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고난이 계속 밀려 올 때(욥 07:01~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11. 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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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05:07),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동반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노년이 되고 삶을 마칠 때까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수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경제적 고난을 비롯하여 정신적인 고난, 육신의 질병, 생존 경쟁으로 인한 교통사고 등이 우리와 우리의 이웃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죽음도 맞이하는데 한 마디로 사람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고난과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상은 왜 이리 불의하고 공평하지 못한 것일까? 라며 원망의 자리를 택합니다. 반면 믿음의 자리를 택한 사람은 모든 고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구약시대 다윗 왕 때 인물 아삽(대상 16:05)이 쓴 시편(77~83)이 있습니다. 아삽은 성전의 찬양대장으로 봉사하였는데 시 77:03,04절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얼마나 고난을 감당하기 힘들었으면 이런 고백을 하였겠습니까?

욥이란 인물은 아삽보다 훨씬 더 고난을 크게 당하여 죽음에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욥기를 끝까지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왜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김해삼일교회 가족들도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답을 찾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욥에게 고난이 계속 밀려옵니다.

 

0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 되었구나.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01장을 보면 욥은 물질적 손실, 자녀들의 죽음,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02장에서는 육체의 질병과 아내의 조롱 등으로 믿음이 다소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계속 되는 고난으로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회복하는 것과 자녀들을 다시 낳을 가능성이 완전 막히고 말았습니다. 육체의 질병은 더욱 가중되어 죽을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조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외면합니다만 그래도 죽기는 싫지 않습니까? 욥은 혹 솟아 날 길이 있는가 싶어 발버둥을 쳐 보나 풀릴 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욥에게 마지막 희망적인 말을 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욥을 향해 네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단정합니다.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을 만났으면 절망의 벽에 부딪힌 것 아닙니까? 살아갈 희망이 파산 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환경 앞에서 욥은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는다고 탄식합니다. 고난이 계속 물밀 듯이 밀려오기 때문에 견디어 내지를 못한다는 탄식입니다. 세상의 어떤 고난이라도 풀릴 수 있는 길만 보인다면 인내로 견딜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에 이런 탄식을 합니다.

 

0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종이나 품꾼의 노동 시간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거나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질 무렵이면 일을 끝냈습니다. 따라서 저녁 그늘을 몹시 바란다는 말은 일의 종결과 함께 고역의 노동을 벗어나 두 다리 한 번 뻗어보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을 개역성경은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욥은 고난의 때가 속히 끝나기를 소망하는 자신의 심경을 종과 품꾼의 일하는 시간에 비유하는 것입니다04절을 또 보겠습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구나. 욥의 처지를 놓고 볼 때,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그래도 살아야 합니까? 살아야 한다고요, 살려고 해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그 에너지가 무엇입니까?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단잠입니다. 밤은 휴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는 시간이요,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묘약 아닙니까? 죽지 못해 살아있는 욥에게는 밤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단잠을 이루지 못하는 욥의 긴긴 밤은 더 큰 고난의 시간입니다. 육신의 질병과 꿈과 환청 등은 오히려 잠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15).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구나. 잠 못 이루는 고통의 리얼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이야말로 고통 중의 고통이란 사실을, 불면의 고통은 뼈를 녹이기 십상입니다. 잠은 어떤 괴로움이라도,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근심일지라도 정지시켜 주는 달콤한 휴식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밤의 위안도 얻을 수가 없도록 고난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2. 욥은 자신의 삶이 빨리 지나간다고 고백합니다.

 

0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 구나.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베틀이란 베를 직조할 때 실을 엮는 틀로서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기구입니다. 욥이 자신을 베틀에 비유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덧없는 삶이 화살같이 지나가고 있음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욥은 자신의 고난의 생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욥의 생활이 대단히 경건하고 은혜로운 삶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욥이 자신의 처지를 놓고 볼 때 그 화려했던 시절은 꿈같은 생각입니다.

이제는 희망을 잃어버린 삶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고난 속에 파 묻혀서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종쳤다 이렇게 여깁니다. 사실 세월은 멈추어서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대로 빨리 지나가고 맙니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감을 설명 할 때 쓰는 문구가 무엇입니까? 살같이 지나간다, 쏜살같이 지나간다. 입니다. 쏜살같이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활을 당겨서 쏘아놓은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으로서 찬송가 5283절에도 나옵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화살의 속도가 국궁인 경우에는 1초에 58m 정도를 날아가고, 양궁은 시속 190에서 240가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빠른 화살의 속도에다 인생을 비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생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과 고통의 삶이라 할지라도 잠깐 지나가고 말 것인데 여기에 목숨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의 일로 몸부림을 치지 맙시다. 모세는 짧은 인생살이를 고통과 슬픔으로 규정하고는 순식간에 끝날 것이며, 혹 자랑거리가 있을 지라도 오래 유지되지 않고 신속히 끝난다고 하였습니다(90:09,10).

 

다윗 왕의 유명한 일화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가 있습니다. 유대 경전 주석서 미드라쉬의 다윗 왕의 반지 중에 나오는 글로서 뜻을 새기면서 삶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날은 다윗 왕이 세공인을 불러서 이렇게 명을 내립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서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세공인이 아름다운 반지는 만들었지만 정작 반지에 새길 글귀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고심을 하다 지혜의 왕자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는데 이렇게 일러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에 세공인이 다윗에게 반지를 만들어 올리면서 왕이여,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도 이 글을 보게 되면 왕께서는 자만심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절망 중에서도 이 글을 본다면 왕께서는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독일 나치의 압제 아래서 이 구절을 붙잡고 공포를 이겨내었다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혹 남모르는 고난과 고통의 삶 속에서 괴로워합니까? 우리 가운데 고난 때문에 고민을 합니까?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고, 큰 상처나 근심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까? 도무지 인생 살 맛이 안 납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길이를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심으로 오히려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39:05). 그만큼 짧은 인생이요 잠깐 가는 인생인 만큼 고난 속에 있을 지라도 돌아보면 잠깐이니 흔들리지 말고 잘 이겨내라는 뜻입니다.

 

 

  3. 욥은 고난 받는 자신을 하나님의 단련이라고 고백합니다.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감당하기가 힘겨워 작심을 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불평을 막 늘어 놓았습니다. 욥의 불평을 단면적으로만 보면 꼭 시험에 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내 평상심을 되찾은 욥은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권징으로 받고 동시에 하나님의 단련하시는 일로 인정하였습니다.

새가 날개를 잃어버리면 무엇을 잃어버립니까? 날아오를 수 있는 하늘을 잃어버립니다. 인생이 꿈을 잃어버리면 무엇을 잃어버립니까? 미래를 잃어버립니다. 새가 날개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푸른 하늘이 있어도 날 수가 없듯이, 인생이 꿈을 잃어버리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욥이 고난이 밀려 올 때 계속 원망과 불평으로만 생각을 관리한다면 시험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며, 건강한 믿음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이 피곤하여 녹다운 될 만한 환경, 죽음과 같은 환경에 놓일 때 불평과 원망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로 깨달았습니다.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앞에 두고 있습니까? 그 짓누르는 힘이 내 삶의 무게를 앞도 합니까? 그래서 정말 어렵다, 힘들다. 하는 상황으로 빠져 들어갑니까? 그런 환경이 내게만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까? 알고 보면 누구나가 당하는 일이고 때로는 자주 내 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럴수록 비극의 현장에서 탈출 하여야 합니다. 고난의 밤이 깊어 갈수록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떠올리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난의 현실을 뛰어 넘어야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하나님은 좁디좁은 마음을 가진 우리들처럼 감정의 기복에 흔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때 악을 선으로,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을 기도로, 슬픔을 은혜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일로 계속 고통을 당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또 다시 우리에게 임하여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결과가 나타나게 될 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왕상 19:12). 욥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점에 눈높이를 맞춤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42:05,06).

시간은 속히 지나갑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모든 것은 믿음으로 심을 때 심는 만큼 거두게 하십니다(06:08). 하나님의 말씀에 자리를 잡고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직접 확인하여야 고난이 멈춥니다. 은혜의 길이 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들먹이고, 비진리가 진리 행세를 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한 젊은 분이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좀 받았는데 기도원 원장이 그 젊은이를 보고 앞으로 큰 목회자가 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젊은이가 신이 나서 담임 목사에게 찾아가 되어 진 상황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뭐라고 답을 해 주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라면 뭐라고 답을 하겠습니까? 저라면 이렇게 답을 할 것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는 직간접으로 말씀하시지 굳이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실 필요 있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을 가는 자들입니다(벧전 02:11).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 출장을 온 나그네로서 2016년도 이제 마무리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펼쳐지는 시간들은 고난이 완전 떠나는 날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멈추지 않고 계속 밀려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큰 일꾼으로 세우기 위한 연단으로 이해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그릇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고난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합니다. 고난은 자아가 깨어지게 하는 방편입니다. 고난은 자기를 성찰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시험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듯이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인생의 시험과 풍랑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로 받으시면 됩니다.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35대 미국 대통령 John F. Kennedy(1917~63). 그는 명쾌한 열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1961.1.20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한 내용이 세계적으로 회자 됩니다. 유명한 연설문 이기에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 모두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은혜 생활을 하는 동안 그 환경이 혹 고난의 환경, 죽음의 환경입니까? 그럴지라도 교회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교회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 모두가 손잡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건강한 신앙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