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마다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당시 사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용어로서 요즘 키워드는 단연코 금수저입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신조어로 등장한 수저 이야기를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명 수저 계급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부모님의 재력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수저론의 기준표를 인터넷 검색창에서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다이아수저.
자산 30억 이상에다 가구당 연 수입 3억 원 이상 상위 0.1%, 금수저. 자산 20억 이상, 가구 연 수입 2억 원 이상 상위 1%, 은수저. 자산 10억 이상, 가구 연 수입 8천만 이상 상위 3%(5%), 동수저 자산 5억 이상, 가구 연 수입 5천 5백만 원 이상 상위 7.5%(10%), 흙수저. 자산 5천만 이하, 가구 연 수입 2천만 원 미만 상위 50% 정도입니다.
요즘 청춘 세대 사이에 매기는 인간 등급표로서,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수저에 속하는지 가늠이 됩니까? 금수저인지 은수저인지 아니면 동수저, 흙수저인지 말입니다. 거의가 흙수저라고 생각 하실 것 같습니다. 이 수저 계급론에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투영돼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언젠가부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란 말이 회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5포세대가 나왔고, 이내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라는 말이 회자됩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부재 등으로 인한 20~30대 청년층 흙수저를 말합니다.
그러면 약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신 것 같습니까? 흙수저입니다. 여관방 하나 구할 수 없는 경제 약자에다 요셉과 마리아의 율법의 정결의식과 관례를 지키는 과정들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눅 02:07, 23,24).
오늘 말씀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논쟁거리인 금수저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을 다듬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나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입니다. 로 정했습니다. 은혜 받는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1. 청년의 시기를 믿음으로 관리 하여야 합니다. |
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여기 청년이란 꼭 육체의 나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젊은 생각, 젊은 믿음이 있다면 육체의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생명이 아닌 그 삶에서 발산되는 생명력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청년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젊었다고 하여 다 청년이 아니듯, 또한 나이가 많다고 하여 다 노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다시 청년으로 다듬어지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 UN에서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해 측정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사람의 평생연령을 6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습니다. 미성년자는 0~17세까지, 청년은 18~65세까지,중년은 66~75세까지, 장년은 76~85세까지, 노년은 86~95세까지 그리고, 96세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사람의 인생 전반에서 은혜와 감동을 잃어버리기 쉬운 때가 언제인 것 같습니까?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면서도 갈등이 가장 심한 때가 언제인 것 같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나,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갈 때입니다. 또 배우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는 그때부터 사회에 조금 적응이 되는 20대 중반 30대 후반 사이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2015년 12월 뉴스를 보니 대기업 두산 인프라코어가 최근 입사한 지 1~2년 밖에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을 종용하였습니다. 감원바람이 매섭게 부는 분위기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한다며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겼는데 그래서 요즘 많이 쓰는 청년실업이란 용어가 실감이 납니다. 이 청년실업 문제로 정부는 물론 정치권의 여야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안으로 노동법 개혁을 들고 나왔고, 그런 가운데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수당 정책이라는 묘안을 제시했습니다. 2016년부터 저소득층 미취업 청년 가운데 사회활동 의지가 있는 3000명에게 매월 50만 원씩 6개월간 지급한다는 복지정책입니다. 여당이 populism이라며 적극 반대함으로 막혀버렸습니다.
저는 이런 복지정책을 잘했다, 잘못했다는 식의 의견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청년실업 문제 즉 취업문제의 심각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 앞가림하기에도 벅차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 믿음의 청년들은 주눅 들지 말고 주저앉지도 마십시오.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여야 합니다.
자칫 판단을 흐리게 하여 탈선의 길, 쾌락의 길로 뛰쳐나가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관리 잘 하여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였는데 이제는 부끄럽게도 세상이 교회의 청년들을 걱정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문제입니다. 성경이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전 11:09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청년 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황금의 때입니다. 분명히 꿈에 부푼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터전 안에서 삶을 디자인하십시오. 만일 믿음의 삶을 이탈한다면 그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해 줍니다. 우리 청년들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세상으로 흘러갑니까? 그러면 주님께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락된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청년을 왜 새벽이슬에 비유합니까? |
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히브리어에서 젊음의 어원은 새벽입니다. 청년은 새벽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루의 출발점이 새벽이고 보면 가장 왕성하게 일 할 수 있는 때가 청년의 시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청년을 놓고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새벽에다 이슬을 하나 더 추가하였는데, 그러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의 환경에서 이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10월부터 4월까지 약 6개월 정도 비가 내립니다. 이때를 우기(雨期)라고 하고, 4월 이후부터 10월이 되기까지는 거의 비가 없기 때문에 건기(乾期)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5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는 혹독한 여름철, 뜨거운 태양열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지속됩니다만 식물이 죽지 않고 잘 버텨 냅니다. 어떤 이유로 해서 잘 버틸까요? 비록 한낮의 더위로 완전히 푹 시들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지만 밤마다 듬뿍 내리는 이슬 때문입니다. 이슬이란 공기가 식어 이슬점 이하로 내려 갈 때 수증기가 작은 물방울이 되어 물체의 표면에 맺히는 것입니다. 이 이슬이야말로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생명의 물질입니다.
호 14:0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이슬이란 조용하게 밤에만 내리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연적인 이 이슬의 현상을 가지고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적 감각으로만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때에 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이고 불신앙적인 감각으로는 그 이슬 같은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무척이나 각박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생명줄입니다.
이 은혜의 생명줄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도 임하고, 기도하는 중에도 임하는 것이어서 영적 감각이 살아 있는 자 만이 은혜를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을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청년인 우리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생기가 있어야 함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은 헌신하는 자의 영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입은 성도의 모습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은 하나님의 나라를 신선하게 하고, 만물을 소성시키고, 성장과 결실을 하게 한 후 소리 없이 감추어지는 성도의 모습을 뜻합니다. 은혜는 보이지 않으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모두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어 소리없이 교회를 아름답게 다듬는 일에 잘 사용되기를 축원합니다.
새벽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역경의 밤에서는 평안을, 환란의 밤에서는 평정을, 시험의 밤에서는 감당을, 슬픔의 밤에서는 새로운 기쁨을, 질병의 밤에서는 치료를 누리게 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은혜는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이 은혜는 받는 자만이 알 수 있고 받는 사람끼리는 통합니다. 내가 새벽이슬 같은 은혜를 받는다 싶으면 내 모습을 옆의 분이 아십니다. 한 번 물어보세요. 또 은혜 받는 옆의 분 표정도 보십시오. 새벽이슬 같은 생명의 은혜를 받는 모습입니까?
3. 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
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새벽이슬 같은 주님의 백성이요, 청년들이라면 바로 하나님의 힘 있는 일꾼들 아닙니까? 그러면 그에 걸맞게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옷을 말 할 때는 그 사람의 신분과 직업과 마음의 자세를 나타내 줍니다.
옷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가려야 할 부분을 가리워 주면서도 그 모임의 성격을 따라 입어야하기 때문에 상황 별로 옷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흔히들 옷이 날개라는 말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옷은 어떤 의미에서 삶의 표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입는 옷의 기능에 따라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좀 가벼운 옷을 입으면 가볍게 행동하고, 좀 무거운 옷을 입으면 무겁게 행동하고, 좀 야한 옷을 입으면 야하게 행동하고, 좀 편한 옷을 입으면 편하게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옷을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백성, 김해삼일교회 믿음의 청년들이 입는 옷은 어떤 옷입니까? 03절의 문장 구성으로 보아 이 옷은 세상적인 옷이 아니라 영적인 옷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성도가 입는 옷에 대하여 아주 적절한 설명을 합니다.
롬 13:12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빛의 갑옷을 입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내 삶에서 잘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갈 0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일체감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입지 않은 사람은 천국시민 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면 가리지 못할 허물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구원의 옷이요, 의의 옷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먼저 세상적인 옷을 벗기를 원하십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으로 인한 의의 옷을 입고 예수님이 잘 보이는 말과 행동을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교회 올 때 어떤 옷을 입고 오십니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인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옷은 고가품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옷이면 됩니다. 어떤 복장으로 오십니까? 좀 경건한 옷입니까? 어떤 헤어스타일과 어떤 디자인의 옷을 입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고, 봉사하러 옵니까? 혹 혐오감을 주는 모습은 아닙니까? 즐거이 헌신한다는 말씀을 따라 가만히 있지 말고 거룩한 충성의 옷, 즐거운 헌신이 옷을 입으십시오.
경건한 청년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교회에 올 때 비싼 것 입으려 할 필요 없습니다. 예의를 갖춘 옷이면 됩니다. 믿음의 청년 여러분 어떤 복장을 하고 다닙니까? 어떤 머리모양과 색깔을 하고 다닙니까? 혹 사람들에게 눈살 찌푸리는 모습은 아닙니까? 바꾸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꾸십시오.
벧전 03:0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2015년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금수저(1위, 19만 7848건)에 이어 헬조선(hell·지옥과 조선(朝鮮)을 합친 신조어, 2위, 15만 7537건)입니다. 헬조선이 신조어를 넘어 사회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입니다.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절망, 분노가 드러난 단어로서 절망적 현실 인식이 계속된다면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과 얽혀 있는 이상 시급히 해결해야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새벽이슬 같은 우리 믿음의 청년들에게 밤중과 같은 어두운 현실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해 얼마든지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안내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밝은 낮과 같은 환경과 어두운 밤과 같은 환경이 수시로 교차합니다. 때로는 잘 나가고, 성공하고 번영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순간에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어두운 밤 같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은 깊은 밤에 내리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좌절 가운데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혹 하나님께 외면을 당하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믿음의 청년들, 우리교회 성도들을 돌아보십니다. 굳게 일어서라고 힘을 주십니다.
욜 0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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