지게 하지 말지니. 멸망을 받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특별히 레위지파의 직계 고핫 자손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 가라고 명합니다. 야곱이 레위에게 내린 저주가 상상할 수 없는 복으로 변하여져 있습니다. 레위지파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일과 성막 기구들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계속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일을 해야 합니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성물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일들을 감당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레위인 중에서 끊어질 수 있습니다. 만일 신령한 직무를 잘못 행하여 지파에서 끊어진다면 이는 불행 중의 불행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고핫 자손들이 성소의 일을 하면서 지성물을 잘못 취급함으로 징계 받는 일이 없도록 사전 교육을 시키라고 하십니다(107). 신령한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여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이미 아론의 네 아들 가운데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시내 광야에 있을 때 제사장의 직분을 잘 못 행하여 불행한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03:0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26:60)


다른 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정한 불 곧 공인되지 않은 불입니다(10:01). 제사장은 오직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로 분향단에 점화하라고 명하셨음에도(16:12,13)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법도가 아닌 자기들 생각으로 분향하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음을 당했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방자하였던 나답과 아비후는 심판을 받고 말았는데 자신들도 여호와 앞에서 끊어졌을 뿐 아니라 자식도 낳지 못함으로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서 번제단의 불만 사용해야 함을 알면서도 왜 이 중대한 법도를 어겼습니까? 분명히 죄인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음에 이르는 죄를 지은 것은 이날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합니다.

이 사건 이후 독주 금지 규례(10:09)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Matthew Henry, Harrison). 반면 아론의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여 계속 제사장 혈통을 이어갔고, 엘르아살은 아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습니다(20:25-28).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제사장이요(벧전 02:09),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신령한 일을 감당하는 직분자들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기 때문에 성경을 나침반으로 삼고 말씀의 지도를 따라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많은 약점이 있고, 어려운 상황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더 아름답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시대는 제사를 통해서 허물을 덮었고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덮어주십니다. 내가 받은 직분, 맡아서 감당하는 직분을 잘 관리하여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관리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아침 눈을 떴다는 사실이 감사거리입니다. 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와서 신령한 예배를 드림이 복입니다. 신령한 직분으로 하나님 앞에서 일할 수 있음이 복 중의 복입니다.

성도와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함께 믿음을 공유 할 수 있음은 신령한 차원에서 큰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가슴이 너무 작아서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넉넉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가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심령이 메말라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가지고도 걸림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김해삼일교회는 의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성품은 남아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형편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처럼 닮기 위하여 믿음의 몸부림을 치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가족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은혜 생활을 하는 동안 걸림돌 만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묻기보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봉사를 할 것인가를 돌아보십시오. 불행을 신령한 복으로 전환한 레위지파처럼 우리 앞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 또한 신령한 복으로 전환 할 수 있는 믿음의 일꾼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