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됩니다.(시 91:14~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2. 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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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혹 믿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이 닥칩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위험에 노출되고 생존의 위협을 받기 시작합니다.

만일 제대로 된 양육과 보호가 뒷받침 되지 못하면 미래는 암울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좀 평안한 삶, 좀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국가의 행정부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이 안정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당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난이라고 하는 불편함은 국가도 감당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불안정한 삶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복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합니다. 최상의 안정이 무엇이며, 그 안정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를 말입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많이 답답합니다. 정부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고,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바뀐다 해도 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북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과 환율이 그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은 김삼일 가족으로 하여금 최고의 안정된 곳과 최고의 안정 된 삶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의 평안한 삶, 행복한 통로로 나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심령이 답답하고, 현실의 고난으로 지쳐있을 때 우리에게 영적 신선함을 선물해 주는 인생 문제의 엑기스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됩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건짐을 받습니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건져주신다고 하시는데 어느 정도의 사랑을 해야 건져주시는 겁니까? 먼저 사랑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봅시다. 히브리어의 의미는 달라붙다, 애착을 가지다. 이런 뜻입니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좀 젊은 엄마들은 이 의미를 잘 이해 할 것입니다.

엄마가 가슴에 안고 있는 갓난아이를 내려놓으려 하면 안 떨어지려고 꽉 붙습니다. 놓지 않습니다. 행여나 떨어질까 붙들고 있다 그래도 놓칠 것 같으면 마지막엔 앙~ 하고 울어버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갓난아이가 엄마에게 매어달리는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02,절과 14절 말씀을 연결시켜 봅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03절에서는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져주시고, 14절에서도 건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까?

하나님 앞에 꼭 붙잡은 바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달라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끔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고백도 울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을 가는 성도라도 때로는 원하지 않는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의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실패의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죄의 구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까지 오면 혼신의 힘을 다해도 빠져나오기는 고사하고 더 깊은 세상의 수렁에 빠져 들기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줄이 끊어지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대로 가면 절망과 죽음 밖에 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줄이 끊어진다면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꼭 건짐을 받기 원합니까? 일단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부터 회복하여야 합니다.

다윗도 한 때는 원하지 않았지만 죄악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기도로 매어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18:0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던 그 사랑을 다시 회복하고, 또 위기의 상황에서 건짐을 받기 위하여 02,03절과 14절 말씀을 심령에 잘 새겨야 합니다. 02절과 14절을 연결시켜 보십시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가 막힐 수렁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40:02). 다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아무나 건져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이 환난을 당하거나, 고난과 고통 속에 파 묻혀 있을 때 눈동자처럼 아끼고, 보호해 주시고,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32:10; 17:08).

 

내가 그를 건지리라.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건져 주신다는 말입니까?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잘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의 한 사건을 예로 들겠습니다.

야곱의 11번 째 아들 요셉의 꿈 이야기 아시지요(37:06~09). 요셉이 꿈을 꾸었지만 꿈을 꾸었다고 다 됩니까? 꿈을 이루는 데는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하는데, 요셉에게는 그 대가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참담한 고통과 눈물겨운 삶이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살려다가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중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에 갇혔지만그러나  그곳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되고, 결국은 그곳에서 건짐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는 높임을 받습니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어떠한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계시된 말씀과 성령님의 깨닫게 해 주심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03:15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을 지닌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자존성과 영원불변성을 강조한 가장 합당한 이름입니다(03:14). 하나님은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모세 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의 히브리 형 야훼(הוהי, , 바브, , 요드)는 원래 자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경에 약 1,700번 정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음으로 발음하기 곤란해서 통칭 Yahweh로 부릅니다.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안다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믿음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지식과 함께 믿음과 순종을 하면서 그 이름을 체험적으로 알며,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를 높이리라. 하나님은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이 하만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될 위기에 처했지만 결코 그들을 모르는 체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해치려 했던 하만을 오십 규빗 장대에 매달게 하였으며(07:09), 반면 믿음의 사람 모르드개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는데 그 명성이 페르시아 제국에 널리 퍼졌습니다

 

09:0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 예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께로부터 존귀하며 권세 있는 신분과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였던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Carter, Jimmy의 믿음의 행적입니다. 이분이 조지아 주 주지사(1977~1981)로 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유세기간 중에 주일을 맞으면 표를 얻기 위해 큰 교회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평소에 다니던 고향 조지아 주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23년 동안 매주일 해왔던 주일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대통령 유세에 바쁜데도 주일에는 미국 어느 주에 있든지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 주 자기 고향 교회로 주일을 지키러 왔습니다. 어느 주일에 약 70명의 기자들이 그를 취재하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지미 카터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기자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이 나를 취재하기 위해 여기 오셨지만 다음주일에는 여러분이 소속한 교회에 꼭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하나님을 알고 우선순위에 두었던 그를 하나님께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높여 주셨고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도 받게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는 응답을 받습니다.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일시적인 기도보다 계속적인 기도를 말하는 것이고, 간절히 구하는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입술로만의 기도가 아니라 생활이 기도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과 그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신령한 법칙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지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까?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기도를 통해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성경에는 기도와 응답에 관한 약속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 좀 한다는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다니며,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운명을 묻고 점치듯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였고, 사람을 의지 하였고, 마지막엔 엔돌의 무당을 찾아가서 헛된 짓을 하다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수록 더욱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33:0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0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슬픔이 충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울한 사람, 불안한 사람,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반면 기도하는 사람 얼굴은 기쁨이 넘쳐납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용기와 희망이 솟아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기도로 무장이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 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어떤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입니까?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어떤 회사가 잘되고 복을 받습니까? 기도하는 회사입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표시가 무엇입니까? 기도의 무릎들이 있는 곳입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118:05),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120:01).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또 하나 더,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30:02),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를 고치셨나이다. 환난과 고난과 고통 중에 처하였을 때 우리가 마지막 선택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특정인에게만 응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응답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맹인 바디매오도 이 원리를 따라 예수님께 부르짖고 매어달려 눈을 떴습니다(10:52).

 

0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보석상을 하는 한 부호가 유럽 여행을 하다가 진귀한 보석을 발견하고는 거액을 주고 그 보석을 샀습니다. 물론 자신의 나라에 가지고가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석상으로 돌아온 후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살 때는 보지 못했던 작은 흠결이 있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 이런 흠결이 있다니. 그는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감정가들도 그 흠결이 보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석은 제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작은 흠결 하나로 한없이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보석상 주인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보석을 다시 원래의 가치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는 오랜 노력과 고뇌 후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석의 작은 흠결에 장미꽃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장미꽃 조각 하나로 보석의 가치는 몇 배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보석상 주인은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그 작은 흠결은 어쩌면 우리의 불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지고 있는 흠결을 성령님으로 녹여버리면 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읍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높임을 받습니다.

간절한 기도로 응답을 받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고 기도로 오늘 우리의 흠결을 치료받읍시다. 생명 있는 것은 반드시 죽고, 형체 있는 것은 반드시 부서집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모든 명예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모든 부도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움켜쥐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 속에 갇혀서 혹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흔들리는것은 아닙니까? 믿음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돌아갑시다.

 

닭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7초라고 합니다. 닭은 7초 전에 있었던 일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벌써 잊고 불평과 원망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까? 새롭게 믿음으로 힘차게 출발을 합시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됩니다. 이 제목을 따라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간직하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