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나는 어떤 서원을 합니까?(전 05:04~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0. 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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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부흥회에 참석을 했다가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 서원이 굳이 잘못이라는 것 보다 과연 건전한 서원일까요? 목회자가 되는 것은 은혜 한 번 받고 서원한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소명은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내적 소명과 겉으로 드러난 외적 소명입니다.

이 두 소명이 조화를 잘 이룰 때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명감을 잘 살피지 못한 체 즉흥적인 서원을 하고서 괴로워하는 경우는 진정한 서원이라기보다 즉흥적인 감정의 자기 다짐 수준입니다.

 

서원에는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자신이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께 목회를 하겠다는 서원이 있고, 결혼을 포기하면서까지 교회를 섬기겠다는 독신의 서원도 있습니다. 또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을 하겠다는 서원이 있고,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나실인 서원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서원들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모든 여건을 따라 하여야 하고, 하였으면 지켜야 합니다.

그저 생각 없이 쉽게 서원을 하고 쉽게 파기를 한다면 그것은 덕이 안 되는 저급한 수준의 코미디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서원이 무엇인지? 서원을 하였으면 그 서원을 어떻게 감당 할 것인지에 대해 성경을 바탕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서원(誓願)이 무엇입니까?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서원이 무엇입니까?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나 또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 않은 분들은 이 서원이라는 특별 기도에 대해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 서원(Vow)이라는 의미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맹세, 혹은 굳은 약속이라는 뜻의 기도입니다.

맹세라는 차원에서 볼 때 서원이란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고, 봉사와 헌신을 드리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서원이란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경우, 자녀를 드리는 경우, 가축들을 드리는 경우, 가옥을 드리는 경우, 자기의 토지를 드리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서원이란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드리겠다는 약속기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서원에 대한 여러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서원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실천하였다는 점입니다. 우선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가던 중 벧엘이란 곳에 도착하여 잠을 자다 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서원을 합니다.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②한나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작은 부인으로부터 아들 낳지 못한다고 심한 스트레스를 당한 후에 성전에 나와 아들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대신 아들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삼상 0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선지자 요나는 자기의 허물 때문에 바다에 던짐을 당하였지만 다시금 물고기 뱃속이라는 극한 상황에 갇혀서 살려달라고 서원기도로 매어달립니다.

 

02:0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0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의 선교 현장에서 16개월을 머물다 다음 선교지로 이동하면서 겐그레아라는 항구도시에서 비장한 각오로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18:18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여러 서원 가운데 특별히 사람을 서원의 대상으로 삼을 때는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서원은 정당성 여부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큰 축복으로 열매를 맺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11:30~36).

 

 

 2. 조급하고 경솔한 서원을 하지 마십시오.

 

0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급한 일을 만나거나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을 때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원기도를 더러 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십시오. 응답을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식의 조건부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서원을 하고 난 후가 문제입니다. 서원을 해 놓고도 안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06절 말미에서 하나님이 진노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를 합니다.

아마 서원을 하고도 안 지킨다면 그것은 의미도 모르고 그저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집회 때의 강사의 강요에 못 이겨 한 신중성 없는 것일 것입니다. 신중성 없이 한 서원은 평생 그 서원이라는 것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원의 성격을 띠는 맹세에 관한 일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십니다.

 

0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옳다, 아니라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헛맹세,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하여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을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주변을 잘 살펴보십시오. 함부로 서원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하여 자기 인생에 족쇄가 되고, 발목이 잡혀서 심적으로 많은 고통 가운데 지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또 자식을 하나님 앞에 너무 성급한 마음이나 충동적인 마음으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해 놓고 정말 고통 가운데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건전한 기도원에 가서 서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서원을 강요당하거나 충동적으로 서원을 하고 오기도 합니다.

 

또 더러는 주변 사람들이 영웅적인 심리로 서원을 하니 나도 서원을 하는 일들도 종종 일어납니다. 잘못된 서원을 해서 자신의 인생을 그릇치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까지도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또 더러는 부모님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너는 장차 목회자가 되어라 하면서 서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또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일찍부터 목회자에게 딸을 보내겠다는 서원도 합니다. 다 믿음으로 하는 일인 만큼 복 받을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당사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한 서원하다 보니 자칫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욕심을 아들에게 강요해서 건강한 목회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들의 인생에 걸림돌을 놓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원이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목회의 길이 아니라 사업의 길로 나아가면 더욱 불안정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이란 성공 할 때도 있고 실패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이 좀 안 되면 심리적으로 부모님이 서원한 것을 내가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이 막으신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늘 불안한 생활을 합니다. 혼란 속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제가 아는 여자 한 분이 있습니다. 일찍부터 성경학교를 다니면서 시골에서 전도사 일을 하였는데 평생 하나님께 독신으로 지내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독신으로 지내는 게 얼마나 힘 드는 일입니까?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독신으로 지내는 거 이제 취소합니다. 그리 알고 이해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서원할 때는 언제고 또 취소를 합니까? 결국 결혼했습니다. 이거 다 올바른 서원이 아닙니다. 자기 편리대로 하나님을 여기 저기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는 행위는 복이 아니라 화를 불러들이는 길입니다.

   

 

 3.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0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성도 여러분, 부모님이 자녀를 놓고 서원을 한 것은 완벽한 서원으로 볼 수 없습니다. 서원의 성격상 그 자녀가 지킬 수고 있고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혹 이런 일에 해당이 되어도 너무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서원도 아니며,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에서도 그런 식의 서원은 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소명감 없는 사람이 충동적으로, 혹은 주변의 강요로 서원을 실천하였다고 합시다. 그 길을 걸어가는 본인도 한 평생 고달프고, 교인들도 고달프고, 가족들도 고달플 것입니다.

 

대신 사람이 아닌 물질에 관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하였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건축헌금이나 이와 같은 것들을 마음에 가지고 있을 때는 상관없겠으나 하나님께 작정하고 공회에서 공개하였을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저의 목회에서 서원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다 신령한 복에서 끊어지더라는 사실입니다. 장포교회의 고집사 건축헌금 사건, 가락교회의 배집사의 건축헌금과 종각헌금, 김삼일의 석 모씨의 건축헌금, 정 모 씨의 오르간 등.

 

서약서를 쓰고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공증을 받아 놓아도 나중에는 다른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번복하는 경우들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헤프게 약속을 하는 사람은 그 약속을 헤프게 어깁니다.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서원은 속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일을 자꾸 뒤로 미루면 나중에는 그 서원을 지키지 않게 되는 큰 허물을 남기고, 복이 오는 통로도 막혀 버립니다.더러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갚겠다고. 그것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서원을 하였다면 속히 지키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원의 성격에 해당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정을 하고 난 뒤에 성의 없이 시간을 보내는 자를 향하여 우매자라고 규정하십니다. 이런 우매자에게는 채찍만이 합당합니다(26:03).

 

0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서원이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서원을 하였으면 그 일을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미루다가 보면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오늘날 우리 교인들이 저지르는 잘못처럼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도 쉽게 그 마음이 변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04절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기록 된 것입니다. 서원을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이고,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분명 진노하사 모든 복된 길을 차단해 버립니다(06). 성도 여러분, 예물을 바치고자 하나님 앞에 굳게 작정을 하였습니까? 그렇다면 더디 하지 말고 마음에 작정한 대로 속히 실행에 옮기십시오.

자칫 서원을 해놓고 실행하지 않음으로 다른 형제에게 아, 서원을 하여도 적당히 넘어가면 되는 것이구나. 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실족시키는 것, 이거 무서운 일입니다. 나도 너도 함께 복이 오는 길을 막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강화도에는 유독 교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왜 교회가 많은지 조사를 하였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1900년대 강화 북부마을에 종순일이라는 돈 많은 유학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에게 돈을 빌려 쓰고 살았습니다.

이 유학자가 복음을 받고 기독교인이 되어 성경을 읽었습니다. 18장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인데 이런 내용입니다. 임금님에게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둡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임금님이 화를 내면서 그 사람을 다시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종순일이 이 말씀을 읽다가 충격을 받고 며칠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놓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자기에게 하는 말로 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채무자들을 다 불러 모았는데 채무자들은 빚을 갚으라는 줄 알고 모두 떨고 있습니다.

그때 종순일이 채무자들에게 마 18장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마 18장을 읽고 충격을 받았소. 여기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알았소. 나는 오늘부터 여러분의 빚을 모두 탕감하기로 하였소. 하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빚 문서를 모두 불태워 버렸습니다.

또 마 19:21절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읽고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여 강화주변에 교회를 세우기로 서원하고 실행에 옮김으로 강화에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말씀은 듣고 아는 것보다 말씀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3:23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