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하나님의 사명자는 두려움을 이깁니다.(사 43: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9. 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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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워하는 감정으로서 그 종류가 무려 645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두려움의 양상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려움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입니다. 두려움은 감정적으로 무섭다고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때부터 그 삶이 황폐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두려움을 유발하는 약 여섯 가지 요인을 안고 있습니다. 고통의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연약함의 두려움, 외로움의 두려움, 혼돈의 두려움입니다. 이런 두려움들은 모두가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갑자기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가 있고, 원치 않게 교통사고를 당할 때도 있고, 죽음의 질병에 봉착 할 때도 있고, 경제적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고난의 폭풍을 만나면 대부분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친했던 사람도 도움의 손길을 벌릴까봐 미리 얼굴을 싹 바꾸어 버립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선고 앞에서 백성들이 가지는 마음가짐입니다. 한 마디로 크게 낙담하고 두려워하는 멘탈(mental) 붕괴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어 문제를 시원히 풀어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쪽으로 갑자기 환경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불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갈 것이지만 이후에 하나님의 때가 되면 마침내 환경을 넘어서는 은혜의 역사가 임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1. 지금 이스라엘은 절대 두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0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성경 역사에서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왕 이후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북 이스라엘은 B. C 721년 경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남 유다는 135년 정도 더 버티다가 B. C 586년 경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나라가 망했으니 당연히 예루살렘은 파멸이 되었고, 궁전과 성전은 모두 불탔으며, 거기에 있던 귀한 집기들은 모두 약탈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가족을 잃었고, 왕족, 귀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니 그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강을 건널 때에,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이는 극심한 위험이나 재앙을 당할 때 사용 되는 상징적 표현으로서 포로의 처지로서 겪게 될 운명(?)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물과 같은 위험, 강과 같은 위험, 불과 같은 위험이 없다거나 아니면 가뿐하게 넘어간다는 그런 표현이 아닙니다.

성도라도 물 가운데로 지나가고, 불 가운데로 지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땅 위의 어려움에서 예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업이 실패해서 망하기도 하고, 죽을병에 걸려 수술을 받기도 하고, 환난이나 시험을 수없이 당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극한 상황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02절 말씀을 보면서 성경의 어떤 기사가 떠오릅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이내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벗어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역사가 떠오릅니다(03:16~18).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길에도 고난의 풍파가 일어나고, 불꽃이 삼킬 것 같은 고난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때는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그 날개 아래 감추어 주십니다(17:08). 절대로 해 받음이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상 그 무엇이 우리를 흔들겠습니까? 성도 여러분의 삶의 현장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98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도의 마더 테레사(Madre Teresa)가 어느 날 영국의 방송기자와 만나서 회견을 하였습니다. 그때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평생을 길거리 노숙자와 함께 했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는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이웃이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이것이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버려진 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살릴 능력도 없고 도와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베풀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 안에서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2.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0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제국의 세상 권력 앞에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권능 앞에서 개인들의 운명은 마치 태풍에 날리는 낙엽과 같은 신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41장부터 계속 반복되는데, 이런 상황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느끼는 현실 인식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믿었던 하나님이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냐? 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면 이처럼 처절하게 당할 수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의식을 불신앙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현실의 환경은 얼마든지 의문을 제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01).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05절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5절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배후에서 도우시는 하나님, 즉 백그라운드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주 약한 존재인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우울증에 사로잡혀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01절과 05절에서 이렇게 위로를 해 주십니다. 내가 너를, 이런 식의 표현입니다. 5번이나 아주 따뜻하고 다정하게 반복을 합니다.

별 친하지도 않는 사람이 내가 너를, 이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 분이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이 예언은 역사학자들이 B. C. 538년 일명 고레스 칙령(勅令)으로 성취 된 것으로 인정을 합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더 확대하여 해석하자면, 육신적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의 사명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0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07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행하게도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70년 포로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우리가 믿게 된 것이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우리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작품은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 모두를 놓고도 부족한 점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로 보는 시각을 깨달으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연결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삶의 최우선으로 정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삶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살아 갑니까?

우리를 믿게 하시고 봉사하게 하신 이유도 다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쓰임을 받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2.22.~1799.12.14.)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곧 죽을 것이라고 주위에서 말했습니다. 17, 22세 때 세 번 말라리아에 걸려 거의 죽다시피 했고, 19세 때 천연두에, 20세 때 늑막염에 걸려 고생을 했고, 35세 때에는 급성 이질에 걸려 또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43세 때에는 치아가 거의 못 쓰게 되어 고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부모는 조지 워싱턴에게 너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란다. 라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워싱턴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주셨기 때문에 사명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약함과 질병을 극복하고 자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건강과 지혜를 주셨고, 사람들 앞에서 존귀한 인물로 세워 주심으로 인해 43세인 1775년에 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영국을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끈기 있게 싸워 승리함으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후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사명자. 이 자부심이 온갖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영국과 불리함 속에서 여러 해를 싸우면서 결국은 이겼습니다.

 

이런 자부심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그때는 승리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재정비 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도구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존재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자로 인식하십시오.

시련과 고난을 만납니까? 하나님이 극복하게 하시며 승리하게 해 주심을 믿으십시오. 바울은 항상 자기를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종이라면 주인의 재산이요, 소유물 아닙니까? 오직 주님의 원하는 방향으로 살겠다는 각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권위 있는 기독교 잡지사에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불편하고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가? 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1위는 40일 금식한 사람, 2위는 철야기도 잘 하는 사람, 3위는 신학 공부한 장로님 순이었습니다.

사실 금식, 기도, 신학은 개인적인 영적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귀중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자기의 신앙성장에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정죄하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에를 들자면, 40일 금식하고 내려와서 하는 말이 우리 목사님은 은혜가 없어, 우리 장로님들 더 기도해야 돼, 우리 남전도회가 어떻고, 여전도회가 어떻고, 이런 식으로 눈이 세모꼴이 되어서 누구를 칠까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인 스펙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10~)가 새벽기도 할 때, 지미가 누구냐? 하지 말고, 누가 지미를 모르느냐? 로 바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음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대통령 출마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꿈을 가지십시오, 꿈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목표가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혹 두려운 일로 염려를 하며 삽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동참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영적 내공을 갖추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동참하십시오.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