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 창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진짜와 가짜 구별 잘하셔야 합니다. 말씀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 님 & 어머니 하나님을 믿습니다. 안상홍 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를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양의 옷 입은 이리들에게 노략질당할 저를 구원하신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모든 것이 다 진짜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거짓교회를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영혼 구원 유/무가 달린 중대한 문제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허무맹랑한 소리인데도 그럴듯하게 들립니까? 예,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어서 올바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눈을 뜨고, 모든 일을 잘 분별하여 어리석은 길을 가지 않도록 진리 위에 자기를 잘 건축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을 잘 영접하고 섬기는 것 같지만 영접하지 못하여 주님으로부터 책망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어서 예수님을 잘 영접하지 못한 것 같으나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한 여자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행적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시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름은 시몬이고 신분은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이라면 이스라엘 사회의 중류층을 형성하는 특권층입니다. 사회에서도 나름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름이 시몬인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청했습니다. 상당한 파격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같은 급이 아니면 식사 모임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 규례와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라고 계속 비난하였습니다. 세리나 창기 같은 자들과 어울리는 죄인으로 정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식사 초청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아주 높게 평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몬이 예수님을 초청한 후에 큰 결례를 하였습니다. 왜 결례인지는 당시의 풍습을 이해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귀한 분을 초청하면 동네 사람은 연회장 주변에 모여 초청한 손님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귀빈을 위해서 몇 가지를 예의로 환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랍비 급 귀빈을 초청할 때는 주인이 직접 나가서 ➊입맞춤의 인사를 합니다.
이어 귀빈이 자리에 앉으면 하인은 ➋물 항아리를 가지고 와서 발을 씻어 줍니다. 그리고 귀빈이 식탁에 앉으면 하인은 귀빈의 ➌머리에 약간의 올리브기름을 뿌려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집에 도착하였을 때 시몬이 달려 나와 존경의 입맞춤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발을 씻을 물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올리브기름도 붓지 않았습니다.
시몬이 어떤 의도를 품고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청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합니까? 이렇게 행동할 바에야 차라리 예수님을 초청하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44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여기에서 시몬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괜찮은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그저 일반 사람들 밥 한 끼 주는 격으로 대합니다. 생색내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기본 예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시몬, 이 사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정에 초청하고도 정중한 예의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시몬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하고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바리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칭찬받는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받았을 것입니다. 결국 시몬은 구원의 복과 칭찬받을 기회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참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하기 전에는 진정한 성도가 아닙니다.
쭉정이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고 그분만을 믿고 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몬이야말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살아가는 가짜 믿음의 상징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07:21)고 하셨습니다.
2. 죄인인 여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옥합을 가지고 나온 이 여자를 죄를 지은 여자라고 부릅니다. 죄를 지은 여자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주로 창녀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됩니다. 죄를 지은 한 여자라는 말은 과거에 그렇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현재 그렇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여자가 언제쯤 죄인의 생활을 정리하였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삶을 이제는 다 정리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깨끗이 정리하였어도 사람들의 시선은 이 여자에 대하여 여전히 곱지를 않습니다. 이 여자의 얼굴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예수님의 식사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닌 이 여자가 어떻게 시몬의 집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시몬의 집이라면 분명 하인들도 몇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런 바리새인의 집에 감히 죄의 전력이 있는 여자가 어떻게 함부로 접근할 수 있습니까? 분명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식사 자리에 이 여자가 불쑥 나타났으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 여자의 행동을 당시 예의범절로 보면 무례한 일입니다.
식사 분위기도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몬의 여러 처신으로 보아 예수님을 초청한 식사 자리가 서민들의 그런 격의 없는 편한 자리가 아닙니다. 불편한 자리입니다. 이런 곳에 불청객인 이 여자가 무엇 때문에 왔습니까?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하여 왔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이 여자는 비록 자기가 죄인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이전부터 들어온 예수님의 소문에 희망을 걸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해 들은 소문은 세리와 죄인들을 품어주시고, 어떤 죄든지 다 용서해 주신다는 따뜻한 사랑의 소문입니다. 드디어 그 소문의 주체이신 예수님께서 자기가 사는 마을에 오셨으니 어떻게든 만나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용서도 받고 싶고, 은혜 생활도 하고 싶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싶고, 그분을 내가 가진 제일 좋은 것으로 섬기고 싶어서 나아 왔습니다.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 여자는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 뒤로 갔습니다. 자기를 뿌리치지 않는 사랑 앞에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지금 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께 최고의 공경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를 풀어 눈물로 발을 닦습니다. 입을 맞춥니다. 마침내 귀한 재산인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주님께 부어 드립니다.
매우 값나가는 물품이지만 주님을 위해 드리는 일이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이 일이야말로 주님을 영접한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발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최고의 복종과 존경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이 여자는 한번만이 아니라 반복해서 합니다(κατεφιλει 카테필레이).
대부분 존경하는 표시로 향유를 부을 때는 머리에 붓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뜻밖에도 발에 부었습니다. 왜 머리가 아닌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까?
예수님의 발에 접근하는 것조차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3.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자는 이런 선언을 받습니다. |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이는 47절의 의혹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해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곁에 있는 사람 모두가 속으로 예수님에 대한 의혹을 품었습니다.
죄는 하나님만 사하시는 건데 저 예수가 어떻게 죄까지 사하는가? 하는 의혹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함을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여기 구원(σεσωκε 세소케)은 시제 상 완료형입니다. 이미 구원받았고 지금도 구원받은 상태로 있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므로 이미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가 받은 구원을 공적으로 선언하시기 위해(눅 08:48)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평안히 가라.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하신 작별의 인사입니다. 이런 인사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대의 것이다. 라는 표현입니다(삿18:06, 삼상 01:17, 왕상 22:17).
지금까지 멸시받던 죄인인 그녀에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새사람이 되었으니 평안한 마음으로 가라는 선언입니다. 평안히 가라는 명령형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사 09:06) 영접한 사람은 영원한 하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행 02:28, 엡 06:23, 몬 01:20). 이 평안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고 잃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의 섬김은 소리는 요란하나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삶 속에 깊이 배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섬김은 예수님께서 예비한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과 교회를 향한 헌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모든 경건한 삶의 흔적을 우습게 여깁니다. 은혜받은 성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는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나를 위해 옥합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주님을 위하여 부어 드립니다. 그리하여 은혜로운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평안을 회복하는 쉼터를 만들어 갑니다.
요 0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메시지를 너무 많이 들어서 혹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구원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형식상 별 의미 없이 예수님을 부른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런 형식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혹 기독교를 오해하여 예수님을 불렀으니 구원이 온다고 믿습니까? 크게 잘 못 된 미신과 같은 수준입니다.
교회를 출입하는 분 중에 세상과 단짝이 되어 불신의 길로 가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분들, 마음으로만 믿는 분들은 구원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먼저 내 모습을 봅시다. 구원의 복을 받은 여자처럼 세상에서의 내 모습, 교회에서의 내 모습에서 은혜의 향기가 우러나옵니까?
좋은 믿음의 향기이기를 기대하건만 오히려 악취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의 옥합을 깨뜨리지 않으면 은혜로운 향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께 내 생명을 부어 드려야 합니다. 내 삶의 에너지를 부어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 뉴욕의 부유층이 사는 구역에 한 골동품 수집가가 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값진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는데 어느 날 6개월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귀한 골동품들 때문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누가 도적질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래서 도난 방지기와 사나운 개를 준비했지만, 도무지 안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화방으로 갔습니다.
저렴한 그림을 대량으로 사 집으로 가져와 그림마다 10만~30만 달러까지 나름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끼는 골동품 사이에 진열하였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유럽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값진 골동품들은 그대로 있고 여행 직전에 샀던 값싼 그림들만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외형으로 보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당연히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신령한 공동체는 누가 가짜인지를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내가 가짜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결과를 놓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모시고도 주님으로 영접하지 못하여 푸대접한 불신자의 모델입니다.
죄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입니다. 우리도 분명 죄인입니다. 그러면 용서받은 죄인의 그룹에 내가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교회 와서 예배도 드립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사랑과 용서에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렇게 따라 합시다.
예수님을 믿는 내가 참는다. 예수님을 믿는 내가 용서한다. 잘생긴 내가 참는다. 더 예쁜 내가 용서한다. 예수님은 내가 믿고 덕은 당신이 본다.
은혜받은 성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는 오늘 말씀에서 죄를 용서받은 여자처럼 옥합을 깨뜨려 향기가 진하게 나는 공간을 만들어 갑니다. 이제부터 가짜 신앙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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