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맥추감사주일] 어떤 상황도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고후 12:07~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6.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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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의 광활한 사막지대 펜핸들(영토가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지역)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접어들면 한 모텔이 있습니다. 아주 작고 초라한 모텔인데 그 모텔 이름이 좀 특이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모텔(It's will do Motel)입니다.

이런 사막에 하룻밤 묵고 갈 호텔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인생길 도로를 달리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015년 전반기 6개월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우리 가정, 우리 직장, 그리고 우리의 믿음생활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다음주일은 금년의 전반기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맥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정착하여 첫 수확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혹 이런 생각을 안 합니까? 맥추감사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도시에 살기 때문에 보리농사를 안 짓지 않느냐?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 않느냐? 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형편이 된다, 안 된다 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키라 하셨으니 그대로 지키면 됩니다.

그럼에도 맥추감사주일이 부담스럽습니까? 그 이유는 맥추감사주일이 아니라 맥추헌금주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감사는 빠지고 헌금만 생각하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음 주에 맥추헌금주일이 아니라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물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내 몸에 육체의 가시도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0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여러 계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런 신령한 것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교만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세계를 보십시오. 아무리 훌륭하게 보여도 조금만 살펴보면 약점이 보이고, 허물투성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약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승리의 관을 쓴 사람도 그 영광이 저절로 쟁취된 것은 아니고, 성공이라는 명예를 거머쥔 사람도 한 번도 실패 없이 그런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행적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그의 선교 현장에는 많은 병자들이 치료함을 받았고, 심지어는 3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도 살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20:12). 그런 바울이 자신의 몸에 질병이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 병명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경학자들은 안질(眼疾) 즉 눈병과 간질 이 두 가지로 짐작합니다. 아무래도 그가 기록한 서신서들을 보면 눈병으로 짐작이 됩니다. 이런 질병을 놓고 바울은 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신의 육체를 찌르는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하였겠습니까? 바울은 이 가시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합니다. 다른 사람의 병은 고쳐주면서도 자기의 병은 해결하지 못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김해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라고, 또 여러분은 이렇게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믿은 대로 이루어지고(08:13), 믿음대로 대로 이루어지고(09:29), 소원대로 이루어지게(15:28) 하시는 분이다. 라고. 

그럼에도 기도를 해도 도무지 안 떠나는 가시 같은 요소가 있습니까?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과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육체의 가시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감사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07절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

 

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병들거나, 가난해 지거나, 자녀의 문제로 고통을 당한다면 우리를 더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겸손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 것, 없는 것, 아픈 것, 이런 것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 낮아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은혜의 도구, 감사의 도구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건강의 문제입니까? 경제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이 모두가 감사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오히려 문젯거리가 승리하는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문제라고 할 만큼 고통스럽게 하는 사탄의 사자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문제 때문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감사의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원망하는 자세에서 감사의 자세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약화되거나 파선하면 무엇보다도 현실의 환경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부터 먼저 쏟아내는 사람들을 더러 보실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은 감사의 싹을 잘라 버리는 위험한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이런 악성 환경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감사입니다. 감사는 약한 믿음을 회복하고, 인생을 놀랍게 바꿉니다.

 

 

 

 2. 기도 응답이 내 뜻과 달라도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0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계속 자기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08). 그때 그가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자신의 기도 제목과는 정 반대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거절의 응답입니다.

,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해결을 안 해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십니다.

 

그분은 못하시는 것이 없고, 불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기도제목을 놓고 간절히 부르짖음에도 거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상황 그대로 놔두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런 거절로 인해 하나님이 아니 계신지를 의심하는 자리에 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외면을 받은 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성도 여러분은 실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오히려 그 거절의 응답 때문에 복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기에 그것이 은혜의 통로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더욱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신령한 은혜를 더욱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혹 뚜렷한 거절이 온다면 그것도 응답으로 보십시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목에 힘을 준다면 그것은 축복의 통로가 아니라 교만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약할 때에 돕는 분이시지 강할 때에 돕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강한 자의 자리에 서면 하나님의 도움을 굳이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반면 약한 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입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가난한 나를 부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영의 눈이 어두워진 나를 볼 수 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 분 앞에 나의 무릎을 곧추 세우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고백을 아시지요.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는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풀무 불에 들어가면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0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기도의 응답이 내 뜻과 달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물론 우리 몸이 건강하고 시험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우리 가정이 다 평안하면 더욱 좋은 일이며, 평안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베풀어 주시는 은혜요 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생활에서 우리에게도 육신의 가시가 필요합니다. 그 가시 때문에 약함을 알게 되고, 그 가시를 통해 겸손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많은 고난들은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주님 복음 때문에, 믿음으로 바로 살려고 하는 그 결단 때문에, 성령님의 감동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금도 불평이나 원망의 요소로 여기지 않고 기쁨과 감사로 전환하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팔복의 마지막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천국의 복이 있고, 하늘에서의 상도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팔복 중의 가장 큰 복인 것 같습니다.

 

0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울은 예수님 복음 때문에,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넉넉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는 +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더해지고, 원망과 불평은 -와 같아서 이미 가진 것까지 없어집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더욱 더 애써 감사할 거리를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많은 감사할 거리가 생기고, 감사할 일들이 넘치고, 축복이 많아지는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평의 일에 대해서는 과감히 입을 닫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와 불평의 특징은 하면 할수록 더욱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평의 일들이 쌓여가고, 감사는 고백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과 축복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고 나옵니다. 또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드리는 감사를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감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까?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임을 기억하십시오. 은혜를 알고,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합당한 감사가 따르는 법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건강한 것? 행복한 가정 주신 것? 그리고 배우자 잘 만난 것? 다 감사거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보통 사람도 다 하는 감사입니다.

 

한 사람이 IMF 시절 많은 것을 깨닫고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의 사업이 무너지면서 공장도 문 닫고, 별장도 넘어가고, 빌딩도 넘어가서 없어지자 깨달은 것은, ~ 다 넘어가는 구나. 결국은 다 가는 구나. 그런데 하나님께 드렸던 것만 남아있는 것을 깨닫고는 아~ 하나님께 드린 것만이 남는 것이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제 차원이 높은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의 예물은 은혜 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감사, 어떤 고난들을 만나도 감사로 풀어가는 그 행적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두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질문 내용은 다음 둘 중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까? 입니다. 첫째, 당신은 1년에 평균 5만 달러를 버는데 다른 사람들은 평균 25천 달러를 버는 세상에서 살겠습니까?

둘째, 당신은 1년에 평균 10만 달러를 버는데 다른 사람들은 평균 25만 달러를 버는 세상에서 살겠습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첫째를 선택했습니다. 소득이 적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버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절대 소득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상대 소득에 신경을 더 쓴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런 비교의식 때문에 성도들조차 마음이 흔들리고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의 생활 자체가 항상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의 연속의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감격이 사무쳐 있었고, 매일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표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바울의 감사의 조건들은 세상의 환경적인 요소가 아니라 영적인 요소에 있었습니다. 자기 속사람이 하나님과 어떻게 영적 교제를 나누느냐? 에 두었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의 처한 환경이나, 건강이나, 가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성공이나 이와 같은 것들에 가치 기준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만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바울은 세상의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대상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 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