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신령한 목적으로 이사를 합시다.(마 04:12~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11. 26. 15:00
728x90

17세기에 많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중심이 된 남아메리카 쪽으로 간 사람들은 주로 라틴족이었고, 미국과 캐나다가 중심이 된 북아메리카로 간 사람들은 주로 앵글로 색슨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아메리카로 간 사람들은 부패와 침체의 역사를 만들었고, 북아메리카로 간 사람들은 자유와 번영의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무엇이 같은 시기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비슷한 넓이의 땅에서 한쪽은 부패와 침체의 역사를, 다른 한쪽은 자유와 번영의 역사를 연출하게 되었습니까?

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목표, 그리고 비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남미로 간 라틴 계열의 사람들은 유럽에서 누리지 못한 황금과 부를 신대륙으로 가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갔습니다. 하나같이 황금과 부를 쌓으려고 간 것입니다.

반면 북미로 간 앵글로 색슨 계열의 사람들은 신앙과 이상을 쫓아갔습니다. 그들은 유럽에서 누리지 못하는 신앙의 자유와 이상을 신대륙에서 이루려고 갔습니다


육신의 목표를 따르는 사람들은 개인이나 국가나 침체와 사망의 역사를 만들어내게 되고, 영의 생각을 따르는 개인과 국가는 번영과 평화, 생명의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사를 하되 어떤 동기와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맞이하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사를 하신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사를 하였는지, 그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동시에 우리도 세상을 사는 동안 이사에 관하여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이스라엘의 권력자 헤롯 왕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마리아와 그 남편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3년 쯤 지나 헤롯이 죽자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자기들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살았습니다. 이후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에 나설 즈음 혼자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일상적인 상식으로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한다면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중심지 예루살렘으로 주거지를 옮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그런데 예수님은 중심지 예루살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 가버나움을 택하셨습니다. 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신 것 같습니까?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다소 간접적 짐작을 한다면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과(04:29~31), 갈릴리 사람들의 환영 때문인 것 같습니다(04:45).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신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지 어떤 세상적인 조건 때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디 세상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 분이십니까? 전혀 받지 않으십니다.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복음의 센터로 택하신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구약시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한 말씀 사 09:01,02절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밝힙니다. 어떤 말씀을 이루신다는 말입니까? 갈릴리 지역이 과거에 혹독한 압제와 재난을 당했던 곳이고, 이스라엘의 중심지로부터 소외 된 지역, 버려진 사람들이 사는 이방인 지역으로 인식 되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갈릴리입니다. 그러나 버려진 지역과 같을지라도 예수님이 들어가시고, 복음의 영향력이 미친다면 복된 터전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0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예수님이 본격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을 이해를 돕기 위하여 12, 13절에 나오는 지명 두 곳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갈릴리입니다. 갈릴리라는 말은 고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일컫는 말로서 이방인의 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09:01).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 당시 가나안 지역을 각 지파별로 나누면서 갈릴리의 위쪽인 북쪽을 납달리 지파, 아래쪽을 스불론 지파에게 배당하였습니다. 갈릴리는 헐몬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요단강과 여러 개울들,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물이 넉넉한 지역입니다. 농사를 짓는 측면에서는 아주 기름진 땅입니다.

 

다음으로 가버나움입니다. 이 지역도 이방인의 땅이라고 불리는 만큼 이방인들에 의하여 가장 많이 유린을 당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갈릴리 지역 전체가 이방인의 땅인만큼 가버나움 사람들도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거기다 이 가버나움에는 로마의 군인 백부장이 부하들과 주둔하였고(08:05~08), 또 세관도 있습니다(02:14). 로마인이 거주하고 세관이 있는 곳이라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꺼려하는 지역이요, 그 지역 사람들 역시 좀 부끄럽게 여기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한 지역이라 일컫는 이 지역에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나왔고(01:29), 마태도 이곳 출신인 것 같습니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빛을 전하기 위해 이사를 하셨습니다.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위해서라면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가셔야 합니다. 아니면 차선으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 정도는 가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셨으니 주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어이없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도 큰일을 하려면 여기 갈릴리 지역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권하였습니다(07:03). 그러나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평가를 하던지 그런 일에 대하여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오직 복음이 효과적으로 잘 전해지기 위해서 방해만 받지 않으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연 중 명절을 맞으면 몇 차례 정도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럴 때 마다 숙박을 하는 곳은 예루살렘 시내가 아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면 꼭 예루살렘을 벗어나와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 동네를 찾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예루살렘에서 숙박을 하시면 분명 유대교 권력자들로부터 모함을 받을 것이고, 밤에는 물리적인 테러를 능히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7:0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예수님은 때가 되기 전에는 일부러 위험 중에 들어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박해를 당할 때 구차스럽게 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부러 박해를 청하여 받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을 시키시고 파송하실 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처신하라(10:16)고 하셨습니다.

제가 조금 전 예수님은 복음전파를 위해 이사를 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버나움을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가버나움이 더욱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입니까?

예수님의 복음 사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입니까? 갈릴리 해변에 위치한 가버나움은 인구가 조밀한 지역으로서, 동방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통로의 요충지입니다. 로마 군인 백부장이 주둔하는 지역이고, 세관까지 있으니 당시의 상황에서는 외적으로 좀 번성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흑암의 땅, 사망의 땅이라고 낙인이 찍혀 있는 이 가버나움의 영적 상태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평가를 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영적 흑암의 세력이 덮고 있는 가버나움을 예수님은 복음의 기지로, 제자들의 훈련의 장으로, 세계 선교를 위한 센터로 사용하시고자 이사를 하셨습니다. 외적인 상황이 좋아서 이곳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시는 예수님의 복음의 차원으로 이사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곳 가버나움에서 더욱 많은 이적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 가버나움에서 역동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정작 주민들은 오히려 교만의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을 놓고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이곳에 이사를 하신 일 자체가 여지없는 선교의 실패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성읍들에 비하여 더 많은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예수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빛을 전하고 제자들의 선교 훈련을 위한 이사라면 대단한 가치가 있는 이사입니다.  

 

 

  3. 생명의 빛을 전하는 이사를 하십시오.

 

17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살다보면 때로는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러는 재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투기적인 이사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위장 전입인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사하는 일을 놓고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성도가 이사를 할 필요성이 따른다면 예수님처럼 목적을 가지고 하십시오. 세상적인 조건을 떠나 한번쯤은 교회를 위해서, 한번쯤은 전도를 위해서, 한번쯤은 생명의 빛을 전하기 위해서 이사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사를 놓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물음으로 기도하면서 이사를 하시면 분명히 복이 올 것입니다. 이사를 한 후에 후회하는 일이 없기 위해서 꼭 믿음의 판단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이사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직은 알려진 인물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생활을 힘 있게 하지는 안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음을 믿고 말씀하셨습니다.

 

12:0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사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사전 답사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것은 분명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결단하였습니다. 자기 혼자만 결단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하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죄악 된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함을 향하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면 떠나고, 가라 하면 가야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되고 복이 되는 은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복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사를 할 계획이 있습니까?

12:01~03절을 읽고 기도하신 후에 감동이 오면 하십시오. 그 가운데 복된 길이 열릴 것입니다02 너는 복이 될 지라. 03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 말씀을 놓고 기도하신 후에 이사를 하시면 좋은 일이 크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현재 있는 곳에 신령한 복의 근원으로 심으셨습니다. 생명의 빛을 전하는 사명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멘입니까? 이 중요한 가치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생명의 빛을 전하는 사명자라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나의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이 자부심으로 살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사를 잘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를 잘 못 하면 복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이사를 통한 복은 신령한 복, 복음의 열매에 관한 복입니다. 물론 영육간의 복도 능히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빛을 전하는 사명자다 이 신분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영적 감각을 잘 유지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요. 해몽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다음 달 말경에 계약 기한도 다되고 집에 물도 새고 해서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요즘 심각한 전세난에 이리저리 알아보고는 있는데 맘처럼 쉽지가 않네요.

오늘 오전에 엄마께서 꿈을 꾸셨는데요. 꿈에 할머니와 아빠가 나타나셔서 잘 보고 가라고 한마디만 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셨대요. 방향도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지, 그냥 여기 그대로 있어야 하는지, 뭘 암시하셨는지 너무 궁금하고 막막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어찌해야 하는지요. 해몽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해몽을 했더라고요. 지금 사시는 집이 물이 새는 것을 모르고 들어오셨기 때문에 이사 갈 집이 그렇지는 않는지 잘 보고, 또 과거의 이런 실수를 교훈삼아 이사 갈 집에 다른 문제들은 없는지 잘 보고 꼼꼼히 확인하고 가시라고 말씀하신 듯싶습니다.

엄마는 이상한 꿈을 꾸고, 딸은 궁금하니 해몽을 바란다고 인터넷에 올리고, 거기에 대한 해몽을 한다고 지극히 상식적인 글도 올라오고. 옮겨 갈 집에 당연히 물이 새지 않아야죠. 그만큼 불신자들은 궁금증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꿈에 대한 해몽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내가 이사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 믿음 생활에 유익이 될 것인가? 교회에 유익이 될 것인가? 내가 가는 곳에 생명의 빛을 비출 수 있는가를 놓고 말씀과 더불어 기도로 판단하면 됩니다. 김삼일 가족들은 앞으로 이사를 할 일이 있으면 내 믿음생활에 유익이 되고, 교회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서 기도생활에 도움이 되고, 전도생활에 유리 할 것 같으면 하십시오. 복이 됩니다.

 

08:0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0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