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마리아의 찬양을 함께 부릅시다.(눅 01:26~5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12. 2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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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치원 선생님이 크리스마스에 자기 반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부모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선물이 대충 무엇인지 짐작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아이는 책방을 하는 집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포장지에 싼 아이의 선물을 받더니 말합니다. , 이것은 좋은 책이구나. 그러자 첫 번째 아이가 놀라서 말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 그냥 짐작으로.

두 번째 아이는 빵집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선물을 받은 선생님은 포장된 상자를 보고서 말합니다. , 정말 맛있는 빵이구나. 두 번째 아이도 놀라서 묻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 그냥 추측이야.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척척 맞추어 나갑니다.

세 번째 아이는 고급 양주와 와인을 파는 집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포장을 한 상자를 내밀자 선생님은 그것을 받고는 선물을 말하려고 하는데, 포장된 상자에서 액체가 조금 흘러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조금 찍어 먹더니 말합니다. 이것은 양주인가?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액체를 조금 찍어 먹어 보며 말합니다. 그러면 와인인가? 그래도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은 당황하면서 흘러나온 액체를 더욱 많이 찍어 맛을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선생님은 아이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뭔데? 아이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선생님, 그건 강아지인데요. 안에서 오줌을 쌌나 봐요.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날(01:14)이며, 복된 날입니다. 이 복된 날의 가치를 믿음으로 받고 감사로 화답하면서 은혜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런 은혜의 길이 열리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나사렛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성모 마리아는 매년 성탄절이 되면 기독교인들의 주목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나지 않았고, 미인이었다는 기록도 없으며, 그녀가 사는 나사렛 밖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자이었습니다.

거기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당시에 아주 흔한 이름이며, 웬만한 집에서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이 마리아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주목을 받을 만한 특별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머에도 성탄절이 되면 마리아가 공경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젊은 여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성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리아에 관한 행적들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배경에 관한 일을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약혼을 한 처녀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먼저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이에 마리아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인사를 하는가 하며 무척 당황하고 놀라워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01:28~31).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후 1세기의 사람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셨음에도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는 일에 대하여 매우 의아해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사렛은 지리적으로 변방에 위치하여 외적이 자주 쳐들어오고 또 점령을 당하다 보니 가끔은 혼혈인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제면에서도 생산품이 별로 없는 빈촌으로서 주로 소외 된 사람이나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살다보니 율법의 정결 법을 자주 위반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갈릴리는 중상류층 유대인들로 부터 매우 홀대를 받는 지역이었습니다. 후일 예수님이 공생애 출발을 하면서 열두 제자를 세울 때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만나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소개하자 나다나엘이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0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러나 사람들이 무시하는 이곳 나사렛 동네에 곧 다윗의 자손 요셉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어이없는 일 아닙니까? 크게 내세울 것은 없는 처녀이지만 그래도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곱게 가꾸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있는데 남편과 상관없이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혼모가 된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즉시 파혼감입니다. 부모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해야 하고, 자칫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을 만납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억측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마리아 자신은 아직 남자하고 동침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혼할 때까지 동침을 할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만세에 복 있는 자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48 그의 여종의 비천(卑賤)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자신을 메시아의 어머니로 사용하시는 특별 은혜에 찬양으로 화답합니다. 48절은 마리아의 찬가 중의 한 부분입니다. 마리아는 친척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6개월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임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39).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끼리 영적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는 받은 사람끼리는 알아보는 겁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는 순간 하는 말을 볼까요?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이 예언을 듣고(45), 이제부터 영원한 그날까지 자신은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이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복된 자로 칭송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마리아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복 있는 여자로 칭송을 받고 있으며, 마리아의 영광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가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메시아의 모친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에게 구원을 부탁하고 온갖 소원을 간구하는데 이런 일은 분명히 우상의 행위입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리아는 순종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비천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이라는 표현은 목수의 아내라는 낮은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인식과 겸손에서 나온 고백은 맞습니다.

마리아 자신의 위치나 살고 있는 나사렛을 볼 때 그다지 남의 이목을 받을 만한 위치는 분명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입고 메시아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받게 됨에 대한 감격을 겸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심령이 겸손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04:0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비천한 마리아가 하나님의 특별 은혜로 복 있는 자가 된 이상 48절은 우리도 비천한 출신이고, 아직도 비천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복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말씀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리아는 성령님의 잉태 소식을 거부하였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법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건이 진행되는 현장 앞에서 약혼자 요셉은 어떻게 판단을 합니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01:19). 약혼을 파기하려는 계획인데 그렇게 한다고 이 일이 수습이 되겠습니까? 요셉은 조용히 떠나면 되겠지만 이미 배가 불러오는 마리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비상한 방법이 동원됩니다.

 

0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요셉은 결단을 합니다. 만일 요셉의 넓은 아량과 믿음이 아니었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해야 할 처지입니다. 요셉은 전능자의 프로그램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마리아를 데려옴으로서 비천한 자에서 복된 자가 되는 성탄절이 이루어졌습니다. 할렐루야.

 

 

  3. 마리아의 찬양을 함께 부릅시다.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교회사에서는 전통적으로 46~55절까지를 마리아의 찬가(찬양)라고 합니다. 이 찬가는 엘리사벳이 임신 6개월쯤에 마리아의 방문을 받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리아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자 깜짝 놀란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는 축하를 해 줍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복된 소식을 떠 올리면서 억제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응답을 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하나님께 한탄, 비애, 탄식이 아닌 복된 소식을 들은 자로서 기쁨과 희망에서의 하나님 찬양입니다.

은혜와 감격으로 응답하는 이 찬양은 특별히 누가복음에만 나타나는 찬양으로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예정과 복음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좀 더 요약하면, 먼저 자기의 정체성을 놓고 자신을 스스로 비천한 자로 인정합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해 될 수 없는 이 기적을 하나님의 긍휼과 자신에게 주신 복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50~55) 세상을 하나님의 긍휼의 관점에서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이스라엘의 처한 정치적인 상황이나 윤리, 또 문화나 대중적인 기준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 마리아에게 있어서 세상의 현실은 어떤 어려움이나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특히 55절을 통하여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어떻게 그 분의 뜻이 이루어져 왔으며, 앞으로 온 세상을 위하여 마리아 자신을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어 예배와 증언을 막 시작한 1세기 후반,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사하였는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사도신경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고, 삼위일체 교리도 완전하게 정립되기 전에, 로마교회 주교가 베드로를 대신한다는 교황의 권위가 형성되기 전의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전하는 이 찬가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을 담고 있는 찬양이자 신약성경에서 가장 탁월한 시편이라고 불립니다.

십대 초반의 젊은 마리아, 그 마음과 생각에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넘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비롯하여 성경에는 여러 찬가들이 나오는데 이런 찬가들은 공통된 배경으로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한 찬양입니다.

 

구약시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찬가(삼상 01:11, 02:01~10),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던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과 미리암이 즐겁게 불렀던 광야 찬가(15:02~18,21), 다니엘의 찬가(02:20~23) 등이 다 그러합니다. 이 찬가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이루시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인 동시에, 각자의 세계관, 역사관을 적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이 없어도 능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깊은 교제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인하여 신령한 은혜와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요구사항이 아니라 빛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을 찾은 우리가 그분을 경험함으로 인하여 행복하고 즐겁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 가니라.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라 여겨지는 성전으로 가지 않고, 마리아의 가난한 집으로 갔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마리아는 중요한 사람이 아닌 그저 세상 잘 모르는 10대의 처녀로서 아마도 12~15살 사이 일 것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나사렛에서 요셉과 평범하게 살다가 여러 명의 아기를 낳고, 가난하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죽을 여자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리아 자신을 사용하시겠다는 통보를 받고, 제사장 사가랴의 집에서 엘리사벳과 더불어 3개월이나 지냈습니다.

하나님이 마리아를 택하심에 대한 여러 방향으로 함께 구약 성경을 놓고 능히 믿음의 준비를 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한 성탄절은 잘난 사람을 위한 절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처럼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을 위한 성탄절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준비를 잘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잘 쓰임을 받는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