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 먼저 그 옛날 페르시아제국의 우편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큰 나라였기 때문에 우편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며칠 씩 걸리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룻길마다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춘 역을 세워 놓았습니다.
우편원을 위한 음식도 준비되어있고, 말에게 먹일 사료도 준비되어있고, 말이 지칠 때를 대비해서 새로운 말도 준비되어있고, 심지어는 우편원도 예비 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한 경우 이 우편원은 상당한 권한이 있어서 자기의 몸이 병들었거나 이상이 있을 때, 당신이 나를 대신해서 어디까지 가라고 지시하면 지목된 사람은 대신 가야 하는 법입니다.
또 하나,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로마의 한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를 반영하는 법으로서 흔히 징발이라고 하는 법입니다. 로마의 속국인 나라에서 군사적인 물자를 운반하려 할 때, 병사들이 자기를 대신해서 길 가는 사람을 아무나 잡아 억지로 짐을 나르게 하는 법입니다. 대신 오리 이상은 짐을 지고 가지 않아도 되도록 법적 보장을 해 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강제 징발의 법입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1. 41절은 유대인들의 나라 잃은 슬픔을 보여줍니다. |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불행한 역사를 반영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억지 법에는 나라 잃은 사람들이 당하는 슬픈 현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이 말씀이야말로 식민지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처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습니다. 분봉왕들이 지역별로 다스렸지만 외교권과 군사권이 없는 이상 유대인들은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이스라엘에 주둔하는 로마의 병사들은 식민지 국가를 상대로 약탈을 일삼기 일쑤였습니다.
특별히 로마제국에서는 식민지 국가에 대한 의무적 노동력 부과를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물론 군수 물자 이동에 한해서 오리까지만 노동력을 제공받는 법입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군수물자 이동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로도 유대인들의 노동력을 함부로 착취하였습니다.
대단한 인권유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병사들의 강제 징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리, 십리 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오리가 얼마나 되는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2km를 오리라고 하나 당시 로마 도량형으로는 1마일(약 1.6km)이 곧 5리인데 우리나라 수치로는 약 3리 정도가 됩니다.
이 거리는 일반적으로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로서, 마 27:32절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이 오 리가 강제적으로 적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강제적인 규정을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을 처형 장소인 골고다까지 운반하게 하였는데 제가 그때의 일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마 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강제적인 법, 이런 불합리한 법을 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라를 잃고 식민지 생활을 하는 이상 인권유린을 당하고, 억울해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 세계에서 흔히들 일어나고 또 당하는 일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지침으로서 들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에 우리나라도 일본의 강제적 점거로 인해 당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나라를 잃으면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당할 수 있으며,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기독교인은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정신무장과 함께 국가를 보는 정치적인 시각을 올바로 가져야 합니다. 선출직을 뽑을 때도 대단히 신중하여야 합니다. 국민의식이 있는 사람에게 표를 던져서 국가나 지방정부를 안전하게 이끌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의 것을 강제로 빼앗길 때 얼마나 화가 나고, 또 수치스럽습니까? 여기서 하나 더 육신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잃거나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오리길 인생과 십리길 인생이 있습니다. |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예수님은 힘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법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부리는 횡포 앞에서 성도는 그런 사람들과 물리적 상대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앞서 39,40절을 보십시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빼앗으려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라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원수 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미워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으로 품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원수를 갚을 힘이나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길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그리스도인이다.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는 무언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세상 사람들과는 구분 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누가 너희를 억지로 리를 가자고 할 때 오리가 아니라 십리라도 가라고 하십니다. 오리와 십리 거리상으로 보면 요즘 하는 말로 도찐 개찐입니다. 거기가 거기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쌍둥이 형제가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 문제는 5문제입니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울상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시험을 얼마나 못 봤기에 그러니?
쌍둥이 형이 울먹거리며 말합니다. 5문제 중에서 4개 밖에 못 맞혔어요. 그럼 하나 틀렸네. 그 하나 틀린 것 때문에 울상입니다. 반면 쌍둥이 동생은 싱글벙글합니다. 엄마가 즐거운 표정으로 묻습니다. 너는 시험을 잘 본 모양이구나. 예, 저는 5문제 중에서 4문제 빼고 다 맞았어요. 그럼 한 문제 맞았다는 얘기구나. 예,
지식도 중요하고 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식은 가르치면 되고, 기술은 훈련시키면 되지만 태도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왕에 할 일이고, 이미 결정된 일이고, 이제는 안하면 안 되는 일인데도 원망과 불평으로 일을 손에 잡는다면 이런 자세가 바로 오리 인생길의 삶 아닐까요? 반면 십리를 가 줄 수 있는 십리 인생길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함께 해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내가 이 사람과 동행 해 주는 것이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것이 십리 인생길의 삶입니다. 십리 인생길의 삶은 내 마음 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서 넉넉히 배려해 주는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 된 사랑이 무엇일까요? 십리 인생길의 삶이 무엇일까요? 상대를 향한 넉넉한 마음, 넉넉한 사랑을 가지는데 있습니다. 오리 인생길을 가는 자들이 모이면 분위기가 늘 불편하지만, 십리 인생길을 가는 자들이 모이면 언제나 화목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 06:07)는 말씀처럼 십리 인생길의 삶을 사는 길에는 축복과 보상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는 그렇게 갈 수 없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여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 리더십 연구가가 오리 인생이 되지 말고 십리 인생을 살아라. 는 말을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억지적인 의무가 있는데, 그런 의무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땡출, 땡퇴 이것만 고치면 됩니다.
3. 자원하는 십리길 인생에는 복이 기다립니다. |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1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억지로 끌려가도 십리 인생이 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나와 관계가 있는 한 단어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즐거움의 십리 인생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생략된 말도 있습니다.
오리를 가게 하거든 다음에 이어져야 할 기쁨으로라는 말입니다. 생략된 말을 추가한다면 누구든지 기쁨으로 십리를 동행해 주어라. 이런 문장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도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00리를 가도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한 걸음을 옮겨도 함께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고.
믿음의 사람은 눌려 살면서도 나를 누르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눌려 살면서도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부자를 감동시킬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고, 배운 것이 별반 없음에도 유식한 자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내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억지로 가는 오리길 인생처럼 찬송을 불러도, 말씀이 선포되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자링 놓인 것은 아닙니까? 계속 믿음생활을 하다보면 상황은 어려운데 억지로 오리를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새벽기도 한번만 해라. 수요일, 금요일 기도회에 참여해라.
이건 억지의 오리 길에 속하는 격 아닐까요? 그러나 이왕이면 여러분은 십리 길의 인생길로 나아가야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자원해서 십리 길을 가라고 하는 성령님의 감동이 여러분 마음에 부담감을 줍니까? 혹 금식하라는 거룩한 부담감이 밀려옵니까? 특별헌금을 드리고 싶은 감동이 왔다 갔다 합니까? 그러면 결단을 하십시오. 그 결단 끝에 여러분을 위한 복된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국 카네기 연구소에서 경영 지도자를 승진시킬 때 5가지 기준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①거짓말을 가장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가? ②약속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③실수에 대하여 이유나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는가? ④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언어나 얼굴을 하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⑤쉽게 포기하는 사람, 오리도 못가는 도중하차 인생은 뽑지 마라.
십리 인생길을 가는 사람은 무엇보다 감사를 앞세우며 갑니다. 감사는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 가는 삶의 에너지이며, 낙심과 좌절의 안개를 걷어내는 아침햇살입니다. 그래서 십리 길 인생을 걸어가는 성도는 하나님, 내게 두 다리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는 손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며 찬송을 앞세우고 살아갑니다. 십리 길은 억지 오리 길과 달라서 인상 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콧노래 부르며 가는 길입니다. 기뻐하며 가는 길입니다. 그런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면서 감동을 받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오리 길을 가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주시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수님은 원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라고 하였습니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지 말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개인에게 준 것이지 국가나 사법기관 같은 공적 기간에 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판사는 부당하게, 남의 것을 탈취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하고, 적절한 처벌도 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국가나 사법부에는 오히려 공의를 행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도중하차 인생, 언제나 마지못해서 오리 길에 머무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도 쉽게 포기하는 오리 인생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리의 인생길을 가다보면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 때를 잘 넘기면 성공이 여러분 앞에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입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의무감의 삶은 무료하고 따분하고 힘들고 지치는 삶입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삶은 기쁨, 감사, 행복, 감격, 노래로 사는 인생입니다. 의무감의 삶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지만, 열정적인 삶은 비전을 바라보며 도전하는 용기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가 용돈을 달라고 할 때 억지로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입니다.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며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잔소리를 듣고 용돈을 받은 아이는 속으로 뭐라고 하겠습니까? 돈 벌기 참 힘들다. 다음에 보자.
억지로 주는 것은 주고도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왕 줄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억지로 할 때와 즐기며 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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