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부자 집에서 요리사를 채용하려고 광고를 내었습니다. 1. 직원모집. 요리사 2명, 2. 응시자격. 요리사 1급 자격증 소지자, 10년 이상 경력자 우대함, 3. 근무조건. 주급 1파운드, 숙식제공, 4. 기타사항. 메도디스트 사절. 우리나라의 생활정보지 구인광고와 유사하지만 마지막에 메도디스트 사절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메도디스트가 누구이기에 직원을 뽑는데 사절했을까요?
메도디스트(Methodist, 규칙준수 주의자)는 감리교인을 지칭합니다. 부자가 감리교인을 요리사로 채용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리교인을 요리사로 채용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부가 감리교인이 되고, 청소부가 감리교인이 되고, 주인마님이 감리교인이 되고, 나중에는 주인까지도 감리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감리교인을 채용하면 온 가족이 감리교인이 될까봐 메도디스트 사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생활을 통해서 전도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말임에도 너무 자주 듣다 보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전도하라는 말은 열 번을 듣는다 할지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안 들은 사람과 같습니다.
반대로 전도하라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다면 그 사람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성도들은 교회가 전도집회나 새생명축제, 총동원주일과 같은 전도의 일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라고 여기며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주일이 되면 교회 와서 설교만 듣고 갑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나의 생각과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7월을 맞았으니 여름이 한창입니다.
영적 컨디션이나 육체의 건강 면에서 축 늘어지는 때이고 보면 성도로서 일 년 중 제일 영적 위기의 때가 지금입니다. 이 영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전도로 극복하는 것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 전도의 당위성 앞에서 왜 전도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의 문을 열어주셔서 말씀을 듣고 즉각 순종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전도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
0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복음 전파의 강력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전파의 당위성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 내가 당연히 할 일이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전 09:16).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전파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는 뜻에서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에서 라는 엄숙한 표현을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이라는 표현은 복음전파의 엄숙함과 중대성, 즉 전도의 무거운 명령을 나타내고자 함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이 명령을 소홀히 여겼겠습니까? 성경의 흔적들을 보면 디모데는 복음전파의 명령을 무겁게 받고 감당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막 16:15)을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전도란 주님의 다른 명령들과 달라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이행하여야 할 엄한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책임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죄를 지었어도 용서받을 길이 있다. 죽어도 살 수 있고, 지옥 갈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뉴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천국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더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믿음도 부족한데 어떻게 전도를 하느냐고? 내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전도를 하느냐고? 에, 오히려 새가족들이 전도는 더 잘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외형적인 것이나, 교회의 프로그램 때문에가 아니라 여러분의 가슴에 영혼 구원과 생명을 살리는 열정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울처럼 전도하는 일에 빚진 자의 심령으로 올인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모든 삶의 중심이 복음을 전하는 스타일로 전환되기를 축원합니다.
롬 0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성도 여러분, 전도는 거룩한 의무만이 아니라 즐거운 특권이기도 합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정말 힘이 들지만 거기에는 전도하는 당사자만이 누리는 영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도자만이 아는 신령한 기쁨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우리의 이웃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받아 감당해야 할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명예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권세도 주십니다. 그러나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내가 전도해야 할 사람도 기다려주지 않음을 꼭 아셔야 합니다.
2. 전도하는 일에 시간을 우선 배정하여야 합니다. |
0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할 기회를 포착하던지 아니면 기회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전도로 연결시키라는 뜻입니다. 전도 할 기회를 만났으면 놓치지 말아야 하고, 전도의 기회를 못 얻을 때도 적절한 구실로 핑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놓고 말하기를, 마치 맹인이 절벽 끝에 서서 지팡이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주우려고 앞으로 몸을 굽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인생입니까? 이와 같은 긴박한 위기에 놓인 인생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의 지혜를 동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 직장 동료들을 다 전도하리라. 내 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다 전도하리라. 내 가족을 다 전도하리라. 이런 복음의 시간표를 우선 배정하십시오. 그리고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전도자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을 생명보다도 더 귀한 일이라고(행 20:24)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시간을 우선순위로 배정합시다. 지금까지는 전도라는 말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뒤로 숨었지 않습니까? 이제 그렇게 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전도하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4:23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력입니까? 쾌락입니까? 아니면 자녀들 뒤치다꺼리입니까?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 즉 부자가 되는 것도, 명예와 권력을 얻는 것도,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도 다 생명 구원을 위한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수명이 길게 보전됩니다. 예수님은 일상생활의 전 부분을 복음 전파를 위한 프로그램을 세워놓고 그대로 이루어 가셨는데, 나는 전도의 명령을 따라 날마다의 삶에서 전도의 시간표를 어떻게 세워놓았습니까?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김삼일 가족들은 백 마리의 양 중에서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어 실종되었을 때 그 한 마리의 양을 애타게 찾아 나섰던 목자처럼 (눅 15:04~06), 열 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애타는 마음으로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찾는 여자처럼 영혼을 찾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는 일을 놓고 왜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을 합니까? 이스라엘의 양에게는 잃어버린 양에 걸 맞는 세 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향 감각이 제대로 없고, 방어 능력이 거의 없고, 잘 뒤집어 지며, 뒤집히면 목자가 일으켜 세울 때까지 그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길 잃어버린 양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면 길 잃은 양이 누구일까요? 우리 주변의 사람들입니다. 인생은 영혼이 있기에 넘어졌다면 일으켜 주어야 하며, 영혼의 목자 되신 주님께 돌아오기까지는 계속 잃어버린 양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전도의 계획은 어떠합니까? 가까이는 내 가정, 내 이웃부터 모든 민족에 이르기까지 전도를 해 낼 계획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빈자리가 너무 많아서 좀 썰렁하시죠? 주님은 이 빈자리 채우는 일을 김해삼일교회의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름이 바로 영혼 추수의 계절입니다.
3. 구원의 문은 곧 닫힙니다. |
눅 13:25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왠지 가슴이 저릿해오는 말씀입니다. 주님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친교의 식탁에도 함께 앉아 어울렸고, 길거리에서 가르침도 받았다고 해도 나는 모른다 하십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들어야 하는 무서운 선고입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지금 문밖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다음으로 내 이웃이 문밖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말세지말 이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이 말 속에는 전도의 당위성과 긴급성이 다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도 전도의 실천에 나서는 분은 별반 없습니다. 자신이 전도하는 일에 나서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을 해 봅시다. 혹 세상에 완전 마취가 되어 버렸습니까? 그렇다면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벧전04:0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이 이제는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문도 곧 닫힌다는 말씀으로 받아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이 곧 닫힌다 해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문을 향하여 조금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가 가려워져서 복음이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노아홍수 때의 일을 예로 들어주십니다.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음을 아시지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으나(전 03:01), 그 때를 잃고 나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통곡할 때가옵니다(마 25:11,12). 주인이 문을 닫아 버리면 그 문을 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구원의 문은 시간적으로 제한 되어있는 문입니다. 한번 닫히면 다시는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노아방주의 문처럼 말입니다.
우리 곁에 믿다가 낙심한 자들이 있습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날에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라는 소리 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일 만은 내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일로서 차차, 천천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순종해야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인의 최대의 성공은 무엇입니까?
많은 재물과 지식, 권력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지상명령에 얼마나 순종했는가? 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최대의 성공은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러분은 복음 전하는 일에 올인 합니까? 그러면 곧 전도의 문, 구원이 문이 닫히는 것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구원, 이 구원의 문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복음전하는 일에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와 함께 성경공부를 통하여 훈련을 받는 것은, 자기들 스스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길 잃은 영혼들을 좀 더 잘 구원하기 위한 내공을 쌓기 위함입니다. 성경공부는 낙심하여 지친 영혼들, 죽어가는 영혼들을 데려오기 위한 일과, 효과적 전도의 사명을 이웃에게 전이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D. L. 무디. 전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한 사람은 단순히 혼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비해 백 명, 이백 명 만큼의 가치가 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단 12:0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성도 여러분, 일생을 사는 동안 한 명의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하고 그밖에는 아무 일을 못했을지라도 그 삶은 굉장한 영적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영혼을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람되는 일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돈이 있다면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데 쓰이는 헌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은 영혼을 살리려 가는 발걸음이고,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일에 자신을 던지면서 삽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부름을 받은 사명자로 깨달아만 지면 진정한 복이 됩니다. 나의 삶 전부를 이용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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