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왜 예수님을 미쳤다고 소문냅니까?(막 03:20~3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7. 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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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가 쓴 돈키호테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보면 주인공 돈키호테가 죽자 그의 묘비에 이런 글을 새겼습니다. 죽을 땐 현명한 사람이 돼서 죽고, 살 때는 미친 듯이 살라.


우리의 현실 환경도 어떤 것에 미치지 않으면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기 어렵습니다. 가끔은 이런 미쳤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학문도, 예술도, 스포츠도, 심지어는 사랑도 다 미쳐야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미쳐야 할 곳에 미쳐야지 반대로 노름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돈벌이에 미쳐서 사람의 건강한 가치관을 잃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실패의 인생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오늘 말씀에서 미쳤다는 용어를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미쳤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제가 미쳤다고 하는 의미는 정신적으로 이상한 그런 미침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빠짐 즉 쟁이를 말하려 함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을 예수쟁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런 예수쟁이 즉 미친 사람입니다. 한 때는 학문 즉 율법에 빠져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니는 일에 미쳐 있었으니 후에는 예수님에게 미쳐버렸습니다. 한번은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베스도 총독으로부터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총독이 이런 말을 합니다.

 

26:24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예수님도 복음 전하는 일에 빠졌습니다. 모든 마을과 지역을 다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전도하러 다니는 일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귀신이 들렸다고 막 모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일에 구애 받지 않고 복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귀신들렸다고 모함을 하던지 말던지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왜 예수님을 미쳤다고 소문냅니까? 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이 귀신들려 미쳤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났습니까? 정말 명예롭지 못한 소문,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소문이 났습니까? 상황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일이 되는 이런 소문이 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2절에 의하면 예루살렘 본부에서 내려 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모함하였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율법에 정통한 학자입니다.

이 율법 학자들은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예수님의 언행과 그 범법 여부를 세밀히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고 갈릴리로 내려온 사람입니다(07:01). 이들이 내려온 이유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가르치신 말씀과,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소문을 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회로부터 파송 받아 내려온 서기관들의 모습이 변방 지역 갈릴리 주민들이 보기에는 그 권위가 대단하게 보였을 것 같습니다. 평생 율법을 연구하는 이 율법 전문가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조사한다면서 진리 여부는 살피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판정을 내립니다.

어떤 판정입니까? 예수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다. 귀신의 왕의 권세를 이용해서 다른 귀신들을 내어 쫓는 것이다. 예수는 바알세불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공개적인 모독입니다. 지금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를 해서 잘 못 조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순수성을 알고도 자기들의 사악한 정치와 경제면에서 이권이 침해당할까 염려하여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알세불(Beelzebub)이란 바알 왕자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가나안 신의 이름으로서,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사탄에 대한 동의어로 취급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사탄이 둘러 씌어서 기적과 능력들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다. 이런 식으로 모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권위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상인이 아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힌 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 즉 사탄에게 사로잡혔다고 몰아붙이니 서기관들의 말이 순식간에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으로 곳곳에 퍼졌습니다. 서기관들의 모함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 하시는지 23,26절로 보겠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이어 서기관들에게, 그대들 하는 일이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29). 라고 선언하십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 사역의 동기와 목적, 능력의 근원까지를 고의적으로 모독함으로서 성령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예수님을 성령님의 능력과 완전히 반대되는 바알세불과 결탁한 자로 매도하는 일이야말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님 훼방 죄입니다.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12:10)

 

 

  2. 예수님이 미쳤다고 어머니와 동생들이 데리러 왔습니다.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데리러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 누이들과 그리고 친족들입니다(21).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해 동정녀 탄생을 하신 메시아입니다.

이 후에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에서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32절의 동생들, 누이들 이라는 복수 형태로 보아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다수의 자녀들이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동생들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06:03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남동생 이름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고 여동생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문자대로 예수님의 친 형제자매들입니다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을뿐더러(07:05), 오히려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동생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귀한 성경까지 기록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기록하였고,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에서는 여기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을 친동생이 아니라 사촌이라고 합니다. 왜 사촌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셉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 영원한 성모 마리아로 만들어 숭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동생들을 사촌이라 하고(Jerome), 또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Epiphanius)이라 해도 성경의 근거는 아닙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지 않고 무리하게 해석하면 거짓된 교리만 생산됩니다. 로마 가톨릭이 예수님의 동생들을 끝까지 사촌으로 둔갑시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모든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에게, 예수님으로부터 마리아에게, 마리아로부터 우리에게 온다고 가르칩니다. 마침내 1854년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죄가 없다. 성모 마리아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셨다(1950). 는 교리를 공식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 시작하여 1965년에 끝남)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교회가 대변자, 보조자, 중재자 등의 호칭으로 간구하는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는 하늘에서 신자의 기도를 받아 중재하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가톨릭 교인들은 오 마리아여, 낙원의 문들을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이는 당신이 그 열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구원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믿고 섬겨도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 교리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마리아도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동일한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3. 왜 예수님을 미쳤다고 소문냅니까?

 

12: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무리가 다 놀라게 된 이유가 평행 본문인 마 12:2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형식적인 교훈에 익숙해 있던 무리들이 예수님의 생명력 넘치는 이적 앞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다른 말로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이야말로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아라고 믿어지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능력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는 모습을 서기관들이 보고는 마음에서 한없는 시기와 질투가 솟아오릅니다.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예루살렘 출신도 아닌 빈촌 나사렛의 목수 한 사람이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것도 거슬리는데 메시아로 알려지고 있으니 얼마나 시기가 납니까?


서기관들,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무조건 예수님을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적 관습은 아버지가 생존하지 않을 때라도 그 자녀를 부를 때 아버지의 아들로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놓고는 요셉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호칭합니다. 이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풍습에서 사생아를 지칭하는 경멸적 표현입니다.

 

06:0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어쩌면 나사렛 사람들이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말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환경에서 예수님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 아니냐? ~ 아니하냐? 이런 식의 표현은 다분히 고의적 경멸의 말투입니다. 아마 천박한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려 함을 능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이 메시아, 무슨 메시아? 저 예수는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힌 귀신 들린 사람이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졸병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파송을 받은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들이 아니냐? 우리말만 믿으면 된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마 12장에는 바리새인들이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막 03장을 종합하면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의 말에 갈릴리 지방의 바리새인들이 동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는 모습들이 하늘의 일입니까? 세속적인 땅의 일입니까? 당연히 세속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경쟁자로 여겨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함으로 사람들과 사이를 이간질 시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인기를 직접 보면서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시기에 사로잡히니 신령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역의 현장도 올바르게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 무감각에 점점 빠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생활에서 영적 판단을 잘 하여야 합니다. 모든 일들을 나의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영적 무지에 빠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14: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중세 시대에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사탄이 인간에게 씌워 악한 일을 하게 한다고 하여 종교 재판소를 통해 대대적인 학살을 한 일입니다. 온갖 잔악한 고문과 도구들도 사용되었고,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화형이나 극악한 형벌에 의해서 죽어갔습니다.

반대세력이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잔인한 짓을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좌익, 빨갱이라는 말이 대표적인 마녀사냥의 예인 것 같습니다. 자기 반대파나 좀 더 진보적인 생각을 표출하면 무조건 좌익 빨갱이로 낙인을 찍어 갑니다.

 

이런 정치적인 마녀사냥을 동원하여 선거철이 되면 호남 쪽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을 볼 때 금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를 한 것은 정말 잘 된 일입니다. 아마 다시는 종북, 빨갱이 하는 비인격적인 공격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도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조사도 해 보지 않고 무조건 바알세불에 씌워서 미쳤다는 식의 마녀사냥 프레임을 적용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과 자기들의 생각이 어긋난다고 이런 누명을 씌워서 제거하려는 것입니다.우리는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진리를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무엇이 악한 영인지, 무엇이 비진리인지 분별을 하여 더욱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