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말씀은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입니다.(전 12:11~1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9. 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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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주일학교에 인도를 받은 흑인 어린이 하나가 행동이 무척 난폭하고 불량해서 선생님이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I am nobody, 나는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대꾸를 하는 것입니다.

놀라서 이유를 알아보니 빈민가에서 가난에 찌들고 백인들에게 확대 받으며 꿈도 없이 살아가는 부모의 화풀이 때문입니다. 습관적으로 자식들에게 You are nobody, 너는 아무쓸데도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야 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니야, You are somebody, 너의 부모가 혹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을 만드시고 흑인도 백인도 지으신 하나님은 너를 알아주시고 사랑해 주신단다. 그러니 너는 somebody, 쓸모 있는 사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랑에 굶주린 이 어린이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을 얻고 그때부터 I am somebody, 나는 쓸모 있는 사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자신에 찬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비폭력 무저항주의자로 인권운동을 벌이면서 흑인들에게 꿈을 심어준 위대한 지도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15~1968,4,4)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잘 새겨진 교훈이나 말씀은 인생의 앞날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갑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이 세상의 여러 많은 것을 체험해 보고 난 뒤에 그의 인생론이라 불리는 전도서에 남긴 한 어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는 목자의 지혜로운 메시지는 찌르는 채찍과 같고 마음에 잘 박힌 못과 같은 것이다. 새겨들을 만한 말씀 아닙니까? 11절을 중심으로 말씀은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강론을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과 같습니다.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지혜자의 말씀과 스승의 말씀은 다 한 목자가 주신 말씀입니다. 한 목자란 당연히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여기 지혜자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그 말씀을 설교하는 목회자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혜자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찌르는 채찍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채찍이란 그 끝에 아주 날카로운 쇠붙이나 뼈를 매달아서 가축이나 혹 죄인이 말을 잘 안 들을 때 휘둘러 통제를 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당연히 채찍에 맞는 가축이나 사람은 찔리는 큰 고통을 느끼게 되겠지요? 맞음으로 통제의 자리로 들어오기 때문에 찌르는 채찍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찌르는 채찍으로 비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이야말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이 우리의 앞날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믿고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분명히 송곳처럼 파고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회개와 변화를 반드시 이끌어 낼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0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02:37절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마음에 찔림을 받고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찌할 꼬,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찌르는 말씀, 송곳 같은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상하기도 하지만 그 마지막에는 영육간의 삶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양식이 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말씀을 어떻게 따라 가느냐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봅시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일상에서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이 듭니까? 사람의 이해타산을 내려놓고 아멘을 해 봅시다. 역시 잘 안 됩니까?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이 말씀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찌르는 채찍 같은 말씀으로 자기의 허물을 지적 받을 때 겸손하고 솔직하게 받아 들여 자기도 살고, 국가도 사는 길을 열었습니다. 반면 말씀을 듣고서는 생명을 구원하는 자리, 영적 수순이 더 높아지는 자리로 가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원망이나 상처를 생산해 내는 분도 있습니다.

 

더러는 말씀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여 우울증이나 낙심자의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의 전과자의 길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좋은 분위기일 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좀 삐지지 말고, 제발 섭섭병에 들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들면 제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듭니다. 또 성도들이 같이 어울려 지낼 때도 판단력을 좀 발휘하시고, 좋은 일에 불 끄는 일 하지 않도록 이해력을 갖추세요. 그렇게 하시는 분에게 제가 일일이 금사과와 금귀고리 금목걸이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그 말씀을 듣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반감을 하고 싶어도 예수님 앞에서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습니다(07:28,29). 왜냐하면 그 말씀에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목회자의 말씀이 찌르는 채찍 같은 말씀이 되도록 능력의 말씀으로 받아서 아멘으로 화답하여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 영혼이 죽음의 자리에 처하였다 할지라도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채찍은 그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기 때문입니다(23:14).

 

 

 

 2. 하나님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아야 합니다.

 

 

11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2003,2,25~2008,2,24) 중 말기에 각종 법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언론이 못질하고 간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후임이 누가 되든지 참여정부가 만든 법률들을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대 못질 하면서 떠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한 언론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못 뽑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전 정권에서 만든 각종 법안들을 결국은 다 폐기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는 남의 가슴을 크게 아프게 할 때 가슴에 대 못질을 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오늘 말씀에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목회자의 선포되는 말씀이 잘 박힌 못과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 박힌 못의 의미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먼저 이 말씀은 이스라엘 유목민들의 천막생활과 연관하여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천막을 펼쳐서 고정을 시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무엇보다 못을 땅에 단단하게 박아야 합니다. 그런데 혹이라도 엉뚱한데 박히면 그건 잘 박힌 못이 아닙니다. 이런 유목민들의 생활 원리처럼 성도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믿음의 백성으로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잘 박힌 못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 될 때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삼상 03:19) 잘 박힌 못처럼 심령에 새겨져야만 합니다.

잘 박힌 못이란 말씀이 박혀야 할 곳에 박혀 있는 것으로서, 흔들림이 없게 하며, 잘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잘 박힌 못이라는 문구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을 때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버리는 습성이 가끔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설교자의 말씀을 듣고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잘 들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또 들은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은혜로운 말씀이 되겠습니까? 말씀의 가치는 잘 박힌 못처럼 심령에 새겨 놓을 때 있습니다. 말씀의 가치는 영혼의 양식이 될 때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심령에 잘 박히는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까? 그렇게 되지 못하였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씀이 여러분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09:0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성전에 박힌 못과 같게 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나는 김해삼일교회에 잘 박힌 못과 같은 일꾼이다. 라고 스스럼없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날마다의 생활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면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켜서 그런 것입니까? 주님이 아닌 세상의 어떤 것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반드시 살펴보십시오.

말씀을 받고 그대로 실행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결실을 할 것이요,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우리의 삶의 매뉴얼이 되는 말씀이 전도서입니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이 말씀을 심령에 잘 박힌 못처럼 새기십시오.

그러면 성도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위한 안전한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한 쪽 귀는 잘 열어 놓으시고, 한 쪽 귀는 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하십시오.

 

딤후 0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까? 가족들, 회사의 고용주, 직장 동료, 이웃사람들입니까? 혹 그들이 믿음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까? 불신앙의 덫에 사로잡힌 발목 때문에 말씀이 심령에 잘 박힌 못으로 자리 잡지 못하여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불신앙적인 모습을 물리치지 못하여 말씀을 듣기는 하여도 그 말씀이 심령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한 외식자의 모습은 아닙니까?

사탄은 매우 교묘하게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모두 빼어내 가고, 대신 외식이나 형식 같은 모조품을 심어 놓았는지도 모릅니다.그런 것들에 속아서 나는 말씀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다. 나는 말씀 충만한 사람이다. 라고 자기기만에 빠지지는 않는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조선시대 말기에 정부가 부패하여 조정에서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성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독 함경도 지역의 벼슬자리는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어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매관매직을 해도 본전을 뽑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0.5%에 불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수의 성도 마음에 말씀이 잘 박힌 못처럼 자리 잡음으로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방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국민의 20% 가까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국가의 불의와 부정을 막는데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믿는 성도가 의롭게 되어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전도서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4). 이 날을 만나기 전에 우리 모두 말씀을 심령에 잘 새기고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