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하던 그는 1심 선고가 그대로 유지될 줄 믿었지만 재판부는 국정원의 지난 2012년 대선개입을 인정한 것입니다.
법정에 들어서서도 먼저 와 있던 이종명 전 2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이 원세훈을 보며 벌떡 일어나서 일일이 악수를 건네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예상치 않은 구속이 된 것입니다. 이어서 원세훈 측에서 상고를 하자 대법원은 7월 15일 결국 파기 환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보석 신청은 불허했는데, 변호사들조차 결과적으로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이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9인의 대법관들 가운데 성향상 또 굽은 재판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중대한 재판이었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소 관심도 있었으나, 그런 관심보다는 다른 면에서 이 재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굽은 재판을 하는 일들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고, 그 결과에 따라 당사자들의 인생이 바뀌는 일, 억울한 일은 흔히 발생하는 일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어느 회사의 상품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많이들 적용하는 문구입니다.
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이 보다는 영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좌우편에 달렸던 두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선택한 영생과 영벌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은 로마의 고급 관리로서 유대 나라에 파송되어 온 총독 빌라도의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순간의 판단이 빌라도의 영원을 결정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을 얻기 위해 영생을 버린 빌라도 그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에 대한 과정과 결과들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는 누구입니까? |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재판정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이 누구일까요? 이권 문제에 관계하여 굽은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나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내가 굽은 판결과 거짓 증인에 의한 피해자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먼저 예수님의 재판을 놓고 굽은 판결을 선고한 빌라도(Pontior Pilatus, 재임. 26~36)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디베료 황제가(Tiberius, 14~37년 경) 통치하던 때에 그 반대 세력인 총리 세자누스(Sejanus)에 의해 유대의 제 5대 총독으로 파송을 받은 인물입니다. 빌라도의 이름 뜻이 창을 가졌다. 라는 의미인데 그가 훗날 창을 잘 사용하였기에 그 이름처럼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정치적 영역은 유대, 사마리아, 에돔까지 관장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통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유대인의 열광적 신앙을 깨뜨리라는 명령을 받고 유대에 파송 된 철저한 반 유대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에 대한 독자적인 모든 결정권을 완전히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지역 가운데 시리아 지역의 한 부분에 예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시리아 지역에 속한 유대 지역 행정 대리인 격입니다. 성경의 기록에는 없지만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문헌에 의하면,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몇 가지 실수를 행하였다고 나옵니다. 그 중의 두 가지 큰 실수를 보겠습니다.
①빌라도는 부임 즉시 군대의 본영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으로 옮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중에 한 번도 들인 일이 없는 독수리와 황제의 상이 새겨진 군기(軍旗)를 예루살렘 내에 들임으로 크게 말썽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독수리와 황제의 상이 그려진 군기를 거룩한 성전에 두는 것은 제 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생각을 하여 종교적 충돌까지 일어났습니다.
②빌라도가 솔로몬의 못에서 예루살렘으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성전고(聖殿庫)에 있는 신성한 금으로 수도 설치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께 바친 금(고르반)을 세속 목적을 위해 유용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일인 줄 알고 이에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항의성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런 일을 충분히 예상하고 흉기를 가진 사복 차림의 부하를 군중 속에 잠입시켰다가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폭도를 일시에 급습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이런 잔인함으로 유대를 통치하면서 빌라도는 식민지 총독으로서 일시적으로는 로마의 권력을 배경으로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대에서의 총독이라는 직책이 어떤 자리입니까? 한 가지 일만 잘 하면 정치적 승진을 보장하는 자리입니다.
그 한 가지 조건은 바로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로마에 대한 정치적 음모를 절대로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형까지 집행하였습니다만 더 이상 승진을 하지 못하고 주후 3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에우세비오스 교회사).
2. 빌라도는 양심을 속이고 굽은 재판을 하였습니다. |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주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정치범으로서 죽을죄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고, 자기 입으로도 세 번이나 무죄라고 시인하였습니다(요 18:38, 19:04,06). 동시에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계속 유대인들의 반발에 부딪치자 예수님을 구명하는 일에 총독의 자리를 거는 모험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대인들에게 이 재판은 자기 뜻이 아니라고는 밝힙니다.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유대인들은 어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이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은 죄와 무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물로 손을 씻는 의식을 하였습니다(신 21:06,07). 무죄의 표시로 손을 씻는 이런 행위를 빌라도는 몇 해 동안 유대를 통치하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행정면에서 자기가 최종 결정권자임에도 이 간단한 상징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무죄를 증명해 보이는데 그렇게 한다고 책임이 없어집니까?
거기에 모인 무리들에게 나는 무죄하니 예수님을 죽이는 그 책임을 너희가 지라고 말을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책임이 빌라도를 피해 가는 게 아닙니다. 빌라도의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제거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피 값이라도 받겠다고 말합니다.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백성이 다 대답하기를,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도 좋다고 합니다. 저주를 자처하는 모습이 정말 무섭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로 석방하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대신 가장 두려워하는 민란을 막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
여기서 빌라도의 모습을 봅시다.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그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양심의 법과 하나님의 법에 의한 책임이 따릅니다.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빌라도의 이런 행위조차도 하나의 제스처와 연극이었고, 나중을 대비한 알리바이 맞춤이었다고 평가가 나옵니다. 19절을 보면 빌라도의 현지 아내도 예수님의 재판을 놓고 사람을 보내어 무죄한 예수님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라고 권한 일이 있습니다.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그럼에도 빌라도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굽은 재판을 강행하여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당시 로마의 채찍질은 사람의 두 손을 쇠사슬로 높이 매달고 발은 바닥에 겨우 닿을 정도로 하여 온 몸이 경직된 상태에서 뼛조각을 단 채찍으로 내리 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가하는 불의의 고문을 하는 겁니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입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세상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서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3. 빌라도는 굽은 재판을 함으로 영원한 저주를 만났습니다.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사도신경).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권한을 자신의 세상 권력을 위하여 사용함으로 영벌의 길에 서고 말았습니다. 세상 권력을 위하여 영생의 길을 버린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세상 것을 유지하기 위해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 그 죄 값은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는 저주입니다. 이 세상을 다녀간 모든 사람 가운데 빌라도만큼 저주를 많이 받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랜 세월동안 성도들은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라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축복과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저주의 자리에 빌라도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은 빌라도 스스로가 택한 일입니다.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의 등장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에 거룩하고 위대한 사람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불행한 사람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게 해 줍니다.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와 연관되어 주목해야 할 것은 빌라도는 자연인이 아니고 그 시대를 지배하던 로마의 권세 아래서 유대를 다스리던 총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로마에 항거한 열심당원도 아니며, 무정부주의자도 아닌 오직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신 메시아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의 질서를 수호하는 권력자로서 정의의 편에서 백성들의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진 자 아닙니까? 그럼에도 질서를 보호하는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파괴자와 손을 잡았는데 불의의 세력과 손을 잡으면서까지 그의 권좌를 유지하려 하였던 빌라도,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면서까지 권좌를 유지하려 하였던 빌라도, 그러면 그가 세상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렸습니까?
안타깝게도 그 권력의 수명이 너무 짧았습니다. 오히려 사도신경에 불행한 인물로 자리 잡고 말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창녀도 있고, 마태와 같은 세리도 있고, 베드로와 같은 어부도 있고, 바울과 같은 박해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계보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들 중에 라합과 같은 기생 출신도 있고, 다말과 같은 부정한 여자도 있고, 룻과 같은 여자고 있고, 밧세바와 같은 불륜의 여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대의 총독 빌라도를 보십시오. 권력자로서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자리에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요 18:38).
또 심문을 하면서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하면서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영원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영원한 죽음의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사도의 직을 던지고 제 곳을 간 가룟유다처럼 말입니다(행 01:25). 빌라도 그는 예수님보다 자신의 야망과 안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다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는 의도적이던 우연이던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초대를 받아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그 때의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억지로 강권하시지 않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회가 조용하게 소리 없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그것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혜와 영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빌라도처럼 우둔하여 놓치지 말고 은혜로 잘 맞이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수님 대신에 강도 바라바를 석방하고(26)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사형 판결을 내린 빌라도의 앞날이 어찌 되었습니까? 그는 36년에 유대를 관장하던 수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에 의해 파면되었습니다. 이유는 성경이 아니기에 완벽한 근거는 될 수 없지만 대강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마리아의 한 사기꾼이 백성을 현혹시켜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모세가 성막의 황금 기구를 숨겨 놓은 것이 있는데 자신이 직접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군중들이 산기슭에 모였는데 불행히도 그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있던 까닭에 그것을 두려워 한 빌라도가 그만 그들을 급습하여 살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마을은 완전히 망하였는데 사마리아인들은 이 억울한 사실을 수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호소하였고 이에 비텔리우스는 36년 경 빌라도를 면직하였습니다.
뇌물수수, 폭행, 약탈, 학대, 무례함, 비합법적 사형집행, 잔인성 등의 이유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로마 황제로부터 소환을 받고 맙니다. 역사가 Eusebius에 의하면 빌라도는 소환 도중 자살하였다고 하고, 위경(僞經)에는 빌라도의 시신이 프랑스로 옮겨져 비엔나 인근에 매장되었다고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처형한 자의 참혹한 말로입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한 비참한 인간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가 보낸 메모의 내용을 따랐더라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당신은 그 의로운 사람에게 상관하지 마세요. 어제 꿈에 제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19). 이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빌라도는 역사적 죄인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결정하고,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한다는 이 사실 앞에서 우리의 자신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가집시다. 영적 감각을 회복합시다. 그리하여 영생의 세계를 믿음으로 잘 가꾸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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