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5년 말씀

경건한 믿음의 가문을 세웁시다.(렘 35:16~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5. 1.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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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 부잣집의 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600년대 초 경주 지방에서 처음 가문을 일으킨 최진립 장군에서 광복 직후 모든 재산을 바쳐 대학을 설립한 최준까지, 123백 년 동안 거부로 이름을 떨친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입니다. 육연(六然)이라는 가훈과 함께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으로 육훈(六訓)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내용들이 읽고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어서 간단히 소개를 합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양반으로서의 신분은 유지하되 권력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재산은 만석(萬石) 이상을 모으지 마라. 대단히 역설적인 가르침이나 집안을 존경받게 한 것은 바로 이 가르침 때문입니다. 부에 대한 욕망의 절제라 할까요?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지나가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함으로써 덕을 쌓고 인심을 얻으라는 가르침입니다.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남의 불행을 치부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뜻으로서 정의로운 경제활동을 하되, 이웃의 원성을 살 일은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이웃과 나누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방 백리이면 경주를 중심으로 한 모든 지역입니다.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조선시대 창고의 열쇠는 남자가 아니라 안방마님이 가지고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 만큼 실제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에게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세워야 할 가문, 내가 세워야 할 가문은 어떤 가문이어야 합니까? 믿음의 가문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나올 수 있습니다.

경건한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가문의 전통으로 삼는다면 귀한 일꾼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자주 듣지 못한 한 이름이 나옵니다. 레갑이라는 인물입니다. 평소에 접하는 이름이 아니다보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도 좀 생소하게 느껴 질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경건한 가문을 일으킨 인물이기에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꼭 만나봐야 할 인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을 통해서 만나보겠습니다.

 

 

 1. 레갑의 자손들은 경건생활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06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07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레갑 사람하면 아라비아 지역의 미디안 광야에 정착해 있던 겐 종족의 후손으로서(대상 02:55),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게 된 이유는,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도망하여 미디안 광야로 피난하여 겐 종족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된 것이 인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겐 종족의 일부가 함께 가나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는데 이들 가운데서 레갑을 조상으로 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왕하 10:15~29). 이 레갑 가문의 사람들 가운데 레갑의 아들 요나답(왕하 10:01 여호나답)이 자기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믿음의 법을 세웠습니다.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을 짓지 말며, 농사를 짓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며, 평생 장막에 살면서 경건생활을 하라는 법입니다.

 

세상적이며 일시적인 것에 집착해서 영원한 것을 놓치는 일을 방지하자는 가훈인데 대단히 좋은 경건의 전통을 세운 것입니다. 이 믿음의 전통이 그냥 열심히 좀 잘 해 보자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의지가 확고해 보입니다. 적어도 십계명을 지키는 정도의 각오입니다.

십계명 정신을 말하자면 긍정문으로서 하라. 와 부정문으로서 하지 말라 이 두 가지 아닙니까? 잘 알다시피 십계명 중 4,5계명은 하라 이고 나머지는 하지 말라 입니다. 이 가운데 하지 말라는 부정문이 레갑 가문의 법에 등장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가 나오는데 이 문장의 원래의 의미는 영원히 포도주를 절대로 마시지 말며. 입니다가문의 다른 법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믿음의 가치관을 요나답이 자녀들과 자손들에게 충실히 지킬 것을 요구하였고, 그 가문의 사람들은 250여년 세월 동안 이 경건의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지금의 레갑 가문의 자손들이 그들의 선조 요나답이 세운 경건의 전통에 참여한 것은 그만큼 경건을 사수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출세 보다 하나님 앞에서 영이 잘 되고, 경건생활 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복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조금만 사회적인 지위만 있어도 병역을 기피하려 하고, 조기 유학을 떠나고, 세상에서 좀 잘 되겠다 싶으면 믿음을 예사롭게 던져버립니다.

 

1. 세상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근심 버리고 두 손 들고 눈물로써 주만 따라 가오리다.

2. 세상일에 얽매어서 세상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권세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만 따라 가오리다.

3. 지금가지 내가 한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2. 레갑의 자손들은 경건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을 보면 참 이상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도 참 특이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B. C 605년 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던 때인데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상한 명령을 하나 내립니다.

조상 때부터 성결한 삶을 위해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살아온 레갑 자손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04) 불러 모아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레갑 자손들은 당시에 경건한 삶을 살면서 자기들의 조상 요나답이 전해 준 성결한 삶의 방식대로 절대로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 나실인 서원자들입니다.

 

레갑 자손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와 대면하여 앉자 예레미야가 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니 먹으라고 강권합니다. 이로 인해 레갑 자손들과 예레미야 선지자 사이에 서로 좀 옥신각신 설전이 벌어집니다.

그러자 레갑 자손들이 요나답이 물려준 경건의 유산을 끝까지 깨뜨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 절대로 포도주를 안 먹겠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거절의 이유가 궁색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였기 때문이고, 우리도 이 생활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게감이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유함에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던 이유는 몸에 밴 경건의 생활과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굳은 의지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서의 이스라엘의 포도주에 대한 이해도는 어떠할까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의 물은 일반적으로 석회석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물을 그냥 마시다간 병나기 알맞습니다. 그러나 물을 안 마실 수 없다 보니 체내에 쌓인 석회석을 포도주를 마심으로 인해 다소 분해를 시켜 배출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음료수처럼 마시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 잔치 집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품이며, 거기다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입니다(02:01~11). 그러나 이런 좋은 기능이 있음에도 포도주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고, 과음하면 체하여 실수를 하게하고, 또 신뢰를 잃게 하며, 마지막엔 타락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레갑 자손들은 이런 포도주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에 마시지 말라는 가문의 전통을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으로 서원을 하고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활동이나 인간관계에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자신의 즐거움을 중단하는 것이고, 사회적인 교제의 단절을 감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즐거움을 멈추고, 사회적인 교제의 단절을 겪으면서 까지 레갑의 자손들이 얻으려 한 것이 무엇입니까? 단 하나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생활입니다.

 

23: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 지어다.

 

08~10절을 보면 레갑 자손들은 경건과 깊은 영성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포도주를 금한 일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의 금지 사항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10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

세상의 출세나 유행 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경건에 전념함으로 재물의 욕심도 능히 극복하였다는 고백입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경건의 생활을 잘 지켜 온 레갑의 자손들, 이들을 이끌어가는 삶의 동력은 오직 하나 경건의 전통입니다. 이 전통을 지키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겼고, 비록 세상에서는 그다지 넉넉하게 살지 못할지라도 경건의 전통과 하나님과의 영적 사귐이 있다면 그것을 최고의 보배로 여겼습니다.

 

 

 3. 레갑의 자손들은 경건생활을 잘 함으로 인해 큰 복을 받습니다.

 

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레갑 가문의 자손들이 경건의 전통을 잘 지킨 결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계속 복을 받는데, 어떤 복을 받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앞에 설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10:08). 그러면 레갑 자손들은 그 원조가 미디안의 겐 종족 유랑 민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책의 자리에 나아 간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란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어야만 하는데 비해, 레갑 자손들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갈렙이 있는 유다 지파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고, 어쩌면 차별을 받아 다소 소외되어 살지라도 레갑의 경건생활을 그 아들 요나답이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 본을 받아 실천할 것을 특별히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경건의 전통이 무려 250년 세월이 지나면서도 계속 가문의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음은 레갑의 자손들이 얼마나 믿음 줄 하나를 붙들고 경건생활을 하였는지 능히 짐작이 갑니다. 본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데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을 일꾼들이 자자손손 영원히 끊어지지 않겠다는 복의 선언이 얼마나 값진 복이요, 영광입니까?

 

믿음으로 바로 살려는 각오로 경건생활을 한 레갑 자손들,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대단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특권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답은 그의 자손들에게 세상에서의 출세보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르게 살 것을 명한 것은,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이제 레갑의 자손들에게 어떤 직분이 맡겨졌을까요? 레위 지파와 아론의 후손이 아닌 이상 제사장은 아니라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후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들이 성전 봉사의 직분에 참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유대인의 구전 율법을 해석하는 미쉬나에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들이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성전 제단에 사용되는 나무를 가져왔다고 나옵니다.

또 다른 전승에는 물과 관련된 분야에서 요나답의 후손들이 봉사를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로 보아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란 성전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레갑 자손들은 성전에서 일을 하는 그 직책이 무수리의 역할이든지, 하인의 역할이든지, 화목을 장만하는 일이든지 간에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이란 것에 크게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자손들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들이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어진다면 이 얼마나 기뻐 할 일입니까?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선언이 오늘 여러분과 자손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받아야 할 말씀, 사모하여야 할 직분인 줄 알고 내 가슴에 온전히 새겨 넣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좀 시시하고, 별 희망도 가치도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과 연관시켜 일을 보니 이 일이야말로 진정 복된 일이요 사모할 일인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하 16:0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약 35,000명 정도가 사는 뉴 샴푸톤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특산물이나 관광거리는 없지만 작은 오두막 집 하나로 유명합니다. 이 집 앞의 간판에 이 집은 비록 작지만 미국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낸 위대한 집입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 집 가문에서 나온 인물들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이 오두막에 집을 짓고 남편 조나단 에드워드(1703,10,5~1758,3,22)와 그 아내 사라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초라한 부부로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후 4,5대에 걸쳐 후손이 늘어가는 중에 부통령 1, 13명의 대학 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 48명의 판검사, 116명의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학자들이 그 가문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결론은 조나단 에드워드와 사라는 12명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 경건한 믿음을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와 사라는 후손들에게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자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 했을 때 그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마시기를 거부한 것은 이미 철저한 경건의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라도 나와 먼 훗날의 자손들을 위하여 신앙의 가문을 세우고, 경건의 훈련을 잘 시켜서 복된 믿음의 가문으로 만들어 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