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새벽 3시 쯤 임종을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믿음생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것 즉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창 06:09). 노아의 모든 행위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는 고백의 평가입니다.
전 0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가이오와 함께 믿음으로 섬기는 교회에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디오드레베이고, 또 한 사람은 데메드리오입니다. 이들은 나름 교회를 위해 일을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디오드레베는 그만 순회 전도자들을 배척하는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반면 데메드리오는 디오드레베가 배척한 사람들을 믿음으로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으로부터 징계의 대상이 되었고, 데메드리오는 모든 일에 인정을 받고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추천까지 받았습니다.
어떤 일로 데메드리오가 요한의 인정을 받고 본을 받을 사람으로 추천 받게 되었는지를 오늘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은혜 받는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1. 데메드리오는 어떤 사람입니까? |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성경은 데메드리오에 대해 두 사람을 소개 합니다. 에베소의 은장색(행 19:24~27,38) 데메드리오와, 오늘 말씀에 나오는 데메드리오입니다. 성경학자들 중에 더러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은장색 우상 장사를 하던 데메드리오와, 요한삼서의 믿음의 일꾼 데메드리오가 동일인이라고 합니다.
행 19:24~27,38절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의 데메드리오가 복음 사역에 크게 걸림돌이 되었으나, 곧 예수님을 믿고 요한삼서의 믿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두 사람의 데메드리오를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 말씀의 데메드리오를 사도행전 19장의 데메드리오와 연관시킬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동일 인물이 아닌 각각의 인물로 보고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면 데메드리오가 요한삼서의 주인공 가이오와는 어떤 관계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서의 저자 사도 요한이 가이오와 데메드리오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데메드리오에 대하여 2가지로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본서의 저자 요한과의 관계로 보아, 데메드리오를 요한이 파송한 순회 전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가운데는 데메드리오가 요함삼서 편지를 요한으로부터 받아 가이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눈치를 채고 시기를 한 나머지 순회 전도자 데메드리오를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부분은 데메드리오가 가이오와 함께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멤버로 보는 관점입니다. 가이오처럼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하다 특별히 순회 전도자가 오면 기쁨으로 대접을 하였는데 이 일을 디오드레베가 시기하여 교회에서 내 쫓았다는 것입니다(10).
10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도다.
교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충성하는 일에 대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기와 견제를 받는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핍박 받는 것은 은혜로 받아들이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의 가족들로부터 훼방과 조롱을 받는다면 그때는 견디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를 섬기는 원리는 꼭 같습니다. 언제나 격려를 하는 사람과 훼방을 하는 사람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힘들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을 만날 때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안내해 줍니다.
갈 06:0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요한은 가이오에게 믿음의 본이 된 인물, 믿음의 향기와 감동이 있는 인물 데메드리오를 멘토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고 권면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부흥의 요소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혼란을 만나게 될 것이고, 데메드리오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사랑이 넘치고 부흥이 올 것입니다.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를 통해서 목회자를 지치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목회자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능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2. 데메드리오는 모든 일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인정을 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신령한 부분을 다루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면 서로가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또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12절을 보면 요한은 데메드리오에 대하여 세 가지 차원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뭇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진리로부터 인정을 받고, 요한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일입니다.
뭇 사람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모든 사람보다는 모든 일에 라는 의미로서, 데메드리오는 그가 행하는 일마다 신실하게 감당하여 인정을 받았습니다.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데메드리오는 진리 안에서 행한 가이오처럼, 자신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순회 전도자들을 대접한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증언하노니. 데메드리오는 교회에서, 순회 전도자들로부터, 특별히 순회 전도자를 파송한 요한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데메드리오가, 교회에서 분명 믿을 만한 사람, 가장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고 확신이 섰기 때문에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의 이런 선한 행동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메드리오, 진리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데메드리오, 비록 힘들어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데메드리오, 이런 사람이 들어가면 교회는 살아납니다.
그런데 데메드리오와 같은 믿음의 성품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성품을 익히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루어집니다. 반면 믿음의 성품을 익히려면 믿음의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과 친해야 가능합니다.
요한이 데메드리오의 선한 성품을 가이오에게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믿음의 준비와, 믿음의 몸부림을 치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공짜는 없습니다.
종편 채널A 천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7월 5일 방영된(155회)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두 얼굴의 진실 편은, 세자로 생활을 하다 온갖 스캔들로 폐세자가 된 장자 양녕대군의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 가운데 양녕대군 제가 아버지 태종에게 세자의 자리를 내어 놓으면서 세자 복을 벗고는 이제 익선관도 벗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익선관(翼善冠, 翼蟬冠)이란 말을 아십니까? 익선관이란 조선시대 왕과 세자가 평상복이나 집무 복을 입을 때 함께 쓰는 모자로서 거기에 매미의 날개 모양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매미에게는 오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①매미의 머리 모양이 선비의 의관을 닮았다고 선비의 덕(文德))이라 하고, ②맑은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사니 청덕(淸德)이라 하고, ③농부가 가꾼 채소와 곡식을 애벌레나 메뚜기처럼 해치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고 겸덕(謙德)이라 하고,
④날짐승과 들짐승, 곤충 등 모든 생명체들이 집을 짓는 것과 달리 매미는 집을 짓지 않는 검소한 덕을 갖췄다고 검덕(儉德)이라 하고, ⑤철 맞춰 왔다가 가을이면 때를 봐 떠날 줄 아는 믿음을 갖췄다고 해서 신덕(信德)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익선관을 쓰고서 선한 것을 본받으려고 힘썼던 것처럼, 우리도 데메드리오의 선한 모습을 본받으면서 범사에 인정을 받도록 힘써야겠습니다.
3. 나는 믿음으로 인정을 받는 생활입니까? |
딤후 0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인정된 자(δόκιμος). 다양하게 번역되는 단어로서 일정한 시험을 거친 후에 인정되고 받아들여 진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문을 보면 이 단어가 문장 구조상 하나님 앞에(τῷ θεῷ)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 보다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였던 요소들 대부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보다는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을 받으려 함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교회의 분란만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완벽한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모두가 상당한 허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상의 자리에 세워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인정을 받는 믿음에는 회개가 따르고,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덕을 세우는 일이 따릅니다. 잘 아는 말씀 한 번 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사이에 하인들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자 이보게 조카,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08)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잠 17:14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믿음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야 합니다. 편당이 생기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고전 11:19). 어느 시대나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장하여 찾아와서 멸망에 빠지도록 넘어뜨리려는 계략을 동원합니다. 믿음의 자리에 세워진 자, 믿음의 인정을 받은 자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진리와 오류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진리의 길을 굳게 걸어갑니다. 믿음으로 인정을 받는 일꾼은 분별력을 필요로 합니다. 분별력은 사물의 이치를 바로 깨닫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이런 분별력이 따를 때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꾼의 특징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에 있습니다. 그 드림은 자신과 눈물과 땀방울입니다. 이런 드림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지면 바리새인처럼 되기가 알맞습니다. 바리새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로서는 열심히 일을 하나 실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것이고, 드리기는 하지만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없는 생활이고(마 23:23), 말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삶입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사자성어 퀴즈를 내었습니다. 내용은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노래 부르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입니다. 학생들이 맞히지 못하자 사회자는 네 글자이고 끝이 가로 끝납니다. 라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정답은 고성방가 인데 한 학생이 고음 불가, 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어 다른 학생은 이럴 수가, 라고 답하자, 다른 학생은 미친 건가, 라고 답하였습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한 학생이 답을 하는데 그가 말한 답은 아빠인가, 이었습니다. 사회자와 모든 방청객들은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예,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의 단면입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인정을 받고 있으며, 또 어떻게 인정을 받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생활 쪽에 믿음의 에너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혹 아빠인가? 이런 평가가 되지 않는 삶을 살자는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는 가이오와 데메드리오 같은 일꾼이 있고, 디오드레베 같은 훼방꾼 스타일도 있습니다. 교회의 각 직분은 권력이 아닌 섬김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이 교회에 들어오면 성스러운 직분이 개인의 명예와 일종의 권력으로 추락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교회의 일을 봉사하는 일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서 충성하기 원합니다. 라는 기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통하여서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교회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좋은 일꾼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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