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부자라고 하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나는 가난한 데 무슨 부자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기준을 말 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모두가 다 부자입니다. 어떤 면에서 부자입니까? 무엇이 부자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부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이 나를 보면 나는 부자에 해당됩니다. 예, 우리가 별 가진 것이 없어도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부자란 말입니다. 가진 자와 비교하면 부자가 아니지만 덜 가진 자에 비하면 분명히 부자이니 마음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갑자기 한 사람이 끼어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남겨 준 유산에 대하여 형과 갈등이 생겨서 예수님께 상담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상속법은 율법에 명시되어 있으며(민 27:01~11; 신 21:15), 그 법규에 따라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도 이런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자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사람아, 내가 그런 것이나 해결해 주는 랍비인줄 아느냐? 욕심을 비워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물질에 관하여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자기에 대한 부자, 하나님에 대한 부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자기에 대한 부자가 있습니다. |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돈 버는 일에 마음과 생활을 집착합니다. 그래서 10억 버는 방법 등의 책들이 쏟아지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돈 버는 방법 노하우에 대해 알려 주세요, 돈 버는 앱 베스트모음 등이 활개를 칩니다.
그러나 소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평생 소유하려고만 발버둥을 친다면 어쩌면 그 일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한 무소유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의식주 생활을 위한 일용할 양식도 필요하고, 최미생활, 문화생활을 위한 물질도 필요하고, 장래를 위한 대비도 하여야 합니다. 이런 생활을 위해서 당연히 열심히 물질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소유의 넉넉함 즉 많은 재산이 곧 인생의 행복과 직결된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우선순위로 삼으면 오히려 실패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주의 길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를 늘리는 경쟁에서 처질까? 늘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이 생활이 과연 좋은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아십시오. 물질을 모으는 일을 삶의 목표로 삼고 또 그것이 혹 성취된다 할지라도 기대했던 행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간다면 어쩌면 패망의 길을 만날는지도 모릅니다.
시 49: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사람이 물질주의에 빠지면 멸망하는 짐승 같다는(시 49:20) 말씀이 있습니다. 패망의 인생을 만난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넓은 집 한 채, 고급차 한 대, 편안한 살림살이 등 이런 것들을 최고로 삼는 다면 실로 유치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에 대해서만 부자가 되려 한다면 곡식 쌓아 둘 곳이 모자라서 걱정 하였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고민 거리 하나를 추가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돈만 많이 벌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어쩌면 그 재물에 갇혀 살아가는 재물의 종이 될 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모두 왕자와 공주가 된 것처럼 느껴져도 실제의 생명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과 다름없습니다(계 03:17).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쥡니다. 세상에서 소유를 늘려보자는 생각이고, 죽을 때는 손바닥을 폅니다. 이는 마지막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0절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세속적인 물질로 소중한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인본주의자 부자에 대하여 웃으십니다.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조소입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 특별히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삶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있습니다. 이 부자가 성공을 위해서 인색하게 굴었을 것이고, 어쩌면 일꾼들에게 품삯도 넉넉히 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물질을 목표로 삼고 돌진하다 보면 어리석은 부자가 걸어간 그 길을 가기가 쉽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에 눈을 감으면 인생길 실패하기 알맞습니다. 자기에 대하여 부자가 된 이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성공을 거둔 과정도 문제지만 성공을 거둔 후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성공을 한 후에도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줄 착각하다보니 그 속에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조금도 생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십시오. 소유가 전혀 없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주 굶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루를 살아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가족이 함께 몸을 의탁할 집도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소유가 넉넉해야만 행복하다는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음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에 대한 부자가 있습니다. |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란, 하나님에 대하여 부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삶을 하나님께로 전환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초월, 이것이 선행되어야 생명의 길, 구원의 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순간이나, 하나님을 향하여 드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중요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중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포기하여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신령한 것을 위하여 땅의 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반면 땅의 것을 위하여 하늘의 것은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것,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부자의 길을 택한 사람은 영원합니다. 하늘나라의 창고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진 것만 보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김삼일 가족들은 이렇게 말합시다.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성공해서 남 주자. 가지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든 이웃에게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때가 되면 결국은 다 사라지고 말 것을 그렇게 열심히 움켜쥐고 있으면 뭐 합니까?
내 손에서 떠나기 전에 영원한 가치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이를 거룩한 환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을 영원한 천국의 것으로 바꾸는 것은 대단한 가치가 있는 투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마 0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눅19장에 삭개오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부자였고, 세리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 간절함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또 예수님의 심방도 받았습니다. 삭개오가 드디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감격에 겨워 예수님,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의 구제 사업에 쓰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세리의 일을 하면서 남의 것을 사기를 치다시피 하여 축재한 일은 4배의 넉넉한 변상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눅 19:08). 기독교인들은 삭개오에 관한 이야기를(눅 19:01~10) 잘 알고 있습니다. 2천년 세월동안이나 삭개오의 이야기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오시는 날까지도 삭개오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부자의 이야기도 두고두고 할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에 대한 부자,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도 주님 오실 때까지 회자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람의 이야기는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인생의 길이는 그다지 길지가 않습니다. 백년을 산다 한들 뭐가 그리 길겠습니까? 돌아보면 짧기만 할 뿐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부자가 됩시다.
딤전 0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팰러앨토에 아주 유명한 대학이 있습니다. 1891년에 개교한 대학입니다. 교지 면적이 3,4104㎢ 정도가 되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이 대학이 명문인데 이 학교를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1824.3.9.~93.6.21)의 기부 때문입니다. 이 스탠포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사람으로서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에게 잘 생기고 수재이던 외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에서 장례식을 치루고 난 그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 곁에 있어요.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세요. 꿈에서 깨어난 그는 외쳤습니다. 아, 아들도 살아 있고 하나님도 살아 계시구나.
스탠포드는 즉각 청년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재산을 모두 기부하여 학교를 세웠습니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스텐포드 대학입니다. 그리고 고학생들을 모두 불러 장학금을 주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결국 그도 죽었는데 유서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 재산을 1달러라도 남기지 말고 모두 청년 교육에 사용을 하라.
믿음의 선행은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상으로 예비 됨을 믿으십시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는 말씀도 기억하십시오. 내가 말하고, 내가 먹고, 내가 돈을 벌기 때문에 내가 물질의 주인인 것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꾸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버리는 부자는 영원히 하늘나라에 기록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4,15~1519,5,2)가 그린 명화 성만찬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예수님 오른 편 첫 번째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앉아 있고, 다음에 가룟 유다가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포도주 잔이 넘어져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잔은 그대로 있는데 가룟 유다의 잔만 넘어져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옆에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면서 본의 아니게 식사 때 쓰는 칼을 잡은 손목으로 가룟 유다의 옆구리를 건드립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가 기겁을 하며 앞으로 넘어지는데 그만 소금 그릇까지 엎어버립니다.
왜 가룟 유다의 잔이 넘어져 있습니까? 돈주머니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탐욕이 마음속에 자리 잡다 보니 신령한 주님의 만찬과는 상관이 없게 된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자기에 대한 부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에 쌓아두는 하나님에 대한 부자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하십시오. 남보다 좀 더 가졌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인 것입니다. 성도는 물질을 사명감으로 관리하여야 합니다. 여자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열심히 화장을 하지만 화장을 진하게 한다고 해서 아름답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병들 면 아무리 진한 화장도 별 것 아니듯이, 마음에 물욕의 병이 들면 추해집니다. 탐욕으로 병든 마음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감출 수 없는 가룟 유다의 병과 다름없습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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