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제일 불안정한 나라를 든다면 이스라엘입니다. 국토는(20,770㎢) 경상북도(19,027㎢)보다 조금 더 큰데다 거의 쓸모없는 황무지, 사막이 절반 넘습니다. 인구는 약 782만 명 정도로서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키부츠 농장을 통하여 식량자립을 하고, 농축산물을 수출하여 일류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지정학적으로 보면 절대 불안정한 위기의 나라인데도 성공한 나라로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토라농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좀 어려운 용어입니까? 예, 토라는 히브리어로 율법서를 말하며, 때로는 구약성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씀농법, 좀 더 세분하자면 이사야서 43장에 기록된 농법으로 황무지와 사막을 일구어 성공한 것입니다.
말씀농법의 배경이 바로 오늘 설교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이 없는 사막 땅 이스라엘에 농로를 내고 수로를 열어 농사를 짓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 농법 원리로 모든 환경에 적용을 합니다.
불가능처럼 보이는 조건 앞에서도 안 된다가 아니라 되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찾아냅니다.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 말씀농법 원리를 우리 교회에 적용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부흥이 안 되는 조건들이 많았지만 안 된다고 포기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수동적으로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불편한 일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안 되는 일이니까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하시도록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합시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정했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가 과거에서 나와야 하나님이 새 일을 하십니다. |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을 당하였고, 남 유다 또한 바벨론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절망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런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찬물 끼얹는 것 같은 소리를 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이전 일이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하였던 모세 시대의 드라마틱한 기적,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던 그 사건을 말합니다(출 14장). 이미 지나간 그 출애굽 때를 재현 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되살릴 수 없는 과거에 얽매여서 신세타령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지나간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여 갇혀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억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은 현재의 삶을 파괴하기가 쉽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 그런 민족이야말로 패배자의 길 아니겠습니까? 과거의 실패와 열등감에 매여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일이 성공이든, 실패든, 일단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는 내일을 내다보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앞으로 나갑시다. 이렇게 외치며 나가야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시면 아무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 115:0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어떤 사람이든 가슴에 품은 그 믿음의 생각이 어떠하냐? 품은 그 생각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복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고 아니면 놓칠 수도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기 욕심과 본능대로 살면서 지나친 교만, 욕심, 더러운 마음에 매여 있다가 결국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비전, 미래의 비전을 품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겪는 시련이나 고통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아픔 속에서 나의 믿음이 힘 있게 일어서기를 기대하십니다. 살다 보면 여러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위험 같은 시련들이 시시각각으로 찾아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으로 무너지는 것원치는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환경에서 만나는 상대가 골리앗처럼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느냐 않느냐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기고 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불신앙의 일을, 하나님을 배경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롬 0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2. 이제부터 새 일을 행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이루실 일을 새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 새 일이라고 합니까? 과거의 애굽에서의 출애굽보다 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을 영감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새 일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 어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당시의 바벨론은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그 세력은 일개 나라가 아니라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고, 그 어떤 나라도 감히 대적하지 못하는 절대권력의 터전입니다. 세상의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는 것 같은 난공불락의 권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절망에 있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이런 권력을 깨뜨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새 일에 대한 묘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던 그 광야와 사막을 되돌아 올 수 있도록 길을 내고 물을 주시겠다는 특별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중에서 이사야의 이런 메시지를 듣고 받아들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십 년도 채 못 되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일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에서 해방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노래한 성경이 있습니다.
시 126:0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0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우리도 세상을 살다보면 도저히 헤어 나올 틈이 없는 죽음의 환경 같은 것들이 가정에, 사업에, 교회에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대부분 사람이 절망의 늪에 빠져 버립니다. 더러는 안타깝게도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교회도 건축을 한 후 부채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가끔은 이단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눈물겹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광야와 사막 같은 가정에, 사업에, 교회에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강을 내어 생명의 생수가 흐르게 해 주시면 그 때는 분명히 회복이 됩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광야 같은 우리 교회에 은혜의 강물, 생수의 강이 흘러서 부흥이 되게 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016년 여러분의 가정에 길이 열리고, 사업에 길이 열리는 비전을 품으십시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 할 수 있는 비전을 품으시면 됩니다.
마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러분, 과거에 수없이 실패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예수님 안에서 바로 서기만 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길 열어주심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런데도 문제가 있습니까? 예,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으로 미래를 열어갑시다.
3. 하나님의 새 일은 지금도, 미래에도 역사하십니다. |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영혼도, 이성도 없는 짐승이 어떻게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베푸실 놀라운 은혜의 생수는 들짐승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원의 은총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뿐만 아니라 피조물 전체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20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광야와 사막에 강물이 흘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마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광야에 물줄기가 흘러간다면 이는 이스라엘의 생존을 지켜주는 생명의 원천이 흘러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그때는 사람의 눈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이루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좋은 생각, 긍정적인 믿음의 생각을 좀 많이 합시다.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사람의 생각 속에서 새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창조적인 인생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영의 생각 속에 성공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생각을 심읍시다. 그러면 믿음의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을 심읍시다. 그러면 믿음의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믿음의 습관을 심읍시다. 그러면 믿음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그 나오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지혜의 왕 솔로몬은 우리에게 귀한 잠언을 전합니다.
잠 0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커널 샌더스(1890~1980 Colonel Sanders)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나이 64살에 사업에 크게 실패를 하여 실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60대 중반인데 이제 무슨 새로운 도전을 또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가라앉고, 병도 생겨서 의욕이 무너진 삶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창밖에서 힘차게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리자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다리가 하나 없는 장애인이 목발을 짚고 지나가면서 기쁘게 찬송을 부릅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부릅니까? 그러자 그 쪽에서 이렇게 답을 합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집이 아니고 저 천국 하나님 나라가 내 집인데 내가 이제 그 나라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서 노래를 부릅니다.
커널 샌더스가 이 말을 듣자 자신도 예전에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를 찾기 시작하였고, 은혜를 크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건강도 회복되고 한 날은 꿈인지 환상인지 눈앞에 환하게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은 닭들이 철새처럼 날아가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게 다 뭡니까? 했더니 하나님이 깨우쳐 주시길 저걸로 튀김을 만들어 팔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다시 닭튀김 장사를 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KFC(Kentucky Fried Chicken)입니다.
예,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성공은 믿음으로 도전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새 일을 하신 결과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도 영의 생각이 들어오면 새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생각이 믿음으로 바뀌면 그 곳에 하나님의 새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새 일 하시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때로는 암울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겠지만 그럴수록 좋은 생각 많이 하면서 하나님께서 광야 같은 환경에서도 새 일을 하시도록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군정(軍政)을 만든 사람은 군중이 아닌 소수이었으며, 민주화를 이룬 사람도 군중이 아닌 창조적 소수이었습니다. 인류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사람도 극소수의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며, 각 문명권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도 그 사회의 창조적 소수입니다.
이런 원리는 교회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일을 당했든지, 아니면 반복되는 실패를 하였다 할지라도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시니 그 약속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사람은 과거지향형이지만 예수님은 미래지향형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사람들은 돌로 치려고 할 때 그녀의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08:11). 이제 남이 변화되고 환경이 변화되길 바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새롭게 출발합시다.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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