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신령한 계보에 동참한 여자들(마 01:01~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12. 2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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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시대 때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입니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때는 왕실과 양반, 사대부가(士大夫家)들이 조상 숭배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족보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양반들이 혈족과 가문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하층 평민들과 신분을 구별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한 마디로 말해 족보가 있어야 양반 가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 때문에 상민들은 천대받는 것이 싫어 돈을 주고 짝퉁 족보를 만들어 양반 행세를 하였고, 양반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슬쩍 얹어 양반으로 둔갑하기도 하였습니다.

 

족보란 비롯한 조상들의 역사적 사실로서 그래서 족보 이야기를 할 때면 성과 이름, 그리고 시조가 태어난 본관(本貫), 또 몇 대 손까지 자세히 묻고 답을 합니다. 족보가 있으면 내가 어느 가문의 몇 대 손이며, 어떤 분이 나의 할아버지이며 조상들인지 또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등 궁금한 점들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의 역사를 한 눈에 보는 겁니다. 제가 신약성경의 첫 권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읽었습니다. 마태복음을 처음 읽으시는 분은 시작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이렇게 40회 정도의 낳고 와 또 생소한 이름들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낳고 가 나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임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가 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마음에 두었던 1차 수신자는 혈통과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입니다. 마태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배척한 그 예수님,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그 분이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는 구원자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 지루하게 여겨지는 이 족보야말로 대단한 영적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족보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을 통하여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또 나와의 영적 관계가 어떤지를 강론하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신령한 계보에 동참한 여자들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의 계보는 왕손의 계보입니다.

 

0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01장은 신약성경의 시작으로서 예수님의 족보(계보) 이야기를 내 세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이 말씀을 읽으면 그저 사람의 이름만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하지만 이 예수님의 족보에는 마태가 유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 최의 핵심 가치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4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성경은 마태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입니다그런데도 왜 마태복음이 신약성경의 첫 권에 배열되어 있을까요?

01장부터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01:01)고 기록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하여 침묵합니다.

 

누가복음도 세례 요한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다 03장에 가서야 상향식 기법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03:23~38). 요셉부터 시작하여 헬리, 맛닷 등 조상들을 아래에서 위로 기록하는 방식으로서 마지막에는 아담과 하나님에까지 이릅니다.

이에 비하면 마태는 유대인의 족보 기록 방식을 하향식 방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차례로 이삭, 야곱 등, 마지막엔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을 상대로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성경의 중심인물이 누굽니까? 아브라함입니까? 다윗입니까? 아브라함도 다윗도 아니고, 아담도 아니고 심지어 하나님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생명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신분을 밝힙니다.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입니다사실 다윗의 왕권은 B. C 586년 예루살렘 함락이후 근 6세기가 흐르는 동안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작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택하신 이유에 대한 본질은 잃어버리고 형식적 종교 생활에 젖어있었습니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몰랐고, 자신들이 받은 복도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영적 맹인이 된 사실을 전혀 감지를 못하고 말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태는 예수님은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이제부터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과연 다윗의 왕권을 이을 자인지에 대한 분명한 법적 정통성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배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혈통과 족보를 중요시 하는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다윗 가문의 메시아,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다. 이렇게 밝힙니다01절을 보십시오.

 

한글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이렇게 나오지만 원문에는 또 영어 성경에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 왕으로 오신 분임을 강조를 한다 할까요?

그러면 왜 한글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되어 있을까요?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중국어 번역을 참고하였기 때문입니다. 0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는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 하나에도 그 행적을 보면 많은 사연과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에 관련된 내용은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 족보에서 다윗은 간단하게 처리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해 주는 보조자에 그치는데 이는 다윗이 주인공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계보에 요셉이 참여하였습니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신령한 예수님의족보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그 이름들이 다양합니다. 유명한 이름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이름들을 보면 일단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적극 동참한 꼭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성경에 별 기록도 없고, 또 이름은 있어도 별로 한 일이 없는 그저 이름만 걸친 사람들입니다.

악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므낫세, 아몬, 여고니야 등 하나님의 선한 역사에 동참을 한 것이 아니라 악한 일만 저지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어떤 인물이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요셉의 집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요셉이란 인물 속에 담겨져 있는 생명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육신의 차원으로 보면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은혜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의 호적상 아버지의 자리에 요셉을 택하신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신령한 모습이 예수님과 아주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들이 어떤지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한 족보에서 요셉이 마지막 계보를 잇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요셉은 갈릴리 지방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 거하면서 목수의 생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귀한 하나님의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육적 아버지가 되는 복을 받았는데 이런 복이 저절로 온 것입니까아닙니다.

 

19절을 보면 요셉의 믿음의 품격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요셉을 놓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부정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 식민지로 편입되어 절망하던 시대, 이로 인해 영적 가치관까지도 잃어버린 시대에 믿음의 의로운 빛을 비추었던 몇 안 되는 시대적 아이콘이 요셉과 시므온이었습니다.

 

0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우리는 요셉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원수까지도 품어주시는 모습 말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가 성령님으로 임신이 되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마리아를 보호해 주려는 인간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01:18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약혼녀인 마리아가 혼외 관계로 임신한 것으로 알고 조용하게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사람의 생각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을 하여 성령님으로 인해 되어 일이라고 밝힙니다이에 요셉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순종을 하고, 마리아의 임신 문제가 일단락됩니다.

여기서 마리아를 보호해 주려고 지혜롭게 판단하는 요셉의 사랑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내 모습에서도 이런 의로운 요셉의 사랑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원하십니다.

 

 

  3. 예수님의 계보에 흠이 많은 여자들도 참여하였습니다.

 

0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0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06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일반적으로 유대인들 사회에서 여자들은 족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마리아 족보라 부르는데도 남편의 이름으로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여자들을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여자를 네 명이나 등장시킵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마태의 이런 족보를 놓고 이게 무슨 족보냐고 상당히 흥분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흠이 큰 여자 둘과 이방인 여자 둘을 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말을 보겠습니다. 이 여자가 누굽니까?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로서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남편 엘이 여호와 앞에서 행악하므로 죽자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살았으나 오난 역시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죽음으로 과부가 되어 살았습니다. 이후 여러 상황들 속에서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고 동침하여 베레스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38:29). 아무리 특수한 상황이었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다음으로 라합입니다. 이 여자는 가나안 땅 여리고의 기생 출신으로서(02:01)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멸 받아야 할 사람이고 이방인입니다. 이런 여자가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으니 이것도 역시 말이 안 됩니다(04:21; 01:05))

 

세 번째로 룻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모압출신 여자입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요, 저주받은 가정의 며느리입니다. 그러나 룻은 홀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의 고향에 와서 시어머니를 잘 섬기다가 집안사람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04:13). 그러나 이방인 여자 아닙니까?

 

마지막 밧세바입니다. 본래는 장군 우리아의 아내로서 남편이 전선에 나가 있을 때 해도 지지 않은 오후 시간, 다윗 왕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때를 찾아 옷을 벗고 온몸이 다 보이도록 나체로 밖에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으로 이에 다윗 왕과 눈이 맞아 정을 통한 부정한 여자입니다. 나중 다윗 왕의 계략에 의해 남편이 죽고 난 뒤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솔로몬을 낳았는데(삼하 12:24) 이 또한 용납하기 곤란한 여자 아닙니까?

 

족보에 등재 된 다말, 라합, , 밧세바 이 네 여자들, 간단히 살펴 본 이력만 해도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 될 수 없는 여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풍습으로는 여자와 아이는 인구조사 때 계수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당하며 살았습니다(14:21). 이런 여자들이 왜 족보에 들어갔느냐 말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진리가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하고, 행한 일들이 옳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만 하면 누구든지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여자들이 메시아의 계보에 들어간 것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안 되어도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크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입었던 여자들의 모습을 잘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문이나 족보를 따라 장자들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해진 법 보다는 성령님의 감동적인 흐름을 따라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 흠이 큰 사람일지라도 믿음의 자리에 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쓰실 수 있는 파격적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법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버림받은 사람일지라도 깨닫고 믿음의 자리에 서기만 하면 사용하십니다. 신분과 관계없이 말입니다.

김해삼일교회에서는 은혜의 원리, 복음의 원리, 신령한 원리를 따라 쓰임을 받습니다. 사람의 원칙이나 사람의 방법, 세상의 원칙을 말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들어오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하여 본 네 여자만 죄인입니까? 이들 외에도 얼마든지 악한 모습을 보인 왕들의 행적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아무런 세탁 과정이나 생략도 없이 그대로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은 예수님의 족보만이 갖는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 자신의 임의로 어떤 사람의 이름은 빼고, 또 어떤 사람의 이름은 넣기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방인 여자들, 미천한 신분에다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들 사건을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을 전혀 가감하지 않고 기록한 마태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돈, 주신 건강, 주신 시간, 주신 달란트, 주신 권세, 주신 명예 주신 생명까지도 다 낳기 위함인 줄 믿으십시오.

제가 서두에 낳고 가 40회 나온다고 했습니다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내게 주신 모든 장점으로 40명의 생명을 낳는 일에 동참하십시오.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내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그것으로 복된 인생을 살았다 자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에 40명을 동참시키는 일을 감당하며 삽니다.