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평론가인 천상병(1930, 1, 29~1993, 4, 28)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간첩 자금 수수 등 혐의로 중앙정보부(부장 김형욱)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교도소에서 3개월간 고문을 받았습니다.
동백림[The East Berlin Affair, 東伯林事件] 사건이란 작곡가 고 윤이상 씨 등 194명의 지식인을 대거 간첩으로 몰았던 대규모 반정부 간첩단 사건을 말합니다.
천상병이 간첩 혐의로 기소 된 이유는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엔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천상병 시인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투사적인 일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치관을 가지고 쓴 귀천(歸天)이라는 시 때문입니다. 이 시를 가수 장사익 씨가 애절하게 불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장사익 노래).
천상병 시인은 신앙인답게 온갖 고난 속에서도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대목입니다. 하늘나라로 돌아갈 인생을 알고 살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세상에 출장을 온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정해진 삶의 길이가 다하기 전에 목적 있는 인생 출장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는 인생 출장입니다.」로 정했습니다.
1. 나의 인생 출장은 시간이 짧습니다. |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만물이 주에게서.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며, 그 생성 발전의 주관자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기에게 꼭 하여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에 대한 존재의 목적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합당한 답을 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다가 출장 인생을 마무리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삶이겠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최대 실수가 있다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출장 인생으로서의 삶의 목적을 잘못 잡고 잘못 살아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 주는 일입니다.
출장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출장은 보내는 곳이 있어야 나갑니다. 출장에는 목적이 있으므로 되도록 짐을 간편하게 하여야 합니다.
출장 가서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하겠지요. 출장 가서 성과가 좋으면 반드시 상급이 있습니다. 출장 기간 중 경비는 보낸 곳에서 책임집니다. 일을 마치면 즉시 돌아가야 합니다.
광야 생활 지도자 모세가 인생 출장 시간 개념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아십니까?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시 90:10). 적절한 표현이잖습니까?
우리는 시간이라는 특급 비행기를 타고 신속히 날아가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속이 시속 150km를 넘기면 강속구 투수라고 합니다. 자동차로 시속 150km를 달리면 옆에 앉은 사람은 은근히 긴장감이 돕니다.
그런데 훨씬 빠르게 시속 10만 8천km로 달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지구인데 이 지구는 굉장한 속도로 달립니다.
똑딱 하는 사이 약 30km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력으로 달립니다. 그 빠른 속도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우리는 나이를 한 살을 추가합니다.
창세기 05장에 나오는 사람들 수명은 구백 년 이상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월도 하나님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도 기나긴 천년의 세월을 밤의 한 경점(更點) 즉 순간(벧후 03:08)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인생 세월을 놓고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자면 덧없는 세월, 유수(流水) 같은 세월, 구름 같은 세월, 초로인생 등 한 마디로 사람은 아주 짧게 산다는 뜻입니다.
시 39:0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나의 건강이, 나의 젊음이, 나의 남은 세월이 뽐낼 거리가 됩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인생 출장을 영구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인생 출장의 삶은 긴 것 같아도 잠깐입니다. 청춘도 잠깐이요, 예쁜 것도 잠깐입니다. 인기도 잠깐이요, 명예도 잠깐이요, 인생 자체가 잠깐입니다.
우리는 오늘 2016년 12월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가 서서히 저뭅니다. 나의 인생 출장 시간도 저물고 있음을 알면 마음을 비우는 데 편할 것입니다.
2. 나의 인생 출장은 복음 전파가 목적입니다. |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로 말미암고.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왔습니다. 그 목적은 주로 말미암고라는 짧은 말씀에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땅끝까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딤후 04:02).
그런데 여러분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은 줄 알았는데 그 목적이 복음 전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지는 일입니다.
잘못된 인생 목적은 불행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합당한 목적을 따라 진행되어야 안전합니다. 우리 모두 부름을 받은 목적에 합당하게 행할 때 행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출장과 관광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출장은 파송처로부터 사명 받아서 일하러 가는 것이고 관광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관광은 정해진 기간 최대한 즐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하고, 노래합니다.
마귀의 영역에 속한 사람은 그렇게 놀아도 상관없습니다. 반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인생 출장을 왔습니다. 따라서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큰 주제는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이 주제를 실현하는 세세한 부분은 각자가 다릅니다. 당연히 복음 전하는 삶이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너는 목사가 되고, 너는 의사가 되고, 너는 사업가가 되라는 식의 사명을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복음 전하는 일과 일상생활을 믿음으로 연결하면서 하나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명을 잘 알고 있습니까? 제대로 방향 설정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이것, 저것 하다 실패하여 고민 속에서 혼란을 겪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내가 지금 해야 할 사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오늘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일의 사명을 감당할 에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내일의 역할을 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일에 최고의 힘을 다하십시오. 하나님 뜻을 잘 헤아리십시오. 몸과 마음과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도구로만 사용해 주십시오. 하고 겸손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인생 출장의 기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삶에 집중합니다. 세상에서 전세 기간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날로 갑니다.
성도 여러분은 인생 전세 기한이 얼마나 남아있는 것 같습니까? 아직 많이 있습니까?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사람이 돈을 버는 재미도 누리고, 돈을 소유하는 재미도 누립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사명을 남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사도들의 삶은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일을 인생 출장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사도 모두가 복음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행 0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3. 나의 인생 출장은 곧 마무리됩니다. |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우리의 삶의 가치관은 세상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돌아가서 누릴 일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이스라엘 동족에게 소송을 당하여 로마로 호송됐을 때의 환경을 기억하십니까?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바울이 로마 교도소 경내에서 거처하던 집을 셋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행 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이 머문 집은 무료 교도소가 아닙니다. 자기가 세를 내고 지내는 집입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로마 군병들이 지키는 교도소입니다. 여기서 셋집이란 말이 정겹게 들립니다. 셋집이라면 그 안에 들어 사는 사람은 나그네가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복음 감당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고 잠시 머무는 집입니다. 바울은 머지않아 떠날 셋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외국에 잠시 출장 가는 사람은 트럭을 빌려 냉장고나 소파를 싣고 가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출장이 아니라 이민 가는 겁니다.
우리는 곧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육신은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영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현재 우리는 인생 출장 중입니다. 세상에서는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 돌아가는 중입니다. ING의 생활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여러분 인생 출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하나님께서 안 부르셨습니다. 왜 안 부르십니까? 인생 출장 마무리 잘하라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세상에 있는 이상 머잖아 죽음을 맞습니다. 육체들은 흙으로부터 왔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짐승도 땅으로 돌아가고, 사람의 육체도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은 영(靈)이 없으므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무(無)가 됩니다. 반면 사람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갑니다(전 03:20, 21). 반드시 왔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일이 기다립니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심판의 내용은 믿는 자는 영원한 천국의 영광이요,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의 고통입니다(계 20:12).
히 0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인생 출장을 수행한 분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장례식장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면 신자의 삶과 불신자의 삶 차이를 충분히 느낍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의 외출복이 내일 환자복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말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별일 없이 살았으니, 내일도 별일 없이 잘 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남은 시간을 복음을 따라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발탄처럼 목적 없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일에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계획에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사명자로 출장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두고 보시기에 아까운 존재입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복음 잘 전하다 주님 품에 안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처신하면서 살다 갔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본향을 늘 그리워하며 이 땅은 잠시 머무르다 떠날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김해삼일교회는 의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성품은 남아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형편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처럼 닮기 위하여 믿음의 몸부림을 치는 곳입니다.
따라서 종합병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일어나고 실망과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 생활에서 모두가 꼭 지켜야 할 법칙이 있습니다.
나는 용서받은 죄인임을 아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닮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넉넉하게 수용하는 아량입니다. 지난날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엡 0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어떤 40대 아주머니가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습니다. 젊은 남자 직원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서 오세요, 아주머니 정말 젊고 멋있어 보여요. 기분이 좋아진 아주머니가 점원에게 묻습니다. 어머, 그래요? 내가 몇 살이나 되어 보이는데요?
30대 초반쯤 돼 보입니다. 어머나, 그렇게 봐주니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남자 점원이 말합니다. 뭘요, 저희 가게에선 오늘부터 뭐든지 30% 할인해 드리잖아요.
예, 우리 믿음의 가족들, 결국은 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출장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부터 30% 정도쯤은 양보하고 이해합시다. 용서하는 아량을 공동체 안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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