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7년 말씀

믿음의 편견을 고칩시다.(행 11:01~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7. 6.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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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력에 의한 문명의 발전은 대단합니다. 말이나 글로서는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발전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한 가지 병이 있습니다. 어떤 병일까요? 편견(偏見)이라는 병입니다.

편견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공평하게 보지 못하여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말합니다.미리 정해진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연쇄적으로 불평등 현상을 낳습니다.

 

예를 들자면 백인은 좀 좋게 보고, 흑인은 은근히 낫게 보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 특정인에 대한 편견 등입니다.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오해와 편견들, 한 마디로 편견은 문제를 풀고 수습하는 도움의 요소가 아니라 걸림돌의 앞잡이 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의 편견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특히 불신앙의 편견을 깨뜨리지 못하면 믿음의 가족끼리도 불편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까닭 없이 돌출되는 편견은 어떤 좋은 이유를 대어도 잘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이것만큼 난감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소통하는데 큰 걸림돌입니다.

결국 편견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멀리하고, 차별을 하여 소외와 고립을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소하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편견을 고칩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베드로에게 믿음의 편견이 있습니다.

 

0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0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베드로가 예루살렘교회의 유력한 자들로부터 믿음의 편견을 당하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할례 받은 베드로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과 식사 교제는 위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의 말을 듣고 행 10장의 사건을 들어 설명을 합니다. 욥바에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통해 자신의 믿음의 편견을 고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복음의 초창기만 해도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품으셨음에도 편견으로 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들을 목격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여전히 마음에는 편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 정결하지 않은 네발 달린 짐승들, 파충류들, 날짐승들이 담겨져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 말라고 나와 있기 때문에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세 번이나 못 먹겠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 편견 때문입니다

이 환상의 사건이 있은 후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을 따라 고넬료의 가정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편견을 깨뜨리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베드로는 유대교 출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나도 당신들처럼 믿음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편견을 깨뜨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편견을 버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니 성령님이 임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막을 수 있습니까? 이런 결과로 인해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잘 못 되었습니까?

그러자 편견을 가지고 비난하던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군요. 하면서 비난을 중단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식사에 관한 지침은 레위기 11장과 신 14:03~20절에 자세히 나옵니다. 짐승에 대해서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 , 염소, 사슴, 노루 등이고, 굽이 갈라지지 않았거나 갈라져도 새김질을 하지 않는 낙타, 사반(너구리 일종), 토끼, 돼지는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물고기 중에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고,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먹을 수 없도록 금지하였습니다. 결국 어떤 것은 속되고 어떤 것은 거룩하다고 구별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 강림 이후 유대에만 머물던 복음이 온 세계로 퍼졌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입니다.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런 것을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안식일교회 소속한 사람들은 이것을 생명처럼 지킵니다. 그들 속에 말씀의 편견이 자리 잡아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딤전 04:0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2. 베드로는 믿음의 편견을 말씀으로 교정합니다.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6절은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편견을 깨뜨리고 세례를 베풀게 배경입니다(10:47,48).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편견을 깨뜨렸습니다(01:05). 베드로는 자기와 여러 형제들에게 임하신 성령님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임하신 성령님의 은혜가 동일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로서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한 사실도 정당화될 수 있었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도 상당히 완화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삼년을 보십시오. 사람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려고 말씀과 행동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들어 올 때나,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갈 때 두 가지의 정해진 행로가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동쪽 이방인의 땅을 통과해서 가는 코스로서 도보로 약 6일이 걸렸습니다. 더 짧은 코스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길로서 도보로 약 3일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요단강 동편으로 둘러가는 6일 길이나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는 3일 길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급들은 자존심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는 6일 길을 주로 택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코스를 택하셨습니까? 요한복음 0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만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사마리아 지역 통과를 꺼려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더욱 이 곳을 통과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한 바쁜 아빠가 모처럼 휴일을 맞아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놀이동산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노느라 소중한 하루를 허비하고 말았다. 반면 같은 날 아들은 이렇게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은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다녀왔다. 정말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보다 다른 일을 못 했다는 것에 집중하였고, 아들은 아빠와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꼭 같이 경험한 일이라도 편견으로 인해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중요한 건 아빠가 아들을 위하여 갔으니 아들의 입장에 맞추어야 합니다. 편견을 내려놓으면 그만큼 편안함이 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와 좀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비판으로 틀림을 따지기보다는 먼저 상대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상대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편견을 보겠습니다.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 B. C 429~347)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 철학자가 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기도문 중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이거 다 여성을 낮추어 보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정합시다.

 

 

  3. 믿음의 편견을 고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믿음의 편견을 가졌던 예루살렘교회의 소위 할례파 지도자들, 이들이 잠잠해졌습니다. 베드로를 비난하며 득세한 것처럼 설치던 저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왜곡(歪曲)된 믿음, 믿음의 편견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죽어졌습니다. 새로운 영적 세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이때 할례파들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는 고백은 초대교회들 안에 존재하였던 이견(異見)들이 통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 선교의 확실한 권위와 보증을 받는 결과도 가져 왔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편견이 고쳐짐으로 복음의 질서가 잡히고, 복음이 전해지는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고, 복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삼년 동안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던 유대인들의 왜곡된 편견을 깨뜨리는 일에 전심전력 하셨습니다.

그 예를 몇 가지 보겠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은 공공장소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고, 거의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일곱 귀신이 들렸다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를 제자들과 같은 동급으로 사용하셨고, 아이들도 가까이 하셨으며, 세리와 죄인들은 친구처럼 어울리셨습니다.


당시의 민감하였던 금식 문제만 하더라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합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과 제자들은 하지 않습니까? 아마 금식도 하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면서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일까? 라는 깊은 의혹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금식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고, 사람들로부터도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금식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심했던 당시에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은 금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억지 금식을 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0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믿음의 금식이 아닌 억지 굶음은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혹시 세상이 만든 편견을 따라 자신도 모르게 편견의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혹은 교회생활에서 특정한 사람, 특정한 일에 대하여 불공정하게 이야기하고, 멀리하고, 차별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 마음에 어떤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굴절 된 편견으로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나누지 마십시오. 편견 때문에 믿음의 가족들과 하나 되지 못한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나는 완벽하다는 편견,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편견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혹 나는 불운한 사람, 열등한 사람, 못난 사람, 아니면 완벽한 사람 등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이 또한 자기에 대한 편견입니다. 오늘부터 이런 편견도 고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 소속의 베티 내쉬(Betty Nash)라는 승무원이 있습니다. 195721세의 나이로 비행기를 타기 시작하여 60년 째 현역으로 활동하는 미국 최고령 승무원입니다. 우리 나이로는 무려 82세입니다. 이스턴 항공에서 일을 시작하여 항공사가 여러 번 합병과 매각이 되는 중에도 성실한 업무 태도를 인정받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건강관리를 잘한 승무원 베티 내쉬도 대단하고,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준 항공사도 대단합니다.인터넷에서 승무원 인생 60, 80세 할머니의 위대한 도전. 검색해 보십시오. 동영상 한편이 나오는데 가능하시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편견을 깨뜨리는 동영상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항공사 대한항공에서 이런 승무원 나올까요? 제 생각에는 서로의 편견 때문에 안 될 것 같습니다. 승무원을 뽑을 때부터 젊고 예쁘고 날씬한 것을 먼저 봅니다. 그러다 나이가 좀 많다 싶으면 콱 잘라 버리는데 좋은 인재 아깝습니다.

더러 외국 비행기를 타면 나이 많은 분들 일하는 것 쉽게 봅니다. 키가 좀 작은 분도 있고, 통로를 다니기 불편할 정도의 뚱뚱한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일 잘하고 서비스도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난히 승무원의 외모에 치중합니다. 다 편견의 사고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모두 복을 받는 데, 저 사람은 계속 가난하게 지내는 것 보니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아서 그럴 거야. 아니 목사가 저런 사고를 당하다니 무엇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 같아. 교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니 교회가 무엇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혹 이런 생각이 듭니까? 편견이라면 좋은 쪽으로 생각을 이동해 봅시다.

편견의 사고를 교정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편견을 고쳐서 건강한 믿음, 건강한 생각으로 교회를 섬겨나가는 지혜를 얻는데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들 모두가 편견을 버리고 건강한 생각 가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