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7년 말씀

나는 어떤 근심을 하며 삽니까?(고후 07:08~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12. 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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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한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막신장사와 짚신장사 하는 아들을 둔 나이 많은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노모(老母)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날이 들어 햇빛이 쨍하면 오늘은 큰 아들의 장사가 안 되겠구나 하고 걱정하고, 또 비가 오는 날은 오늘은 작은 아들이 짚신 한 결례도 못 팔겠구나? 하는 걱정입니다. 이런 걱정으로 살아가는 노모에게 신앙 좋은 한 사람이 걱정 해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해가 뜨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 장사 잘 될 일만 생각하시고, 비가 오면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 장사 잘 될 일만 생각하세요. 그러면 근심 걱정은 사라집니다. 이 말을 들은 노모가 그때부터 마음을 바꾸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자 근심 대신 기쁨이 항상 넘쳤다고 합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긍정의 생각을 가지면 세상 근심에서 해방 될 수 있을 것이나 부정의 생각을 품고 살면 근심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근심과 거룩한 근심입니다. 거룩한 근심이란 오늘 본문 1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말합니다. 오늘 주제는 세상 근심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근심을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는 어떤 근심을 하며 삽니까? 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경 역사에서 보면 신약성경이 27권으로 완성 되었지만 그 외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일명 눈물의 편지, 준엄한 편지라고 합니다. 이 편지의 흔적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데 만일 그 편지가 신약성경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존재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가 아니라 어쩌면 고린도1, 고린도2, 고린도3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준엄한 편지를 믿음의 아들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잠시 충격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설립자 바울이 불신 세계에서도 없는 윤리 문제, 아버지의 아내를 아들이 취했다는 말을 듣고 그 일을 속히 정리하라고 명했기 때문입니다(고전 05:01~05).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많은 고민을 하다 최종 내린 결론은 그런 일을 더 이상 눈감아 줄 수 없어서 당사자를 교회에서 내어 보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근심에 싸였지만 그 근심의 결과는 회개의 열매이었습니다. 만일 성도들이 이런 일에 계속 동조하고 문제 수습을 미루었다면 교회는 말 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풍비백산 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끼리 나누는 정과 사랑이 중요할지라도 믿음의 양심을 따라 나아가면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 복된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죄에 대한 근심 즉 신령한 근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 대표적인 예로 구약에서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은 충직한 신하이자 장군인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후 죄를 뉘우치고 근심하면서 회개의 자리에 앉았습니다(51:01~19).

신약에서는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하였지만 곧 근심과 통곡으로 회개의 자리에 앉았습니다(26:75).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바울의 준엄한 편지를 받고 일순간 근심에 들었으나 결국 거짓 사도들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리에 섬으로 사망의 길을 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라는 데서 생기는 거룩한 몸부림입니다. 세상에 속한 근심이 육신의 근심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의 근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와 허물에서 깨끗하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이웃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이 될까? 어떻게 하면 심령이 뜨거워지고 하나님께 더 헌신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이런 근심을 달리 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고민이며, 이 고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통이고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고통입니다. 이런 근심과, 고민과, 고통은 우리에게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며 후회 없는 구원의 길이 됩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믿음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생명에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가져야 할 것을 권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제부터 성숙하지 못한 믿음을 근심합시다. 왜 나는 이렇게 믿음이 작은가? 왜 나는 이렇게 욕심이 많은가? 이렇게 하고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믿음의 근심을 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2. 세상에 속한 근심이 있습니다.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이 말하는 세상일에 속한 근심이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이란 육신의 근심으로서 이 근심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망의 요소들입니다. 사망에 속한 근심은 육체의 고통 즉 굶주림, 갈증, 더위, 추위, 배고픔, 질병에 의한 근심이며 정신의 고통과 불행, 죽음, 괴로움, 번민을 동반합니다. 이 모든 세상의 근심, 걱정 염려 거리를 품고 있으면 결국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쓰레기를 품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안겨주는 세상의 근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먼저 인간의 방법으로는 물리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목욕탕 계산대 앞에 이런 글 쓰여 있는 것 보셨지요?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오. 분실해도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삶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맡긴 것만 책임져 주십니다.

 

다윗은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고(37:05), 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고(55:22), 베드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05:07) 하였습니다. 믿음은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힘입니다.

주님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맡긴 후에 심령에 평안이 흘러야 온전히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있어야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맡겼다 하면서도 이내 그 맡긴 것을 찾아와서 근심거리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우리에게 늘 붙어서 따라 다니는 근심에게는 아주 친한 남매가 있습니다. 염려라는 누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걱정이라는 동생입니다. 이 셋이 한 팀이 되어 우리 성도들을 따라 다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다짐하고 주님께 근심거리를 맡기려 하면 이내 염려라는 누이와 걱정이라는 동생이 찾아와서 안 된다고 가로 막습니다. 거룩한 근심은 우리에게 유익을 안겨주지만 세상의 근심은 그 속에 사탄이 역사 하여 우리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근심거리가 무엇입니까? 1차 근심은 죽음에 대한 근심입니다. 이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예외 없이 심한 공포를 느낍니다. 2차 근심은 질병에 대한 근심입니다. 질병은 사람에게 고통뿐 아니라 슬픔과 근심을 주며 생의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모두가 질병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3차 근심은 자녀들에 대한 근심입니다. 자식 문제로 근심해 보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에 속한 근심들은 무엇보다 영의 상태를 질병으로 몰아갑니다. 영의 다운현상 이것 대단히 무섭습니다. 근심 있는 사람의 얼굴 보십시오. 한 마디로 얼굴에 웃음 대신 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웃으려 해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유머도 안 통합니다. 농담도 안 통합니다.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결국 뼈가 마른다는 것은 골수(骨髓)가 윤택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피가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줄 아시지요. 결국 뼈가 좋지 않으면 각 종 질병에 걸립니다. 화병, 관절염, 소화기 장애, 혈관장애 등의 질병이 근심하는 자에게 따릅니다. 세상 근심은 결국 사망에 이릅니다.

 

14:0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3. 김삼일 가족들은 어떤 근심을 합니까?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겪은 근심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거룩한 근심이었음을 7가지 실례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이 가운데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잘못 된 일에 대한 깨달음이 진리에 바로 서게 된 동기라고 말합니다. 또 얼마나 분하게 하며 라는 부분도 보십시오. 바울을 공격하여 명예를 실추시킨 대적자들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의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라는 부분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세워 준 바울을 진정한 사도로 받아들이며, 예전처럼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들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여야 합니까? 근심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근심하느냐 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근심이냐, 구원에 이르는 근심이냐를 놓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여 선택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큰사랑, 내가 입은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부분을 놓고 근심해야 합니다. 바울도 거룩한 근심을 한 시라도 내려놓지 않았음을 로마서를 통해 고백을 합니다.

 

09:01,02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큰 근심과 고통을 한다고 말합니까? 바울의 큰 근심과 고통은 자신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동족 이스라엘에 관한 일입니다. 비록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을 하고 있으나(02:08) 자기 동족에 대한 깊은 애정은 여전함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모세와 같이 자기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 좋을 만큼 동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09:03). 김삼일 가족 여러분, 거룩한 근심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세상의 근심은 제하여 주시는 복을 주십니다. 이런 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 하시느니라.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따르는 여러 일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한 근심으로 보느냐, 아니면 세상의 근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구원의 길과 사망의 길이 갈립니다. 현실에서 근심거리를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느냐,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느냐,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왜 주일성수에 애착이 없을까? 내가 중직자 직분도 받았는데 예배에 이렇게 관심 없어도 되는가? 교회에 좀 더 충성해야 할 터인데? 이런 근심과 고민을 하며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 정도의 근심 앞에 날마다 자신을 돌아 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의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거룩한 근심을 하면서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찬송가 4861절 가사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근심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근심을 할 것인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우리 인생길에는 근심이 많습니다. 세상 근심으로 찌들려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으로 살 것인가? 결국 내가 결정합니다.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걱정 근심 많이 하였습니다. 닥치지도 않을 문제인데 미리 끌어다 그 염려에 사로잡혀 근심 많이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안고 있는 근심과 불안의 짐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 주님의 능력의 손에 맡기고 대신 주님이 맡기시는 멍에를 메고 교회를 위한 염려와 근심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소개함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0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