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재물은 구원의 길에 걸림 돌도 됩니다.(마 19:16~2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8. 8. 15:30
728x90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과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면담을 했던 내용이 인터넷에 실린 일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 이 회장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성경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있다는데 이는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이에 김 목사님은 예수님 말씀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재물이 많으므로 하나님을 찾을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병철 회장에게 두 가지를 권고하였습니다. 회장님은 앞으로 하나님을 아는 일과, 재물을 나누는 일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아마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 이병철 회장과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 몸의 모든 세포들은 일정 기간 성장했다가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 죽은 세포의 자리를 새로운 세포가 채워주는 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성장과 죽음을 반복해야 할 세포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결코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라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입니다. 이 세포는 무한대로 자랍니다. 암세포가 무서운 것은 끊임없이 자라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의 영양분을 독차지해서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군데서 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암세포는 전이가 되면서 영양분을 독식하며 성장하는데 그 본질은 탐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암세포 원리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다가 결국은 자신부터 파멸을 당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탐욕에 사로잡혀있는 사람, 그래서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 나아 온 사람이 누구입니까?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께 나아 온 사람을 놓고 16절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평행본문인 눅 18:18절에는 어떤 관리라고 그 신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당시에 관리라는 말은 산헤드린 공회원,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 관청의 고급관리, 사법당국자, 정치적 유력한 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20절에서는 이 관리를 청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산헤드린 공회원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입니다. 거기다 재산이 많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해서 젊은 사람이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고, 또 관리가 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이스라엘의 교육을 받은 것은 자신이 밝히고 있고, 재산은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분상 식민지 국가의 지방 관리이기 때문에 큰 부정축재를 하지 않은 이상 그 신분의 월급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형편을 보아 이 사람은 흔히들 말하는 부모를 잘 만난 덕분에 일찍부터 사회적인 출세를 한 사람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똑똑한 이성도 가졌고, 적당히 자랑할 만한 지식도 익혔습니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돈을 배경으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세상적 조건을 갖춘 사람, 만약 이 청년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중매쟁이가 신랑감 후보로 1순위에 올려놓았을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는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힘이고, 돈이 꿈이라고 믿고, 돈 버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당하게 돈을 번 기성세대를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며 닮아갑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 하고, 많은 것을 준비하며 배워 미래를 준비하지만 결국 돈 많이 버는 일이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런 사람을 향하여 성경은,

 

23:0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0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예수님 앞에 나아 온 이 부자 청년, 여러 말투로 보아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심지어는 종교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완벽한 스타일입니다. 자라온 환경이 그렇고, 배워 온 과정도 그렇게 보입니다. 이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이 정도로 자신 있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생활환경이나 신분이 남다른 것이기에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례가 되는 고민거리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님께 달려 와서 꿇어 앉아 묻는 것을 보아(10:17) 영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음과 재물과 명예는 가졌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신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2. 이 청년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 줄 생각합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세상적인 것, 즉 물질, 명예, 신분 이런 것으로 자기의 내적 만족을 누릴 수 없고, 고민거리를 해결 할 수 없어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의 고민거리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물어보고 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런 영적인 문제는 세상에서는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청년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심각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 내용이 구원관의 교리로 볼 때 무척 무지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구약시대의 곤점에서는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 이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02:08).

 

그럼에도 이 청년은 구원의 주체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선행을 하고 계명을 잘 지켜야 영생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자력신앙이라고 하는데 이런 신앙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고행과 선행을 하여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청년이 구한 영생에 대하여 생명(17)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18)

예수님은 지켜야 할 계명을 이렇게 나열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8,19). 십계명의 둘째 부분이 다 나온 것 같습니까? 자세히 보면 하나가 생략되었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10번의 계명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9:18)는 다른 계명을 덧붙이십니다. 이웃 사랑이야말로 둘째 돌판 전체를 요약한 가장 큰 계명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 청년에게 추가하셨습니까? 이 젊은 청년이 가지고 있던 외적 선행에 대한 일종의 교만을 지적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청년이 주님 앞에서 어려서부터 이런 계명들을 잘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합니다.

 

10: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선생님 제가 이 정도의 수준입니다. 더 이상 부족함이 있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는데 그러나 십계명의 둘째 돌판의 계명들은 사람을 향한 신실한 의무 조항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신실하게 지키지 않고 그저 종교적인 규례를 따라 형식의 수준으로만 지켰습니다.

만일 진정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 계명을 지키고, 또 주님께서 그렇게 인정을 하셨다면 이는 대단히 칭찬을 들을만한 사랑의 행적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이 청년이 모든 것을 다 잘 지켰다고 대답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영적 기쁨이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 온 것입니다. 어쩌면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그래 너 정도면 충분히 영생을 얻을만한 믿음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이 청년을 처음에는 사랑스럽게 여기셨지만(10:21), 정작 중요한 것은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3. 재물은 영생의 길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흔히 이 말씀은 엄청난 오해를 받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 거 봐, 예수님도 부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잖아(24)? 부자는 구원 받기 힘들어 하고 부자들을 공격을 합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뭐 이런 말씀이 다 있어? 돈 많은 게 무슨 죄야? 하면서 당황합니다. 한편으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데 대한 죄책감도 가집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부자는 재산을 다 정리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부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럴 때는 성경을 좀 더 깊이 보아야 하는데, 22절 앞부분인 21절과 막 10:21절을 잘 보아야 합니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10:21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이 부자 청년은 천국이 있는 것도 알았고, 자신이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있었습니다. 계명을 모두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할 정도로 말씀대로 사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이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실천적 증거로서 모든 소유를 정리하여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모든 재산을 팔아 이웃을 구제하라는 말씀에 시험이 들어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핵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청년에게 재산을 다 정리하여 구제헌금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까? 주님을 잘 믿으려면 우리도 재산을 다 정리해서 구제헌금으로 드려야만 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부자 청년의 마음에 들어 있는 가장 큰 관심과 그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아시고 난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 앞에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막 10:21절에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고 규정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 즉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란 이 부자 청년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고자 하는 양다리 걸치기 믿음을 말합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안 그럴 것 같아도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고자 하는 물욕이 점점 높아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욕심이 너무 많으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아시고 진정한 생명 구원의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21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 키는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정리한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되라는 데 있습니다.이 청년은 하나님과 더불어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 풍요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청년은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이 아닌 재물에 걸었던 것입니다. 재물을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는 절대적 가치로 알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아셔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 가치에 불과한 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영생과 천국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여기 근심이란 단어는 마음이 상할 정도로 슬퍼하다, 고통스러워하다 등의 뜻으로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말합니다. 아마 이 청년은 현재의 상태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던 것 같고, 주님은 그 재산을 정리 한 후에 제자로 받아주겠다고 하였기에 결국은 주님께로 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돌아왔다는 말씀이 없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목적으로 보아 이 부자 청년은 재물 때문에 구원의 자리에서 탈락을 한 것입니다.

 

0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잡고 있는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목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모두 다 내려놓읍시다. 그리하여 홀가분하고 편안하게 삽시다.

돈을 가지면 좋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돈이 있다는 것은 참 편리합니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고,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고, 마음 편하게 걱정 근심 없이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돈을 잘 벌고 부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헌금도 많이 하고, 교회에서 필요할 때 귀한 일도 할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인들 부자 되라고 늘 기도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고, 편리한 것이고,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절대 돈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삶의 수단입니다. 이 원칙만 잘 지키면 우리는 건전한 부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돈 자체는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입니다.

 

다 같이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