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7년 말씀

(추수감사주일)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시 103:01~0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11. 18.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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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원하는 대로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복의 실상이 아닌 허상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따르다보니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막의 신기루 현상처럼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소유나 성공에 행복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출세를 했는데도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분명히 소유나 성공에 행복이 있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행복은 그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감사하는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감사의 생활이 뒷받침 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됩니다. 소유가 많고 지위가 높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감사하는 가운데 행복이 따라 오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씨앗입니다. 산과 들에 씨앗을 심으면 거기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감사하는 곳에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힙니다.

지금 내게 고통이 있을지라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 일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마음이 무겁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믿음생활은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감사가 넘치게 하십시오. 옆에 있는 분과 인사를 나눕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 이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0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중 하나인 103편은 다윗이 쓴 시로서 감사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문구가 3번 나옵니다. 103편 전체에는 7번 나오는데 이렇게 반복해서 송축하라는 것은 감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왕은 어떤 환경과 형편에 놓였어도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고 세밀한 돌보심을 늘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의 모든 은택을. 은택(恩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사랑과 호의(51:18; 103:02; 19:12)로서 03~05절에 나열되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죄악을 사해 주시며, 병을 고쳐주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건져주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모습입니다.


잊지(תִּ֝שְׁכְּחִ֗י 솨카흐)말지어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에서 빠져 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 곧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119:16).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를 경고하는 구절입니다.


유사한 경고를 담고 있는 구절로서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04:09)는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 왕 자신과 유다 왕국에 임했던 역사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대하 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과 생각과 뜻 모두를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감사는 할수록 샘물처럼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데서 모든 게 나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영어로 think(생각하다)thank(감사하다)의 어원이 같고, gratitude(감사)라는 단어와 grace(은혜)라는 단어의 어원이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에게 당부를 합니다.

 

08: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다짐하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놓침으로 은혜를 망각하게 되었습습니다. 결국은 우상 숭배의 길로 나아가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역시 감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왜 감사를 잘 하지 않습니까? 감사할 조건부터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조건을 찾으면 감사할 수 없고, 조건을 따지면 사계절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계절 불평이란 시시때때로 하는 불평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불평하는데 가뭄과 더위가 계속되면 타 죽겠다고 불평, 장마철이 되면 길이 질펀하다고 불평, 여름에는 더워 죽겠다고 불평, 겨울에는 추워 죽겠다고 불평, 가을에는 어떤 불평합니까? 쓸쓸해 죽겠다는 불평입니다.

 

 

  2. 다윗은 죄 사함을 가장 큰 감사로 여깁니다.

 

0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장 큰 제목을 죄 사함으로 설정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선순위가 바로 이 죄 사함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땅 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죄악에 대한 용서받음이 가장 큰 은총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 귀한 일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의 감동과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은총에 관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사람은 모두가 원죄와 자범죄를 안고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죄 가운데서 태어나 죄와 더불어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으며(03:10),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로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하여 구원하시려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명한 교부(敎父)인 어거스틴(Augustine; A. D. 354-430)은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우리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하나님의 은총이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죄를 알고 반드시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죄는 모든 불행의 원인으로 죄로 인해 고통이 오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어떤 죄든지 간에 사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용서 받았으니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짓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사는 날만큼 죄는 더해가며, 마음으로 살인하고, 마음으로 간음하고, 마음으로 도적질하고,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는 등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윗도 한 때는 왕의 힘을 이용하여 남의 아내를 가로 채었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죄 사함의 은혜야말로 하나님의 은택 가운데 가장 큰 은혜요 감사 제목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도 죄를 짓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살면 살수록 죄가 누적되어 갑니다. 그러나 영의 감각이 무디어지면 자신의 죄가 누적되어 가는 것을 모릅니다. 자신을 깨끗하고 허물이 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사람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에 갇혀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죄인의 심정, 근신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죄로 말미암는 형벌도 면제받았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도 회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죄로 말미암는 불행한 현실에 직면을 합니다.

교회를 출입한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죄를 용서 받는 것은 세상의 불행한 삶에서 천국의 삶으로 전환하는 최고의 복된 길입니다.

 

55:0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3. 나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0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죄 사함이야말로 감사의 최고 제목 아닙니까? 동시에 파멸에서 속량을 해 주시는 은혜도 감사의 최고 제목입니다. 파멸(破滅)은 사망입니다. 사람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감싸주시니 감사 중의 감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은혜가 주어지니 이제부터 더욱 감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생활 자체가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감격이 사무쳐 있고, 매일 매일의 생활이 감사로 나타납니다. 그 감사의 조건들은 환경의 요소가 아닙니다. 자신의 처한 환경이나, 건강이나, 가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성공 같은 것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보십시오. 세상의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감사와 불평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양쪽 다 하면 할수록 불어나는 일입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불평의 일들이 불어나고,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를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넘치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표현하여야 합니다. 감사를 하되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닌 믿음의 풍성한 예물로 감사를 표현하여야 합니다.


이런 감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감사할 일에는 감사를 하되, 불평할 일도 어김없이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감사이어야지 세상의 조건에 감사를 맞추면 진정한 믿음의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번에 일이 성공하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일의 결과를 보고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진정한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믿음의 눈으로 감사의 조건을 찾읍시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05:18)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들이 아주 많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은혜의 불감증에서 헤어 나오기만 하면 감사의 조건들이 눈앞에 쌓여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행여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 보다 불평 거리가 더 많습니까?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서 이탈된 결과라고 생각하십시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오늘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내 마음을 왜 부담스럽게 하는가? 라는 마음을 품지 마시고, 감사의 생활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너졌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입술에서 감사 대신 불평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가 사라졌을 때 내가 무너졌구나. 라고 여기십시오.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불평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비관을 하며, 자기 파괴를 일삼는 사람은 부정의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돌아보면서 정성과 기쁨 그리고 최상의 것으로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의 예물이 됩니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훈련에 의해서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M. Curie 1867.11.7~1934.7.4)는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와 필사의 노력 끝에 라듐을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는 그들의 놀라운 발견에 찬사를 보냈으며 이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때 퀴리 부부는 결정하기 힘든 문제로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돈을 벌기 원하면 단번에 큰 재벌이 될 수 있는 조건 때문입니다.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능 물질 라듐을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라듐의 값은 1gram15만 달러로서 특허를 내서 돈을 벌 것인가? 그냥 공개를 해서 세상에 보급할 것인가로 며칠간 고민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찾은 것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류의 소유가 되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방사능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소유가 많고 적음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따라 하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것뿐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것뿐입니다. 믿음의 눈이 감사를 낳습니다. 믿음의 눈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합니다.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 불평할 일이 가득 차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불평하지 않도록 저에게 복된 입술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