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 번의 혈기를 부리면 8만 4천 개 정도의 세포가 죽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세포의 빈 공간에 콜라겐이라는 물질이 들어갑니다. 콜라겐, 많이 들어 본 말이죠? 피부탄력 기능 단백질로서, 멋을 좀 내려는 여성분들에게는 메리트 있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간이나 심장, 머리의 세포가 굳어집니다. 그 결과 세포와 세포 사이에 장벽이 생겨 정보 교류를 방해하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노화가 촉진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화를 내면 빨리 늙고, 빨리 죽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의 절대적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떼를 쓰는 듯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나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25).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26)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볼 때 모세는 자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과 대면을 하는 수준입니다. 하나님도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모세를 통한 기도만 들으셨습니다. 분명 자기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거의 신적인 존재인데도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이유는 모세가 광야시절 하나님 앞에서 단 한 번의 혈기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왜 그런 실수를 하였는지, 그 혈기가 정말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인지를 오늘 말씀과 민수기 20:02~13절의 말씀으로 강론을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
민 20:12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이유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민 20:12절 말씀의 전후 사정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신 광야에서 출발하여 르비딤에 도착한 때로부터 상황을 보겠습니다. 르비딤이란 원기 회복, 쉬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우기 때는 여러 샘들과 개울이 있어서 물이 흘러가는 곳이며, 건기 때도 개울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고, 지하수 우물에도 물이 좀 들어차 있습니다. 웬만하면 물이 떨어지지 않는 르비딤에 도착하니 예상과는 달리 물이 없습니다. 심한 가뭄으로 모든 샘과 시내가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일정을 따라 르비딤까지 왔음에도 물이 없자 백성들에게는 서서히 동요가 일기 시작합니다. 물을 찾을 수 없어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문제는 단순한 원망들이 이내 격렬한 몸싸움으로 발전하였고, 마지막에는 모세를 돌로 치게 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원망을 퍼붓는 현장을 보겠습니다.
민 20: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0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글을 읽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좀 못마땅하게 들리는 항의성 정도의 말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매우 살벌한 분위기입니다. 당장 마실 물을 내놔라. 이 르비딤에 있다가는 우리와 짐승이 다 죽게 될 것이다. 앞으로 희망도 없는 곳이다.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책임을 물어 돌로 쳐 죽이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크게 원망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대리자 모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생활을 하다가도 조금만 안 좋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감사할 일도 잘 떼어먹습니다. 좀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하나님을 향하여 즉각 원망을 합니다. 마침내 절박한 모세의 위기의 현장에 하나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08).
반석에게 명령하여. 여기서 반석이란 바위, 높은 요새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르비딤 물 사건(출 17:01~07)에서 언급된 이 반석은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고 큰 바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을 하셨지, 그 이상의 어떤 노력이나 다른 액션을 취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는 반역한 무리여 하면서 인간적인 감정과 흥분을 폭발시킵니다. 그만 물을 내라는 명령을 사람의 생각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물을 내라는 명령 대신 지팡이로 두 번이나 후려쳤습니다. 다행히도 반석에서 생수는 터져 나왔지만 하나님의 명령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은 아무리 이해를 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 당 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게 될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말씀을 시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 106: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2. 그럼에도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지난 40년 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던 약속의 땅 가나안(창 13:14~17)이 모세의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저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 사모하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에 모세는 그 옛날 므리바 반석의 사건을 알고도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심도 잘 알고 있습니다(민 23:19).
모세 자신도 이스라엘을 가나안 건너편 모압 평지까지 잘 이끌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어떻게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을 갈 것인가? 가나안 정복 전쟁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가르쳤습니다.
이제 자신의 삶도 거의 마무리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모세는 그 약속의 땅에 대한 사모함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하셨지만 혹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어 주실 것인가 싶어서, 하나님께서 그때 자신이 부린 혈기를 용서해 주실 것인가 싶어서 간구를 합니다(23).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는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면서 기도의 제목을 아룁니다.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강을 건너 그 서편 땅, 곧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본토의 땅을 직접 밟아 보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거쳐 온 황량하고 메마른 광야에 비한다면 가나안은 분명 아름답고 비옥한 땅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 하여금 살도록 허락하신 땅이니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여타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가나안 최북단의 산악지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의 북방 한계 지역으로 산 곳곳에 울창한 백향목 숲이 조성된 경관이 빼어난 곳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40년 동안 광야만 보고 살아 왔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통보를 일찍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삶을 누리게 해 달라는 분에 넘치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상징이 된 가나안을 한 번만 밟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메마른 땅만 밟고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40년을 지내온 모세에게는 숲이 울창하고 시내가 흐르는 레바논 산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Utopia)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공로로 말하면 누구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가나안은 인간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리라 맹세하신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뜻을 변경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천국으로 상징되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이스라엘이나, 모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애굽에서 나왔고 홍해를 건넌 것은 구원받은 자들임을 영적으로 상징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중요한 신앙의 한 영적 원리를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신약에서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예수, 구원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구속사적 진리를 후세에 분명히 교훈하고자 율법의 상징인 모세를 가나안에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3. 그만해도 족한 줄로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금까지 네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충분하지 않느냐? 더 이상 그만 하라는 말씀 앞에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26절 말씀은 모세의 자존심을 볼 때 기록을 안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부분을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모세에게는 간절한 마지막 소원이 거절됨으로 많이 섭섭했겠지만 이제는 자신의 뜻을 접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모세의 입장에서 아쉽지만 바통을 여호수아에게 넘긴 이상 여기까지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자기 역할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며, 하여야 할 일을 잘 알아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족하다는 말은 많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복을 받았으니 더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지 않느냐 라고 하십니다.
사실 모세는 대단히 복을 많이 받은 인물입니다. 당시의 세계에서 모세처럼 120세까지 사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건강하게 잘 살아야 80세 정도입니다(시 90:10) 성경은 모세가 마지막 임종의 현장(신 34:07,) 120세의 나이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사명을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노환으로 고생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구원받기에 족한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세상에서 사명자로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 족한 은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야 원망과 불평을 제거 할 수 있고, 그리하여야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기도하고, 모세처럼 거절의 응답을 받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가시로 불리는 질병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할 때 이렇게 응답이 왔습니다.
고후 12:0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바울이 받은 은혜도 이미 넉넉하고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의 삶이 모세처럼, 바울처럼 화려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였습니다(빌 04:11).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송경태). 첫날은 제일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25년 전 앞 못 보는 남편을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 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
다음은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다. 두 눈을 잃은 아들 부여잡고 통한의 아픔이 있어도 꿋꿋이 한 서린 삶을 살아오신 인자하신 얼굴을 보고 싶다. 다음은 두 아들 녀석 얼굴을 보고 싶다. 야구놀이 같이 안 해줘도 친구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깡충깡충 토끼처럼 건강하게 자란 두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역대상 22장에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준비를 보면 전 재산을 들여서 건축비용을 마련하였습니다. 전문가들을 시켜 최상의 건축 자재들을 준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안 된다고 하시며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상 22:0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0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 할지라.
다윗은 아쉽지만 자기의 사명이 건축자재 준비까지임을 깨닫고 아들 솔로몬에게 건축의 바통을 넘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깨달으면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가 300장 1절을 부르겠습니다.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 하며 내 짐을 지시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로운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27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스가산 정상 느보산에 오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뜻입니다.
가나안을 지척에 두고 밟아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까지가 자기의 사명임을 깨닫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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