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가 에덴동산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여 인류를 사망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 마귀가 이번에는 예수님께 나아 와 시험을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하면서 각 시험마다 하나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시험에서 0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둘째 시험에서 06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셋째 시험에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란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라는 문구에(09)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 첫 마디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아들 됨을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마귀가 왜 이런 시험을 합니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기 위함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가장 연약한 상황, 40일 간의 금식으로 몹시 지쳐 있을 때 찾아와서 시험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세상을 지배해야 않느냐? 그런데 지금은 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내게 잠깐만 굴복하면 세상 권세를 다 주겠다는 이런 시험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시험은 우리에게 하는 시험으로 적용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정말로 구원을 받았다면, 이런 식으로 믿음의 뿌리를 흔드는 시험, 믿음의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시험을 잘 합니다.
그릇된 성경관으로 흔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관한 확고한 지식이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험이든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1. 경제의 시험 -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
0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예수님께서 사십 일을 금식하신 직후입니다. 예수님의 체력이 거의 방전 된 상태에서 시험하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시험하는 자란 마귀의 성격을 나타내는 별명으로서 마귀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사악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 시험하는 자로 다가온 자가 누구일가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변장을 한다고 하였으니(고후 11:14) 분명 마귀가 외적인 거룩한 모습, 어떤 아름다운 모습을 띈 사람을 조종하여 예수님께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극한적인 육체 상태를 빌미로 시험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게 하라는 시험에 앞서 마 03:17절을 잘 보아야 합니다.
마 0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이 말씀은 예수님의 40일 금식 전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난 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이 소리를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호칭을 흔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야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40일 동안 굶으셨고, 주변에는 먹을 음식은 없고, 떡처럼 생긴 돌들만이 가득하게 놓여 있습니다.
떡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주변의 돌들을 떡으로 변하게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 됨을 나타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제안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인 것 같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제안을 신 08:03절 말씀으로 거부하십니다.
0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 08:03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연관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신 만나는 그들이 떡 자체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떡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육신을 위한 떡 문제는 해결 받았지만 그 영혼은 계속 주린 상태에 있다가 결국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받아들여도 별일 없어 보이는 마귀의 권유를 왜 이처럼 단호한 말씀으로 물리치십니까?
그것은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는 믿음을 제쳐놓고 무슨 일이든지 해도 된다는 물질 우선주의를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더러는 신앙생활도 좋지만 그래도 일단 돈부터 벌어야지요. 교회에 다니면서 이런 말, 이런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합니까?
전도할 때 흔히 듣는 말입니다. 마귀는 인생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육신의 생존을 위한 물질인 것처럼 미혹을 하나, 예수님은 그런 물질적인 것보다 더 우선순위가 영의 양식이라고 밝힙니다. 또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는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슬리는 비정상적인 일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명예의 시험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
0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0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본래의 악한 모습을 항상 가장하는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 후 예수님께 성전의 큰 권위를 가진 자를 매개체로 하여 다가왔습니다. 이 사람은 강권하다시피 하여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초청한 것 같습니다.
이곳은 해발 750m 고지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으로서 아래로는 기드론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이제 두 번째 시험으로 시 91:11,12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충동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한 번 뛰어 내려라.
그리고는 기록되었으되 하면서 마귀도 제법 그럴 듯하게 성경구절을 인용합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즉각 동원하여 네 발이 돌에 부딪히기 전에 그 손으로 지켜 주신다고 말입니다. 마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네가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드러내보라는 시험입니다. 한번 화끈하게 뛰어내리고, 그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 조금도 다치지 않도록 받쳐 준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적인 영웅으로 추대하여 세상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있는데 굳이 그 험한 십자가의 길을 가려느냐? 대속의 길을 가지 말고 세상적인 환대와 영광을 누리는 영웅적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인용한 시 91:11,12절은 성도로 하여금 어떤 위험한 일에 충동적으로 뛰어 드는 것을 권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래의 의미는 의로운 자들을 위험한 상황에서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인데, 마귀는 성경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보면 꼼수가 보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라는 식의 꾐입니다. 꼭 사이비(似而非) 종교나 이단의 특징 같습니다. 이런 곳들의 특징은 교주가 하나님과 성경을 교묘히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일을 주로 합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이 육체적 물질적 시험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의 시험은 한 차원 더 높은 정신적 시험, 명예를 자극하는 시험입니다. 여기 두 번째 마귀의 시험의 장소는 배고프고, 굶주리고 힘겨운 땅 광야가 아니라 이런 곳에도 시험이 있을까 싶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 꼭대기입니다. 그야말로 가장 거룩하다고 여겨지고 마귀라고는 전혀 발붙일 수 없을 것 같은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을 합니다.
마귀의 시험은 때로는 달콤하고 화려함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성전에서, 교회에서 좀 높은 곳에 세워 질 때가 있거든 그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전의 꼭대기에 서야 할 자들이 아니라, 이름 모를 고라 자손들의 고백처럼(시 84:10)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에 감사하고 감격해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는 내 속에, 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명예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성도들이 큰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0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번에도 성경 신 06:16절을 인용하여 마귀의 궤변을 물리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왜곡된 성경 인용을 막으시면서 그 옛날 이스라엘이 광야 므리바에서 목이 말라 고통당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일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십니다.
3. 권력의 시험 -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
0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째로 시험을 합니다. 아주 집요하게 포기하지 않고 시험을 하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천하만국을 지도상에서 찾으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은 초자연적 개념을 내포한 통치권에 관계된 모든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보신 천하만국이 상징적이거나 허구적인 환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자기가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눅 04:06) 세상의 모든 쾌락과 통치권의 실체를 예수님에게 실제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성경으로 속이려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께는 말도 안 되는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이 세상을 진짜로 소유하고 있는 주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람이 타락한 이후로 마귀가 이 세상 임금이 되어 죄와 악의 영역 내에서만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엡 02:02). 이 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마귀가 마치 자기가 이 세상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세 번째 초점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라는 마귀의 말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향하여 나와 적당히 타협하자. 라고 제안하는 구절입니다. 시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뭐 그렇게 어렵사리 구세주가 될 필요가 있느냐? 그럴 필요 없이 우리 사이에 적당히 절충하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딱 한 번만 절하면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모든 것 다 양보하고 당장 넘겨주겠다.
마귀는 우리에게도 이런 식으로 유혹을 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겨라. 교회 밖에서는 나를 섬겨라. 교회에서는 성경대로 아멘 해라. 교회 밖에서는 세상원리와 적절히 타협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돈도, 명예도, 권세도 영광도 다 얻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일에 우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마귀는 사정없이 달려듭니다. 타협하려고 들어붙고 말 것입니다. 신앙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물러서면 훨씬 쉬워지고 훨씬 좋아질 법한 경우처럼 보여도 그것은 숙고해 볼 만한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딱 한 번만 내게 절하면 된다는 시험, 믿음생활에서 조금만 양보하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마귀의 시험을 얼마나 자주 받습니까? 어떤 때는 그저 이번 한 번 정도는 앞날의 믿음생활을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묘수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가령 이번에 새로 시작한 사업이 자리 잡힐 때까지만 주일 예배를 쉬자. 라고, 그냥 포기하고 지나쳐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것, 믿음을 조금만 양보하면 훨씬 더 좋은 일들이 따라올 것 같이 여겨지는 상황들 앞에 고민하지 맙시다. 마귀의 시험으로 여기고 털어 버리십시오.
자녀들의 결혼을 앞 둔 분들의 결혼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믿지 않지만 다른 스펙들이 너무 좋으니 일단 결혼 시켜 놓고 속히 교회 데려 오면 되겠지. 그래서 결혼부터 시키는데 한 번만 절충하고 넘어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요? 앞날이 훤히 보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한 번만 절하면 된다는 제안에 아예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고 앞선 시험에 대처하는 방법처럼 성경 신 06:13절을 인용하여 끝을 냅니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눅 04:13). 마귀는 아주 끈질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순간순간 찾아 왔었는데 이 마귀는 우리도 삶이 끝나는 날까지 믿음을 흔들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흔듭니다. 하나님은 없으니, 두려워 말고 인생을 즐겨라. 우리 모두 믿음의 모습을 눈여겨보십시오. 믿음이 미지근하고, 신앙생활이 밋밋할 때에는 마귀가 시험을 잘 하지를 않습니다.
사냥꾼이 죽은 짐승에게 총을 쏘지 않듯이, 마귀도 죽은 자에게 총을 쏘지 않습니다. 다만 은혜를 받고 기쁨이 충만하여 열심히 교회 일을 할 때, 한 단계 업 되려 할 때는 시험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외쳐야 합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믿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불신앙적인 요소가 찾아올 때 단호하게 외쳐야 합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성경의 기준을 벗어난 마귀의 타협안, 우리가 말 안 해도, 이웃하고 상담을 안 해도 분명한 답이 나옵니다. 지나친 불신앙의 욕심을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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