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족보는 고려 시대 때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입니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때는 왕실과 양반, 사대부가(士大夫家)들이 조상 숭배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족보를 그럴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양반들이 자기 혈족과 가문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하층 평민들과 신분을 구별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족보가 있어야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것 때문에 상민(常民) 중 일부는 천대받는 것이 싫어서 돈을 주고 짝퉁 족보를 만들어 양반 행세를 한 일도 있습니다. 양반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슬쩍 얹어 양반으로 둔갑한 셈입니다.
족보는 나에 대한 사실을 증명하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족보 이야기를 할 때는 성과 이름과 시조가 태어난 본관(本貫) 및 몇 대 손인 것까지 묻고 답을 합니다. 족보가 있으면 내가 어느 가문의 몇 대 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할아버지이며 조상인지 또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등 궁금한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 역사를 한눈에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신약성경의 첫 권인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족보)를 읽었습니다. 마태복음을 처음 읽으시는 분은 시작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이렇게 40회 정도의 낳고 와 생소한 이름들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낳고 가 나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 마태가 제1차 수신자인 유대인이 혈통과 족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배척한 예수님,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그분이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메시아라고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 지루하게 여겨지는 족보야말로 신령한 면에서 큰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족보에 등장하는 몇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신령한 관계를 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신령한 계보에 동참한 여자들」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의 계보는 왕손 계보입니다. |
0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01장은 신약성경 시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계보) 이야기를 먼저 내 세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범하게 이 말씀을 읽으면 사람의 이름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별생각 없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는 마태가 유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최고의 핵심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은 마태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이라고요. 그러면 왜 마태복음이 신약성경 첫 권에 배열되어 있습니까? 01장부터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01:01)고 기록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지 침묵합니다.
누가복음도 세례 요한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다 03장에 가서야 상향식 기법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눅 03:23~38). 요셉부터 시작하여 헬리, 맛닷 등 조상들을 아래에서 위로 기록하는 방식으로서 마지막에는 아담과 하나님에까지 이릅니다.
이에 비해 마태는 유대인 족보 기록 방식을 하향식으로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차례로 이삭, 야곱 등, 마지막엔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을 상대로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성경 중심인물이 누굽니까? 아브라함입니까? 다윗입니까? 아브라함도 다윗도 아니고, 아담도 아니고 심지어 하나님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생명의 구원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분을 먼저 밝힙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밝힙니다. 사실 다윗의 왕권은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근 6세기가 흐르는 동안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만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택하신 이유에 대한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형식만 가진 셈입니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몰랐고, 자기들이 받은 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방랑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신령한 면에서 장애인이 된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태는 예수님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이제부터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하던 당시의 상황을 봅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놓고 다윗의 왕권을 이을 분인지에 대한 정통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배척하였습니다.
혈통과 족보를 중요시하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는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야말로 다윗 가문의 메시아이시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이시다. 하고 밝힙니다.
01절을 잘 보십시오. 한글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원문이나 영어 성경에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 왕으로 오셨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왜 한글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되어있습니까?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중국어 성경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마 0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는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이름에는 그만한 행적과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그 예로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다윗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족보에서 다윗은 아주 간단하게 처리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는 보조자에 그칩니다. 이는 다윗이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계보에 요셉이 참여하였습니다. |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님 족보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고 그 이름들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유명한 이름도 많이 띄는데 그 이름을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역사에 적극 동참한 사람입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②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성경에 별 기록도 없고 또 이름은 있어도 별로 한 일이 없는 그저 이름만 걸친 사람들입니다.
③악한 일을 하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므낫세, 아몬, 여고니야 등 하나님의 선한 역사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악한 일만 하고 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인물이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요셉의 집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요셉이란 인물 속에 담겨 있는 생명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육신의 차원으로 보면 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은혜를 찾는 마음으로 보면 예수님의 호적상 아버지 자리에 요셉을 택하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신령한 모습이 예수님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간단히 볼까요?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한 족보에서 요셉이 마지막 계보를 잇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요셉은 갈릴리 지역 작은 마을 나사렛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직업이 목수입니다(마 13:55).
이런 사람이 귀한 메시아 계보를 잇는 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복입니다.
이런 복이 저절로 옵니까? 아닙니다. 19절을 보면 요셉의 믿음 품격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부정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편입 당하여 절망하던 시대입니다. 신령한 가치관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의로운 빛을 비춘 몇 안 되는 인물이 요셉과 시므온입니다.
눅 0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우리는 요셉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원수까지도 품어주시는 모습 말입니다.
그 예를 한번 보겠습니다. 약혼녀 마리아가 성령님으로 임신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마리아를 보호해 주려는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 01:18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약혼녀인 마리아가 혼외 관계로 임신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자 이 일을 조용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매우 고민합니다.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서 직접 요셉에게 개입하여 성령님으로 인해서 되어 일이라고 밝혀줍니다.
이에 요셉은 즉각 하나님 섭리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마리아의 임신 문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를 보호해 주려 요셉의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러해야 합니다.
3. 예수님의 계보에 흠이 많은 여자도 참여하였습니다. |
0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0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06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삼하 12:24)….
유대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공적으로 족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족보는 마리아 족보라 부르는데도 남편의 이름으로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또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여자들을 부정하다고 여기는 네 명을 등장시킵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마태의 족보를 놓고 이게 무슨 족보냐며 매우 흥분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에서 흠이 큰 여자 둘과 이방인 여자 둘을 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①먼저 다말부터 봅시다. 이 여자가 누굽니까?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로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남편 엘이 여호와 앞에서 행악하므로 죽었습니다. 계대 결혼 원칙을 따라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살았습니다. 오난 역시 하나님 앞에서 행악하여 죽었습니다.
다말은 그만 과부가 되어 살았습니다. 이후 여러 상황 속에서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베레스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창 38:29). 이게 말이나 됩니까?
②다음으로 라합을 봅시다. 이 여자는 가나안 땅 여리고의 기생 출신입니다(수 02:01).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죽어야 할 자입니다. 이런 이방인 여자가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이 일 역시 말도 안 됩니다(룻 04:21; 마 01:05).
③세 번째로 룻을 봅시다. 이스라엘이 아닌 모압 출신 여자입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요, 저주받은 가정의 며느리입니다. 그러나 그는 홀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의 고향에 와서 시어머니의 집안사람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룻 04:13). 역시 이방인 여자입니다.
④마지막 밧세바를 봅시다. 본래는 장군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을 때 해도 지지 않은 오후 시간입니다. 다윗 왕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때를 찾아서 옷을 벗고 온몸을 볼 수 있도록 밖에서 목욕하며 은근히 유혹하였습니다.
다분히 의도적 행동입니다. 이에 다윗과 눈이 맞아 정을 통한 여자입니다. 나중 다윗 왕의 계략에 의해 남편이 죽고 난 뒤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들 솔로몬을 낳았습니다(삼하 12:24). 이 또한 용납하기 곤란한 여자입니다.
족보에 등재된 여자 넷, 다말, 라합, 룻, 밧세바 이 네 여자, 간단히 살펴본 이력만 해도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여자들입니다.
이스라엘 풍습으로 여자와 아이는 인구조사 때 계수도 하지 않을 정도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마 14:21). 이런 여자들이 왜 족보에 들어갔습니까?
여기에 바로 성경이 전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하고, 행한 일들이 옳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네 여자가 메시아 계보에 들어간 것은 분명히 사람의 관점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서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입은 여자들 모습을 잘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문이나 족보를 따라 장자들만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정해진 법을 초월한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사용하셨습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 흠이 큰 사람이라도 믿음의 자리에 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쓰십니다. 파격적인 방법으로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법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버림받은 사람일지라도 믿음의 자리에만 서면 신분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김해삼일교회는 은혜의 원리, 복음의 원리, 신령한 원리를 따라 쓰임을 받습니다. 사람의 원칙이나 사람의 방법이나 세상의 원칙을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의 자리에만 들어오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본 네 여자만 죄인입니까? 이들 외에도 얼마든지 악한 모습을 보인 왕들의 행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이름이 아무런 세탁 과정이나 생략도 없이 그대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만이 갖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 자기의 임의로 어떤 사람 이름은 빼고 또 어떤 사람 이름을 넣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방인 여자들과 미천한 신분인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얼마든지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의 신령한 의도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는 모든 일을 동원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돈과 건강, 주신 시간과 달란트, 주신 권세와 명예 주신 생명까지 다 낳기 위함인 줄 믿으십시오.
제가 서두에 “낳고”가 40회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내게 주신 모든 장점으로 40명의 생명을 낳는 일에 동참하십시오.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그것으로 복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에 40명을 동참시키는 일을 감당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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