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햄릿 증후군이라는 결정·선택 장애를 앓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결정내리지 못해 점술가를 찾는 이들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입사 시험을 앞둔 한 20대 남성이 점술가를 찾아가 시험을 치를 때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골라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명문대 음대 졸업을 앞둔 피아노 전공자 박 모(25· 여)씨는 유학 갈 나라를 결정하지 못해 사주 카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카페를 찾은 목적을 말하기를, 미국과 독일 중 어디로 유학을 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내 사주가 어느 나라와 잘 맞는지 알고 싶어서 방문하였다. 이런 글도 남겼습니다.
2015년 연말 서울 명동의 한 사주 카페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발길을 돌려야 할 정도로 가게 안은 손님이 북적이었다고 합니다. 고객은 주로 여성이며, 또 서울 홍대 앞에는 타로라는 카드로 보는 점이 성황을 이룹니다. 사진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까지 맞힌다는 신사동 보살도 효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점보는 것을 일종의 문화라고 말합니다. 전혀 꺼리는 게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청년들도 심심해서, 그저 재미로, 인생 컨설팅을 받는다며 거리낌 없이 사주 카페나 인터넷 점집을 출입합니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무엇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점을 보게 하는 것입니까?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며, 불안을 느낄수록 미리 대비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확실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미신과 우상의 습관들 속에서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지, 믿음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1.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
0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오늘은 기독교의 기초적인 진리를 전하려고 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잠이 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초적인 설교라도 이 진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답을 할 수 있어야 성숙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때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도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구원적 측면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땅의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 02:07).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일반적인 피조물의 생명과는 다른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제외한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그 어떤 것들이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순환 법칙을 따라 나고 죽는 일만 계속할 뿐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애지중지 하는 반려동물도 영혼이 없는 이상 거기에 가족과 같은 대우를 할 필요가 없고, 거기에 과다한 물질을 투입할 필요도 없고, 죽었다고 거액을 들여 장례식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라는 문구를 잘 보십시오.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ζωἠ는 예수님 자신의 존재와 함께 그의 복음의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 생명에다 영원이라는 형용사를 수반하여 영생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합니다(요 03:15,16; 요일 05:12).
이렇게 말을 해도 됩니다. 생명은 곧 영생이다. 요한이 깨달은 예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 성부 하나님과 연합된 분, 창조자이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분,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시 36:08).
요 14: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바울은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놓고 그리스도 밖의 사람,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라고 선언합니다(엡 02:12). 사람의 가치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부터 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 분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지고, 이 영생을 근거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회복된다고 전합니다(요 01:12). 요한이 깨달은 진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생이 없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고, 결국은 영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요 05:24).
요일 05:11….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 예수님만이 죄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01:0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누구나 죄인이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롬 03:23)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 어떤 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범한 사람은 나름의 방법으로 죄를 지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왔습니다. 고대로부터 사람은 철학으로, 도덕으로, 선행으로, 종교생활로 혹은 수도생활로 죄를 지워버리려고 부단히도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까?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까? 첫째는, 원죄 때문에 죄인입니다. 원죄란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죄책과 부패성을 말합니다. 둘째는, 자범죄 때문에 죄인입니다. 자범죄는 원죄의 부패성을 가진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짓는 죄를 말합니다.
나는 한 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주장을 한다면 정말 그 사람은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것일까요?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죄와 상관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감각과 믿음의 눈이 없어서 착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자기보다 도덕성이 더 높은 수준으로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상당히 많은 죄가 보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죄가 보일 것입니다. 죄의 가장 무거운 영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사하시며. 무엇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십니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요일 01:07). 피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속량의 사역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타락된 성품까지도 깨끗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벧전 01:18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는 예배 때 자주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그 기도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입니다. 이 기도는 두 가지의 용서, 곧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이웃들 간에 용서하며 살겠다는 서약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날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도 여전히 죄의 본성 때문에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속량의 피 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담당의 피 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능력의 피 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3. 예수님만이 나를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
0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되었다는 말씀을 잘 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는 말씀은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안내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천국을 아무나 갈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 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심판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크고 흰 보좌 앞에 앉으신 주님 앞에서 받습니다.
반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집니다(계 20:15). 요한이 믿음으로 기록한 천국이 어떤 곳인지 계 20,21장을 보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 들어가는지 그 자격도 나옵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천국은 생명책에 기록 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친분이 있다고 그 사람을 따라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분명히 보입니까? 안 보인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구원의 길을 향하여 출발하십시오. 우상의 길, 미신의 길, 점보는 길에 서성이는 사람은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뿐이지요. 황금 집으로 가는 길도 예수님뿐이지요. 다른 길은 다른 길은 다른 길은 없어요. 아멘~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뿐이지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뿐이지요. 황금 집으로 가는 길도 예수님뿐이지요. 다른 길은 다른 길은 다른 길은 없어요. 아멘~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뿐이지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요 라고 하심은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는 뜻입니다. 이 유일한 구원의 길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인생의 길을 잘 찾아 갈 수 있다고 믿고 자신 만만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인생길을 그냥 제 마음대로 운전하며 나아가면 방황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알 수도 없는 길을 묻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가는 사람이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곧 그 길이요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참된 길이며 천국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40일을 땅에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특별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롬 0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 04:02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0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성령님의 감동을 입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점집이나 미신의 장소에 가지 않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교회를 출입하신 이상 세상길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주님께로 나오신 여러분, 기분이 좀 안 좋다고 교회 빠지고, 교회에서 못 마땅한 일 만났다고 차 버리고,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천국 가는 길을 알면서도 져 버리고 데마처럼 세상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딤후 04:10). 믿기로 작정을 하였으면 세상적이며 우상적인 것들, 미련 없이 다 던져 버려야 합니다.
내비게이션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즘은 굳이 별도로 살 필요 없이 스마트폰에 그런 기능이 들어 있어서 활용을 하면 참 편리합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가이드가 되시는 예수님, 내비게이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안내자 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은 행복의 길, 풍요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과 더불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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